돌은 어떻게 시멘트가 되어 세상을 바꾸었을까

석회석 채석장에서 시멘트 공장과 운송·건설현장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산업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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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바라보면 돌이 먼저 보이지는 않습니다.

나무가 보이고 능선이 보입니다. 산허리를 깎아놓은 채석장에 들어가서야 그 안에 얼마나 많은 돌이 숨어 있었는지 알게 됩니다.

그 가운데 석회석이라는 돌이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특별할 것 없는 회색빛 돌입니다. 그런데 이 돌을 캐고 부수고 뜨거운 가마에서 구운 뒤 다시 곱게 갈면 전혀 다른 물건이 됩니다.

시멘트입니다.

오늘은 시멘트를 쉽게 만납니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에도 있고, 학교와 병원에도 있고, 우리가 달리는 도로와 다리에도 있습니다. 터널과 댐, 공장과 항만에도 들어갑니다.

너무 흔해서 우리는 이 물건이 어디에서 왔는지 잘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우리나라에서 시멘트는 한때 마음대로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 부족했던 회색가루를 스스로 대량으로 만들기 시작하면서 나라의 풍경도 빠르게 달라졌습니다.

다시 세우려면 먼저 재료가 필요했다

전쟁이 끝났다고 모든 것이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무너진 집은 다시 지어야 했습니다. 끊어진 길도 이어야 했습니다. 학교와 공장, 철도와 항만도 복구해야 했습니다.

사람이 돌아와도 사람이 살아갈 공간은 저절로 생기지 않았습니다.

다시 세우려면 재료가 필요했습니다.

목재도 필요했고 철도 필요했습니다. 유리도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시멘트가 필요했습니다.

1950년대 한국은 필요한 시멘트를 충분히 생산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전쟁으로 기존 생산시설까지 피해를 입었습니다.

유엔한국재건단은 전후 복구사업 가운데 하나로 삼척의 시멘트 생산시설을 복구했고, 생산능력을 연 6만 톤에서 10만 톤으로 늘렸습니다. 이어 문경에는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의 시멘트공장이 들어섰습니다. 1957년 준공된 문경공장의 생산능력은 연간 약 20만 톤이었습니다.¹⁾

지금의 눈으로 보면 하나의 공장이 생긴 일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공장을 조금 가까이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공장 하나만 생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이 생겼습니다.

돌을 캐는 곳에서 일이 시작됐다

시멘트공장은 아무 곳에나 세울 수 없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원료인 석회석을 대량으로 확보해야 했습니다.

산을 조사하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석회석을 캐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단단한 암반을 뚫고 발파하고, 떨어져 나온 돌을 모으고, 큰 돌을 잘게 부수고, 그것을 공장까지 옮겨야 했습니다.

굴착기와 운반장비가 필요했고 그것을 움직이는 사람도 필요했습니다.

기계가 고장 나면 고치는 사람이 있어야 했습니다.

전기가 들어와야 했고 연료가 필요했습니다.

한 덩이의 돌이 공장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까지 이미 여러 사람의 일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1970년 국립영화제작소가 남긴 시멘트공업 기록도 이야기를 석회석에서 시작합니다. 당시 기록은 석회석을 시멘트의 중요한 원료로 소개하면서 채굴에서 생산과 출하, 건설현장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²⁾

석회석은 공장에 도착했다고 곧바로 시멘트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돌을 부숩니다.

다른 원료와 적절하게 섞습니다.

곱게 갈아 가마로 보냅니다.

가마 안에서는 매우 높은 온도로 원료가 구워집니다.

그 과정에서 작은 덩어리 모양의 클링커가 만들어집니다.

클링커를 식힌 뒤 석고 등을 더해 다시 곱게 갈면 우리가 아는 시멘트가 됩니다.

공정 하나가 늘어날 때마다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생산설비를 운전하는 사람이 있었고, 가마를 관리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원료를 검사하고 제품의 품질을 확인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전기설비를 관리하는 사람, 기계를 정비하는 사람, 공장 안에서 원료와 제품을 옮기는 사람도 필요했습니다.

우리가 보는 시멘트 한 포대는 이미 이 긴 과정을 지나온 물건입니다.

부족했던 시멘트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변화의 속도는 빨랐습니다.

1962년 국내 시멘트 생산능력은 약 73만 톤이었고 실제 생산량은 약 51만 톤이었습니다.

1971년에는 생산능력이 약 692만 톤, 실제 생산량이 약 687만 톤까지 늘어났습니다.

10년도 되지 않는 사이 실제 생산량이 열 배를 훌쩍 넘게 증가한 것입니다.

더 놀라운 변화도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시멘트를 수입해야 했던 나라가 1971년에는 약 94만 톤을 해외로 수출했습니다.³⁾

숫자만 보면 생산량이 늘어난 이야기입니다.

사람의 삶에서 보면 조금 다릅니다.

새 공장이 생겼습니다.

채석장이 커졌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제품을 옮길 철도와 화물차가 필요해졌습니다.

시멘트를 저장하고 나누어 보내는 시설이 생겼습니다.

건설현장에서는 더 많은 시멘트를 사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시멘트 생산량이 늘어난 만큼 그 앞뒤에 붙어 있는 일도 함께 커졌습니다.

포대 하나에도 다른 산업이 들어 있었다

예전 시멘트 하면 종이포대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포대도 그냥 생긴 것이 아닙니다.

종이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무거운 시멘트를 담아도 쉽게 찢어지지 않는 포대가 필요했습니다.

포대를 만들고 인쇄하고 접착하고 검사해야 했습니다.

완성된 포대는 다시 시멘트공장으로 운반됐습니다.

시멘트가 포대에 담기고 나면 창고로 갑니다.

다시 화차나 화물차에 실립니다.

도착지에서는 내려야 합니다.

판매하는 사람이 있고 현장으로 배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 포대의 무게를 사람이 직접 어깨에 지고 옮기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건설 규모가 커질수록 포대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시멘트를 포대에 넣지 않고 대량으로 운반하는 벌크 방식이 확대됐습니다. 저장 사일로와 전용 운송장비가 필요해졌고, 소비지 가까이에는 분쇄·포장·레미콘 시설도 늘어났습니다.³⁾

물건이 바뀌자 운반방법이 바뀌었습니다.

운반방법이 바뀌자 다시 새로운 설비와 일이 생겼습니다.

시멘트는 공장 밖으로 나가면서 더 많은 일을 만들었다

공장에서 나온 시멘트는 그 자체로 완성된 건물이 아닙니다.

물과 골재가 필요합니다.

모래가 필요하고 자갈이 필요합니다.

철근과 거푸집도 필요합니다.

콘크리트를 만들고 운반하고 타설하고 다지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도로를 만드는 곳으로 갔습니다.

다리를 만드는 곳으로 갔습니다.

댐과 항만으로 갔습니다.

공장과 학교를 짓는 데 들어갔습니다.

집을 짓는 데도 들어갔습니다.

1970년에 제작된 정부 기록영상에는 당시 시멘트가 댐, 항만, 제방, 터널, 철도침목, 교량, 고속도로, 고가도로, 지하도와 아파트 건설 등에 사용되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²⁾

여기서 시멘트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시멘트공장에서 만들어진 물건 하나가 다른 산업의 재료가 된 것입니다.

시멘트공장 노동자의 일이 끝난 곳에서 건설노동자의 일이 시작됐습니다.

광산과 제조업이 운송업을 만나고, 운송업이 건설업을 만났습니다.

하나의 산업이 다른 산업을 불러냈습니다.

회색 포대가 마을 안으로 들어왔다

시멘트가 들어간 곳은 거대한 국가시설만이 아니었습니다.

1970년 정부의 새마을가꾸기사업 추진 기록에는 전국 3만3267개 행정리동에 마을마다 시멘트 336포대를 지원하는 계획이 나옵니다.

그 시멘트는 마을길을 넓히고, 작은 하천의 둑을 손보고, 공동우물과 공동빨래터를 만드는 데 사용됐습니다.

이후 사업성과가 좋은 1만6600개 마을에는 시멘트 500포와 철근 1톤을 추가로 지원했습니다.⁴⁾

여기서는 평가보다 장면 하나가 중요합니다.

시멘트가 공장에서 나와 기차와 화물차를 타고 어느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사람들이 포대를 내렸습니다.

그 시멘트를 가지고 길을 고쳤습니다.

우물을 만들었습니다.

하수구를 손봤습니다.

흙과 돌이 있던 자리에 콘크리트가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나라의 기간산업을 세우던 재료가 어느 순간 평범한 사람이 사는 마을의 골목까지 들어온 것입니다.

시멘트가 바꾼 것은 건물의 크기만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바닥의 모습까지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시멘트라고 모두 같은 시멘트는 아니었다

건설이 늘어나자 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디에나 똑같은 시멘트를 사용할 수는 없었습니다.

일반 건축물에 필요한 성질과 거대한 댐에 필요한 성질은 달랐습니다.

바닷물이나 황산염의 영향을 많이 받는 곳도 달랐습니다.

추운 날씨에 공사를 해야 하거나 짧은 시간 안에 초기 강도를 확보해야 하는 현장에서는 또 다른 성능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포틀랜드 시멘트도 용도와 특성에 따라 보통, 중용열, 조강, 저열, 내황산염 등으로 나뉩니다.

여기에서 시멘트산업은 단순히 많이 만드는 산업에서 필요한 성질을 만들어내는 산업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갑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 옥천의 당재터널은 이 차이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현장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당재터널은 당시 경부고속도로 터널 가운데 가장 긴 난공사 구간이었습니다.

국가기록원에 남아 있는 『서울-부산간 고속도로 건설지』 자료에는 이 터널 공사에서 9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⁵⁾

약한 지반과 싸우며 공사를 진행해야 했습니다.

이런 현장에서는 콘크리트가 단순히 단단해지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필요한 시간 안에 강도를 내야 했습니다.

당재터널 공사에서는 빠르게 초기 강도를 발현하는 조강시멘트가 사용됐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특정 기업이나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현장이 시멘트에 새로운 성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시멘트는 더 이상 회색가루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에 따라 요구되는 성능이 달라지는 기술제품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콘크리트가 굳는 시간까지 다루기 시작했다

시멘트가 물과 만나면 반응이 시작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굳고 강도를 얻습니다.

처음에는 단단하게 잘 굳는 것이 중요해 보입니다.

그러나 구조물이 커질수록 문제는 훨씬 복잡해집니다.

시멘트가 물을 만나면 단순히 젖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시멘트 속 여러 성분이 물과 화학반응을 시작합니다. 이를 수화반응이라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물질이 만들어지면서 시멘트 입자들이 서로 결합하고, 처음에는 부드럽던 콘크리트가 차츰 굳어 강도를 갖게 됩니다.

그런데 이 화학반응에서는 열도 발생합니다. 이것이 수화열입니다. 작은 구조물에서는 발생한 열이 비교적 쉽게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지만, 댐이나 대형 기초, 두꺼운 교량 부재처럼 콘크리트의 부피가 커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내부에서 발생한 열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속도보다 열이 만들어지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콘크리트 내부의 온도가 올라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안과 밖이 똑같이 식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표면은 외부 공기와 접해 먼저 식는데 내부에는 열이 오래 남을 수 있습니다. 이 온도 차이로 콘크리트 안에 변형과 응력이 생기고, 조건에 따라 균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거대한 콘크리트를 다루는 기술자에게는 얼마나 강하게 만들 것인가만큼이나 얼마나 뜨거워지고, 언제 굳으며, 어떻게 식어갈 것인가도 중요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먼저 타설한 부분이 너무 일찍 굳어버린 뒤 새로운 콘크리트가 이어지면 두 부분이 제대로 일체화되지 못하는 문제도 생길 수 있습니다.

반대로 너무 늦게 굳으면 다음 공정에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현대의 콘크리트 기술은 강도만 설계하지 않습니다.

혼화제와 혼화재, 배합과 타설순서 등을 이용해 응결과 경화의 진행도 관리합니다.

국토교통 분야 건설기술 연구자료에서도 혼화재 사용량에 따라 초결과 종결시간이 달라지고, 필요에 따라 지연제나 촉진제를 사용해 응결시간을 관리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⁶⁾

교량이나 거대한 구조물을 생각하면 이 기술의 의미가 더 선명해집니다.

아침부터 콘크리트를 붓기 시작해 타설이 여러 시간 계속되는 구조물이라면 먼저 부은 콘크리트와 나중에 부은 콘크리트의 상태를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현장 조건과 구조물의 특성에 따라 먼저 타설한 부분의 응결을 늦추고 뒤이어 들어오는 콘크리트와 일체성을 확보하도록 계획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콘크리트의 강도뿐 아니라 콘크리트의 시간까지 설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돌을 부수어 시멘트를 만들던 단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강해진 콘크리트는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도시의 건물이 높아지자 콘크리트에는 다시 새로운 요구가 생겼습니다.

더 큰 하중을 견뎌야 했습니다.

기둥과 벽은 제한된 공간 안에서 더 큰 힘을 받아야 했습니다.

고강도 콘크리트가 필요해졌습니다.

그러나 강도를 높였다고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강한 콘크리트는 배합에 따라 점성이 커질 수 있습니다.

높은 곳까지 펌프로 보내야 합니다.

촘촘한 철근 사이로 흘러 들어가야 합니다.

굳은 뒤에는 필요한 강도를 내야 합니다.

화재와 장기간의 변형도 고려해야 합니다.

롯데월드타워에는 80MPa급 고강도 콘크리트가 사용됐습니다.

2015년에는 150MPa급 초고강도 콘크리트를 지상에서 309m 높이까지 수직 압송하는 시험에도 성공했습니다.

관련 기술자료는 높은 점성 때문에 배관 막힘과 압송 지연 가능성이 있어 배합설계부터 제조와 펌프압송까지 함께 해결해야 했다고 설명합니다.⁷⁾

여기서 우리는 아주 먼 길을 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산에 있던 석회석은 사람이 캐야 움직이는 돌이었습니다.

그 돌을 부수고 구웠습니다.

가루로 만들었습니다.

물을 섞었습니다.

콘크리트가 됐습니다.

사람은 그 콘크리트의 강도를 높였습니다.

굳는 시간을 조절했습니다.

흐르는 성질을 조절했습니다.

마침내 수백 미터 위까지 밀어 올렸습니다.

돌이 하늘에 가까워진 것입니다.

시멘트 한 포대 뒤에는 몇 사람의 일이 있었을까

여기까지 따라오면 처음의 질문이 다시 생깁니다.

시멘트 한 포대를 만드는 데 도대체 몇 사람의 일이 필요했을까요.

석회석을 찾는 사람.

돌을 캐는 사람.

발파하는 사람.

쇄석기를 움직이는 사람.

가마를 관리하는 사람.

기계를 정비하는 사람.

전기를 관리하는 사람.

품질을 시험하는 사람.

포대를 만드는 사람.

시멘트를 포장하는 사람.

화차와 화물차로 운반하는 사람.

창고와 사일로를 관리하는 사람.

레미콘을 만드는 사람.

펌프를 운전하는 사람.

거푸집을 만드는 사람.

철근을 조립하는 사람.

콘크리트를 타설하고 다지는 사람.

구조를 설계하는 사람.

재료를 연구하는 사람.

강도를 시험하는 사람.

이것은 아직 시작에 불과합니다.

시멘트공장의 기계를 만든 사람까지 따라가면 또 다른 산업이 나타납니다.

가마 안을 견디는 내화재를 따라가도 새로운 산업이 나옵니다.

시멘트 포대의 종이를 따라가면 제지산업이 나옵니다.

화물차를 따라가면 자동차와 정비와 연료가 나옵니다.

철도를 따라가면 또 다른 직업의 세계가 열립니다.

건설현장 뒤를 따라가면 아파트와 학교와 공장과 도로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생활까지 이어집니다.

어디까지를 한 포대의 시멘트가 만든 일이라고 볼 것인가는 경계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래서 섣불리 숫자를 하나 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시멘트 한 포대는 혼자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돌 하나를 따라가자 시대가 보였다

처음에는 산에 묻힌 돌이었습니다.

사람이 그 돌의 쓸모를 알아냈습니다.

돌을 캐는 일이 생겼습니다.

공장이 생겼습니다.

철도가 연결됐습니다.

화물차가 달렸습니다.

건설현장이 커졌습니다.

마을길이 바뀌었습니다.

집이 바뀌었습니다.

도시의 모습이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건물이 높아지면서 사람은 콘크리트의 강도와 흐름과 굳는 시간까지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걷는 길 아래에도 그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집의 벽과 기둥에도 있습니다.

다리를 건널 때도, 터널을 지날 때도 우리는 그것을 지나갑니다.

너무 흔해져서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시멘트의 역사를 생산량 몇 톤으로만 읽으면 이 많은 사람이 사라집니다.

반대로 사람의 일을 따라가면 숫자 뒤에서 시대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산에서 돌을 캐던 사람과 가마 앞에서 일하던 사람, 포대를 나르던 사람, 철근을 묶던 사람, 콘크리트를 붓던 사람, 배합을 연구하던 사람은 서로 다른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일은 한 줄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돌 하나가 세상을 바꾼 것이 아닙니다.

그 돌에서 가능성을 찾아내고, 캐고, 굽고, 갈고, 나르고, 시험하고, 부어 굳힌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일로 먹고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시멘트를 다시 들여다보는 까닭은 회색가루의 역사를 알고 싶어서만은 아닙니다.

평범한 물건 하나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일을 만들고, 그 일이 다시 사람의 생활공간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시멘트 한 포대를 끝까지 따라가면 그 뒤에 또 다른 질문이 남습니다.

그 한 포대 뒤에는 과연 몇 사람의 일이 연결되어 있었을까요.

그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됩니다.


각주

  1. 공보실 선전국 영화과, 「UNKRA의 업적」, 1957, 국가기록원, 관리번호 CEN0002073; 공보실 선전국 영화과, 「콜터장군」, 1958, 국가기록원, 관리번호 CEN0002154.
  2. 국립영화제작소, 「산업시리즈(시멘트 공업)」, 1970, 국가기록원, 관리번호 CEN0003511.
  3. 한국학중앙연구원, 「시멘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4. 대통령비서실, 「새마을가꾸기 사업추진 상황보고(2차)」, 1970.9.22., 국가기록원, 관리번호 EA0007016; 국가기록원, 「새마을운동 기록물」.
  5. 한국도로공사, 『서울-부산간 고속도로 건설지』, 1974, 국가기록원 소장자료 C11M24673; 국가기록원, 「국토의 대동맥 경부고속도로 건설」.
  6. 국토교통 분야 건설기술 연구자료, 「친환경 콘크리트 기준 개정 보고서」, 2022, 건설기술정보시스템(CODIL).
  7. 롯데건설, 「국내 최초 150MPa 초고강도 콘크리트 수직압송 성공」, 2015.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