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12월, 김포공항에 낯선 길을 떠나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양복을 입은 사람도 있었고 넥타이를 맨 사람도 있었습니다. 가족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비행기에 오르면 한동안 돌아오기 어려운 길이었습니다. 목적지는 서독이었습니다.
그들을 기다리는 곳은 사무실도 공장도 아니었습니다.
탄광이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먼 나라까지 가서 땅속으로 내려가 석탄을 캐야 했습니다.
그 시절 한국에도 탄광은 많았습니다.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산에서는 날마다 석탄이 나왔습니다. 광부가 캔 석탄은 선탄장을 지나 화차에 실렸고, 도시의 연탄공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연탄이 된 석탄은 다시 트럭과 손수레에 실려 골목을 지나 집 안까지 들어왔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 길을 따라왔습니다.
그런데 석탄의 길을 조금 더 멀리 따라가면 뜻밖의 장면을 만나게 됩니다.
이번에는 석탄이 사람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석탄이 있는 곳으로 갑니다.
일자리를 찾아 국경을 건너다
1963년 한국과 서독 사이에서 광부 파견이 시작됐습니다.
첫 파견 광부들은 1963년 12월 독일로 떠났습니다. 이후 1977년까지 수천 명의 한국인 광부가 독일 탄광에서 일했습니다.¹⁾
광부를 모집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이 지원했습니다. 당시 국내에서 받을 수 있는 임금과 비교하면 독일 광산에서 벌 수 있는 돈은 상당했습니다. 가족의 생활을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고 앞으로의 기반을 마련할 기회로 받아들인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¹⁾
하지만 돈만 보고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아니었습니다.
낯선 나라였습니다.
말도 달랐습니다.
무엇보다 일터가 탄광이었습니다.
독일에 도착한 뒤에는 광산에서 사용하는 말과 작업 방법을 익혀야 했습니다. 작업복을 입고 장비를 챙겨 지하로 내려가야 했습니다. 한국에서 탄광 일을 해본 사람도 있었지만 다른 일을 하다가 지원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출국할 때 광부 모집에 합격했다는 사실과 실제 막장에서 광부로 일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습니다.
몸이 다시 일을 배워야 했습니다.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시간도 견뎌야 했습니다.
한국에서 독일까지의 거리는 비행기가 데려다주었지만, 낯선 일터에 자리를 잡는 일은 결국 한 사람의 몫이었습니다.
땅 아래에서 시작된 하루
탄광의 하루는 지상에서 시작됐지만 일의 대부분은 땅 아래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작업복을 갖춰 입고 장비를 챙긴 뒤 갱도로 들어갔습니다. 지하 작업장까지 이동하고, 정해진 자리에서 석탄을 캐고, 작업을 마치면 다시 지상으로 올라왔습니다.
빛이 충분하지 않은 곳에서 몸을 써야 했습니다. 먼지와 소음이 있었고 위험도 늘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는 말보다 먼저 익혀야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어디에 서야 하는지, 장비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함께 일하는 사람의 움직임을 어떻게 살펴야 하는지 몸으로 배워야 했습니다.
한국에서 가지고 간 이름과 사정은 사람마다 달랐습니다.
누군가는 부모에게 돈을 보내야 했고 누군가는 집안 살림을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해볼 것인지 생각하며 독일행을 택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작업복을 입고 갱도에 들어가는 순간에는 해야 할 일이 같았습니다.
석탄을 캐야 했습니다.
멀리 떨어진 두 나라 사이를 이어준 것은 거창한 말보다 먼저 일이었습니다.
월급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독일에서 받은 월급이 모두 독일에 남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광부들은 자신들의 생활에 필요한 돈을 남기고 일부를 한국의 가족에게 송금했습니다. 당시 기록에는 해외에서 번 돈을 국내로 보내기 위한 송금 관련 자료도 남아 있습니다.²⁾
돈이 도착하는 곳에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부모가 있었고 가족이 있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한쪽에서는 돈을 벌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 돈으로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먼 나라의 땅속에서 일하는 사람과 한국의 한 가정이 그렇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임금이 서독 차관의 직접적인 담보였다는 이야기는 오랫동안 널리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은 관련 자료와 연구에서 사실관계를 둘러싼 논의가 이어져 왔으므로 확인된 사실처럼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그 이야기를 더 크게 만들지 않아도 당시 사람들이 남긴 흔적은 충분합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독일에서 일했고 그곳에서 번 돈의 일부를 한국으로 보냈습니다.
한 나라의 외화 획득이라는 숫자로 보면 경제의 이야기입니다.
한 가정의 문을 열고 들어가 보면 조금 달라집니다.
독일에서 월급날을 기다리는 사람과 한국에서 송금을 기다리는 사람이 같은 돈으로 한 달의 생활을 헤아리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탄광촌의 불이 밝았다
그 사람들이 독일 광산에서 일하던 시기, 한국의 탄광도 한창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탄광에 사람이 몰리면 광부만 늘어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살 집이 필요했습니다. 밥을 먹을 식당이 생겼고 생활용품을 파는 가게가 문을 열었습니다. 아이들이 늘면 학교가 필요했고 사람들이 오가면 버스와 택시도 움직였습니다.
광산 주변에 생활이 만들어졌습니다.
교대 시간이 가까워지면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오갔습니다. 탄을 실은 차량이 움직였고 식당에서는 끼니를 준비했습니다. 장날이면 시장에 사람이 모였습니다. 월급날이 지나면 상점의 분위기도 달라졌습니다.
광산에서 나온 돈은 광산 안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쌀을 사고 옷을 사고 아이들의 준비물을 샀습니다. 식당의 밥값이 되고 가게의 매출이 되었습니다.
탄광은 석탄을 생산하는 장소였지만 그 주변 사람들에게는 생활을 움직이는 중심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일이 많을 때는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방을 구하고 살림을 차렸습니다.
아이들이 자랐고 골목이 생겼습니다.
검은 석탄이 산 아래에 하나의 동네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집 안의 변화가 산속까지 올라갔다
그 풍경이 계속되지는 않았습니다.
도시의 집에서는 난방 방식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연탄을 갈아야 따뜻해지던 방에 다른 난방 방식이 들어왔습니다. 석유와 가스 사용이 늘었고 연탄에 의존하던 생활도 서서히 줄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에 이르면 국내 석탄산업은 이전과 다른 상황을 맞게 됩니다.³⁾
처음에는 한 집의 작은 변화처럼 보였습니다.
연탄을 덜 주문했습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쌓아두는 연탄의 양이 줄었습니다.
골목을 오가던 연탄 배달도 예전만큼 바쁘지 않게 됐습니다.
그러나 같은 변화가 수많은 집에서 일어나면 그 끝은 탄광까지 닿습니다.
연탄이 덜 팔리면 공장에서 필요한 석탄도 줄어듭니다. 운반해야 할 양이 줄고 광산에서 캐야 할 양도 달라집니다.
집 안에서 사라지는 연탄 한 장과 산속에서 줄어드는 일자리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서로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한때 탄광에서 도시의 아궁이까지 이어졌던 길을 따라 변화가 거꾸로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광산의 문이 닫히다
1980년대 말 석탄산업 합리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많은 탄광이 문을 닫기 시작했습니다.
국가기록원 자료를 보면 1988년 전국 347개 탄광에서 2,430만 톤의 석탄을 생산했지만 1995년에는 27개 탄광, 570만 톤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1989년부터 1995년까지 폐광지원 대상이 된 탄광은 335개였고 지원을 받은 근로자는 3만 명을 넘었습니다.⁴⁾
숫자만 보면 산업의 축소입니다.
탄광 앞에서 보면 다른 장면이 됩니다.
어제까지 들어가던 갱도에 더는 들어갈 수 없게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침마다 입던 작업복을 벗어야 했습니다.
오랫동안 익힌 일이 더는 필요하지 않은 일이 되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광산 밖에도 있었습니다.
광부가 줄면 식당의 손님이 줄었습니다. 가게를 찾는 사람도 줄었습니다. 가족이 다른 지역으로 옮기면 학교의 아이들도 줄었습니다. 버스를 타는 사람이 줄고 빈집이 생겼습니다.
탄광 하나의 문이 닫힐 때 철문 하나만 닫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문을 중심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의 하루가 함께 달라졌습니다.
떠나는 방향이 바뀌었다
태백을 비롯한 탄광지역에서는 그 변화가 인구 이동으로 나타났습니다.
한때 석탄을 캐기 위해 사람들이 들어오던 곳에서 이제는 사람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태백은 석탄산업이 활발하던 시기에 인구가 크게 늘었지만 산업 합리화와 폐광이 이어지면서 빠른 인구 감소를 겪었습니다.⁵⁾
광부 한 사람이 직장을 잃었다고 한 사람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족이 함께 다른 지역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손님이 줄어든 가게 주인도 다른 일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광산을 상대로 일하던 운송과 서비스업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한때는 광산이 있다는 이유로 사람이 모였습니다.
이제는 그 광산이 사라지면서 다른 곳의 일을 찾아 떠났습니다.
산업이 사람을 불러들이던 힘이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은 탄광촌에서만 일어난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한곳에 모여 사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가운데 일자리는 큰 몫을 차지합니다.
일이 생기면 사람이 들어옵니다.
사람이 들어오면 집과 가게가 생깁니다.
학교와 시장과 교통이 그 뒤를 따릅니다.
오랫동안 그 중심이던 일이 사라지면 주변의 생활도 그대로 있기 어렵습니다.
탄광촌은 그것을 아주 선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독일로 떠난 사람과 탄광촌을 떠난 사람
1963년 독일로 떠난 광부와 수십 년 뒤 국내 탄광촌을 떠난 사람을 같은 사건으로 묶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두 시기는 반대에 가깝습니다.
파독 광부들이 떠나던 시기의 한국에서는 석탄 생산이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폐광촌에서 사람들이 떠나던 때에는 국내 석탄산업이 빠르게 축소되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는 긴 시간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두 장면을 멀리서 함께 바라보면 한 가지가 겹쳐 보입니다.
사람은 일을 따라 움직였습니다.
일자리가 먼 나라에 있으면 국경을 건넜습니다.
탄광에서 사람이 필요하면 산골짜기로 들어갔습니다.
광산이 문을 닫으면 다시 다른 일자리가 있는 곳을 찾아 나섰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같은 선택을 한 것은 아닙니다.
남은 사람도 있었고 전혀 다른 일을 시작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떠날 수 없어 남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산업이 바뀌는 순간 사람에게 주어진 선택의 모양도 함께 달라졌다는 사실입니다.
어제까지 익숙했던 일이 내일도 있다는 보장은 없었습니다.
그때 사람은 다시 자신의 자리를 찾아야 했습니다.
석탄을 따라가니 사람이 보였다
처음에는 석탄 한 덩어리에서 시작했습니다.
산속에서 검은 돌을 캐는 광부가 있었습니다.
땅 위에서는 캐낸 석탄을 고르는 사람이 있었고 철도와 차량으로 그것을 나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도시에서는 석탄을 연탄으로 만드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연탄가게가 있었고 골목 끝 집까지 연탄을 배달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집 안에서는 불이 꺼지지 않도록 연탄을 갈던 손이 있었습니다.
조금 더 멀리 가니 석탄을 캐기 위해 독일까지 건너간 사람들도 만났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에는 광산이 문을 닫아 새로운 일터를 찾아 탄광촌을 떠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석탄 자체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돌을 따라가면 한 시대에 사람들이 어디에서 일했고 어디로 움직였는지가 보입니다.
산업이 커진다는 말 뒤에는 출근할 곳을 얻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산업이 쇠퇴한다는 말 뒤에는 내일부터 어디에서 일해야 할지 다시 생각해야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에너지가 바뀌면 난방기구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석탄을 캐던 일과 나르던 일, 연탄을 만들고 팔던 일이 함께 줄었습니다. 그 일을 중심으로 형성됐던 동네의 모습도 달라졌습니다.
1963년 겨울, 독일로 떠난 광부들이 있었습니다.
수십 년 뒤에는 국내 탄광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한쪽은 성장하는 시대에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떠났고, 다른 한쪽은 사라지는 일자리 뒤에서 새로운 자리를 찾아야 했습니다.
출발한 이유도, 도착한 곳도 달랐습니다.
하지만 두 장면 사이에는 오랫동안 변하지 않은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사람은 살아가기 위해 일할 곳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일이 움직일 때 사람의 삶도 움직였습니다.
석탄은 땅속에 있었지만, 석탄을 따라 움직인 것은 사람이었습니다.
각주
- 행정안전부·국가기록원 파독 광부 관련 기록. 1963년 12월 시작된 한국 광부의 서독 파견과 모집·출국 과정에 관한 기록. 독일 측 관련 기록에는 1963년부터 1977년까지 75차례에 걸쳐 7,936명이 파견된 것으로 집계되어 있다.
- 국가기록원 소장 파독 근로자 관련 기록. 파독 광부의 임금과 국내 송금, 당시 송금 관련 자료.
- 국가기록원 및 석탄산업 관련 공공 기록. 1980년대 후반 이후 연탄 수요 감소와 국내 석탄산업 구조 변화에 관한 자료.
- 국가기록원 「석탄산업 육성 및 석탄산업 합리화」. 1988년 전국 347개 탄광·생산량 2,430만 톤에서 1995년 27개 탄광·570만 톤으로 감소. 1989~1995년 폐광지원 대상 335개 탄광 및 3만 명 이상의 근로자 지원 기록.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및 탄광지역 관련 공공 기록. 석탄산업 합리화 이후 태백 등 주요 탄광지역의 인구 감소와 지역사회 변화에 관한 자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