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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루 종일 바빴는데 왜 한 일이 없는 것 같을까

    하루 종일 바빴는데 왜 한 일이 없는 것 같을까

    아침에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오늘 할 일을 생각해봅니다.

    특별한 약속은 없습니다. 어디 멀리 갈 일도 없고 시간을 맞춰 만나야 할 사람도 없습니다. 달력을 봐도 오늘 칸은 비어 있습니다.

    이런 날은 마음이 조금 느긋합니다. 오늘은 별일 없겠구나 싶습니다.

    커피잔을 들고 베란다 쪽으로 갔다가 수납장 문을 엽니다. 건전지를 찾으려던 참입니다. 안쪽에 공구함이 보입니다.

    언제 한번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공구함입니다. 꺼내 바닥에 내려놓고 뚜껑을 여니 드라이버와 펜치가 뒤섞여 있고, 줄자 밑에는 전선 조각이 끼어 있습니다. 작은 통에는 크기가 다른 나사와 못이 한데 들어 있습니다.

    하나씩 꺼내놓습니다. 쓸 만한 나사는 따로 모으고 굳어버린 접착제는 버립니다. 거의 다 쓴 절연테이프도 치웁니다.

    그러다 밑바닥에서 작은 드라이버 하나를 발견합니다. 한동안 찾았던 것입니다.

    “여기 있었네.”

    드라이버를 손에 들자 며칠 전부터 흔들리던 책상 서랍 손잡이가 생각납니다. 공구함을 열어둔 채 책상으로 갑니다. 나사 하나를 조이고 손잡이를 몇 번 당겨봅니다. 이제 흔들리지 않습니다.

    드라이버를 내려놓으려는데 이번에는 방문 아래쪽 나사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것도 한번 조입니다.

    건전지를 찾으려고 수납장 문을 열었을 뿐인데 공구함을 정리하고, 서랍 손잡이를 고치고, 방문 나사까지 조였습니다.

    다시 공구함 앞으로 돌아왔을 때 휴대전화가 울립니다. 전화를 받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십여 분이 지나 있습니다.

    통화를 마치고 시계를 보다가 오전에 처리하려던 은행 일이 생각납니다. 지금 나가야겠습니다.

    공구함을 대충 마무리해 넣고 옷을 갈아입습니다. 은행에서 일을 마치고 나오니 점심때가 가까워졌습니다. 집으로 바로 갈까 하다가 며칠 전 택배로 받은 물건 하나를 반품해야 한다는 것이 생각납니다.

    어차피 나온 김입니다. 반품을 맡기고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릅니다. 우유가 떨어졌고 과일도 조금 사야 합니다. 몇 가지만 사려고 들어갔는데 매장을 돌다 보니 필요한 것이 하나씩 더 생각납니다.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났습니다.

    집에 돌아와 산 물건을 제자리에 넣고 늦은 점심을 먹습니다. 잠깐 앉아 있으려는데 아침에 열어놓았던 수납장이 보입니다. 공구함을 제자리에 넣고 바닥에 떨어진 작은 나사 하나도 주워 담습니다.

    이제 좀 쉬어야겠습니다.

    그런데 오후에도 일은 하나씩 생깁니다. 아침에 온 문자에 답하고, 확인할 것이 있어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다 다른 연락 하나를 처리합니다. 집 앞에 잠깐 나갔다 돌아오고 미뤄두었던 전화 한 통도 합니다.

    큰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시계는 자꾸 앞으로 갑니다.

    저녁을 먹고 소파에 앉습니다. 아침부터 가만히 있었던 시간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루를 떠올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오늘 내가 뭘 했지.

    한 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공구함을 정리했고 손잡이도 고쳤습니다. 은행에 다녀왔고 반품할 물건도 보냈습니다. 마트에도 다녀왔습니다. 전화도 했고 필요한 연락도 주고받았습니다.

    하나씩 적으면 제법 됩니다.

    그런데 하루 전체를 손에 올려놓고 보면 남아 있는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분명 바빴는데 무엇을 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루 종일 바빴는데 왜 한 일이 없는 것 같을까.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시간이 있다

    오전에 책을 두 시간 읽었다면 그 시간을 설명하기는 쉽습니다. “책을 읽었습니다”라고 하면 됩니다. 친구를 만나 점심을 먹었다면 “친구를 만났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산에 다녀왔다면 그날은 산에 다녀온 날로 남습니다.

    한 가지 일이 어느 정도 시간을 차지하면 그 시간에는 이름이 붙습니다. 나중에 하루를 떠올릴 때도 비교적 선명합니다.

    오늘 오전은 다릅니다.

    건전지를 찾고, 공구함을 열고, 드라이버를 발견하고, 손잡이를 조였습니다. 전화를 받고 옷을 갈아입고 은행으로 갔습니다. 기다렸다가 일을 처리했고, 반품을 맡긴 뒤 마트에 들렀습니다.

    하나하나는 분명한 행동입니다. 어느 것도 하지 않은 시간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것들을 한꺼번에 부를 만한 말이 없습니다.

    ‘공구함을 정리한 오전’이라고 하기에는 다른 일을 너무 많이 했고, ‘은행에 다녀온 오전’이라고 하기에는 은행보다 그 앞뒤에 쓴 시간이 더 많습니다. ‘볼일을 본 오전’이라고 하면 너무 많은 것이 한꺼번에 뭉개집니다.

    시간은 분명 지나갔는데 그 시간에 붙일 이름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시간은 기억에서도 쉽게 흐려집니다. 오래 한 가지에 머문 시간은 덩어리로 남지만, 십 분과 이십 분씩 여러 일 사이를 옮겨 다닌 시간은 잘게 흩어집니다.

    그래서 두세 시간이 지나 시계를 보면 놀랄 때가 있습니다.

    벌써 이렇게 됐나.

    시간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찾고, 조이고, 기다리고, 이동하고, 확인하고, 정리하는 사이에 나뉘어 들어갔을 뿐입니다.

    하루 종일 바빴는데 무엇을 했는지 선명하지 않은 날에는 이런 이름 없는 시간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이 아니라, 여러 곳에 흩어져 있어서 하나의 이름으로 기억되지 않는 시간입니다.

    작은 일은 혼자 오지 않는다

    아침에 하려던 일은 건전지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공구함을 정리할 계획도, 서랍 손잡이를 고칠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를 건드리자 옆에 있던 일이 따라왔습니다.

    생활 속의 작은 일은 자주 이런 식으로 이어집니다. 마트에 가려고 냉장고를 열었는데 우유만 없는 것이 아닙니다. 과일도 얼마 남지 않았고 다른 필요한 물건이 떠오릅니다.

    택배 하나를 반품하러 나갔다가 어차피 나온 김에 다른 볼일을 봅니다. 휴대전화로 한 가지를 확인하다가 답하지 않은 메시지를 발견하고, 답을 보내고 나면 다른 연락 하나가 생각납니다.

    처음에는 한 가지였습니다. 끝날 때에는 서너 가지가 되어 있습니다.

    그중 어느 것도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더 쉽게 끼어듭니다.

    한 시간씩 준비해야 하는 일이라면 오늘 할지 내일 할지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오 분이면 될 것 같은 일은 그냥 시작합니다. 그 오 분이 십 분이 되고, 거기에서 또 다른 십 분이 나옵니다.

    시간을 쓰는 것은 일 자체뿐만이 아닙니다.

    은행에서 실제로 일을 처리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아도 집을 나설 준비를 하고 이동하고 순서를 기다렸다가 다시 돌아오는 데에는 훨씬 긴 시간이 듭니다. 반품 하나도 상자를 챙겨 들고 맡길 곳까지 가야 합니다. 마트에서 우유 하나를 사는 일에도 오가는 시간이 붙습니다.

    우리는 나중에 하루를 떠올릴 때 가운데 있는 일만 기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은행 일, 반품, 장보기라고만 기억합니다.

    하지만 하루가 실제로 사용된 곳은 그 사이까지 포함합니다.

    신발을 신고 문을 나서는 시간, 차를 세우고 걷는 시간, 순서를 기다리는 시간,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 어느 것 하나 오래 걸리지 않았는데 모아놓으면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짧은 일을 많이 한 날에는 실제로 사용한 시간과 기억에 남은 시간이 크게 달라집니다.

    오전에는 시간이 넉넉하다고 생각했는데 오후가 되면 마음이 바빠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큰일 하나가 하루를 차지한 것이 아니라 작은 일과 그 사이의 시간이 빈 곳으로 계속 들어온 것입니다.

    별일이 없었던 것이지, 한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해놓고 나면 원래 그랬던 것처럼 보이는 일이 있다

    아침의 공구함은 어수선했습니다. 필요한 드라이버 하나를 찾으려면 이것저것 들춰야 했고 나사와 못은 한 통 안에서 뒤섞여 있었습니다.

    정리를 끝내고 뚜껑을 닫아 수납장 안에 넣습니다.

    그 순간부터 공구함은 보이지 않습니다.

    며칠 뒤 다시 열었을 때는 필요한 것을 쉽게 찾을 것입니다. 아마 그때 오늘 아침에 들인 시간을 떠올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냥 공구함이 정돈되어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손잡이도 그렇습니다.

    흔들릴 때에는 서랍을 열 때마다 거슬렸습니다. 나사를 조이는 데에는 몇 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고치고 나니 더 이상 생각할 일이 없습니다.

    잘해놓았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습니다.

    생활에는 이런 일이 많습니다.

    하지 않으면 금세 티가 나는데 해놓으면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보이는 일입니다.

    떨어진 물건을 사다 놓고, 납부할 것을 제때 처리하고, 헐거워진 것을 조이고, 사용한 것을 제자리에 돌려놓습니다. 다음에 필요할 것을 미리 챙겨두기도 합니다.

    이런 일은 무언가를 새로 만들어놓기보다 불편이 생기지 않도록 합니다.

    어수선했던 것이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부족했던 것이 채워집니다. 신경 쓰이던 것이 더는 신경 쓰이지 않습니다.

    문제가 없어지는 것이 결과입니다.

    그래서 일을 잘 끝낼수록 흔적도 함께 사라집니다.

    반품하지 않은 상자는 현관에서 계속 보입니다. 흔들리는 손잡이는 잡을 때마다 느껴집니다. 우유가 떨어지면 냉장고를 열 때 바로 알게 됩니다.

    그런데 처리하고 나면 그것들이 사라집니다.

    문제가 사라지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쓴 시간까지 함께 보이지 않게 됩니다.

    이런 일로 하루를 보낸 저녁에는 보여줄 것이 별로 없습니다. 새로 만든 것도 없고 눈에 띄는 결과물도 없습니다.

    아침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달라지지 않도록 손을 쓴 것입니다.

    일은 끝내고 나면 무엇을 했는지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생활은 조금 다릅니다. 해놓은 것이 눈에 띄기보다, 해놓았기 때문에 별일 없이 다음 시간이 이어집니다.

    공구함은 닫히고, 손잡이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필요한 것은 다시 제자리에 있습니다.

    그 평범한 상태를 유지하는 데에도 사람의 시간이 들어갑니다.

    그 시간을 계산에서 자꾸 빼놓으면 꽤 많이 움직인 날에도 “오늘은 한 일이 없다”는 말이 나오게 됩니다.

    끝난 것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계속 보인다

    저녁이 되어 아침에 하려고 했던 것 가운데 하나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 생각납니다.

    급한 일은 아닙니다. 내일 해도 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한 가지가 마음에 걸립니다.

    오늘 끝낸 일들은 잘 떠오르지 않는데 하지 못한 것은 금세 떠오릅니다.

    공구함은 이미 수납장 안에 있습니다. 반품한 택배 상자도 없습니다. 은행에서 처리한 일은 더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끝난 일은 생활 속으로 들어가 모습을 감췄습니다.

    남은 일만 아직 앞에 서 있습니다.

    아침에 해야 할 것이 다섯 가지였고 그중 네 가지를 끝냈다고 해봅니다. 저녁에 눈앞에 남은 것은 하나입니다.

    그 하나만 보고 있으면 네 가지를 해낸 사람보다 한 가지를 하지 못한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더구나 생활에는 완전히 끝나는 일이 많지 않습니다.

    오늘 장을 봤다고 장보기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며칠 뒤에는 다시 필요한 것이 생깁니다. 집 안 한 곳을 정리하면 시간이 지나 다시 흐트러집니다. 고장 난 것을 하나 고쳐놓아도 언젠가는 다른 것을 손볼 일이 생깁니다.

    모든 것을 끝내놓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태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생활은 완성해놓고 진열하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계속 쓰고, 흐트러지고, 채우고, 다시 손보면서 이어집니다.

    그런데 하루만큼은 자꾸 완성품처럼 바라봅니다. 오늘 해야 할 것을 다 했는지 확인하고, 남은 것이 있으면 어딘가 덜 끝난 하루처럼 느낍니다.

    그 기준을 따라가면 하루는 좀처럼 완료되지 않습니다.

    내일 할 일이 남았다는 사실과 오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인데도 말입니다.

    바빴다는 것과 하루가 남는다는 것은 다르다

    하루 종일 볼일을 보고 돌아온 날이 있습니다.

    여기저기 이동하고 순서를 기다리고 필요한 것을 사고 연락할 사람에게 전화를 합니다. 집에 돌아오면 몸은 피곤합니다.

    분명 바빴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는 시간이 그냥 빠져나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반대인 날도 있습니다.

    오후에 친구를 만나 두어 시간 이야기를 나눈 날입니다. 한 일의 개수로 따지면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무엇을 했느냐고 물으면 대답은 금방 나옵니다.

    친구를 만났습니다.

    책을 오래 읽은 날도 그렇습니다. 동네를 천천히 걸었던 날도 그렇습니다.

    무엇을 많이 처리한 날은 아닌데 하루에는 모양이 있습니다.

    바빴다는 것과 하루가 채워졌다고 느끼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여러 곳을 오가며 잘게 쓴 세 시간보다 한 가지에 머문 한 시간이 더 길게 기억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빴던 날이 허전할 수 있고, 별일 없었던 날이 오히려 오래 남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루가 허전하면 할 일을 더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오늘 별로 한 것이 없는 것 같으니 내일은 좀 바쁘게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습니다. 미뤄둔 일을 찾아내고 일정을 채웁니다.

    하지만 이미 하루 종일 바빴는데도 허전했다면 일을 하나 더 넣는다고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일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작은 일 사이를 오가느라 어디에도 오래 머물지 못했던 하루였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한 가지 오래된 습관도 섞여 있습니다.

    우리는 하루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결과를 찾습니다.

    무엇을 끝냈는가. 무엇이 달라졌는가. 무엇을 남겼는가.

    해야 할 일이 분명한 시간에는 이런 질문이 필요합니다. 일을 맡았다면 끝내야 하고 약속한 것이 있다면 지켜야 합니다. 시작한 일을 어디까지 했는지 확인할 때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 자를 하루 전체에 대기 시작할 때 생깁니다.

    친구와 나눈 이야기는 무엇을 끝낸 시간이 아닙니다. 커피 한 잔을 천천히 마신 시간에도 결과는 없습니다. 잠깐 창밖을 보거나 동네를 걷는다고 눈에 보이는 무엇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런 시간을 모두 빈칸으로 처리할 수는 없습니다.

    공구함 정리를 거창한 성과라고 부를 필요도 없습니다. 마트에 다녀온 일을 훌륭한 하루의 증거로 만들 이유도 없습니다.

    평범한 일은 평범한 일인 채로 있으면 됩니다.

    다만 평범하다는 이유로 없었던 일처럼 지우지 않는 것입니다.

    하루에는 결과를 남기는 시간도 있고 생활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시간도 있습니다. 아무 결과 없이 그냥 지나가는 시간도 있습니다.

    그것들이 함께 하루를 만듭니다.

    그런데 결과가 남은 시간만 제대로 쓴 시간이라고 여기면 나머지는 기억에서 빠집니다.

    그때 하루는 실제보다 훨씬 작아집니다.

    내가 고른 삼십 분

    저녁을 먹고 밖으로 나갑니다.

    무엇을 사러 가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를 만나기로 한 것도 아닙니다.

    그냥 조금 걷고 싶습니다.

    낮에 몇 번이나 지나갔던 길을 이번에는 천천히 걷습니다. 가게 불빛이 하나둘 켜져 있고, 낮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작은 화분이 가게 앞에 놓여 있습니다.

    골목을 돌아 조금 더 걷습니다.

    어디까지 가야 한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몇 걸음 더 걷다가 돌아서도 되고 한 블록 더 가도 됩니다.

    낮에는 계속 다음 일이 있었습니다.

    은행 일을 마치면 반품할 것이 생각났고, 반품을 하고 나니 마트에 들러야 했습니다. 집에 돌아오자 정리할 것이 보였고 휴대전화를 들면 답할 것이 있었습니다.

    한 일을 끝낼 때마다 다음 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없습니다.

    걷고 난 뒤에 무엇을 끝냈다고 표시할 곳도 없습니다.

    삼십 분쯤 걷다가 집으로 돌아옵니다.

    오늘 사용한 시간을 따지면 은행에서 기다린 시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마트에서 보낸 시간보다 짧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삼십 분은 이상하게 또렷합니다.

    해야 해서 쓴 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 일도 해결하지 않았고 필요한 것도 사지 않았습니다. 누구에게 보여줄 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저 내가 걷고 싶어서 걸었습니다.

    하루 종일 필요한 일에 반응하며 움직였다면 이 시간만큼은 내가 먼저 골랐습니다.

    그 차이가 작지만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산책을 매일 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산책마저 ‘오늘 해야 할 일’이 되는 순간 또 하나의 목록이 생깁니다.

    어떤 날에는 책 몇 쪽일 수 있고, 어떤 날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시간일 수 있습니다. 공구함을 정말 정리하고 싶어서 꺼낸 날이라면 그것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시간으로 또 하나의 성과를 만드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늘의 시간을 전부 다음 일에 밀려가며 쓰지는 않았다는 것, 잠깐이라도 내가 머물고 싶은 곳에 머물렀다는 것만 남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닫습니다.

    불을 켜고 방으로 들어가다가 책상 앞에서 잠깐 멈춥니다.

    아침에 고친 서랍 손잡이를 한번 당겨봅니다.

    흔들리지 않습니다.

    베란다 쪽 수납장 문도 닫혀 있습니다. 그 안에는 아침에 정리한 공구함이 들어 있습니다.

    굳이 다시 열어보지는 않습니다.

    냉장고에는 사온 우유와 과일이 들어 있고 현관에 놓여 있던 반품 상자는 없습니다.

    오늘 손을 댄 것들은 대부분 이렇게 눈에 띄지 않는 모습으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하려고 했지만 하지 못한 일 하나가 떠오릅니다.

    잠시 생각합니다.

    내일 하면 됩니다.

    오늘 무엇을 했는지 다시 세어보지 않습니다.

    공구함 하나, 은행 한 번, 반품 하나, 장보기 한 번을 목록으로 만들어 오늘도 열심히 살았다고 확인할 필요는 없습니다.

    반대로 큰일 하나를 끝내지 못했다고 오늘을 빈칸으로 만들 이유도 없습니다.

    아침에는 별일 없는 하루가 될 줄 알았습니다.

    실제로 큰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찾고, 고치고, 기다리고, 이동하고, 사고, 정리하고, 이야기하고, 걸었습니다.

    어떤 시간에는 이름이 있었고 어떤 시간에는 이름이 없었습니다.

    해놓자마자 흔적이 사라진 일도 있었고 아무 결과 없이 지나간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것이 오늘 하루였습니다.

    불을 끄기 전에 다시 한번 서랍을 봅니다.

    손잡이는 가만히 제자리에 있습니다.

    수납장 안의 공구함도 더는 생각나지 않습니다.

    내일 할 일은 하나 남아 있습니다.

    그대로 둡니다.

    다 끝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하루는 끝났습니다.

  • 50대가 넘으니 만나고 싶은 사람이 줄어드는 이유

    50대가 넘으니 만나고 싶은 사람이 줄어드는 이유

    토요일 오전, 휴대전화에 메시지가 하나 들어옵니다.

    오랜만에 얼굴 한번 보자는 말입니다.

    예전 같으면 달력을 먼저 열어보았을 텐데 요즘은 답장을 쓰기 전에 잠깐 망설입니다.

    싫은 사람도 아닙니다.
    만나면 반갑고, 한때는 자주 어울렸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선뜻 약속을 잡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약속이 없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만날 기회가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닙니다.
    다만 예전처럼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시간을 비워두고 옷을 챙겨 입고 먼 길을 나서는 일이 가볍지 않습니다.

    때로는 약속이 취소됐다는 연락을 받고 서운하기보다 마음이 조금 편해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 묻게 됩니다.

    내가 사람을 싫어하게 된 걸까.

    조금 오래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사람을 향한 마음이 식었다기보다 사람을 만나는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젊을 때는 관계가 넓어지는 일이 자연스러웠습니다.
    학교와 직장, 동네와 여러 모임에서 새로운 사람을 계속 만났고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일은 내가 살아갈 세계가 넓어지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50대를 지나면서는 조금 달라집니다.

    이미 많은 사람을 만나보았습니다.
    어떤 만남이 편한지, 어떤 자리는 돌아온 뒤에도 오래 피곤한지 경험으로 알게 됩니다.

    사람을 많이 아는 것보다 누구와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가 조금씩 중요해집니다.

    연락처는 그대로인데 연락하는 사람은 줄어든다

    휴대전화 연락처를 열어보면 이름은 많습니다.

    한동안 함께 일했던 사람, 오래전 같은 모임에 있던 사람, 자주 식사하던 사람, 명절이면 안부를 주고받던 사람까지 수백 명이 남아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별다른 이유 없이 전화를 걸 수 있는 사람을 떠올려보면 숫자가 크게 줄어 있습니다.

    살아온 세월이 늘었으니 아는 사람도 늘었는데 실제로 만나는 사람은 오히려 적어졌습니다.

    관계에는 시간이 쌓입니다.
    동시에 각자의 사정도 쌓입니다.

    직장이 달라지고 사는 곳이 바뀝니다.
    하루를 보내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예전에는 같은 공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관계가 그 공간을 벗어나자 천천히 느슨해지기도 합니다.

    누가 잘못한 것은 아닙니다.

    연락을 끊겠다고 결정한 것도 아닙니다.

    한 달이 석 달이 되고, 석 달이 일 년이 됩니다.
    가끔 안부를 묻지만 다시 예전처럼 자주 만나지는 않습니다.

    책상 서랍을 정리하다 오래된 명함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이름을 보는 순간 얼굴이 떠오릅니다.
    한동안 자주 만나고 전화도 많이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언제 만났는지는 쉽게 생각나지 않습니다.

    명함을 버릴까 하다가 다시 서랍에 넣습니다.

    그 사람과 관계가 나빠진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서로의 하루에서 차지하던 자리가 달라졌습니다.

    모든 관계가 같은 모습으로 평생 이어지기는 어렵습니다.

    함께 일할 때 가까웠던 사람은 그 시절의 하루를 함께 보낸 사람이고, 아이들이 어릴 때 자주 만났던 이웃은 그때의 생활을 함께 나눈 사람입니다.

    생활이 달라지면 만남의 간격도 달라집니다.

    연락처의 숫자와 지금 내 곁의 사람 숫자가 달라지는 것은 살아온 시간이 관계에 남긴 흔적이기도 합니다.

    만남이 끝난 뒤의 마음을 보게 된다

    젊을 때는 불편한 자리에서도 제법 오래 앉아 있었습니다.

    대화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웃으며 넘겼고 모임에 빠지는 것이 더 신경 쓰여 내키지 않아도 나가는 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만남이 끝난 뒤에 남는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두 시간을 만나고 돌아왔는데 집에 와서도 내가 한 말이 마음에 걸립니다.
    괜히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의 사정을 오래 듣고 온 날에는 집에 돌아와서도 그 이야기가 머릿속에 남습니다.

    누군가의 생활 이야기를 듣다가 나도 모르게 내 형편과 비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도 있습니다.

    만남은 끝났는데 그 자리의 기분은 저녁까지 따라옵니다.

    반대로 별것 아닌 이야기를 하고 돌아왔는데 마음이 편한 사람도 있습니다.

    무엇을 증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헤어진 뒤 그 사람이 했던 말을 다시 해석할 필요도 없습니다.

    식당을 나서면서 다음에 또 보자는 말이 의례적인 인사가 아니라 정말 그렇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차이를 여러 번 겪고 나면 약속을 잡는 기준이 달라집니다.

    누가 더 도움이 되는 사람인가보다 만나고 돌아온 뒤 내 하루가 어떤지를 보게 됩니다.

    사람을 계산해서가 아닙니다.

    경험이 쌓이면서 내 마음이 편한 관계와 오래 힘이 드는 관계를 조금씩 구별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을 만나기 싫어진 것과 불편한 만남을 예전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된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약속 없는 오후가 좋아진다

    예전에는 주말에 약속이 없으면 허전할 때가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만나야 할 것 같고 집에만 있으면 하루를 제대로 보내지 못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크게 내키지 않는 자리에도 나갔습니다.

    한 번 얻어먹었으니 다음에는 내가 사야 하고, 지난번에 참석했으니 이번에도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 내 일을 챙겼으니 나도 그 사람의 일을 챙겨야 한다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이런 주고받음이 관계를 이어주는 힘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모든 관계를 같은 힘으로 유지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한 달에 쓸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습니다.

    하루에 다른 사람에게 내어줄 수 있는 마음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토요일 오후에 아무 일정이 없는 날이 있습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해놓습니다.
    미뤄둔 서랍 하나를 정리하고 커피를 내려 창가에 앉습니다.

    누구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도 없고 몇 시까지 어디에 가야 한다는 약속도 없습니다.

    잠깐 동네를 걷고 돌아왔는데 아직 저녁까지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하루를 심심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아무 일도 없는 시간이 비어 있는 시간이 아니라 내 속도대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됩니다.

    그 시간을 좋아하게 되면 약속 하나의 무게도 달라집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싫어서가 아니라 혼자 보내는 시간 역시 충분히 좋은 시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관계라고 늘 편한 것은 아니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을 만나면 설명할 것이 적습니다.

    젊었을 때의 나를 알고 있고 어떤 시절을 지나왔는지도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오래된 사람이 주는 편안함은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오래됐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관계가 편안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변합니다.

    생활도 변하고 관심도 달라집니다.

    예전에는 몇 시간을 이야기해도 부족했던 사이가 이제는 한 시간쯤 지나면 대화가 자꾸 과거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그때 너 기억나?”

    처음에는 함께 웃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오래전의 내가 지금의 나보다 더 크게 자리 잡을 때가 있습니다.

    늘 들어주던 사람은 다시 듣는 사람이 되고, 분위기를 맞추던 사람은 또 분위기를 맞춥니다.

    누군가 가볍게 말합니다.

    “너는 옛날부터 그랬잖아.”

    웃으며 넘기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 말이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나는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 앞에서는 오래전 자리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듭니다.

    상대가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닙니다.

    사람은 변했는데 관계의 방식은 예전 자리에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관계를 끝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주 만나던 사람을 가끔 만나도 되고, 긴 시간을 보내던 사람과 짧게 차 한 잔만 마셔도 됩니다.

    관계를 이어간다는 것이 반드시 예전과 똑같이 지낸다는 뜻은 아닙니다.

    평범한 질문도 다르게 들릴 때가 있다

    중년 이후의 만남에는 각자 살아온 시간이 함께 들어옵니다.

    누군가는 일을 계속하고 있고 누군가는 일을 마쳤습니다.
    누군가는 새로운 일을 시작했고 누군가는 한동안 쉬고 있습니다.

    사는 곳도 달라지고 하루를 보내는 모습도 달라집니다.

    예전에는 비슷한 생활을 하던 사람들의 사정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벌어집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이 묻습니다.

    “요즘 뭐 하고 지내?”

    아주 평범한 질문입니다.

    그런데 대답하기 쉬운 날도 있고 잠깐 생각하게 되는 날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여행 이야기를 합니다.

    즐겁게 듣다가 문득 나는 마지막으로 어디를 다녀왔는지 생각합니다.

    누군가 새로 시작한 일을 이야기합니다.

    축하해주면서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떠올리게 됩니다.

    상대가 나를 비교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다른 사람의 생활을 통해 내 생활을 바라보게 되는 순간이 생깁니다.

    그 일이 반복되면 어떤 자리는 조금 피곤해집니다.

    여기서 상대를 나쁜 사람으로 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왜 그 자리에서 편하지 않았는지를 가만히 돌아보면 됩니다.

    질문 때문이었는지, 반복되는 비교 때문이었는지, 지금의 내 사정을 설명하는 일이 부담스러웠는지에 따라 같은 관계도 다르게 보입니다.

    사람이 싫은 것과 그 사람을 만날 때 반복되는 어떤 방식이 힘든 것은 다릅니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남는다

    오래 살수록 말이 잘 통하는 사람보다 설명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편할 때가 있습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 크게 보이려고 하지 않아도 되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입니다.

    서로의 형편을 자세히 캐묻지 않습니다.

    잠시 말이 끊겨도 서둘러 다른 이야기를 찾지 않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굳이 다른 곳으로 옮겨 더 오래 앉아 있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보자.”

    그 말에 섭섭해하지 않습니다.

    다음 약속을 바로 정하지 않아도 관계가 흔들리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과는 식사를 하면서 계속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야 합니다.

    침묵이 생기면 어색해집니다.

    반면 어떤 사람과는 잠시 창밖을 보아도 괜찮습니다.

    그 짧은 침묵이 대화의 빈자리가 아니라 함께 있는 시간의 일부가 됩니다.

    50대 이후 만나고 싶은 사람이 줄어드는 데에는 이런 변화도 있습니다.

    관계에서 원하는 것이 복잡해지기보다 오히려 단순해집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다 편안하게 함께 있을 수 있는지가 중요해집니다.

    시간을 바라보는 마음도 달라진다

    하루는 여전히 스물네 시간입니다.

    50대가 되었다고 시간이 갑자기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달라지는 것은 시간을 바라보는 마음입니다.

    예전에는 다음 달도, 내년도 지금과 비슷하게 이어질 것처럼 살았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조금 미뤄도 괜찮았고 마음이 내키지 않는 자리에 오후 하나를 쓰는 것도 크게 아깝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달력이 넘어가는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계절이 한 번 지나갔는데 하려고 했던 일을 시작하지 못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지난해에도 만나자고 했던 사람과 올해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정리하겠다고 마음먹은 방 한쪽은 그대로입니다.

    그때부터 하루가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오후를 사용하면 그 시간에는 다른 일을 할 수 없습니다.

    혼자 쉬는 시간도, 가족과 밥을 먹는 시간도, 오래 미뤄둔 일을 하는 시간도 같은 하루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약속 하나를 잡을 때 예전보다 생각이 많아집니다.

    이 사람을 만나고 싶은가.

    아니면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두 질문은 비슷해 보이지만 답은 다를 때가 있습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줄어든 것은 시간이 부족해졌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내 시간을 어디에 쓰고 싶은지가 조금 더 분명해졌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혼자가 편한 것과 사람이 필요 없는 것은 다르다

    “요즘은 혼자가 편해.”

    이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혼자 밥을 먹는 것이 편하고 주말에 약속이 없는 것도 좋습니다.

    그렇다고 사람을 전혀 만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하루 종일 아무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으면 휴대전화를 한번 확인하게 되는 날도 있습니다.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누구에게 말할지 떠올려보기도 합니다.

    길을 걷다가 예전에 함께 왔던 장소를 지나면 문득 그 사람의 안부가 궁금해집니다.

    사람 마음은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지 않습니다.

    혼자 있고 싶으면서도 누군가가 그리울 수 있습니다.

    모임은 귀찮으면서도 오랫동안 연락이 없으면 서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덜 만나는 생활을 무조건 좋은 변화라고 말하기도 어렵고, 관계가 줄었다고 외로운 생활이라고 정하기도 어렵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숫자보다 지금의 생활이 내게 어떤 느낌을 주는가입니다.

    약속을 줄인 뒤 하루가 편안해졌다면 그 변화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반대로 사람을 만나지 않는 날들이 이어지면서 마음 한쪽이 오래 허전하다면 그것 또한 지금의 관계를 바라보게 하는 한 장면입니다.

    숫자로는 그 차이를 알 수 없습니다.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서 기다리고 있을 때가 있다

    연락이 줄어든 데에는 조금 다른 모습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생각나는 사람이 있으면 전화를 걸었습니다.

    별일이 없어도 밥을 먹었느냐고 물었고 근처에 왔다며 잠깐 얼굴을 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전화기를 들었다가 내려놓을 때가 있습니다.

    아직 일하고 있을까.

    가족과 함께 있는 것은 아닐까.

    괜히 바쁜 사람을 붙잡는 것은 아닐까.

    상대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서로 방해하지 않으려고 기다리는 동안 연락이 뜸해집니다.

    한쪽에서는 ‘요즘 연락이 없네’라고 생각하고 다른 쪽에서도 똑같은 생각을 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먼저 메시지를 보냅니다.

    “잘 지내지?”

    길지 않은 한마디입니다.

    그런데 답장은 생각보다 빨리 옵니다.

    “그러게. 나도 연락하려고 했어.”

    관계가 멀어진 줄 알았는데 단지 둘 다 먼저 연락하지 않았던 경우도 있습니다.

    50대 이후 관계가 줄어드는 이유를 모두 마음의 변화에서만 찾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생활이 달라졌고 연락하는 습관도 달라졌습니다.

    만나는 횟수가 줄었다고 마음의 거리까지 같은 만큼 멀어진 것은 아닙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줄었다면

    오랜만에 온 연락을 보고 한참 뒤에 답장을 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예전의 나라면 바로 약속을 잡았을 텐데 왜 이러나 싶습니다.

    혹시 내가 너무 무심해진 것은 아닌지, 사람들과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연락처의 숫자보다 최근에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려봅니다.

    누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 가벼웠는지.

    누구 앞에서는 자꾸 나를 설명해야 했는지.

    누구와 있을 때 시계를 자주 보지 않았는지.

    어떤 약속은 취소됐을 때 마음 한쪽이 편해졌는지.

    그 장면들 속에 지금 내가 원하는 관계의 모습이 들어 있습니다.

    사람을 오래 알았다는 이유만으로 계속 가까워야 하는 것도 아니고 자주 만나지 않는다고 관계가 끝난 것도 아닙니다.

    한 달에 한 번 만나도 기다려지는 사람이 있고 자주 만나도 피곤한 사람이 있습니다.

    50대 이후 관계에서 달라지는 것은 사람의 숫자만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내어줄 수 있는 시간과 마음을 바라보는 기준도 함께 달라집니다.

    그래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줄어드는 일을 너무 빨리 쓸쓸함이라고 이름 붙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몇 사람만 남기고 다른 관계를 모두 정리해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모든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된 것에 가깝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주 만나고, 어떤 사람은 가끔 안부만 묻습니다.

    몇 년 만에 만나도 어제 본 사람처럼 이야기를 이어가는 사이도 있습니다.

    관계마다 맞는 거리가 다릅니다.

    토요일 오전에 도착했던 메시지를 다시 봅니다.

    답장을 쓰기 전에 잠깐 망설였던 그 사람입니다.

    이번에는 달력을 열어봅니다.

    다음 주에는 조금 바쁘고, 그다음 주 토요일 오후는 비어 있습니다.

    잠시 생각하다 답장을 보냅니다.

    “그날 오후는 어때?”

    모든 사람을 만나고 싶지는 않아졌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만나고 싶은 사람은 있습니다.

    달라진 것은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의 크기가 아닙니다.

    이제는 그 마음을 누구와 어떤 시간 속에 오래 두고 싶은지, 전보다 조금 더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 주문하지 않은 택배가 왔다

    주문하지 않은 택배가 왔다

    내가 주문한 것이 아닌데

    토요일 오전이었습니다.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아내가 주방에 있어서 제가 현관으로 나갔습니다.

    문을 열자 택배 기사가 작은 상자 하나를 내려놓고 있었습니다.

    “택배 왔습니다.”

    상자를 받아 들었습니다.

    크지도 무겁지도 않았습니다.

    “당신 뭐 샀어?”

    주방을 향해 물었습니다.

    “아니요.”

    “택배 왔는데?”

    “당신 거 아니에요?”

    “내가 산 게 없는데.”

    식탁 위에 상자를 올려놓고 송장을 봤습니다.

    이름은 제 이름이었습니다.

    주소도 맞았습니다.

    전화번호 끝 네 자리도 제 번호였습니다.

    며칠 전 휴대전화로 무언가를 보다가 주문했나 싶었습니다.

    쇼핑몰 주문 내역을 열어봤습니다.

    없었습니다.

    카드 사용 내역도 확인했습니다.

    그쪽에도 없었습니다.

    아내가 행주에 손을 닦으며 주방에서 나왔습니다.

    “보낸 사람은요?”

    송장에는 처음 보는 업체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생활용품을 파는 곳 같았습니다.

    “모르는 데야.”

    “그럼 잘못 온 거 아니에요?”

    “내 이름으로 왔잖아.”

    아내도 송장을 들여다봤습니다.

    “주소도 맞네.”

    둘이 상자를 앞에 두고 잠깐 서 있었습니다.

    “일단 뜯어봐요.”

    “남의 물건이면?”

    “당신 이름으로 왔는데 무슨 남의 물건이에요.”

    가위를 가져왔습니다.

    테이프를 자르고 상자를 열었습니다.

    안에는 전기주전자 하나가 들어 있었습니다.

    아내가 먼저 말했습니다.

    “주전자네.”

    새 제품이었습니다.

    포장 비닐도 뜯지 않은 채였습니다.

    우리는 잠깐 서로 얼굴을 봤습니다.

    전기주전자라면 이미 있었습니다.

    싱크대 한쪽에 오래된 것이 하나 놓여 있었습니다.

    손잡이 아래쪽에 금이 가 검은 테이프를 감아놓기는 했지만 아직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새 주전자를 보다가 저를 봤습니다.

    “혹시 당신이 주문하고 잊어버린 거 아니에요?”

    “아니라니까.”

    “저거 바꾸자고 몇 번 말했잖아요.”

    “당신이 말했지. 내가 산다고 했어?”

    “그건 아니고.”

    상자 안을 다시 살폈습니다.

    제품 밑에 작은 종이 한 장이 끼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사용설명서인 줄 알았습니다.

    꺼내 보니 손으로 쓴 메모였습니다.

    ‘그날 커피 잘 마셨습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이름도 없었습니다.

    아내가 제 손에 든 메모를 읽었습니다.

    “누구예요?”

    “그러니까.”

    저도 다시 읽어봤습니다.

    그날 커피 잘 마셨습니다.

    “최근에 누구한테 커피 타줬어요?”

    “글쎄.”

    “집에 온 사람 생각해봐요.”

    그제야 최근에 집에 왔던 사람들을 하나씩 떠올려봤습니다.

    많지는 않았습니다.

    요즘은 사람을 만나도 밖에서 보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집으로 찾아오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휴대전화의 최근 통화 목록도 내려봤습니다.

    몇 사람의 이름이 나왔습니다.

    그중 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너 혹시 나한테 뭐 보냈냐?”

    “뭘?”

    “주전자.”

    “아니. 갑자기 웬 주전자야?”

    “아니면 됐어.”

    전화를 끊었습니다.

    아내가 물었습니다.

    “아니래요?”

    “응.”

    “사람들한테 하나씩 다 전화해볼 거예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것도 우스웠습니다.

    누가 보냈는지 찾겠다고 아는 사람들에게 주전자를 보냈느냐고 전화를 돌릴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냥 놔둬요. 보낸 사람이 연락하겠죠.”

    상자는 식탁 한쪽으로 밀어두었습니다.

    한번 궁금해지고 나니 지나갈 때마다 눈이 갔습니다.

    선물을 받았는데 고맙다고 할 사람을 모른다는 것도 이상했습니다.

    오후가 되자 아내가 상자에서 새 주전자를 꺼냈습니다.

    “이거 그냥 쓰면 안 돼요?”

    “잠깐 놔둬봐.”

    “왜요?”

    “누가 보낸 건지는 알아야지.”

    “알면 물이 더 잘 끓어요?”

    제가 쳐다보자 아내가 웃었습니다.

    “알았어요. 안 쓸게요.”

    새 주전자는 다시 상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날 커피 잘 마셨습니다

    저녁 무렵 커피를 마시려고 주방으로 갔습니다.

    낡은 주전자에 물을 받았습니다.

    손잡이를 잡는 순간 검은 테이프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때 몇 주 전 일이 생각났습니다.

    오래 알고 지낸 친구 하나가 집에 왔었습니다.

    예전에는 자주 만났는데 요즘은 두어 달에 한 번 얼굴을 보면 많이 보는 편이었습니다.

    그날도 특별한 약속을 하고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근처에 볼일이 있어 왔다가 생각나서 들렀다고 했습니다.

    제가 커피를 끓였습니다.

    친구가 식탁에 앉아 있다가 주전자를 보더니 물었습니다.

    “형, 이거 아직도 써?”

    “왜?”

    “손잡이가 왜 이래?”

    “조금 깨졌어.”

    “조금 깨진 게 아니라 테이프까지 감았구먼.”

    “물 끓이는 데는 문제없어.”

    친구가 주전자를 들어 손잡이 쪽을 살펴봤습니다.

    “이러다 뜨거운 물 쏟으면 어쩌려고 그래.”

    “안 쏟아.”

    “하나 사. 얼마 한다고.”

    “네가 사주든가.”

    제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친구도 웃었습니다.

    옆에 있던 아내가 한마디 했습니다.

    “내가 바꾸자고 해도 말을 안 들어요.”

    친구가 바로 아내 편을 들었습니다.

    “형수님, 그냥 버리세요. 안 버리니까 계속 쓰는 겁니다.”

    “내 물건을 왜 마음대로 버려.”

    그때는 셋이 웃고 말았습니다.

    곧 다른 이야기가 시작됐고 주전자는 더 이상 화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장면이 떠오르자 휴대전화를 들었습니다.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너 혹시 나한테 주전자 보냈냐?’

    곧바로 답은 오지 않았습니다.

    휴대전화를 식탁 위에 내려놓았습니다.

    저녁 준비를 하던 아내가 물었습니다.

    “그 친구한테 물어봤어요?”

    “문자 보냈어.”

    “뭐래요?”

    “아직.”

    잠시 뒤 문자 알림이 울렸습니다.

    친구였습니다.

    ‘갔어?’

    그 짧은 답을 보는 순간 알았습니다.

    바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친구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네가 보낸 거야?”

    “갔으면 됐네.”

    “야, 이걸 왜 보냈어?”

    “형이 사달라며.”

    “내가 언제?”

    “기억도 안 나?”

    잠깐 생각하다가 웃음이 나왔습니다.

    “야, 그건 농담으로 한 말이지.”

    “나는 진담으로 들었는데?”

    “누가 커피 한 잔 얻어먹고 주전자를 보내냐.”

    “커피 때문에 보낸 거 아니야.”

    “그럼?”

    “그날 형이 물 따르는데 손잡이가 흔들리더라.”

    저도 모르게 싱크대 쪽을 봤습니다.

    검은 테이프를 감아놓은 주전자가 그대로 있었습니다.

    친구가 말을 이었습니다.

    “형은 맨날 쓰니까 모르겠지만 나는 오랜만에 봤잖아. 저걸 아직도 쓰나 싶더라고.”

    “물은 잘 끓어.”

    “물이 끓는 게 문제가 아니라 손잡이가 깨졌잖아.”

    “안 떨어져.”

    “떨어지고 나서 바꾸려고?”

    옆에서 듣고 있던 아내가 물었습니다.

    “그 친구예요?”

    제가 휴대전화를 잠깐 떼고 대답했습니다.

    “응. 맞아.”

    아내가 전화기 쪽으로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잘하셨어요. 내가 그렇게 바꾸자고 해도 안 바꿔요.”

    친구가 웃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거봐. 형수님도 내 편이잖아.”

    “둘이 아주 잘한다.”

    “형, 새것 써. 옛날 것은 버리고.”

    “알았어.”

    “알았다고만 하지 말고 진짜 버려.”

    “내가 알아서 해.”

    전화를 끊었습니다.

    아내가 기다렸다는 듯 상자를 열었습니다.

    새 주전자를 꺼내며 말했습니다.

    “잘됐네. 이제 저건 버리면 되겠네.”

    싱크대에 있던 낡은 주전자를 가리켰습니다.

    저도 그쪽을 봤습니다.

    “그래야겠지.”

    그때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아내가 새 주전자를 씻었습니다.

    물을 한 번 가득 받아 끓였다가 버리고 다시 헹궜습니다.

    낡은 주전자는 싱크대 구석으로 밀려났습니다.

    새것이 있는데도

    다음 날 아침 새 주전자를 처음 사용했습니다.

    물을 받고 스위치를 눌렀습니다.

    며칠 동안은 자연스럽게 새것을 썼습니다.

    낡은 주전자는 싱크대 구석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버리지도 않았고 다시 쓸 생각을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어느 아침이었습니다.

    아직 잠이 덜 깬 채 주방으로 나왔습니다.

    주전자를 집어 물을 받고 스위치를 눌렀습니다.

    식탁에 있던 아내가 저를 보더니 말했습니다.

    “그걸 왜 써요?”

    그제야 손에 잡은 것을 봤습니다.

    낡은 주전자였습니다.

    저도 웃었습니다.

    “그냥 집었네.”

    “새것이 바로 옆에 있는데?”

    “손에 먼저 잡혔어.”

    “그러니까 저걸 버려야 한다니까.”

    “나중에.”

    “언제요?”

    “못 쓰게 되면.”

    아내가 주전자 손잡이를 가리켰습니다.

    “지금도 충분히 못 쓰게 생겼어요.”

    “물은 잘 끓잖아.”

    말하고 나니 며칠 전 친구에게 했던 말과 똑같았습니다.

    아내는 더 말하지 않았습니다.

    잠시 뒤 물이 끓었습니다.

    컵에 물을 붓다가 손잡이를 한 번 더 단단히 잡았습니다.

    그날 오후 낡은 주전자를 자세히 들여다봤습니다.

    언제 샀는지는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어디에서 샀는지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누가 선물한 물건도 아니었습니다.

    대단한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이거 언제 산 건지 기억나?”

    아내가 주전자를 봤습니다.

    “아니요.”

    “당신이 산 거 아니야?”

    “내가요?”

    “나는 산 기억이 없는데.”

    “나도 없어요.”

    “그럼 누가 샀지?”

    “둘 중 하나가 샀겠죠.”

    아내가 웃었습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해요?”

    “아니. 그냥 궁금해서.”

    그것으로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며칠이 더 지났습니다.

    친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다른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친구가 물었습니다.

    “참, 주전자는 잘 써?”

    “응.”

    “옛날 것은 버렸고?”

    “아직.”

    친구가 웃었습니다.

    “설마 아직도 쓰는 건 아니지?”

    “가끔.”

    “형은 진짜 이상하다.”

    “뭐가.”

    “새것이 있는데 왜 깨진 걸 계속 써?”

    “멀쩡한 걸 왜 버려.”

    “또 멀쩡하대.”

    잠시 뒤 친구가 말했습니다.

    “근데 형, 그 주전자 진짜 오래됐다.”

    “그런가?”

    “내가 옛날에 형네 집 자주 들락거릴 때도 그걸로 커피 끓였잖아.”

    “그때도 저거였나?”

    “그랬던 것 같은데.”

    저도 기억을 더듬어봤습니다.

    친구가 우리 집에 자주 오던 때가 있었습니다.

    약속을 따로 잡지 않아도 근처를 지나다가 들르곤 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가기도 했고 커피 한 잔만 마시고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때도 있었던 것 같네.”

    “그럼 더 오래됐네.”

    “그렇겠지.”

    “그러니까 버려.”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 얘기가 왜 또 거기로 가.”

    친구도 웃었습니다.

    오늘은 내가 버린다

    주말에 그 친구가 근처에 볼일이 있다며 집에 들렀습니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오더니 주방 쪽을 한번 봤습니다.

    새 주전자와 낡은 주전자가 여전히 나란히 놓여 있었습니다.

    친구가 걸음을 멈췄습니다.

    “형.”

    “왜.”

    “설마 저거 아직도 쓰는 거야?”

    “가끔.”

    친구가 낡은 주전자의 손잡이를 잡아봤습니다.

    들뜬 테이프를 손가락으로 눌렀습니다.

    “이거 봐. 더 벌어졌잖아.”

    “괜찮아.”

    “뭐가 괜찮아.”

    친구가 주전자를 들어 올렸습니다.

    “안 되겠다. 오늘은 내가 버린다.”

    “놔.”

    제 입에서 바로 말이 나왔습니다.

    친구가 저를 봤습니다.

    “왜?”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냥 놔.”

    “이유가 뭐야?”

    “내 물건이잖아.”

    친구는 잠깐 저를 보더니 주전자를 내려놓았습니다.

    “알았어. 형 마음대로 해.”

    제가 새 주전자에 물을 받았습니다.

    친구가 그 모습을 보고 웃었습니다.

    “그래도 커피는 새것으로 끓여주네.”

    “손님이니까.”

    “새것으로 끓이면 맛이 좀 다른가?”

    “똑같아.”

    “내가 사준 거라 더 맛있을 텐데.”

    “네가 무슨 주전자 장인이냐.”

    친구가 웃었습니다.

    커피를 마시고 나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습니다.

    친구는 요즘 오래 앉아 있으면 허리가 뻐근하다고 했습니다.

    병원에 갔더니 많이 걸으라는 말을 들었다며 휴대전화를 꺼내 하루 걸음 수를 보여줬습니다.

    저도 제 휴대전화를 꺼냈습니다.

    누가 더 많이 걷느냐를 비교하다가 지난주에는 어디를 걸었는지, 동네에 새로 생긴 산책길은 어떤지 한참 이야기했습니다.

    주전자 이야기는 다시 나오지 않았습니다.

    친구는 두 시간쯤 있다가 돌아갔습니다.

    테이프를 다시 떼었다

    며칠 뒤 아침이었습니다.

    낡은 주전자에 물을 받으려다가 손잡이의 테이프가 다시 들뜬 것을 봤습니다.

    끝부분이 손가락에 걸렸습니다.

    서랍을 열었습니다.

    검은 테이프를 꺼냈습니다.

    가위로 한 조각을 잘랐습니다.

    주전자를 식탁 위에 놓고 들뜬 부분을 눌러 한 바퀴 감았습니다.

    두 번째를 감으려다가 손을 멈췄습니다.

    아내가 주방을 지나가다가 저를 봤습니다.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아무 말 없이 방금 감은 테이프를 다시 떼었습니다.

    “버리게요?”

    아내가 물었습니다.

    “그래야겠지.”

    “갑자기?”

    “갑자기는 아니지.”

    코드를 감았습니다.

    주전자를 들고 현관으로 나갔습니다.

    문 앞에 내려놓고 돌아서려다가 한번 봤습니다.

    손잡이에는 오래 붙어 있던 검은 테이프 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아내가 안에서 물었습니다.

    “뭐 해요?”

    “들어가.”

    문을 닫았습니다.

    한 시간쯤 뒤 외출하려고 문을 열었습니다.

    주전자는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 옆을 지나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오후에 돌아왔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우리 집 문 앞이 먼저 보였습니다.

    주전자는 없었습니다.

    집에 들어가 신발을 벗었습니다.

    “주전자 없어졌네.”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그래요?”

    “누가 치웠나 봐.”

    “그랬겠죠.”

    아내는 하던 일을 계속했습니다.

    저도 더 말하지 않았습니다.

    주방에는 새 주전자 하나만 남았습니다.

    며칠 뒤 친구가 근처에 왔다며 전화를 했습니다.

    “형, 집이야?”

    “응.”

    “잠깐 들러도 돼?”

    “와.”

    십여 분 뒤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친구가 들어와 외투를 벗어 의자에 걸고 식탁에 앉았습니다.

    “커피 한 잔 줘.”

    “오자마자 커피부터 찾냐.”

    “그거 얻어먹으려고 주전자까지 사줬는데.”

    제가 웃으며 주방으로 갔습니다.

    새 주전자에 물을 받았습니다.

    친구가 주방 쪽을 보다가 말했습니다.

    “어?”

    “왜.”

    “옛날 거 없어졌네.”

    “버렸어.”

    친구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잘했네.”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커피 한 잔 마실 거지?”

    “그거 얻어먹으려고 왔다니까.”

    물이 끓었습니다.

    커피 두 잔을 만들어 식탁으로 가져갔습니다.

    친구가 한 모금 마시더니 저를 봤습니다.

    “형.”

    “왜.”

    “주전자는 좋아졌는데 커피 맛은 그대로네.”

    “그럼 마시지 마.”

    “공짜니까 마셔야지.”

    친구가 다시 컵을 들었습니다.

    한동안 다른 이야기를 했습니다.

    돌아갈 시간이 되자 친구가 빈 컵을 싱크대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잘 마셨어.”

    “다음에는 네가 사 와.”

    “뭘?”

    “커피.”

    “주전자까지 사줬으면 됐지.”

    친구가 웃으며 현관으로 갔습니다.

    문을 닫고 돌아오니 아내가 싱크대에 놓인 컵을 씻고 있었습니다.

    컵을 엎어놓고 새 주전자를 옆으로 조금 밀었습니다.

    “이제 이것도 제법 익숙해졌네.”

    “그러게.”

    다음 날 아침 주방으로 나왔습니다.

    주전자에 물을 받았습니다.

    스위치를 눌렀습니다.

    물이 끓는 동안 컵을 꺼내 커피를 담았습니다.

    잠시 뒤 스위치가 올라갔습니다.

    주전자를 들어 컵에 물을 부었습니다.

  • 요즘 뭐 하세요?

    요즘 뭐 하세요?

    토요일 오전이었습니다.

    휴대전화가 울렸습니다.

    오래전에 함께 일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한동안 연락이 없던 사람이라 무슨 일인가 싶어 전화를 받았습니다.

    “형님, 오늘 뭐 하세요?”

    딱히 할 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입에서는 다른 말이 먼저 나왔습니다.

    “오늘은 좀 일이 있어.”

    전화를 끊고 나서도 처음에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만나자는 말이 나올 것 같아서 미리 피한 것뿐이었습니다.

    씻고 나가는 것도 귀찮았고, 갑자기 생긴 약속에 몇 시간을 내주는 것도 내키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조용히 있고 싶었습니다.

    점심때가 지나자 문자 하나가 왔습니다.

    ‘알겠습니다. 다음에 뵐게요.’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그날 오후에는 정말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점심을 먹고 TV를 조금 보다가 잠깐 졸았습니다. 일어나 보니 세 시가 넘었습니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고 창밖을 보다가 아침 전화가 생각났습니다.

    무슨 일이 있다고 했지?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누가 물어본 것도 아닌데 혼자 조금 우스워졌습니다.

    바빠서 못 만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싫었던 것도 아닙니다. 만나면 반가웠을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없는 일까지 만들어냈을까.

    며칠 뒤 동네에서 아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요즘 바쁘세요?”

    “그냥 이것저것 하지.”

    집으로 돌아오다가 그 말이 걸렸습니다.

    이것저것.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말하려니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습니다.

    예전에는 바쁘다는 말을 별로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일정이 많았습니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 돌아올 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날도 있었고, 달력을 펴면 이미 약속이 들어 있는 날도 많았습니다.

    누가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으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바쁘지.”

    그 한마디면 대충 통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많아진 뒤에도 그 말은 남아 있었습니다.

    약속을 미룰 때도 그랬고, 전화를 짧게 끝낼 때도 그랬습니다.

    어느 날 전화를 끊고 책상 위 달력을 보았습니다.

    그 주에는 적혀 있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한동안 달력을 들여다보다가 피식 웃었습니다.

    나는 누구한테 바쁘다고 한 거지?

    바쁘지 않은데 바쁘다고 말했다

    그 주 금요일, 토요일에 전화했던 사람에게 다시 연락했습니다.

    “지난번에 왜 전화했어?”

    잠깐 침묵이 있었습니다.

    “별일 아니었어요.”

    “그래도.”

    “그냥 형님 생각나서 밥이나 먹을까 했죠.”

    “오늘은?”

    이번에는 상대가 웃었습니다.

    “오늘은 제가 일이 있어요.”

    “그래?”

    “다음에 제가 전화할게요.”

    전화를 끊었습니다.

    조금 아쉬웠습니다.

    지난 토요일에는 만나자는 말이 나올까 봐 먼저 피했는데, 정작 상대가 시간이 없다고 하자 밥 한 끼가 아쉬워졌습니다.

    며칠 뒤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오늘은 뭐 하세요?”

    이번에도 특별한 일정은 없었습니다.

    대답하려다 잠깐 멈췄습니다.

    “아무것도 안 해.”

    전화기 너머에서 웃음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럼 나오세요.”

    “어디로?”

    “나오시면 정하죠.”

    전화를 끊고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둘은 식당에서 만났습니다.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셨습니다.

    대단한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예전에 같이 일하던 사람들 이야기가 나왔고, 누가 어디로 갔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한때는 매일 얼굴을 보던 사람의 이름이 바로 떠오르지 않아 둘이 한참 기억을 더듬었습니다.

    “그 사람 있잖아요. 맨날 제일 먼저 출근하던 사람.”

    “안경 쓴 사람?”

    “아니요. 그 사람 말고.”

    이름 하나를 놓고 한동안 헤맸습니다.

    겨우 생각났을 때는 그것만으로 한참 웃었습니다.

    그러다 그 사람이 물었습니다.

    “형님, 요즘은 진짜 뭐 하세요?”

    이번에는 ‘이것저것’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냥 지내.”

    “심심하지 않아요?”

    잠시 생각했습니다.

    “심심할 때도 있지.”

    말하고 나서 상대의 얼굴을 한번 보았습니다.

    별 반응이 없었습니다.

    “나도 쉬는 날은 그래요.”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조금 전 생각난 사람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히려 그 짧은 대화가 오래 남았습니다.

    그냥 지낸다.

    심심할 때도 있다.

    말해버리고 나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누가 안쓰럽게 보지도 않았고,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묻지도 않았습니다.

    아무 데도 안 다닙니다

    며칠 뒤 은행에 갔습니다.

    번호표를 뽑으니 앞에 일곱 명이 있었습니다.

    빈 의자를 찾아 앉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이름을 불렀습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한동안 얼굴을 못 봤던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오랜만입니다.”

    “그러게요. 여기서 다 보네.”

    그 사람도 옆에 앉았습니다.

    자녀 이야기를 조금 했고, 동네에 새로 생긴 가게 이야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그가 물었습니다.

    “요즘 어디 다니세요?”

    예전 같으면 대답 뒤에 무언가를 붙였을 것입니다.

    준비하는 것이 있다거나, 이것저것 하고 있다거나, 요즘도 정신없이 지낸다는 말 같은 것들입니다.

    그날은 그냥 말했습니다.

    “아무 데도 안 다녀.”

    상대가 잠깐 저를 쳐다봤습니다.

    그 짧은 침묵이 예전 같으면 불편했을 겁니다.

    이번에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잠시 뒤 그가 말했습니다.

    “좋으시겠네.”

    뜻밖의 대답이었습니다.

    “뭐가 좋아?”

    “아무 데도 안 가도 되잖아요.”

    둘이 웃었습니다.

    마침 그의 번호가 불렸습니다.

    “먼저 갈게요.”

    “그래요.”

    그는 창구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저는 다시 번호표를 보았습니다.

    아직 두 사람이 남아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그 말이 몇 번 생각났습니다.

    아무 데도 안 가도 된다.

    저는 그동안 비슷한 생활을 전혀 다른 말로 보고 있었습니다.

    아무 데도 갈 데가 없다.

    두 문장은 닮아 있었지만 듣고 나면 달랐습니다.

    그렇다고 그 말을 들었다고 다음 날부터 생활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무료한 날은 여전히 무료했습니다. 아침을 먹고 나면 점심까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집 안을 서성이는 날도 있었습니다.

    어떤 날에는 예전처럼 일정이 빽빽했던 때가 그리웠습니다.

    다만 누군가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을 때 대답할 말을 미리 준비하는 일은 조금씩 줄었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며칠 뒤 그 사람과 다시 점심을 먹게 되었습니다.

    자리에 앉자 그가 휴대전화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먼저 물었습니다.

    “요즘 바빠?”

    “죽겠어요.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얼마 전까지 제가 자주 하던 말이었습니다.

    “그렇게 바빠?”

    “이것저것 할 게 많아요.”

    웃음이 나올 뻔했습니다.

    이것저것.

    저도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음식을 주문하고 나서도 그는 휴대전화 화면을 몇 번 켰다가 다시 내려놓았습니다.

    “무슨 일 있어?”

    “아니요.”

    “그런데 뭘 자꾸 봐?”

    “그냥 습관이죠.”

    음식이 나왔습니다.

    밥을 먹으면서 무엇이 그렇게 바쁜지 물었습니다.

    며칠 전에는 집에 있는 전등을 바꿨고, 어제는 차를 정비소에 맡겼다고 했습니다. 건강검진 예약도 하나 잡혀 있었고, 주말에는 장을 보러 갈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그게 죽을 만큼 바쁜 거야?”

    제가 웃으며 물었습니다.

    그도 웃었습니다.

    “그러게요.”

    잠시 밥을 먹었습니다.

    그러다 그가 숟가락을 내려놓았습니다.

    “사실 바쁜 건 아닌데요.”

    말끝이 조금 느려졌습니다.

    “집에 있으면 하루가 너무 길어요.”

    이번에는 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뭐라도 해야 될 것 같고요. 약속 하나 있으면 그날은 괜찮은데, 아무것도 없는 날은 아침부터 좀 그래요.”

    “뭐가?”

    “모르겠어요. 그냥 오늘 뭐 하지 싶죠.”

    얼마 전의 제 모습과 닮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닮았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할 일을 만들 때도 있어요. 차도 아직 더 타도 되는데 정비소 갔다 왔고, 멀쩡한 전등도 바꿨고.”

    “장을 보는 것도?”

    “그건 가야죠.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둘이 웃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커피 마실래?”

    제가 물었습니다.

    그가 시계를 보았습니다.

    “그러죠.”

    둘은 가까운 카페로 갔습니다.

    자리에 앉은 뒤에도 그가 먼저 시계를 보았습니다.

    “몇 시까지 가야 돼?”

    “아무 때나요.”

    “그럼 왜 자꾸 시계를 봐?”

    그가 자기 손목을 내려다봤습니다.

    “그러게요.”

    커피가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예전 직장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다 자녀 이야기가 나왔고, 한동안 가지 않았던 동네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우리 예전에 출장 갔다가 국수 먹은 데 기억나요?”

    기억이 났습니다.

    길을 잘못 들어 우연히 들어갔던 작은 가게였습니다.

    “거기 국수 괜찮았는데.”

    “아직 있으려나?”

    그가 휴대전화를 꺼냈습니다.

    검색을 하더니 화면을 제 쪽으로 돌렸습니다.

    “있네요.”

    간판은 바뀌어 있었지만 가게는 남아 있었습니다.

    “한번 가볼까요?”

    그가 말했습니다.

    저는 화면을 들여다봤습니다.

    차로 한 시간 조금 넘게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지금?”

    그가 저를 쳐다봤습니다.

    “지금요?”

    “가자며.”

    “오늘?”

    “오늘 가면 안 돼?”

    그가 다시 시계를 봤습니다.

    이번에는 둘 다 웃었습니다.

    국수 한 그릇 먹으러

    계산을 하고 카페에서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농담처럼 꺼낸 이야기였습니다.

    둘 다 집으로 돌아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주차장에 내려와서도 아무도 먼저 집에 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차에 올라 내비게이션에 가게 이름을 넣었습니다.

    한 시간 십여 분.

    “진짜 가요?”

    “싫으면 지금 말해.”

    “아니요. 갑시다.”

    차가 출발했습니다.

    처음 삼십 분쯤은 조금 전 카페에서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그러다 익숙한 도로를 벗어나자 말이 줄었습니다.

    라디오에서는 오래된 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 둘 다 아는 노래였지만 제목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이 창밖을 보다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국수 먹으러 이렇게 멀리 가는 사람들이었나?”

    “오늘부터 그런 사람인가 보지.”

    둘이 웃었습니다.

    조금 뒤에는 말이 끊겼습니다.

    굳이 무슨 이야기를 찾아내지 않았습니다.

    차창 밖으로 논과 낮은 건물들이 지나갔습니다. 신호에 걸리면 멈췄고, 다시 파란불이 켜지면 출발했습니다.

    예전에는 누군가와 차를 타고 이렇게 오래 가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시간이 어색했습니다. 무슨 이야기라도 해야 할 것 같았고, 도착할 때까지 침묵이 길어지면 괜히 라디오 소리를 키우기도 했습니다.

    그날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동네는 기억과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예전에 있던 주유소가 보이지 않았고 넓은 공터에는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습니다.

    “여기가 맞아?”

    “내비는 맞다고 하는데.”

    길을 잘못 든 줄 알고 다시 확인했습니다.

    가게는 있었습니다.

    다만 우리가 기억하던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낡은 간판은 새것으로 바뀌어 있었고 문 앞에는 키오스크까지 놓여 있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주인도 예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여기 맞아요?”

    그 사람이 작게 물었습니다.

    “주소는 맞는데.”

    둘은 국수를 주문했습니다.

    음식이 나오자 한동안 말없이 먹었습니다.

    그 사람이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맛이 이랬어요?”

    “모르겠는데.”

    “내 기억에는 엄청 맛있었는데.”

    “그때 배가 고팠겠지.”

    또 웃었습니다.

    굳이 여기까지 올 필요는 없었습니다.

    동네에도 국숫집은 많았습니다. 왕복 두 시간이 넘게 걸렸고 기름값까지 생각하면 꽤 비싼 국수였습니다.

    그렇다고 괜히 왔다는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바로 차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근처를 조금 걸었습니다.

    예전에 보았던 건물이 하나쯤 남아 있을까 찾아보았지만 대부분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골목 하나를 가리켰습니다.

    “우리 저쪽으로 갔던 것 같은데.”

    “나는 반대쪽 같은데.”

    “형님 기억도 이제 못 믿겠네요.”

    “네 기억은 믿을 만하고?”

    그날 있었던 일을 두 사람이 서로 다르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누가 운전했는지부터 달랐고, 왜 그 동네에 갔는지도 정확하지 않았습니다.

    확실한 것은 국수를 먹었다는 것뿐이었습니다.

    그것도 맛이 어땠는지는 이제 자신이 없었습니다.

    카페에서 우연히 꺼낸 기억 하나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우리가 찾던 것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커피나 한잔하고 갑시다.”

    “아까 마셨잖아.”

    “오늘 바쁘세요?”

    그가 물었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대답했습니다.

    “아니.”

    근처 카페에 들어갔습니다.

    창가에 앉았습니다.

    이번에는 아무도 시계를 보지 않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갈 때보다 말이 적었습니다.

    피곤해서였는지, 더 할 이야기가 없어서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차 안에는 라디오 소리만 작게 흘렀습니다.

    한참 뒤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오늘 하루 다 갔네요.”

    창밖을 보니 해가 많이 기울어 있었습니다.

    “그러네.”

    “국수 먹다가 하루 다 갔어요.”

    “그러게.”

    그 사람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 창밖을 보았습니다.

    저도 앞을 보았습니다.

    그날 하루를 어디에 썼느냐고 묻는다면 국수 한 그릇에 썼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오늘 뭐 하셨어요?

    집에 돌아오니 저녁이 가까웠습니다.

    신발을 벗고 들어와 가방을 내려놓았습니다.

    아침에는 이런 하루가 될 줄 몰랐습니다.

    누군가 아침에 오늘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었다면 국수를 먹으러 한 시간 넘게 차를 타고 갈 거라고는 말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계획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옷을 갈아입고 소파에 앉았습니다.

    몸은 조금 피곤했습니다.

    한동안 그대로 앉아 있었습니다.

    저녁을 늦게 먹었습니다.

    그날 밤 다른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가 물었습니다.

    “오늘 뭐 하셨어요?”

    국숫집 이야기를 하려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처음부터 설명하려면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았습니다.

    “그냥 사람 하나 만나고 왔어.”

    “바쁘셨네.”

    그 말을 듣고 웃었습니다.

    “아니. 안 바빴어.”

    “그래요?”

    “응.”

    상대는 더 묻지 않았습니다.

    대화는 그대로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습니다.

    전화를 끊고 소파에 다시 앉았습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까지만 해도 오늘은 사람을 만나 점심이나 먹고 들어오는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점심이 국수가 되었고, 국수가 한 시간 넘는 길이 되었고, 길 끝에서 오래전의 동네를 다시 보았습니다.

    하루는 계획한 것보다 길게 움직였지만 이상하게도 ‘바빴다’는 말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며칠 뒤에는 아무 약속도 없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신문을 조금 읽었습니다.

    점심 무렵에는 냉장고에 남은 것을 꺼내 먹었습니다.

    오후에는 잠깐 졸았습니다.

    눈을 떠보니 네 시가 가까웠습니다.

    휴대전화에는 메시지가 하나 와 있었습니다.

    국수를 함께 먹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집 생각나네요.’

    웃음이 났습니다.

    ‘맛있어서?’

    잠시 뒤 답이 왔습니다.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럼 왜?’

    한참 답이 없었습니다.

    저녁을 준비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습니다.

    ‘그냥 그날이 재밌었어요.’

    그 문장을 한번 읽었습니다.

    답장을 쓰려다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습니다.

    냉장고를 열어 저녁거리를 꺼냈습니다.

    그날은 누구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멀리 가지도 않았습니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했습니다.

    TV를 켰다가 볼 만한 것이 없어 다시 껐습니다.

    밤이 조금 깊었을 때 전화가 왔습니다.

    “오늘 뭐 하셨어요?”

    예전 같으면 잠깐 머릿속을 뒤졌을 것입니다.

    그날 있었던 일을 모아 대답할 만한 것을 하나 찾았을 것입니다.

    그날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오늘?”

    창밖을 한번 보았습니다.

    “아무것도 안 했어.”

    상대가 웃었습니다.

    “팔자 좋으시네요.”

    저도 웃었습니다.

    “그런가 봐.”

    전화가 끝났습니다.

    탁자 위에는 아침에 읽다 만 신문이 놓여 있었습니다.

    신문을 접어 한쪽에 두었습니다.

    주방으로 가서 물을 한 잔 따라 마셨습니다.

    컵을 씻어 엎어놓았습니다.

    거실 불을 끄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 우리,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볼까?

    우리,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볼까?

    점심을 먹고 식당을 나왔습니다.

    세 사람이었습니다.
    알고 지낸 햇수를 굳이 세어본 적은 없지만, 처음 만났던 때의 얼굴보다 지금의 얼굴이 더 익숙할 만큼 오래된 사이였습니다.
    예전에는 따로 날짜를 잡지 않아도 자주 마주쳤고, 일이 끝날 무렵 누군가 밥이나 먹자고 하면 별다른 약속 없이도 한자리에 앉았습니다.
    요즘은 한 사람이 먼저 연락하고, 세 사람의 사정을 맞추고, 한두 번 날짜를 바꾼 뒤에야 겨우 얼굴을 봅니다.

    그래도 막상 만나면 오래간만이라는 느낌은 금세 사라집니다.

    한 사람은 메뉴판을 오래 들여다보다 결국 늘 먹던 것을 골랐고, 다른 사람은 예전에 했던 이야기를 또 꺼냈습니다.
    누가 먼저 그 일을 시작했느냐를 두고 기억이 달라 한동안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이미 여러 번 했던 이야기였지만 아무도 그만하자고 하지 않았습니다.
    음식이 나오고 한참이 지나도록 이야기가 이어졌고, 식사가 끝날 무렵에는 처음 주문할 때보다 목소리가 조금씩 커져 있었습니다.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고 앞으로 자주 만나자는 약속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말해봐야 각자의 생활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것을 세 사람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식당을 나와 횡단보도 앞에서 헤어졌습니다.
    한 사람은 길 건너편 정류장으로 가야 했고, 한 사람은 주차장으로 향했습니다.
    남은 한 사람은 반대편 골목으로 걸어가야 했습니다.

    “다음에 또 보자.”

    “그래. 연락해.”

    늘 하던 인사였습니다.

    한 사람은 횡단보도를 건넜고 두 사람도 각자의 방향으로 걸었습니다.
    오늘 잘 만났으니 다음에 또 만나면 됩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걷다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볼까?

    오래 알았다는 것과 앞으로 많이 본다는 것

    그런 생각을 할 만한 일은 없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함께 밥을 먹었고, 웃었고, 다음에 또 보자며 헤어졌습니다.
    사이가 멀어진 것도 아닙니다.
    전화번호도 그대로 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연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든’이라는 말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오래 알고 지냈다는 사실과 앞으로도 많이 만날 것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한데 놓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때는 오늘 못 보면 내일 볼 수 있었고 이번 주에 시간이 맞지 않으면 다음 주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먼저 집에 가더라도 아쉬울 것이 없었습니다.
    며칠 지나면 다시 얼굴을 볼 테니까요.

    그때는 한 번의 만남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귀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셀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함께 먹은 밥이 몇 끼인지 모릅니다.
    일을 마치고 같이 걸었던 길도, 잠깐 앉아 이야기를 나눈 저녁도 몇 번인지 알지 못합니다.
    기억에 남지 않은 날이 훨씬 많습니다.
    무엇을 먹었는지조차 떠오르지 않는 식사가 대부분이고,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사라진 오후도 많습니다.

    돌아보면 바로 그런 날들이 관계의 대부분을 만들었습니다.

    특별한 사건 몇 개가 사람 사이를 오래 붙들어준 것이 아니라, 별일 없던 수많은 날에 같은 공간에 있었습니다.
    다시 만나는 일이 쉬웠기 때문에 한 번의 만남에 의미를 붙일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생활이 달라졌습니다.

    한 사람은 좀 멀리 이사를 갔고 다른 사람은 하루의 시간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마주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됐지만 이제는 만나기 위해 약속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관계를 설명하는 말은 그대로였습니다.

    오래된 친구이고, 가까운 사람이고, 언제든 연락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언제든’은 달력에 없다

    며칠 뒤 세 사람이 있는 대화방에 메시지가 하나 올라왔습니다.

    “다음에는 ○○도 같이 보자.”

    지난번 식사 자리에서 이름이 나왔던 사람이었습니다.

    “좋지.”

    “한번 보자.”

    두 사람이 곧바로 답했습니다.

    그러고는 대화가 끝났습니다.

    누구도 날짜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당장 약속을 잡아야 하는 일도 아니었고, 한 달쯤 지나 연락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며칠 뒤 다른 일정을 확인하려고 달력을 펼쳤다가 그 대화가 생각났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이미 일이 있었습니다.
    다음 주에는 집에서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고, 그다음 주에는 먼저 잡힌 약속이 있었습니다.
    한 주를 더 넘기니 달력도 다음 달로 넘어갔습니다.

    분명 언제든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달력에는 ‘언제든’이라는 날이 없었습니다.

    날짜는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만나는 날은 하나도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먼저 날짜를 정해야 했습니다.
    내가 되는 날과 상대가 되는 날이 같아야 했고, 세 사람이면 세 사람의 시간이 겹쳐야 했습니다.
    만나고 싶은 마음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정한 날까지 별다른 일이 생기지 않아야 했고, 그날이 오면 실제로 집을 나서야 했습니다.

    시간이 있다는 것과 만날 기회가 있다는 것이 처음으로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한 해에는 열두 달이 있습니다.
    달력만 보면 아직 많은 날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과 실제로 만날 수 있는 날은 그 많은 날짜 가운데 드문드문 있을 뿐입니다.

    그날을 한번 넘기면 다음 기회가 언제 올지는 모릅니다.

    그래도 우리는 별로 걱정하지 않습니다.

    다음 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 달이 오면 또 그다음 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중한 사람도 미룬다

    여기까지 생각하다 보니 조금 불편한 사실도 보였습니다.

    사람을 만나지 못한 이유가 언제나 바빴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있었는데도 만나지 않은 날이 있었습니다.
    연락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내일로 미룬 적도 있었고, 만나자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번 주에는 그냥 집에 있고 싶어 다음으로 넘긴 적도 있었습니다.

    반가운 이름이 떠올랐지만 전화를 걸지 않은 날도 있습니다.

    그 사람이 싫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렇게 미룬 적이 많았습니다.

    다음에 연락해도 이해할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몇 달 만에 만나도 어색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고, 오래 연락하지 않은 이유를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였습니다.

    한동안 만나지 않아도 관계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사람 사이를 편하게 해줍니다.
    그런데 그 믿음 덕분에 만남을 뒤로 미루기도 합니다.

    급한 일은 오늘 합니다.
    기한이 있는 일도 먼저 처리합니다.
    누군가 기다리고 있는 약속이라면 시간을 맞춥니다.

    오래된 사람에게는 다음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주에 못 보면 다음 주가 있고, 이번 달에 못 보면 다음 달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루가 복잡할 때 뒤로 밀리는 것은 오히려 오래된 사람일 때가 있습니다.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몇 번을 미루어도 관계는 그대로인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관계는 그대로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만나지 않은 시간은 지나갑니다.

    자주 만나야 좋은 사이일까

    여기까지 생각하면 금세 한쪽으로 기울기 쉽습니다.

    소중한 사람이라면 자주 만나야 하고, 미루지 말아야 하며, 시간이 있을 때 얼굴을 봐야 한다는 쪽입니다.

    그런데 실제 사람 사이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몇 달에 한 번 만나도 충분한 사람이 있습니다.
    일 년에 한 번 얼굴을 보면서도 어제 만난 사람처럼 편한 사이가 있습니다.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아도 서로의 자리를 의심하지 않는 관계도 있습니다.

    반대로 자주 만난다고 반드시 가까운 것도 아닙니다.

    매일 마주쳐도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을 수 있고, 자주 식사를 하면서도 정해진 이야기만 주고받는 사이가 있습니다.

    만남의 횟수로 관계의 깊이를 재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볼지를 생각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횟수를 늘리라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누구를 얼마나 자주 만나야 좋은 관계가 되는지 정할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처음의 질문은 다른 곳을 건드리고 있었습니다.

    다음에.

    우리는 이 말을 너무 쉽게 씁니다.

    오늘 못 보면 다음에 보면 되고, 이번 달에 안 되면 다음 달에 보면 됩니다.
    다음이 있다는 사실을 굳이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음이 있다는 것과 다음이 저절로 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연락하고 다른 사람이 답해야 합니다.
    날짜 하나가 정해져야 하고, 그날까지 각자의 생활을 지나온 사람들이 실제로 한곳에 모여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 한 번이 생깁니다.

    그렇다고 그 사실을 안 뒤부터 약속을 서둘러 잡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생활은 여전히 생활대로 흘러갔습니다.

    다만 누군가 “다음에 보자”고 말할 때 그 말을 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듣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지나온 삼십 년과 앞으로의 한 번

    오래된 사람을 떠올릴 때 우리는 지나온 시간부터 셉니다.

    십 년을 알았고, 이십 년을 함께 지냈고, 삼십 년 친구라고 말합니다.
    그 햇수 안에는 수많은 장면이 들어 있습니다.

    젊었을 때의 얼굴을 알고 있습니다.
    서로 처음 어떤 일을 시작했는지도 기억합니다.
    지금은 사라진 가게에서 밥을 먹었던 이야기를 하고, 그때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를 두고 여전히 서로 기억이 맞다고 우깁니다.

    그 많은 기억 때문에 관계가 넉넉하게 느껴집니다.

    이미 함께한 시간이 많으니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온 삼십 년은 이미 생긴 시간입니다.

    앞으로의 한 번은 아직 없습니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컸습니다.

    과거에는 수없이 많이 만났더라도 앞으로 한 번을 더 만나려면 다시 날짜를 정해야 합니다.
    같은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같은 이야기를 듣고, 헤어질 때 인사를 해야 비로소 새로운 한 번이 생깁니다.

    그렇다고 남은 만남을 계산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사람을 앞으로 열 번 보려면 십 년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사람 사이가 너무 삭막해집니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이번이 몇 번째인지 세고 싶지도 않습니다.

    몇 번 남았는지 알 수도 없습니다.

    처음 떠올랐던 질문에는 애초부터 숫자로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 질문이 남긴 것은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오래 알았다는 사실이 앞으로의 한 번까지 만들어놓지는 않는다는 것.

    그것뿐이었습니다.

    만나지 않은 날도 우리의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만나지 않은 시간을 아깝다고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각자 살아야 할 하루가 있었습니다.

    일을 해야 했고 집에서 해야 할 일도 있었습니다.
    혼자 있고 싶은 날도 있었으며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은 때도 있었습니다.
    약속 하나 없이 보내는 오후가 좋았던 날도 있습니다.

    그 시간 역시 삶입니다.

    누군가를 만나지 않았다고 잘못 보낸 하루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달력을 보면서도 굳이 약속을 잡지 않았습니다.
    대화방에 다시 날짜를 묻지도 않았습니다.
    생활은 전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음’이라는 말은 전과 똑같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도록 쌓여 있는 시간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실제로 다시 만나기 전까지는 한 번으로 셀 수도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안다고 하루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늘 만나지 않는다고 오늘을 잘못 산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다음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만 남았습니다.

    한 번은 그냥 한 번이었다

    몇 달 뒤 세 사람은 다시 만났습니다.

    누가 먼저 연락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날짜를 맞추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처음 말한 날에는 한 사람이 안 됐고, 다음 날짜에는 다른 사람에게 일이 있었습니다.
    몇 번 메시지가 오간 끝에 토요일 점심으로 정했습니다.

    지난번과 다른 식당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조금 늦었습니다.

    먼저 도착한 두 사람이 메뉴판을 보고 있는데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습니다.

    “많이 기다렸어?”

    “아니. 우리도 방금 왔어.”

    사실 십 분쯤 기다렸습니다.

    자리에 앉자 지난번에 하던 이야기의 뒤가 이어졌습니다.
    몇 달이 지나 있었지만 대화는 잠깐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웠습니다.

    음식을 먹다가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우리 지난번에 언제 봤지?”

    한 사람이 휴대전화를 꺼냈습니다.
    사진을 찾아보려는 것 같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말했습니다.

    “됐어. 밥이나 먹어.”

    휴대전화를 다시 내려놓았습니다.

    아무도 날짜를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그날이 올해 몇 번째 만남인지도 세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만날 수 있을지 말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냥 밥을 먹었습니다.

    한 사람이 전에 했던 이야기를 또 꺼냈습니다.

    “그 이야기 지난번에도 했어.”

    “내가 언제?”

    “했어.”

    “기억 안 나는데?”

    또 웃었습니다.

    그 순간에는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몇 번을 더 만날지도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그냥 한 번이었습니다.

    같은 자리에 앉아 밥을 먹고, 이미 들었던 이야기를 또 듣고, 별것 아닌 일로 웃는 몇 시간이었습니다.

    예전에는 그런 한 번이 너무 흔해서 세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세지 않는 이유가 조금 달라졌습니다.

    셀 필요가 없었습니다.

    지금 만나고 있었으니까요.

    다음에 또 보자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비가 조금 내리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만 우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처마 아래에 서서 비가 잦아들기를 잠깐 기다렸습니다.

    한 사람이 주차장까지 뛰어가 차를 가져오겠다고 했고 다른 사람이 됐다며 손을 저었습니다.
    역까지 멀지 않으니 그냥 가겠다고 했습니다.

    몇 마디를 더 주고받다가 결국 각자 가기로 했습니다.

    헤어지기 전에 누군가 말했습니다.

    “다음에 또 보자.”

    예전과 똑같은 말이었습니다.

    이번에도 날짜는 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

    한 사람은 우산을 펴고 걸어갔고 다른 사람은 가방을 머리 위에 올렸습니다.
    몇 걸음 지나자 세 사람의 거리가 조금씩 벌어졌습니다.

    몇 번 남았는지 세지 않았습니다.

    셀 수도 없었습니다.

    나도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습니다.

    뒤에서 한 사람이 불렀습니다.

    “야.”

    돌아보았습니다.

    “다음엔 네가 사.”

    웃음이 나왔습니다.

    “알았어.”

    그 사람이 손을 한번 들고 다시 걸어갔습니다.

    다음이 언제인지는 묻지 않았습니다.

  • 왜 하나둘 연락이 끊어질까?

    왜 하나둘 연락이 끊어질까?

    이름은 그대로 남아 있는데

    아침에 휴대전화를 켭니다.

    밤사이 문자 몇 개가 들어와 있습니다.
    대출 안내, 보험 광고, 쇼핑몰 할인 안내입니다.
    어디에서 번호를 알았는지 모를 홍보 문자도 하나 끼어 있습니다.

    읽을 것도 없이 하나씩 지웁니다.

    마지막 광고 문자까지 지우고 나니 새로 온 문자는 없습니다.

    화면을 끄려다가 잠시 멈춥니다.

    예전에는 아침에 휴대전화를 열면 답할 것이 있었습니다.
    늦은 시간에 들어온 메시지가 남아 있기도 했고, 어제 미처 끝내지 못한 이야기가 아침까지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오늘 몇 시에 볼 것인지, 어제 이야기한 일은 어떻게 되었는지, 점심은 어디에서 먹을 것인지 묻는 정도였습니다.

    그런 몇 마디가 하루의 시작에 사람을 데려다 놓았습니다.

    요즘은 그런 일이 드뭅니다.

    전화가 고장 난 것도 아닙니다.
    연락처가 사라진 것도 아닙니다.

    연락처를 열어 손가락으로 화면을 밀어봅니다.

    익숙한 이름들이 그대로 있습니다.

    한때 거의 매일 얼굴을 보던 사람도 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주고받던 사람도 있습니다.
    점심때가 되면 별다른 약속 없이 함께 식당으로 향하던 사람도 있습니다.

    이름은 그대로인데 최근 통화목록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이름에서 손가락이 멈춥니다.

    마지막으로 통화한 것이 언제였는지 금방 떠오르지 않습니다.

    두 달 전인지, 반년 전인지 기억도 흐립니다.

    이상합니다.

    서로 다툰 적도 없습니다.
    서운한 말을 주고받고 돌아선 것도 아닙니다.
    다시는 보지 말자고 한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런데 연락은 끊겨 있습니다.

    한 사람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생각해 보니 하나둘 그렇게 되었습니다.

    어제까지 가까웠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정확히 짚기도 어렵습니다.

    마지막 연락은 왜 기억나지 않을까

    연락이 끊기는 순간은 좀처럼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마지막이라는 것을 모르고 마지막 전화를 하기 때문입니다.

    “다음에 한번 보자.”

    “그래. 연락할게.”

    그렇게 전화를 끊습니다.

    정말 다시 연락할 생각이었습니다.

    상대도 다음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한 말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고 몇 주가 지나갑니다.

    그동안 특별한 일은 없습니다.

    누가 누구를 싫어하게 된 것도 아닙니다.

    그저 다음 전화가 없었을 뿐입니다.

    전화 한 통이 오지 않은 하루는 별일 없는 하루입니다.

    이틀이 지나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주가 지나면 다른 일들이 그 자리를 채웁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이름 하나를 보고서야 알게 됩니다.

    아, 이 사람하고 참 오래 통화하지 않았구나.

    며칠 뒤 지인 몇 사람과 밥을 먹는 자리에서 오래전 함께 지내던 사람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분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별생각 없이 들은 질문인데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잘 지내겠지.”

    그렇게 말하고 나서 숟가락을 듭니다.

    그런데 마음 한쪽에 무엇인가 걸립니다.

    잘 지내는지 사실은 모릅니다.

    어디에 사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전화번호도 있습니다.
    얼굴도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그런데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는 모릅니다.

    예전에는 묻지 않아도 알던 사람이었습니다.

    점심을 먹으며 어제 있었던 일을 들었고, 며칠 자리를 비우면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 사람의 하루가 내 하루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이제는 누군가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어야 그 사람과 멀어진 시간을 알아차립니다.

    집에 돌아와 다시 이름을 찾아봅니다.

    전화를 한번 해볼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손가락이 쉽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부터 생각합니다.

    특별한 용건도 없습니다.
    부탁할 일도 없습니다.
    전할 소식도 마땅히 없습니다.

    전에는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습니다.

    전화할 일이 먼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사람에게 연락하려면 사람 자체를 찾아야 합니다.

    “그냥 생각나서 전화했어.”

    말로 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 한마디가 낯설게 느껴집니다.

    괜히 바쁜 사람을 붙잡는 것은 아닌지 생각합니다.

    갑자기 전화하면 무슨 일이 있는 줄 알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결국 화면을 닫습니다.

    나중에 하지 뭐.

    그 나중이 또 지나갑니다.

    내게도 이런 일이 있었다면, 연락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상대의 마음을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게 누구도 관계를 끝내겠다고 말하지 않았는데 연락은 멈춰 있습니다.

    사람보다 먼저 사라진 것

    예전에는 전화 한 통을 거는 데 이렇게 많은 생각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연락할 이유가 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어볼 것이 있었습니다.
    전해줄 것이 있었습니다.
    시간을 맞춰야 했고, 함께 확인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거 어떻게 됐어?”

    전화는 그런 말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용건은 몇 분이면 끝났습니다.

    그런데 전화를 바로 끊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때?”

    그다음부터는 일이 아닌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점심은 먹었는지 묻고,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별것 아닌 일을 가지고 웃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전화할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같은 곳으로 가면 만났습니다.

    복도에서 마주쳤습니다.

    점심시간이 되면 누군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몇 사람이 자연스럽게 따라나섰습니다.

    커피 한잔하자는 말도 약속이라기보다 하루의 일부였습니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매번 약속을 잡으며 살았던 것이 아닙니다.

    하루가 사람을 만나게 해주었습니다.

    그 안에 있을 때는 이것을 잘 몰랐습니다.

    사람이 주변에 있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오늘 못 본 사람은 내일 보면 되었습니다.

    못다 한 이야기는 다음에 이어가면 되었습니다.

    관계를 유지해야겠다고 마음먹지 않아도 관계가 이어졌습니다.

    그러다가 하루의 모양이 달라집니다.

    아침에 향하는 곳이 달라지고 시간을 쓰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함께 처리하던 일이 없어집니다.

    어제처럼 물어볼 일도 없습니다.

    그때 사람보다 먼저 사라지는 것이 있습니다.

    서로를 찾게 만들던 이유입니다.

    전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생기던 이유였습니다.

    그 이유가 사라지면 전화가 줄어듭니다.

    전화가 줄면 서로의 하루를 알 기회도 줄어듭니다.

    예전에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던 것을 이제는 물어야 알 수 있습니다.

    어디에 다녀왔는지 모릅니다.

    요즘 무엇에 시간을 쓰는지도 모릅니다.

    최근에 무엇 때문에 웃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처음에는 대화가 줄고, 그다음에는 서로에게 전할 이야기가 줄어듭니다.

    오랜만에 만났을 때 “요즘 어때?”라는 질문부터 해야 하는 사이가 됩니다.

    그 질문 뒤에는 서로 모르는 시간이 놓여 있습니다.

    연락은 어느 날 갑자기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가늘어집니다.

    매일 하던 연락이 일주일에 한 번이 됩니다.

    일주일에 한 번 하던 연락이 가끔 생각날 때 하는 연락이 됩니다.

    그러다 생각은 났는데 전화하지 않는 날이 생깁니다.

    그날들이 쌓입니다.

    어느 순간 연락처에는 여전히 가까운 사람처럼 저장되어 있는데 서로의 오늘은 알지 못하는 사이가 되어 있습니다.

    그 변화가 서운한 것은 사람 하나가 멀어졌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 사람과 함께 있었던 내 시간도 멀어진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이름에는 그 사람만 들어 있지 않습니다.

    함께 다니던 길이 있고, 자주 앉던 자리가 있고, 그때의 내 생활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래 연락하지 않은 이름을 보면 사람보다 먼저 지나간 시절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때의 가까움까지 거짓은 아니다

    연락이 뜸해지면 마음은 이유를 찾기 시작합니다.

    나한테 연락할 필요가 없어졌나.

    그동안 일이 있어서 나를 찾았던 것인가.

    내가 생각했던 만큼 가까운 사람이 아니었던 것인가.

    이 질문은 전화 한 통이 오지 않는 것보다 무겁습니다.

    지금의 침묵을 가지고 지나간 시간을 다시 판단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때 함께 웃었던 일도 달리 보입니다.

    함께 먹었던 밥도, 오래 나누었던 이야기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혹시 내가 관계를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필요할 때만 찾았던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하면 설명은 간단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 줄로 정리하기에는 함께 지나온 시간이 너무 많습니다.

    일 때문에 처음 만났습니다.

    같은 장소에 있었기 때문에 가까워졌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였던 것은 아닙니다.

    며칠 보이지 않던 사람에게 먼저 안부를 물었습니다.

    기운이 없어 보이는 날에는 평소와 다른 얼굴을 알아보았습니다.

    좋은 일이 생기면 자기 일처럼 반겨주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짧은 길에서 집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할 일이 있어서 걸었던 전화가 어느 날부터 안부를 묻는 전화가 되었습니다.

    함께 일했기 때문에 알게 된 사람과 일이 아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어떤 날에는 일이 끝났는데도 자리를 바로 뜨지 않았습니다.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한참 이야기를 더했습니다.

    그 시간에 누구도 업무를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저 사람이 사람과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 시간까지 지금의 침묵으로 다시 판단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때는 그때대로 가까웠습니다.

    그날의 웃음은 실제로 웃었던 것입니다.

    걱정해 준 마음도 그때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지금 연락이 없다는 사실이 과거로 돌아가 그것들을 없애지는 못합니다.

    다만 서로의 하루가 달라졌습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사람은 가까웠던 관계가 계속 같은 모습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자주 만나던 사람과는 계속 자주 만나고 싶습니다.

    나를 자주 찾던 사람이 계속 나를 찾아주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사람보다 먼저 하루가 움직입니다.

    어제까지 하루 한가운데 있던 사람이 어느 날부터 하루의 바깥에 놓입니다.

    싫어진 것도 아닌데 그렇습니다.

    잊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 됩니다.

    지금의 거리만으로 지나간 시간의 의미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모든 시절을 같은 사람들과 살아가지 않습니다.

    어떤 시절에는 매일 보던 사람이 있었고, 또 다른 시절에는 다른 사람들이 곁에 있었습니다.

    그 각각의 시간이 모여 한 사람의 삶이 되었습니다.

    나도 연락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하루가 조용해진 뒤에는 전화 한 통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집니다.

    전에는 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 귀찮을 때도 있었습니다.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통화를 끝내자마자 다른 전화가 오기도 했습니다.

    메시지에 답하다 보면 잠시 휴대전화를 꺼놓고 싶은 날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조용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조용해지고 나면 사람 마음은 달라집니다.

    전화벨이 울리면 화면부터 바라봅니다.

    아는 이름이면 반갑습니다.

    별것 아닌 이야기인데도 금방 끊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 별일 없지?”

    그 한마디를 듣는 것이 좋습니다.

    통화를 마치고 나면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보다 방 안이 덜 조용하게 느껴집니다.

    누군가 내 이름을 떠올렸다는 사실이 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연락이 줄어드는 일은 단순히 통화 횟수가 줄어드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따라옵니다.

    나는 이제 그 사람의 하루에서 없어졌나.

    이 질문 앞에 오래 서 있으면 서운해집니다.

    그런데 연락처를 조금 더 내려보다 보면 다른 이름들이 보입니다.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몇 사람의 얼굴이 바로 떠오릅니다.

    싫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만나면 무척 반가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나도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지난봄에 한번 전화해야지 생각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길을 걷다가 갑자기 떠올랐던 사람도 있습니다.

    밥 한번 먹자고 해놓고 날짜를 잡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내게 연락이 끊긴 사람일까요.

    아니면 내가 그들에게 연락이 끊긴 사람일까요.

    대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싫어서 연락하지 않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잊어서도 아닙니다.

    오늘 할 일이 있었고 저녁이 왔습니다.

    내일 해야지 했는데 다음 날에는 또 다른 일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몇 주가 되었습니다.

    생각은 여러 번 했는데 전화는 한 번도 하지 않은 사람이 생겼습니다.

    한번은 휴대전화에 이름까지 띄워놓았습니다.

    전화 버튼만 누르면 되었습니다.

    그때 다른 일이 하나 생겼습니다.

    휴대전화를 내려놓았습니다.

    그날 저녁에는 그 사람에게 전화하려 했다는 사실조차 잊었습니다.

    며칠 뒤 다시 생각났습니다.

    이번에는 시간이 늦었습니다.

    다음 날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다음 날은 그냥 지나갔습니다.

    이런 사소한 날들이 사람 사이에 쌓입니다.

    그제야 조금 이상해집니다.

    나는 연락하지 않으면서 상대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사람을 잊지 않았으면서 그 사람은 나를 잊은 것은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연락이 없다는 사실만 놓고 보면 상대가 멀어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내 쪽에서 바라보니 다른 모습이 보입니다.

    마음에 남아 있으면서도 연락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보고 싶으면서도 약속을 잡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가운 사람을 오랫동안 만나지 않고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잘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사람의 마음과 생활이 언제나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휴대전화 속 이름들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한쪽에서만 보던 관계가 달라 보입니다.

    누군가 나를 찾지 않은 시간과 내가 누군가를 찾지 않은 시간이 함께 놓입니다.

    그래도 섭섭한 마음은 남습니다.

    그것까지 억지로 없앨 필요는 없습니다.

    오랫동안 가까웠던 사람에게 전화 한 통 오지 않으면 허전합니다.

    다만 그 허전함만으로 상대의 마음을 다 알아버린 것처럼 말하기는 어려워집니다.

    나에게도 생각하면서 연락하지 않은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유 없이 떠오르는 사람

    저녁이 되어 다시 휴대전화를 봅니다.

    광고 문자가 하나 더 들어와 있습니다.

    아침처럼 지우려다가 잠깐 웃음이 납니다.

    기다리지 않은 문자는 참 부지런히 찾아옵니다.

    광고 문자를 지우고 연락처를 다시 엽니다.

    아침에 보았던 이름들이 그대로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이름에서 손이 멈춥니다.

    이번에는 마지막으로 언제 통화했는지 계산하지 않습니다.

    누가 먼저 연락했는지도 따져보지 않습니다.

    그 사람과 함께 밥을 먹던 어느 날이 생각납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웃었던 얼굴은 떠오릅니다.

    또 다른 이름을 봅니다.

    그 사람과는 오래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조금 더 내려가다가 또 한 사람의 이름에서 멈춥니다.

    이 사람에게는 부탁할 일이 없습니다.

    전해줄 소식도 없습니다.

    꼭 만나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런데 목소리가 한번 듣고 싶습니다.

    손가락을 이름 위에 올려놓습니다.

    전화를 걸까 생각합니다.

    잠시 그대로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전화할 이유부터 찾았을 것입니다.

    지금은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한 사람이 생각났습니다.

    함께 일하던 자리는 없어졌습니다.

    매일 마주치던 시간도 없습니다.

    그 사람에게 물어볼 일도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남았습니다.

    연락이 뜸해지고 나서야 이런 차이가 보입니다.

    우리를 만나게 했던 이유가 사라진 뒤에도 마음에 남아 있는 이름이 있습니다.

    반대로 어느 시절에는 무척 가까웠지만 이제는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 이름도 있습니다.

    그 어느 쪽을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살아가며 여러 사람과 한 시절을 나눕니다.

    모두가 끝까지 같은 거리에 남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동안 내 하루의 중심에 있다가 멀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오래 보지 않아도 이상하게 가까이 남습니다.

    지금의 거리만으로 지나간 시간의 의미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은 그때 내 곁에 있었습니다.

    나도 그 사람 곁에 있었습니다.

    그 사실은 최근 통화목록에서 이름이 사라졌다고 없어지지 않습니다.

    휴대전화 화면을 닫습니다.

    방 안은 다시 조용합니다.

    아침과 같은 방이고 같은 휴대전화입니다.

    그런데 아침과는 조금 다릅니다.

    아침에는 연락이 없는 사람들을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내가 연락하지 않은 사람도 생각합니다.

    오래 연락하지 않았는데도 여전히 반가운 얼굴도 떠오릅니다.

    그리고 아무런 이유 없이 목소리가 궁금한 사람도 한 명 떠올랐습니다.

    전화를 걸지, 오늘은 그냥 둘지 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선택보다 먼저 마음에 남는 것이 있습니다.

    연락이 끊겼다고 해서 함께했던 시간까지 끊어진 것은 아닙니다.

    한동안 서로 찾지 않았다고 해서 그때 나누었던 마음까지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전화번호는 그대로입니다.

    이름도 그대로입니다.

    달라진 것은 서로의 하루입니다.

    그 달라진 하루 사이에서 멀어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는 아무 용건도 없는데 문득 생각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지금 무엇을 부탁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확인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아침에는 스팸 문자 몇 개를 지우고 텅 빈 화면을 보았습니다.

    저녁에는 같은 화면에서 한 사람의 이름을 오래 바라봅니다.

    아무것도 도착하지 않았는데 한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연락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마음에서는 안부 하나가 먼저 건너갔습니다.

  • 이제는 왜 만남이 예전 같지 않을까

    오랜만에 만났는데 왜 조금 허전했을까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는 날이 있습니다.

    며칠 전부터 날짜를 맞추고 장소를 정했습니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먼저 도착해 자리를 잡습니다. 문이 열릴 때마다 무심코 고개가 그쪽으로 향합니다.

    잠시 뒤 익숙한 얼굴이 들어옵니다. 멀리서도 금방 알아봅니다. 걸음걸이도 낯설지 않고, 눈이 마주치자 손을 드는 모습도 기억 속에 남아 있던 그대로입니다.

    “오랜만이다.”

    마주 앉자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어떻게 지냈는지 묻고 함께 알던 사람들의 소식을 나눕니다. 오래전 있었던 일을 한 사람이 꺼내자 다른 사람이 그다음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잊고 있던 이름 하나가 나오고, 그 이름을 따라 장소가 나오고, 그곳에서 있었던 일이 줄지어 따라 나옵니다.

    “그걸 아직도 기억하냐?”

    웃음이 터지고 시간은 금세 흘러갑니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다음에 또 보자고 합니다. 늘 하던 인사입니다.

    분명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다투지도 않았고 불편한 말이 오간 것도 아닙니다. 대화가 끊겨 어색하게 앉아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혼자 돌아오는 길에 작은 허전함이 남습니다. 반가웠고 즐거웠는데 예전 같지는 않았습니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요.

    예전에는 만나기만 하면 할 이야기가 끝이 없었습니다. 그날 있었던 일도 이야기했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도 이야기했습니다. 별것 아닌 일을 두고도 한참을 웃었습니다.

    오늘도 이야기는 많았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돌아보니 오늘의 이야기보다 지난 이야기가 더 많았습니다.

    함께 있는 동안 우리는 서로를 만난 것일까요, 아니면 함께 지나온 시간을 만나고 온 것일까요.

    우리는 언제부터 지난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 되었을까

    오래 알고 지낸 사람과 마주 앉으면 꺼낼 이야기가 많습니다. 처음 만났던 때를 알고 있고, 함께 무언가를 시작했던 때도 기억합니다. 일이 잘되던 시절도 보았고 뜻대로 풀리지 않던 때도 곁에서 보았습니다.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때 말이야.”

    그 한마디면 이야기가 절로 열립니다.

    오래 만난 남자들 사이에서는 군대 이야기가 나오는 자리도 있습니다. 제대한 지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어느 부대에서 지냈는지, 그때 얼마나 고생했는지 이야기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갑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지난번에도 했고 그전에도 했습니다. 듣는 사람도 이미 결말을 압니다. 그런데도 또 웃습니다.

    함께 알고 있는 과거에는 이런 편안함이 있습니다. 새로 설명할 것이 많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앞부분을 꺼내면 다른 사람이 나머지를 채웁니다. 같은 기억 속에 두 사람이 함께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 기억에만 남아 있던 시간을 함께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 대화의 방향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젊은 날에는 아직 오지 않은 일을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무엇을 시작할지, 어디에 가볼지, 다음에는 무엇을 해볼지 이야기했습니다. 앞에 놓인 시간이 대화 속으로 자주 들어왔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뒤를 돌아볼 이야기가 많아집니다. 함께 살아온 시간이 길어졌으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다만 두 시간을 이야기하고 헤어진 뒤 대부분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만 남았다면 한 가지가 궁금해집니다.

    나는 오늘 그 사람의 무엇을 새로 알게 되었을까요.

    오래 안다는 말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누군가를 오래 안다고 말할 때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는 것일까요.

    좋아하는 음식도 알고 말버릇도 압니다. 무엇에 쉽게 웃는지 알고, 어떤 일을 불편해하는지도 압니다. 중요한 순간에 어떤 선택을 했는지도 기억합니다. 그 사람을 설명해 보라고 하면 꽤 많은 말을 막힘없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설명은 언제 만들어진 것일까요. 십 년 전 그 사람을 보며 알게 된 것도 있고, 이십 년 전의 모습이 아직 내 기억 속에 멈추어 남아 있는 것도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오래 남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와 함께 소리 없이 달라지는 것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좋아하던 것에 관심이 없어지기도 합니다. 별생각 없이 지나쳤던 일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기도 합니다. 시간을 쓰는 방법이 달라지고 무엇을 먼저 생각하는지 그 순서도 바뀝니다. 그 변화는 대개 요란하지 않습니다. 하루를 살고 또 하루를 살아내는 동안 조금씩 생깁니다.

    한동안 만나지 않았다면 그 사람에게는 내가 보지 못한 시간이 있습니다. 무엇을 새로 시작했는지, 무엇을 그만두었는지 모릅니다. 무엇을 마음에 품게 되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다시 만나는 순간 우리는 가장 익숙한 사람부터 찾습니다. 기억 속의 그 사람입니다.

    “넌 원래 그랬잖아.”

    많이 보았기에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동시에 오래전에 알게 된 모습을 오늘까지 억지로 이어 붙이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그 사람은 내가 보지 않는 동안에도 자기 삶을 살았습니다. 나 역시 그랬습니다. 오래 알고 지냈다는 것은 그 사람의 과거를 많이 안다는 뜻이지, 오늘의 그 사람까지 다 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차이를 놓치면 익숙함이 오히려 지금 눈앞의 사람을 가리는 벽이 됩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오히려 묻지 않는 것이 있다

    처음 만난 사람과 마주 앉으면 자연스럽게 질문합니다. 어떤 일을 하는지, 쉬는 날에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요즘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묻습니다. 모르기 때문에 묻고, 상대가 말을 하면 귀 기울여 듣습니다. 아직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내 안에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사람 앞에서는 사정이 다릅니다. 질문하기 전에 짐작하는 일이 먼저 앞섭니다.

    “넌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하잖아.”

    “너라면 그렇게 했겠지.”

    그 짐작이 맞을 때도 많습니다. 오랜 관계가 주는 편안함은 이런 데서 생깁니다. 하지만 이미 안다고 생각하는 만큼 묻지 않게 되는 것도 늘어납니다. 상대가 말을 시작했는데 다음 이야기를 미리 예상하기도 하고, 끝까지 듣기도 전에 내가 알고 있던 예전 모습과 이어 붙이기도 합니다. 그 순간 우리는 방금 그가 한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예전에 알던 사람을 혼자 듣고 있는 셈입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

    오래된 사이에서도 흔히 건네는 인사입니다. 그러나 대개는 “그냥 그렇지 뭐”, “나도 똑같아”라는 대답으로 넘어가고 곧바로 옛날이야기로 옮겨갑니다.

    하지만 어느 날 그 질문의 무게를 조금 바꾸어 봅니다.

    “그래도 요즘 주로 뭐 하면서 시간 보내는데?”

    한 번 더 가만히 묻고 대답을 기다립니다.

    그러면 뜻밖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동안 배우고 있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요즘 아침마다 하는 일이 생겼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것을 재미있게 들여다보고 있다고 합니다.

    그제야 조금 낯선 사람이 눈앞에 나타납니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사람입니다.

    가까움이 깊어질수록 물을 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 안다고 여겨 묻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 모르고 지나간 시간이 길어졌을 뿐입니다.

    그 사람만 달라진 것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을 보며 ‘참 많이 달라졌네’ 하고 속으로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말하는 방식이 전과 다른 것 같고 관심사도 달라진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잘 통하던 이야기에 별 반응이 없기도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은연중에 상대가 변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움직인 사람은 그 사람만이 아닙니다. 나 역시 내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예전에는 재미있던 이야기가 지금은 별것 아닐 수 있습니다. 한때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작게 보이기도 하고, 반대로 그때는 지나쳤던 사소한 이야기에 오래 귀를 기울이게 되기도 합니다. 서로 같은 자리에 서 있다가 한 사람만 멀리 걸어간 것이 아닙니다. 두 사람 모두 각자의 방향으로 수많은 하루를 걸어왔습니다.

    그런데 다시 만났을 때 우리는 지금의 만남을 기억 속의 만남과 비교합니다.

    “예전에는 말하지 않아도 다 통했는데.”

    “예전에는 만나기만 해도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과거를 떠올릴 때 모든 날을 똑같이 기억하지는 않습니다. 유난히 많이 웃었던 날, 특별히 즐거웠던 장면이 먼저 떠오릅니다. 별말 없이 헤어진 평범한 날들은 기억 속에서 흐려집니다. 그렇게 추려진 선명한 과거와 오늘의 담담한 한 끼를 나란히 놓으면, 오늘이 유독 심심하고 허전해 보이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의 두 사람은 이제 그 자리에 없습니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내가 되었듯, 그 사람도 자기 시간을 통과해 지금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은 반드시 관계가 멀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두 사람이 흘러온 세월을 이제야 서로의 얼굴에서 마주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함께한 시간이 오늘을 대신할 수는 없다

    오래된 관계에는 함께한 시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함께하지 않은 시간도 분명히 있습니다.

    십 년을 알고 지낸 사람과 최근 삼 년 동안 몇 번 만나지 못했다면, 두 사람에게는 십 년의 인연과 함께 서로 모르는 삼 년의 공백이 놓여 있습니다.

    그동안 각자 다른 아침을 맞았습니다. 다른 사람을 만났고 다른 일로 속을 끓였습니다. 혼자 감당해야 했던 일이 있었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생각도 있었을 것입니다. 나는 그 시간의 대부분을 보지 못했고, 그 사람 역시 내 시간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만나는 순간에는 그 빈 시간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얼굴을 알아보고 목소리를 듣는 순간 예전 자리로 금세 돌아간 듯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대화는 마지막으로 자주 만났던 시절에서 쉽게 시작하지만, 눈앞에는 그 뒤의 세월까지 살아낸 사람이 앉아 있습니다. 그 간격은 옛날이야기만으로는 채워지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통했던 말에 설명이 필요해지기도 하고, 한때 함께 좋아했던 것에 상대가 더 이상 관심을 보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때의 낯섦은 관계에 이상이 생겼다는 표시라기보다, 서로 보지 못했던 시간이 있었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함께한 시간이 두 사람의 지난 시절을 이어주었다면, 함께하지 않은 시간은 서로에게 새로 물어보아야 할 것을 남겨놓았습니다. 그렇게 보면 오래된 사람 앞에서 느끼는 낯섦은 벽이 아닙니다. 내가 아직 모르는 모습이 이 사람 안에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만남에는 오늘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다시 처음의 식탁으로 돌아가 봅니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이 지난 이야기를 하며 웃고 있습니다. 그 시간을 밀어낼 이유는 없습니다. 함께 기억하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만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오래된 관계만이 주는 편안함도 분명합니다.

    그러다 지난 이야기가 잠시 숨을 고를 때, 가만히 물어봅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떻게 지내?”

    형식적인 인사로 흘려보내지 않고 진심으로 대답을 기다립니다.

    최근에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새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무엇인지, 전과 달라진 하루가 어떤 모습인지 조금씩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동안 듣지 못했던 낯선 이야기들이 식탁 위로 올라옵니다. 상대도 나에게 묻고, 나 역시 지나온 시간 속에서 달라진 내 모습을 꺼내놓습니다.

    이제 식탁에는 세 가지 시간이 함께 놓입니다.

    둘이 함께 지나온 시간, 서로 보지 못했던 시간, 그리고 지금 마주 앉아 보내고 있는 시간입니다.

    그중 마지막 것은 아직 지나간 추억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 생겨나고 있는 현재입니다. 오늘 처음 들은 이야기는 다음번에 만났을 때 둘이 함께 아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오래된 추억도 처음부터 추억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날의 소박한 일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지나간 하루가 세월이 흐른 뒤 둘만 아는 소중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오래된 관계의 힘은 과거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오늘 마주 앉은 자리에서도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만난다는 것은 무엇일까

    만남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에는 아쉬움이 들어 있습니다. 그때처럼 막힘없이 이야기하고 싶고, 아무 설명 없이도 통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다시 만나는 일은 시간을 되돌리는 일이 아닙니다. 지금의 내가, 세월을 지나온 지금의 그 사람 앞에 앉는 일입니다.

    두 사람에게는 함께한 과거가 있고, 서로 보지 못한 시간이 있으며, 오늘 새로 알게 된 모습이 있습니다. 이 셋이 함께 어우러질 때 오래된 만남은 단순히 옛날을 확인하고 돌아오는 자리에 머물지 않습니다.

    예전 같지 않기 때문에 처음 듣는 이야기가 생깁니다. 그때는 미처 몰랐던 깊은 모습을 지금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오래된 사이의 깊이는 다 알고 있어서 더 물을 것이 없는 데서 오지 않습니다. 오래 알고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로에게 다시 물어볼 오늘이 남아 있는 데서 옵니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이번에도 “다음에 또 보자”는 인사를 건넵니다. 늘 하던 말이지만 그 울림은 조금 다릅니다. 예전의 우리로 돌아가자는 말이 아닙니다. 오늘 새로 마주한 서로를 다음에 한 번 더 만나자는 뜻입니다.

    다시 만난다는 것은 옛날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라, 달라진 두 사람이 오늘의 서로를 다시 알아가는 일입니다.

  • 키오스크가 어려워지면 내가 작아진 걸까

    키오스크가 어려워지면 내가 작아진 걸까

    키오스크 앞에서 세상이 빨라졌다고 느꼈다

    식당에 들어가 자리에 앉았습니다.

    메뉴판을 기다렸는데 가져다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테이블 한쪽에 주문용 키오스크 화면이 놓여 있습니다.

    화면을 들여다보니 음식 사진과 이름이 줄지어 있습니다. 먹고 싶은 것을 눌렀더니 이번에는 수량을 고르라고 합니다.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니 추가할 것을 고르라고 하고, 주문한 내용을 다시 확인하라고 합니다.

    한참 들여다보다가 직원을 부릅니다.

    “여기, 주문 좀 할게요.”

    직원이 테이블로 와서 화면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주문하시면 됩니다.”

    그 말을 듣고 다시 화면을 봅니다. 조금 전보다 화면이 더 낯설게 느껴집니다.

    모르는 것을 물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마음 한쪽에서 아주 작은 머뭇거림이 생깁니다.

    예전에는 식당에 들어가 메뉴판을 보고 음식 이름을 말하면 됐습니다.

    “이거 하나 주세요.”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지금은 밥 한 끼를 주문하는 데도 내가 먼저 새로운 방식을 알아야 합니다.

    옆자리에서는 주문이 벌써 끝났습니다.

    화면을 몇 번 누르더니 다시 이야기를 나눕니다. 나는 아직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천천히 보면 될 일입니다. 누가 재촉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먼저 서두릅니다.

    ‘이걸 또 물어봐야 하나.’

    처음에는 주문 방식이 불편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왜 전부 이렇게 해놓았지.”

    그런데 이런 일이 몇 번 이어지면 말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내가 이런 것도 못하나.”

    불편한 것은 주문 방식이었는데 어느새 평가받는 것은 내가 됩니다. 세상이 달라진 것과 내가 작아진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인데, 마음속에서는 두 이야기가 어느새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세상이 참 빨라졌네.”

    그 말이 어느 순간,

    “내가 느려졌나.”

    로 바뀝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부터 사람은 달라진 세상보다 달라진 자신을 더 오래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예전의 나와 자꾸 겨루고 있었다

    새로운 것을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는 일 자체가 부끄러운 것은 아닙니다. 나도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았던 것은 아닙니다.

    처음 일을 배울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물었습니다. 실수했고, 다시 했고, 어제 배운 것을 오늘 또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모른다는 사실이 나를 작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모르면 배우면 됐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리가 달라졌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묻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내게 묻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합니까?”

    “이건 어디부터 손대야 합니까?”

    오랫동안 해온 일이니 대답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 시간이 길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묻는 사람이 되었을 때 마음이 조금 이상합니다.

    식당의 주문 화면을 물어봅니다. 휴대전화 기능을 물어봅니다. 처음 보는 프로그램을 물어봅니다. 설명을 한 번 듣고도 기억이 나지 않아 다시 묻기도 합니다.

    상대는 아무렇지 않게 알려줍니다.

    그런데 정작 내 마음은 아무렇지 못합니다.

    “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그 말은 새로운 기계 앞에서만 나오지 않습니다. 열쇠를 둔 곳이 잠깐 생각나지 않을 때도 나옵니다. 아는 사람의 이름이 바로 떠오르지 않을 때도 그렇습니다.

    젊었을 때도 열쇠를 찾으러 다녔고 사람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머뭇거렸습니다. 그때는 그냥 실수였습니다. 지금은 작은 실수 하나가 나를 의심하게 합니다.

    내 앞에 비교할 사람이 한 명 서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의 나입니다.

    기억 속의 나는 빠릅니다. 밤늦게까지 일을 해도 다음 날 다시 움직입니다. 처음 해보는 일에도 겁 없이 손을 댑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도 지금보다 쉬웠던 것 같습니다.

    현재의 나는 그 사람과 자꾸 겨룹니다.

    그런데 이 경기는 처음부터 공평하지 않습니다.

    과거의 나는 기억 속에서 좋은 순간을 중심으로 남아 있습니다. 지금의 나는 오늘 아침의 실수까지 모두 들고 경기장에 나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을 세워놓으면 지금의 내가 자꾸 작아 보입니다.

    줄어든 것만 세고 있었다

    실제로 줄어든 것은 있습니다. 그 사실을 모른 척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전처럼 오래 일하면 다음 날 몸이 먼저 압니다. 계단을 오를 때도 전과 다릅니다. 새로운 것을 익힐 때 한 번 더 들여다봐야 할 때도 있습니다.

    선택의 폭도 같지 않습니다. 젊었을 때는 건강하고 마음만 먹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일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의지만으로 결정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시간도 계산해야 하고, 몸도 살펴야 하며, 새로 익히는 데 드는 힘도 생각해야 합니다. 하지 못하게 된 일이 분명히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다음 계산이 이상합니다.

    줄어든 것은 아주 꼼꼼하게 셉니다. 속도가 줄었고, 체력이 줄었고, 기회가 줄었습니다. 새로운 것에 익숙해지는 속도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 늘어난 것은 같은 정성으로 세지 않습니다.

    몇 번이나 잘못 선택했다가 다시 길을 잡았는지 세지 않습니다. 일이 틀어졌을 때 수습해본 횟수도 세지 않습니다. 사람을 겪으며 얻은 눈도 숫자로 적지 않습니다. 서둘렀다가 일을 그르친 뒤에야 알게 된 것도 장부에는 없습니다.

    줄어든 것은 금방 보입니다. 쌓인 것은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장부의 한쪽 면만 펼쳐놓고 결산하고 있었습니다. 줄어든 것에는 숫자를 붙이고, 쌓인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렇게 계산하고 나면 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습니다.

    나는 예전보다 못한 사람이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나 전체를 계산한 결과가 아닙니다.

    한쪽만 계산한 장부였습니다.

    지나간 시간도 내 것이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이 말에는 이상한 힘이 있습니다. 지금의 나보다 예전의 나를 진짜 나에 가깝게 만듭니다. 잘 걷던 내가 진짜 나이고, 지금의 나는 그보다 못한 나가 됩니다. 빠르게 판단하던 내가 원래의 나이고, 한 번 더 생각해야 하는 지금의 나는 변해버린 나가 됩니다.

    그러다 보면 과거의 나는 점점 선명해지고 현재의 나는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낯선 사람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여기까지 살아온 모습입니다. 예전의 나를 인정하면서 지금의 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젊었던 시간만 내 것이고 그 뒤의 시간은 내 것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달라진 것을 인정하는 것은 스스로를 포기하는 일이 아닙니다. 지나간 시간을 지나갔다고 인정하는 일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할수록 사람은 과거로 돌아가 자신을 증명하려 합니다. 예전만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지고, 아직 뒤처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집니다. 때로는 지금의 몸과 형편보다 과한 일을 붙잡기도 합니다.

    그것은 젊음을 지키는 일이라기보다 지금의 나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몸짓에 가까울 때가 있습니다.

    시간은 사람에게 허락을 구하고 지나가지 않습니다. 내가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지나갑니다. 그런데 마음은 지나간 시간 앞에 오래 서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의 나를 붙잡고 지금의 나에게 계속 같은 모습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예전의 나로 돌아가야만 지금의 내가 괜찮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지나간 시간도 내 것입니다.

    젊었던 나도 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나도 나입니다.

    과거의 나를 붙들고 현재의 나를 밀어내는 동안에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지나간 시간을 인정한다는 것은 그 시절을 포기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 시간을 여기까지 살아낸 사람으로 지금의 나를 바라보는 일입니다.

    오래됐다고 모두 낡은 것은 아니다

    현재의 나를 받아들이고 나면 지나온 시간을 다른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아니라 내가 통과해온 시간이 됩니다.

    오래 일한 사람에게는 무언가 잘못 돌아갈 때 먼저 눈이 가는 곳이 있습니다. 처음 겪는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헤매며 확인하지만, 여러 번 겪은 사람은 먼저 살펴야 할 자리를 압니다.

    그 차이는 책 몇 장을 더 읽었다고 바로 생기지 않습니다. 틀려본 시간, 고쳐본 시간, 서둘렀다가 일을 그르치고 수습해본 시간이 그 안에 들어 있습니다.

    한 번 무너진 일을 다시 세워본 사람은 일이 틀어졌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기보다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하는지를 찾습니다.

    그것은 젊음과 맞바꾼 보상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저 오래 살아보아야 생기는 것이 있다는 뜻입니다.

    “너희는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다.”

    웃으며 할 수 있는 말이지만 그 안에는 시간이 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사실이 들어 있습니다.

    지금 젊은 사람에게는 지금의 속도가 있고, 새로운 도구를 빠르게 다루는 힘이 있습니다. 지금 나에게는 그 시절을 지나 여기까지 와본 시간이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낫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서로 가진 것이 다릅니다.

    다만 오래됐다고 해서 모두 낡은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고집할 것도 아닙니다.

    예전에 통했던 방법이 지금은 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도구도 바뀌고, 일하는 방식도 달라지며, 사람들의 생각도 달라집니다. “내가 해봐서 안다”는 말 하나로 지금을 판단하면 지나온 시간이 오히려 내 눈을 가릴 수 있습니다.

    방법은 내려놓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일이 틀어진 뒤 어디부터 다시 세워야 하는지 아는 침착함까지 버릴 필요는 없습니다.

    도구는 바뀌어도 사람을 겉모습 하나로 쉽게 판단하지 않게 된 태도까지 낡는 것은 아닙니다.

    오래된 시간에서 무엇을 가져오고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가.

    그것을 가릴 수 있을 때 지나간 시간은 오늘에 다시 쓰일 수 있습니다.

    인생의 바퀴는 하나가 아니다

    젊었을 때는 새로 시작할 수 있는 범위가 넓었습니다. 몸이 받쳐주고 시간이 있으면 처음부터 다시 배울 수도 있었습니다. 낯선 곳으로 옮길 수도 있었고, 오래 걸리는 일을 시작할 수도 있었습니다. 실패해도 다시 해볼 시간이 많았기에 할 수 있는 일의 폭은 지금보다 넓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인생길은 오히려 지금보다 단순한 편이었습니다. 배우고, 일을 시작하고, 오랫동안 한 분야에서 살아갑니다. 한번 자리를 잡으면 그 길을 오래 걷는 것이 자연스러웠습니다.

    힘은 넘쳤지만 크게 보면 하나의 큰 바퀴를 오래 돌리는 삶이었습니다.

    지금은 조금 다릅니다.

    예전만큼 크게 움직일 힘은 없을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어려운 일도 많고, 십 년 뒤를 바라보며 새 길을 고르기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내 속도에 맞추어 작은 바퀴를 돌릴 통로 역시 많아졌습니다. 거창한 조직이나 큰 계획 없이도 내가 오래 다뤄온 감각을 전혀 다른 일상과 연결해볼 수 있습니다.

    젊었을 때는 넓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길은 비교적 하나였습니다. 지금은 움직일 수 있는 보폭은 줄었지만 삶을 이어 붙이는 방식은 여러 갈래가 되었습니다.

    체력 때문에 지나쳐야 할 문이 있고,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내려놓아야 할 길도 있습니다. 그 한계까지 함께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한 바퀴가 끝났다고 해서 삶의 모든 바퀴가 멈춘 것은 아닙니다.

    예전처럼 크게 한 번 돌리지 못하더라도 지금의 내 호흡에 맞는 크기로 다시 굴릴 수 있는 바퀴가 있습니다.

    젊었을 때의 질문이 “무엇이 될까”처럼 넓었다면, 지금의 질문은 조금 더 구체적입니다.

    “지금의 나로 무엇을 시작해볼 수 있을까.”

    질문이 좁아졌다고 삶까지 좁아진 것은 아닙니다.

    지금의 형편과 내가 가진 것을 함께 보면서 예전과는 다른 크기의 길을 고를 수 있습니다.

    지나온 시간은 저마다의 결을 남긴다

    같은 나이가 되었다고 모두 같은 자리에 서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 사람은 오래 글과 씨름했고, 한 사람은 평생 손으로 무언가를 매만졌습니다. 누군가는 수많은 사람의 표정을 살피며 살았고, 누군가는 묵묵히 숫자를 맞추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매일 자기 몸을 돌보며 시간을 통과해왔습니다.

    수십 년이 흐른 뒤 마주하는 그 차이는 생각보다 깊습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흘러갔지만, 그 시간 안에서 통과해온 삶의 결은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보고 들었는가.

    무엇을 손에 익혔는가.

    어떤 고비를 묵묵히 버텨냈는가.

    무엇을 끝내 버리지 않았는가.

    그 축적의 시간들이 어느 날 저마다의 선택지가 됩니다.

    누군가보다 앞서가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신만의 시간을 채워온 사람에게는 세월이 흐른 뒤에도 삶을 이어갈 때 꺼내 쓸 수 있는 것이 남습니다.

    오랫동안 책을 읽어온 사람에게는 문장을 헤아리는 눈이 남습니다. 손을 써온 사람에게는 물건을 매만지는 감각이 남고, 사람을 상대해온 사람에게는 말 한마디를 언제 건네고 언제 삼켜야 하는지 아는 호흡이 남습니다.

    실패를 여러 번 지나온 사람에게는 다시 시작할 때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짚어보는 눈이 생기기도 합니다.

    나이는 같아질 수 있어도, 삶이 남긴 결까지 같아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이제 바라볼 것은 지나간 숫자만이 아닙니다.

    내 안에 실제로 무엇이 남아 있는가입니다.

    나는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빈 종이 한 장을 앞에 두고 가만히 적어봅니다.

    내가 오랫동안 해와서 익숙한 것은 무엇인가.

    남들은 어렵다고 하는데 내게는 비교적 수월한 일은 무엇인가.

    실패를 겪어봤기에 남들보다 먼저 짚어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다음에는 반대쪽도 담담히 적어봅니다.

    지금 내 체력으로는 무리인 것은 무엇인가.

    마음은 앞서지만 현실적으로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가진 것만 보면 자신을 과장하기 쉽고, 없는 것만 보면 다시 작아집니다. 지금 내가 실제로 걸어갈 수 있는 길은 그 두 목록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평소에는 너무 익숙해서 능력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는 태도,

    어질러진 상황을 차분하게 순서대로 정리하는 감각,

    망가진 기계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원인을 찾아내는 눈길,

    글이나 문서를 꼼꼼히 살피는 성실함.

    오랜 시간을 거쳐 몸에 밴 사람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처음 마주하는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일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당장 거창한 결론을 낼 필요는 없습니다.

    내 손에 무엇이 들려 있는지를 제대로 알아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면 질문이 달라집니다.

    “내가 이제 와서 무엇을 할 수 있겠나.”

    에서,

    “내가 지나온 시간 속에서 지금 꺼내 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로 옮겨갑니다.

    내가 가진 것은 어디로 갈 것인가

    내 안에 남은 것을 찾았다고 해서 그것을 전부 쓸모나 이익으로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이 흘러갈 자리는 생각보다 다양합니다.

    나 자신의 작은 일상에 다시 쓰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작은 징검다리가 되어줄 수도 있으며, 담담한 글이나 기록으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말을 합니다. 마지막에 물질을 손에 쥐고 갈 수 없다는 뜻이라면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가지고 가는 것과 남겨놓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오래전에 누군가에게 배운 일하는 태도가 여전히 내 손끝에 배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어른이 무심코 건넨 한마디가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내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오늘 건넨 무언가도 다른 사람의 삶 어딘가에 머물 수 있습니다.

    내가 적어둔 몇 줄의 문장이 남을 수도 있고, 정성껏 손봐둔 자리가 다른 사람의 손에서 오래 쓰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일은 내가 자리를 비운 뒤에도 내가 다듬어놓은 방식대로 한동안 굴러갈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이어받아 자기 방식으로 다시 만들어갈 것입니다.

    내 이름은 시간이 흐르면 희미해질 것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살아낸 시간까지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머물다 간 자리에는 때때로 생각보다 오래 남는 것이 있습니다. 거창하거나 영원할 필요도 없습니다.

    내가 건넨 작은 배려 하나가 누군가의 고단한 하루에 쓰일 수도 있고, 내가 오래 익힌 경험 하나가 다른 사람의 시행착오를 조금 덜어줄 수도 있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한 흔적일 수 있습니다.

    사람은 떠날 때 빈손일지 몰라도, 살아 있는 동안 건넨 것까지 모두 빈자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고 보면 식당의 작은 화면 앞에서 처음 떠올랐던 질문도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나는 정말 작아진 것일까.

    아니면 지금까지 나를 재어오던 자가 너무 짧았던 것일까.

  • 하던 일이 사라지면 나는 누구인가

    하던 일이 사라지면 나는 누구인가

    처음 만난 자리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 사람들은 대개 비슷한 순서를 따릅니다.
    이름을 말하고, 무슨 일을 하는지 말합니다.
    어디에서 일하는지 덧붙이기도 합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작은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관리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몇 마디면 설명이 끝납니다.

    상대도 그 말을 들으면 나를 조금 알게 된 것처럼 느낍니다.
    직업을 알면 그 사람이 하루의 많은 시간을 어디에서 보내는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직업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어떤 자리에서는 부모로 불립니다.
    어떤 자리에서는 책임자로 불립니다.
    어떤 자리에서는 선배이고, 다른 자리에서는 누군가에게 일을 배우는 사람입니다.

    한 사람에게 여러 이름이 붙습니다.

    그 이름들은 호칭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어디에 서야 하는지 알려주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해주고, 다른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도 어느 정도 정해줍니다.

    오랫동안 같은 역할을 맡고 살면 그 이름은 더욱 익숙해집니다.

    누군가 나를 그렇게 부릅니다.
    나도 나를 그렇게 소개합니다.

    처음에는 내가 맡은 역할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경계가 흐려집니다.

    나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인가.
    그 일이 나를 설명하는 사람이 된 것인가.

    역할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이 차이를 굳이 묻지 않습니다.

    질문은 역할이 흔들릴 때 모습을 드러냅니다.

    나는 나를 무엇으로 소개해왔는가

    “당신은 누구입니까?”

    이름을 묻는 것이 아니라면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성격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있습니다.

    가장 손쉬운 대답은 역할에서 나옵니다.

    “저는 교사입니다.”
    “저는 사업을 합니다.”
    “저는 두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이상한 대답은 아닙니다.

    역할은 실제로 한 사람의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문제는 그 말이 사람을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느냐입니다.

    교사라는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는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교사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대표라는 말을 들으면 맡은 자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권한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부모라는 말을 들으면 관계는 알 수 있습니다.
    그 관계를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역할의 이름은 사람을 빠르게 설명하지만 깊게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짧은 설명을 오래 사용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만 사용하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을 생각할 때도 같은 말을 사용합니다.

    나는 일을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나는 가족을 돌보는 사람입니다.
    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역할은 자기소개를 넘어 자기 이해의 언어가 됩니다.

    처음에는 “나는 이런 일을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동사가 명사로 바뀝니다.

    하는 일이 나를 부르는 이름이 됩니다.

    역할은 사람 안으로 들어온다

    역할을 명함에 적힌 글자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역할에는 시간이 들어갑니다.

    처음 맡은 일을 능숙하게 해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실수하고, 배우고, 사람과 부딪히고, 다시 판단합니다.

    처음에는 낯설었던 일이 몸에 익습니다.

    무엇을 먼저 봐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어디에서 문제가 생기는지 짐작합니다.
    어떤 말은 해야 하고 어떤 말은 삼켜야 하는지도 배웁니다.

    그렇게 십 년을 살고 이십 년을 살고 삼십 년을 살기도 합니다.

    그 시간이 사람을 그냥 지나가지는 않습니다.

    책임지는 일을 오래 한 사람에게는 책임을 대하는 방식이 생깁니다.
    사람을 많이 만난 사람에게는 사람을 바라보는 자기만의 눈이 생깁니다.
    수없이 선택해온 사람에게는 판단하는 습관이 생깁니다.

    좋은 흔적만 남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일을 자신이 확인해야 안심하는 습관이 생길 수 있습니다.
    자기 판단을 쉽게 내려놓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자신을 몰아붙이는 버릇이 남을 수도 있습니다.

    역할은 사람의 바깥에만 있지 않습니다.

    그 역할을 살아낸 시간이 사람 안으로 들어옵니다.

    어떤 역할이 끝났을 때 “그건 원래 당신이 아니었습니다”라고 간단히 말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 일을 했던 사람이 나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결정했던 사람도 나였습니다.
    실수했던 사람도 나였습니다.
    책임졌던 사람도 나였습니다.

    역할을 떼어내고 나면 아무 영향도 받지 않은 사람이 안쪽에서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역할을 살아온 세월도 이미 내 삶이기 때문입니다.

    역할과 나는 어디에서 갈라지는가

    한 사람이 오랫동안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퇴직하는 날 교사라는 직책은 끝납니다.

    다음 날부터 출근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수십 년 동안 사람을 가르치며 만들어진 모든 것이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 설명하는 것을 들을 때 무엇이 빠졌는지 알아차리는 눈이 남을 수 있습니다.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풀어 말하는 습관도 남을 수 있습니다.

    교사라는 직함은 사라졌습니다.

    교사로 살아온 시간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역할이고 어디서부터가 사람일까요.

    경계를 한 줄로 긋기는 어렵습니다.

    역할이 옷이라면 벗으면 됩니다.

    오랫동안 살아낸 역할은 옷보다 흔적에 가깝습니다.

    사람 안으로 들어와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흔히 듣는 말 하나를 다시 보게 됩니다.

    “직함을 내려놓고 진짜 나를 찾으십시오.”

    직함을 내려놓는다고 그 뒤에서 손대지 않은 ‘진짜 나’가 걸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직함을 가지고 살았던 시간도 내 삶입니다.

    그 시간에 만들어진 판단과 습관과 관계도 남아 있습니다.

    그것을 모두 가짜라고 부르면 내 삶의 상당 부분까지 가짜가 됩니다.

    반대편도 맞지 않습니다.

    삼십 년 동안 대표였다고 해서 대표가 그 사람의 전부일 수는 없습니다.

    대표가 되기 전에도 그 사람은 살았습니다.
    대표라는 자리를 떠난 뒤에도 살아갑니다.

    역할은 나를 만들지만 나를 다 만들지는 않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질문이 어려워집니다.

    역할을 나라고 할 수도 없고, 나와 상관없는 것이라고 밀어낼 수도 없습니다.

    같은 역할을 살아도 같은 사람이 되지 않는다

    같은 직업을 가진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하는 일은 비슷합니다.
    직함도 같습니다.
    책임의 범위도 비슷합니다.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 사람은 문제가 생기면 먼저 사람을 봅니다.
    다른 사람은 일을 먼저 봅니다.

    한 사람은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말을 받아들이는 데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은 충분한 근거를 확인한 뒤에야 생각을 바꿉니다.

    역할의 이름만으로는 이 차이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부모라는 역할도 같습니다.

    같은 부모라는 이름 아래 전혀 다른 삶이 있습니다.

    무엇을 걱정하는지가 다릅니다.
    어디까지 기다리는지도 다릅니다.
    자녀에게 무엇을 남겨주고 싶은지도 다릅니다.

    역할은 같지만 역할을 살아내는 방식은 다릅니다.

    그러면 사람을 바라보는 질문도 달라집니다.

    무슨 일을 했는가만 물어서는 한 사람에게 충분히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그 일을 어떤 사람으로 살아냈는가.

    같은 책임을 맡고도 사람들은 다른 흔적을 남깁니다.

    누군가는 자기에게 주어진 권한보다 책임을 먼저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책임보다 권한을 먼저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자리를 떠난 뒤에도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그 사람의 태도를 기억합니다.
    누군가는 직함만 기억됩니다.

    직함에는 같은 단어가 적혀 있었지만 그 자리를 지나간 사람은 같지 않았습니다.

    이 차이는 명함에 기록되지 않습니다.

    역할이 끝난 뒤에도 남습니다.

    살아온 방식이 나인가

    여기까지 오면 역할보다 그것을 살아낸 방식이 사람에게 더 가까운 것처럼 보입니다.

    “나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입니다.”

    직업보다 깊은 설명처럼 들립니다.

    “나는 사람의 말을 잘 듣는 사람입니다.”

    이것도 그렇습니다.

    직함은 사라져도 이런 태도는 남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방식도 변합니다.

    젊었을 때 모든 일을 빠르게 결정하던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오래 듣는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자기 손으로 해야 마음이 놓이던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법을 배우기도 합니다.

    늘 자신보다 다른 사람의 요구를 먼저 살피던 사람이 어느 시기부터 자기 몫을 분명하게 말하기도 합니다.

    사람은 역할을 살아내며 변하고, 역할을 떠난 뒤에도 변합니다.

    그렇다면 성격이나 습관 하나를 붙들고 “이것이 나다”라고 말하는 것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과거의 선택만으로 자신을 고정하면 오늘 달라질 가능성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직함으로 대답하면 너무 좁습니다.

    성격으로 대답해도 부족합니다.

    능력으로 대답하면 능력이 달라졌을 때 흔들립니다.

    관계로 대답하면 관계가 달라졌을 때 다시 물어야 합니다.

    살아온 방식으로 대답해도 사람이 변한다는 사실이 남습니다.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무엇 하나를 붙들 때마다 그것은 나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전부는 아닙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어려운 까닭은 답을 몰라서만은 아닙니다.

    변하는 사람을 변하지 않는 한 문장에 넣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명사는 사람을 멈춰 세운다

    사람을 소개하는 말에는 명사가 많습니다.

    교사.
    대표.
    부모.
    작가.
    직장인.
    전문가.

    명사는 편리합니다.

    “저는 대표입니다.”

    한 문장이 많은 설명을 대신합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줍니다.
    무엇을 맡았는지도 알려줍니다.

    역할은 사람의 위치를 분명하게 해줍니다.

    그러나 명사에는 시간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교사’라는 두 글자 안에서는 첫해의 교사와 삼십 년째의 교사가 같은 이름으로 불립니다.

    ‘부모’라는 이름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아이를 품에 안았던 사람과 자녀가 자기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같은 명사가 붙습니다.

    이름은 같지만 사람은 그 안에서 계속 변했습니다.

    명사는 그 변화를 멈춰 세운 채 한 이름으로 묶습니다.

    그래서 역할의 이름은 편리하면서 위험합니다.

    오랫동안 같은 명사로 자신을 부르다 보면 그 이름이 변하지 않는 만큼 자신도 변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나는 대표입니다.

    나는 교사입니다.

    나는 부모입니다.

    문장은 단단합니다.

    사람은 그 문장 안에서도 계속 달라집니다.

    어느 날 역할이 끝나면 명사가 먼저 사라집니다.

    그제야 보입니다.

    그 이름 안에서 나는 얼마나 많이 변해왔는가.

    자기소개가 과거형이 되는 날

    퇴직은 이 문제를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전날까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런 일을 합니다.”

    퇴직한 뒤에는 문장이 달라집니다.

    “전에 이런 일을 했습니다.”

    문장이 과거로 갑니다.

    평생 해온 일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 일을 현재형으로 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변화는 생각보다 큽니다.

    오랫동안 자신의 현재를 설명하던 말이 이제 이력이 됩니다.

    “무슨 일 하십니까?”

    예전에는 바로 대답했습니다.

    이제는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다른 문장이 필요합니다.

    여기에서 잃은 것이 무엇인지 구별할 필요가 생깁니다.

    직함이 사라졌습니다.

    그 직함으로 자신을 설명하던 방식도 끝났습니다.

    두 사건이 함께 일어나니 자신까지 사라진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라진 직함과 그 직함을 살아낸 사람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이 질문은 퇴직자에게만 생기지 않습니다.

    사람은 살면서 여러 번 현재형이던 자기소개를 과거형으로 바꿉니다.

    오랫동안 맡던 책임을 내려놓습니다.

    잘하던 일을 다른 사람에게 넘깁니다.

    가족 안에서 자기 몫이 달라집니다.

    한때 자신을 정확하게 설명한다고 믿었던 말이 더는 맞지 않게 됩니다.

    그럴 때 사람은 새로운 이름을 찾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이름을 얻는 것과 자신을 다시 아는 것은 같은 일일까요.

    새 이름은 질문을 끝내는가

    이전 역할이 끝난 뒤 다른 역할을 맡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다시 자기소개가 쉬워집니다.

    “요즘은 이런 일을 합니다.”

    현재형이 돌아옵니다.

    그 문장이 생겼다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까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새 역할은 새로운 경험을 만들고 사람을 다시 바꿀 것입니다.

    이전 역할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면 언젠가 그 역할도 끝날 수 있습니다.

    다시 다른 이름이 필요해집니다.

    역할이 바뀔 때마다 나를 처음부터 새로 정해야 한다면 한 사람의 삶은 여러 개의 명함 사이에서 끊어집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직업이 바뀌어도 이전의 삶을 내 삶이라고 부릅니다.

    역할이 달라져도 과거의 선택을 내가 한 선택이라고 말합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지 않은데도 둘을 서로 다른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변한 것이 많은데 무엇인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질문의 방향을 바꿔볼 수 있습니다.

    역할이 바뀌어도 무엇이 이어지는가

    “역할을 모두 빼면 진짜 나는 무엇인가.”

    이렇게 물으면 사람에게서 하나씩 제거하기 시작합니다.

    직업을 뺍니다.

    직함을 뺍니다.

    관계를 뺍니다.

    능력을 뺍니다.

    계속 빼다 보면 언젠가 아무것에도 영향받지 않은 순수한 나 하나가 남을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 삶은 그렇게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내가 책임진 일이 나를 바꾸었습니다.

    함께 살아온 사람이 나를 바꾸었습니다.

    실패했던 일도 흔적을 남겼습니다.

    오랫동안 반복한 선택도 지금의 나에게 들어 있습니다.

    그것들을 모두 제거하고 지금의 나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질문은 빼기가 아니라 이어짐 쪽에 놓여야 합니다.

    역할을 모두 없애면 무엇이 남는가가 아니라, 역할이 바뀌어도 무엇이 이어지는가.

    십 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이 다릅니다.

    생각도 달라졌습니다.

    할 수 있는 일도 달라졌습니다.

    맡은 역할도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십 년 전의 실패를 말할 때 “그 사람이 실패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내가 그때 잘못 판단했다”고 말합니다.

    그때와 지금 사이에 변화가 있습니다.

    동시에 이어짐도 있습니다.

    사람의 삶에는 둘이 함께 있습니다.

    역할은 그 흐름 속에서 생겼다가 사라집니다.

    어떤 역할은 오래가고 어떤 역할은 짧게 끝납니다.

    역할이 바뀌었다고 삶의 주인이 매번 교체되지는 않습니다.

    역할은 장면을 바꾸지만 그 장면들을 살아온 삶까지 갈아치우지는 못합니다.

    그렇다면 ‘나’를 하나의 직함이나 성격이나 능력에서 찾으려는 시도부터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하나의 완성된 답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정답 하나를 찾으려 합니다.

    나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문장 하나가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문장을 발견하면 자신을 제대로 알게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스무 살의 내가 자신을 설명한 문장과 예순 살의 내가 자신을 설명하는 문장이 같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 사이에 실제로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중요하게 여기던 것이 달라집니다.

    잘하던 일을 내려놓기도 합니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을 중요하게 여기기도 합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자신에 관한 문장도 고칩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딘가에 완성된 채 숨어 있어서 발견만 기다리는 답과는 다릅니다.

    살아가는 동안 선택하고, 달라지고, 이전의 자신을 다시 바라보면서 계속 이어지는 사람 쪽에 가깝습니다.

    여기에는 완성된 자기소개가 없습니다.

    그 대신 시간이 있습니다.

    내가 맡았던 역할들이 있습니다.

    그 역할을 살아낸 방식이 있습니다.

    달라진 생각이 있습니다.

    버린 것도 있고 새로 붙든 것도 있습니다.

    그 모든 시간을 한 사람의 삶이라고 부르고 있는 내가 있습니다.

    역할 하나는 그 긴 시간을 잠시 설명해주는 이름이었습니다.

    이름은 바뀌었습니다.

    사람의 삶은 그 자리에서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내 역할이 사라지면 나는 누구인가

    처음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내 역할이 사라지면 나는 누구인가.

    “역할보다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 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직함을 벗고 진짜 나를 찾으면 됩니다.”

    그렇게 간단하지도 않습니다.

    역할을 살아온 시간이 이미 나에게 들어와 있기 때문입니다.

    한쪽에는 역할이 있습니다.

    다른 한쪽에는 역할과 상관없는 순수한 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이에 한 사람이 살아온 시간이 있습니다.

    맡았던 역할에 영향을 받고, 그 역할을 자기 방식으로 살아내고, 그 안에서 달라지고, 어느 날 그 이름을 내려놓는 시간입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는 여전히 자기소개가 필요합니다.

    “전에 이런 일을 했습니다.”

    그 말은 틀리지 않습니다.

    문장이 과거형이 된 뒤에도 그 문장을 말하는 사람은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나라고 불러왔는가.

    vidIQ

  • 아무것도 안 하면 왜 불안할까

    아무것도 안 하면 왜 불안할까

    쉬는 날인데 쉬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출근할 곳도 없습니다.
    처리할 일도 없습니다.
    누가 기다리는 약속도 없습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든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오전이 조금 지나면 할 일을 찾기 시작합니다.
    밀린 청소가 눈에 들어옵니다.
    읽다 만 책을 펼칩니다.
    컴퓨터를 켭니다.
    휴대전화를 들고 무엇인가 확인합니다.

    피곤해서 쉬고 싶었던 사람도 막상 할 일이 없어지면 오래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쉬는 시간이 부족해서 힘들다고 했는데, 시간이 생기자 다시 할 일을 찾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동안에는 오늘 무엇을 했는지 말할 것이 없습니다.
    시간은 지나가는데 남은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쉬는 날의 불편함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어야 마음이 놓이는가.

    쉰 하루를 설명해야 할 때

    누군가 묻습니다.
    “오늘 뭐 했어?”
    “아무것도 안 했어.”

    대화는 이것으로 끝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주 말을 덧붙입니다.
    집에서 좀 쉬었다고 합니다.
    밀린 일을 조금 했다고 합니다.
    운동을 했거나 책을 읽었다고 말합니다.

    하루를 설명할 만한 것이 하나 생깁니다.

    우리는 하루를 시간으로만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 시간에 무엇을 했는지도 함께 기억합니다.

    학교에 다닐 때는 공부한 것이 남았습니다.
    직장에서는 처리한 일이 남았습니다.
    집에서는 치운 것, 고친 것, 준비한 것이 남습니다.
    하루가 지나면 흔적이 생깁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에는 그 흔적이 희미합니다.
    시간은 분명 지나갔는데 손에 잡히는 것이 없습니다.

    ‘쉬었다’는 말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말도 같지 않습니다.

    쉬었다고 말하면 휴식이라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말하면 이유마저 없어 보입니다.

    같은 두 시간을 소파에 앉아 보냈어도 “피곤해서 쉬었다”고 하면 설명이 됩니다.
    아무 이유 없이 앉아 있었다고 하면 그 시간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난감해집니다.

    시간을 보낸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시간을 왜 그렇게 보냈는지까지 설명하려 합니다.

    쉰 시간에도 이유가 필요해집니다.

    사람은 시간을 자꾸 계산한다

    한 시간 일했습니다.
    삼십 분 걸었습니다.
    책을 스무 쪽 읽었습니다.
    방 하나를 정리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시간에 모양이 생깁니다.
    두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냈다고 하면 계산이 달라집니다.
    두 시간이 지나갔다는 사실만 남습니다.

    빈 시간 앞에서는 계산이 시작됩니다.
    이 시간에 무엇을 할 수 있었는가.
    오늘 하루를 그냥 보내도 되는가.
    남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쉬는 시간까지 효율의 대상이 됩니다.
    휴일을 알차게 보내고 싶어 하고, 여행에서도 여러 곳을 봐야 만족하고, 산책을 하면서도 걸음 수를 확인합니다.
    책을 읽으면 몇 권을 읽었는지 세고, 운동을 하면 기록을 남깁니다.
    기록하는 일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기록이 사라지는 순간까지 불편해진다면 다른 문제가 남습니다.

    시간을 보내는 것과 시간을 증명하는 것이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걸었는지, 무엇을 끝냈는지, 얼마나 읽었는지 확인하면 사용한 시간이 눈에 보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에는 그런 증거가 없습니다.

    시간은 있었는데 보여줄 것이 없습니다.

    두 시간이 아까운 것이 아니라 그 두 시간에 붙일 이름이 없어서 불편한 것은 아닌지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왜 손해 본 것 같을까

    돈을 쓰면 줄어든 것이 보입니다.
    물건을 잃으면 없어진 것이 보입니다.
    시간은 무엇을 하든 같은 속도로 지나갑니다.

    일을 끝낸 두 시간과 아무것도 하지 않은 두 시간은 길이가 같습니다.
    그런데 받아들이는 값은 다릅니다.

    한쪽은 잘 쓴 시간이 되고 다른 쪽은 버린 시간이 됩니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생길까요.

    쉬는 동안에도 무엇인가 얻었다고 말할 수 있으면 마음이 편합니다.
    피로가 풀렸습니다.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생각이 정리됐습니다.
    내일 다시 일할 힘을 얻었습니다.

    휴식에도 결과가 생겼습니다.

    “오늘 푹 쉬었으니 내일부터 열심히 해야지.”

    익숙한 말입니다.
    이 말 속에서 오늘의 휴식은 내일의 일을 위해 값을 합니다.

    아무 목적 없이 보낸 시간은 다릅니다.
    내일 더 잘 일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도 아니고, 새로운 생각을 얻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그냥 보낸 시간입니다.

    그 시간을 유난히 아깝게 느낀다면 우리가 견디기 어려워하는 것은 빈 시간 자체가 아니라 쓸모를 설명할 수 없는 시간인지도 살펴봐야 합니다.

    바쁨은 자신을 설명하기 쉽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바쁘게 지냅니다.”

    이 한마디면 많은 설명이 끝납니다.

    바쁘다는 말에는 일정이 있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맡은 일이 있고, 갈 곳이 있고, 해야 할 것이 있다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로 자신을 설명하는 데 익숙합니다.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에 다니는지.
    무엇을 맡고 있는지.
    요즘 무엇을 준비하는지.

    하는 일이 분명하면 자기소개도 짧아집니다.

    바쁜 사람에게는 오늘을 끌고 갈 순서도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압니다.
    한 일이 끝나면 다음 일이 기다립니다.

    일정은 사람을 피곤하게 하지만 하루의 모양도 만들어 줍니다.

    일정이 사라지면 그 모양도 사라집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갈 곳이 없습니다.
    오후가 되어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없습니다.

    자유로운 시간입니다.
    동시에 그 시간을 무엇으로 보낼지 아무도 정해주지 않는 시간입니다.

    처음에는 “오늘 무엇을 하지?”라고 묻습니다.

    그런 날이 이어지면 질문의 주어가 바뀌기도 합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는 사람이지?

    휴식에서 시작한 질문이 사람 자신에게 닿는 순간입니다.

    같은 빈 시간인데 왜 어떤 날은 편안할까

    모든 빈 시간이 불편한 것은 아닙니다.

    하루 종일 일을 마친 저녁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시간이 반갑습니다.
    바쁜 한 주를 보낸 뒤 맞은 휴일에는 늦잠을 자고 한동안 빈둥거려도 마음이 편할 때가 있습니다.

    반대로 특별히 한 일이 없는 날에는 한 시간만 가만히 있어도 마음이 부산해질 때가 있습니다.

    같은 사람이 같은 소파에 앉아 있습니다.
    하는 일도 없습니다.

    한쪽은 휴식이고 다른 쪽은 낭비처럼 느껴집니다.

    차이는 의자에 있지 않습니다.
    시간의 길이에도 없습니다.

    하루를 바라보는 자신의 판단이 달라졌습니다.

    “오늘은 충분히 했어.”

    이 생각이 있는 날에는 멈추기가 쉽습니다.

    “오늘 한 게 뭐가 있지?”

    이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쉬고 있는 시간이 무거워집니다.

    그때 청소할 곳이 보이고 미뤄둔 일이 생각납니다.
    무엇 하나라도 끝내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집니다.

    빈 시간을 견디지 못해서 움직인 것인지, 자신의 하루에 ‘한 일’을 하나 만들어 넣기 위해 움직인 것인지 경계가 흐려집니다.

    이 차이는 쉬는 방법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휴식에도 자격이 필요한가

    “오늘은 많이 했으니까 좀 쉬어도 돼.”

    자신에게 이렇게 말할 때가 있습니다.

    많이 했으니까 쉽니다.
    해야 할 것을 끝냈으니까 쉽니다.
    충분히 애썼으니까 쉽니다.

    앞의 조건이 충족되어야 뒤의 휴식이 허락됩니다.

    오늘 별로 한 일이 없는 날은 어떨까요.
    눈에 띄는 성과도 없습니다.
    힘들었다고 말할 일도 없습니다.

    그런 날에도 아무 이유 없이 쉴 수 있을까요.

    우리는 쉬기 전에 자신이 얼마나 했는지 먼저 확인할 때가 있습니다.
    할 만큼 했다고 판단한 뒤에야 일을 내려놓습니다.

    자신에게 휴식을 허락하기 위해 먼저 노동의 영수증을 내놓는 셈입니다.

    영수증이 충분하면 편하게 쉽니다.
    내놓을 것이 없으면 쉬는 동안에도 빚진 것처럼 마음이 움직입니다.

    이 계산이 굳어지면 휴식은 일의 반대편에 있지 않습니다.
    일의 평가표 안으로 들어갑니다.

    많이 한 사람은 많이 쉴 수 있고, 적게 한 사람은 쉬기 전에 무엇인가 더 해야 합니다.

    쉬는 데에도 자격이 필요해집니다.

    이 상태에서는 시간이 많아져도 편안해지기 어렵습니다.
    빈 시간이 생길 때마다 먼저 자신이 그 시간을 누릴 만큼 했는지 계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루의 행동이 사람의 평가가 될 때

    우리는 일하는 사람에게 여러 이름을 붙입니다.

    성실한 사람.
    부지런한 사람.
    책임 있는 사람.
    자기 몫을 하는 사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 붙는 말은 다릅니다.

    게으르다.
    시간을 낭비한다.
    놀고 있다.
    하는 일이 없다.

    처음에는 행동을 말했습니다.
    어느 순간 사람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오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첫 문장은 하루에 관한 말입니다.
    두 번째 문장은 나에 관한 말입니다.

    두 문장이 붙으면 휴식은 무거워집니다.

    오늘 몇 시간을 쉬었다는 사실이 곧 자신의 태도에 대한 평가가 됩니다.

    이 정도 쉬었으면 충분하지 않은가.
    이제 뭐라도 해야 하지 않는가.
    계속 이렇게 있어도 되는가.

    일이 생긴 것도 아닌데 몸을 일으킵니다.

    무엇인가 시작하면 질문이 잠잠해집니다.
    할 일이 생겼고, 그 일을 하는 동안에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 사람인지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부지런함과 불안은 겉모습만으로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같이 움직이고 있어도 한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고, 다른 사람은 멈춰 있는 자신을 견디기 어려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잘 쉬는 법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쉬지 못하면 쉬는 방법부터 찾게 됩니다.

    휴대전화를 멀리 둡니다.
    산책을 합니다.
    운동을 시작합니다.
    취미를 만듭니다.
    휴일 계획을 세웁니다.

    이런 방법이 필요한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산책을 해야 마음 놓고 쉴 수 있고, 책을 읽어야 보람 있게 쉰 것 같고, 운동을 해야 하루를 잘 보냈다고 느낀다면 한 가지는 그대로 남습니다.

    해야 할 것이 있다는 감각입니다.

    일의 목록이 휴식의 목록으로 바뀌었습니다.

    잘 일해야 했던 사람이 이제는 잘 쉬어야 합니다.

    휴일을 알차게 보내야 합니다.
    좋은 경험을 해야 합니다.
    몸을 회복해야 합니다.
    월요일을 준비해야 합니다.

    휴식마저 성공해야 한다면 쉬는 사람에게 또 하나의 평가표가 생깁니다.

    오늘 제대로 쉬었는가.

    여기에서도 점수를 매기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은 또 실패한 시간이 됩니다.

    잘 쉬는 방법을 아는 것과 아무 목적 없는 시간을 편안하게 보내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에 남는 것

    일에는 결과가 있습니다.
    역할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약속에는 상대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에는 이런 것들이 잠시 물러납니다.

    그 시간에는 직함을 사용할 일도 없습니다.
    성과를 보여줄 일도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확인할 일도 없습니다.

    평소 나를 설명해주던 말들이 줄어듭니다.

    그때 무엇을 다시 꺼내는지 보면 평소 자신을 무엇으로 확인했는지 조금은 보입니다.

    일을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약속을 만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기록할 일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빈칸을 그대로 두기보다 무엇인가 적어 넣는 쪽이 편한 것입니다.

    그 행동을 잘못이라고 할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한 번쯤은 묻고 지나갈 만합니다.

    나는 지금 정말 이 일을 하고 싶은가.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보고 싶지 않아서 일을 찾고 있는가.

    내가 불안한 것은 정말 시간이 비어서일까

    처음에는 시간이 남아서 불편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같은 빈 시간도 어떤 날에는 반갑고 어떤 날에는 무겁습니다.

    시간만으로는 설명이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 무엇을 했는지 말할 수 있을 때 마음이 놓이고, 결과 하나를 만들고 나서야 편하게 쉴 수 있다면 빈 시간은 다른 것을 보여줍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 때 나를 괜찮다고 생각하는가.

    일하는 나.
    맡은 것을 끝낸 나.
    필요한 일을 해낸 나.

    그 모습들은 삶에 필요합니다.
    문제는 그 모습이 잠시 사라진 시간까지 견디기 어려울 때입니다.

    “휴식도 생산적이다”라는 말로 서둘러 해결할 필요는 없습니다.

    휴식이 내일의 생산성을 높여주기 때문에 가치 있다고 말하면 쉬는 시간에도 다시 쓸모를 요구하게 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불편하다면 그 시간을 억지로 좋아할 필요도 없습니다.

    대신 불편함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는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왜 무엇인가를 끝낸 뒤에야 마음 놓고 쉬는가.
    왜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하루를 아깝다고 생각하는가.
    왜 멈춰 있을 때보다 움직이고 있을 때 나를 설명하기 쉬운가.

    처음 질문은 짧았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면 왜 불안할까.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시간보다 사람 쪽에 가까운 문제가 남습니다.

    오늘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오늘의 내가 아무 가치가 없다는 판단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두 말을 자꾸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면 다음 질문은 피하기 어렵습니다.

    일하지 않는 나는 정말 쓸모없는 사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