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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는 왜 만남이 예전 같지 않을까

    오랜만에 만났는데 왜 조금 허전했을까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는 날이 있습니다.

    며칠 전부터 날짜를 맞추고 장소를 정했습니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먼저 도착해 자리를 잡습니다. 문이 열릴 때마다 무심코 고개가 그쪽으로 향합니다.

    잠시 뒤 익숙한 얼굴이 들어옵니다. 멀리서도 금방 알아봅니다. 걸음걸이도 낯설지 않고, 눈이 마주치자 손을 드는 모습도 기억 속에 남아 있던 그대로입니다.

    “오랜만이다.”

    마주 앉자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어떻게 지냈는지 묻고 함께 알던 사람들의 소식을 나눕니다. 오래전 있었던 일을 한 사람이 꺼내자 다른 사람이 그다음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잊고 있던 이름 하나가 나오고, 그 이름을 따라 장소가 나오고, 그곳에서 있었던 일이 줄지어 따라 나옵니다.

    “그걸 아직도 기억하냐?”

    웃음이 터지고 시간은 금세 흘러갑니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다음에 또 보자고 합니다. 늘 하던 인사입니다.

    분명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다투지도 않았고 불편한 말이 오간 것도 아닙니다. 대화가 끊겨 어색하게 앉아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혼자 돌아오는 길에 작은 허전함이 남습니다. 반가웠고 즐거웠는데 예전 같지는 않았습니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요.

    예전에는 만나기만 하면 할 이야기가 끝이 없었습니다. 그날 있었던 일도 이야기했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도 이야기했습니다. 별것 아닌 일을 두고도 한참을 웃었습니다.

    오늘도 이야기는 많았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돌아보니 오늘의 이야기보다 지난 이야기가 더 많았습니다.

    함께 있는 동안 우리는 서로를 만난 것일까요, 아니면 함께 지나온 시간을 만나고 온 것일까요.

    우리는 언제부터 지난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 되었을까

    오래 알고 지낸 사람과 마주 앉으면 꺼낼 이야기가 많습니다. 처음 만났던 때를 알고 있고, 함께 무언가를 시작했던 때도 기억합니다. 일이 잘되던 시절도 보았고 뜻대로 풀리지 않던 때도 곁에서 보았습니다.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때 말이야.”

    그 한마디면 이야기가 절로 열립니다.

    오래 만난 남자들 사이에서는 군대 이야기가 나오는 자리도 있습니다. 제대한 지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어느 부대에서 지냈는지, 그때 얼마나 고생했는지 이야기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갑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지난번에도 했고 그전에도 했습니다. 듣는 사람도 이미 결말을 압니다. 그런데도 또 웃습니다.

    함께 알고 있는 과거에는 이런 편안함이 있습니다. 새로 설명할 것이 많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앞부분을 꺼내면 다른 사람이 나머지를 채웁니다. 같은 기억 속에 두 사람이 함께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 기억에만 남아 있던 시간을 함께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 대화의 방향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젊은 날에는 아직 오지 않은 일을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무엇을 시작할지, 어디에 가볼지, 다음에는 무엇을 해볼지 이야기했습니다. 앞에 놓인 시간이 대화 속으로 자주 들어왔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뒤를 돌아볼 이야기가 많아집니다. 함께 살아온 시간이 길어졌으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다만 두 시간을 이야기하고 헤어진 뒤 대부분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만 남았다면 한 가지가 궁금해집니다.

    나는 오늘 그 사람의 무엇을 새로 알게 되었을까요.

    오래 안다는 말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누군가를 오래 안다고 말할 때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는 것일까요.

    좋아하는 음식도 알고 말버릇도 압니다. 무엇에 쉽게 웃는지 알고, 어떤 일을 불편해하는지도 압니다. 중요한 순간에 어떤 선택을 했는지도 기억합니다. 그 사람을 설명해 보라고 하면 꽤 많은 말을 막힘없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설명은 언제 만들어진 것일까요. 십 년 전 그 사람을 보며 알게 된 것도 있고, 이십 년 전의 모습이 아직 내 기억 속에 멈추어 남아 있는 것도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오래 남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와 함께 소리 없이 달라지는 것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좋아하던 것에 관심이 없어지기도 합니다. 별생각 없이 지나쳤던 일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기도 합니다. 시간을 쓰는 방법이 달라지고 무엇을 먼저 생각하는지 그 순서도 바뀝니다. 그 변화는 대개 요란하지 않습니다. 하루를 살고 또 하루를 살아내는 동안 조금씩 생깁니다.

    한동안 만나지 않았다면 그 사람에게는 내가 보지 못한 시간이 있습니다. 무엇을 새로 시작했는지, 무엇을 그만두었는지 모릅니다. 무엇을 마음에 품게 되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다시 만나는 순간 우리는 가장 익숙한 사람부터 찾습니다. 기억 속의 그 사람입니다.

    “넌 원래 그랬잖아.”

    많이 보았기에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동시에 오래전에 알게 된 모습을 오늘까지 억지로 이어 붙이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그 사람은 내가 보지 않는 동안에도 자기 삶을 살았습니다. 나 역시 그랬습니다. 오래 알고 지냈다는 것은 그 사람의 과거를 많이 안다는 뜻이지, 오늘의 그 사람까지 다 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차이를 놓치면 익숙함이 오히려 지금 눈앞의 사람을 가리는 벽이 됩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오히려 묻지 않는 것이 있다

    처음 만난 사람과 마주 앉으면 자연스럽게 질문합니다. 어떤 일을 하는지, 쉬는 날에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요즘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묻습니다. 모르기 때문에 묻고, 상대가 말을 하면 귀 기울여 듣습니다. 아직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내 안에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사람 앞에서는 사정이 다릅니다. 질문하기 전에 짐작하는 일이 먼저 앞섭니다.

    “넌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하잖아.”

    “너라면 그렇게 했겠지.”

    그 짐작이 맞을 때도 많습니다. 오랜 관계가 주는 편안함은 이런 데서 생깁니다. 하지만 이미 안다고 생각하는 만큼 묻지 않게 되는 것도 늘어납니다. 상대가 말을 시작했는데 다음 이야기를 미리 예상하기도 하고, 끝까지 듣기도 전에 내가 알고 있던 예전 모습과 이어 붙이기도 합니다. 그 순간 우리는 방금 그가 한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예전에 알던 사람을 혼자 듣고 있는 셈입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

    오래된 사이에서도 흔히 건네는 인사입니다. 그러나 대개는 “그냥 그렇지 뭐”, “나도 똑같아”라는 대답으로 넘어가고 곧바로 옛날이야기로 옮겨갑니다.

    하지만 어느 날 그 질문의 무게를 조금 바꾸어 봅니다.

    “그래도 요즘 주로 뭐 하면서 시간 보내는데?”

    한 번 더 가만히 묻고 대답을 기다립니다.

    그러면 뜻밖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동안 배우고 있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요즘 아침마다 하는 일이 생겼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것을 재미있게 들여다보고 있다고 합니다.

    그제야 조금 낯선 사람이 눈앞에 나타납니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사람입니다.

    가까움이 깊어질수록 물을 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 안다고 여겨 묻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 모르고 지나간 시간이 길어졌을 뿐입니다.

    그 사람만 달라진 것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을 보며 ‘참 많이 달라졌네’ 하고 속으로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말하는 방식이 전과 다른 것 같고 관심사도 달라진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잘 통하던 이야기에 별 반응이 없기도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은연중에 상대가 변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움직인 사람은 그 사람만이 아닙니다. 나 역시 내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예전에는 재미있던 이야기가 지금은 별것 아닐 수 있습니다. 한때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작게 보이기도 하고, 반대로 그때는 지나쳤던 사소한 이야기에 오래 귀를 기울이게 되기도 합니다. 서로 같은 자리에 서 있다가 한 사람만 멀리 걸어간 것이 아닙니다. 두 사람 모두 각자의 방향으로 수많은 하루를 걸어왔습니다.

    그런데 다시 만났을 때 우리는 지금의 만남을 기억 속의 만남과 비교합니다.

    “예전에는 말하지 않아도 다 통했는데.”

    “예전에는 만나기만 해도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과거를 떠올릴 때 모든 날을 똑같이 기억하지는 않습니다. 유난히 많이 웃었던 날, 특별히 즐거웠던 장면이 먼저 떠오릅니다. 별말 없이 헤어진 평범한 날들은 기억 속에서 흐려집니다. 그렇게 추려진 선명한 과거와 오늘의 담담한 한 끼를 나란히 놓으면, 오늘이 유독 심심하고 허전해 보이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의 두 사람은 이제 그 자리에 없습니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내가 되었듯, 그 사람도 자기 시간을 통과해 지금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은 반드시 관계가 멀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두 사람이 흘러온 세월을 이제야 서로의 얼굴에서 마주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함께한 시간이 오늘을 대신할 수는 없다

    오래된 관계에는 함께한 시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함께하지 않은 시간도 분명히 있습니다.

    십 년을 알고 지낸 사람과 최근 삼 년 동안 몇 번 만나지 못했다면, 두 사람에게는 십 년의 인연과 함께 서로 모르는 삼 년의 공백이 놓여 있습니다.

    그동안 각자 다른 아침을 맞았습니다. 다른 사람을 만났고 다른 일로 속을 끓였습니다. 혼자 감당해야 했던 일이 있었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생각도 있었을 것입니다. 나는 그 시간의 대부분을 보지 못했고, 그 사람 역시 내 시간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만나는 순간에는 그 빈 시간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얼굴을 알아보고 목소리를 듣는 순간 예전 자리로 금세 돌아간 듯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대화는 마지막으로 자주 만났던 시절에서 쉽게 시작하지만, 눈앞에는 그 뒤의 세월까지 살아낸 사람이 앉아 있습니다. 그 간격은 옛날이야기만으로는 채워지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통했던 말에 설명이 필요해지기도 하고, 한때 함께 좋아했던 것에 상대가 더 이상 관심을 보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때의 낯섦은 관계에 이상이 생겼다는 표시라기보다, 서로 보지 못했던 시간이 있었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함께한 시간이 두 사람의 지난 시절을 이어주었다면, 함께하지 않은 시간은 서로에게 새로 물어보아야 할 것을 남겨놓았습니다. 그렇게 보면 오래된 사람 앞에서 느끼는 낯섦은 벽이 아닙니다. 내가 아직 모르는 모습이 이 사람 안에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만남에는 오늘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다시 처음의 식탁으로 돌아가 봅니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이 지난 이야기를 하며 웃고 있습니다. 그 시간을 밀어낼 이유는 없습니다. 함께 기억하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만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오래된 관계만이 주는 편안함도 분명합니다.

    그러다 지난 이야기가 잠시 숨을 고를 때, 가만히 물어봅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떻게 지내?”

    형식적인 인사로 흘려보내지 않고 진심으로 대답을 기다립니다.

    최근에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새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무엇인지, 전과 달라진 하루가 어떤 모습인지 조금씩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동안 듣지 못했던 낯선 이야기들이 식탁 위로 올라옵니다. 상대도 나에게 묻고, 나 역시 지나온 시간 속에서 달라진 내 모습을 꺼내놓습니다.

    이제 식탁에는 세 가지 시간이 함께 놓입니다.

    둘이 함께 지나온 시간, 서로 보지 못했던 시간, 그리고 지금 마주 앉아 보내고 있는 시간입니다.

    그중 마지막 것은 아직 지나간 추억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 생겨나고 있는 현재입니다. 오늘 처음 들은 이야기는 다음번에 만났을 때 둘이 함께 아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오래된 추억도 처음부터 추억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날의 소박한 일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지나간 하루가 세월이 흐른 뒤 둘만 아는 소중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오래된 관계의 힘은 과거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오늘 마주 앉은 자리에서도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만난다는 것은 무엇일까

    만남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에는 아쉬움이 들어 있습니다. 그때처럼 막힘없이 이야기하고 싶고, 아무 설명 없이도 통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다시 만나는 일은 시간을 되돌리는 일이 아닙니다. 지금의 내가, 세월을 지나온 지금의 그 사람 앞에 앉는 일입니다.

    두 사람에게는 함께한 과거가 있고, 서로 보지 못한 시간이 있으며, 오늘 새로 알게 된 모습이 있습니다. 이 셋이 함께 어우러질 때 오래된 만남은 단순히 옛날을 확인하고 돌아오는 자리에 머물지 않습니다.

    예전 같지 않기 때문에 처음 듣는 이야기가 생깁니다. 그때는 미처 몰랐던 깊은 모습을 지금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오래된 사이의 깊이는 다 알고 있어서 더 물을 것이 없는 데서 오지 않습니다. 오래 알고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로에게 다시 물어볼 오늘이 남아 있는 데서 옵니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이번에도 “다음에 또 보자”는 인사를 건넵니다. 늘 하던 말이지만 그 울림은 조금 다릅니다. 예전의 우리로 돌아가자는 말이 아닙니다. 오늘 새로 마주한 서로를 다음에 한 번 더 만나자는 뜻입니다.

    다시 만난다는 것은 옛날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라, 달라진 두 사람이 오늘의 서로를 다시 알아가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