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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들은 왜 논밭을 떠나 공장으로 갔을까

    사람들은 왜 논밭을 떠나 공장으로 갔을까

    아침이 되면 일터로 가는 것이 지금은 당연한 일처럼 보입니다.

    집을 나서 버스를 타고, 자동차를 몰고, 지하철에 올라 회사나 공장으로 갑니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한 달 동안 일한 뒤 월급을 받습니다. 어느 직장에서 일하는지가 자신을 소개하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온 것은 아닙니다.

    한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큰 일터는 논과 밭이었습니다. 집과 일터가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았습니다. 날이 밝으면 일을 시작했고 계절이 바뀌면 해야 할 일도 달라졌습니다. 씨를 뿌리는 때와 거두는 때가 있었고, 비가 너무 와도 걱정이었고 오지 않아도 걱정이었습니다.

    먹고사는 일은 땅과 가까이 붙어 있었습니다.

    1960년 우리나라 취업인구 가운데 농림어업에 종사한 사람은 66.0%였습니다. 제조업 종사자는 6.79%였습니다. 열 명 가운데 여섯 명이 넘는 사람이 농림어업에서 일하던 때였습니다.¹⁾

    불과 몇십 년 뒤 이 모습은 크게 달라집니다.

    사람이 갑자기 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먹고사는 방법을 둘러싼 세상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고향을 떠나는 것이 처음부터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농촌에서 산다는 것은 단순히 한 장소에 거주한다는 뜻만은 아니었습니다.

    집이 있었고 논과 밭이 있었습니다. 부모와 형제가 가까이 살았고 이웃집 사정도 대강 알고 지냈습니다. 어느 집에 일손이 부족한지, 어느 논에 물이 필요한지 서로 알고 살았습니다.

    사람의 일과 생활과 관계가 한곳에 묶여 있었습니다.

    그곳을 떠난다는 것은 주소 하나를 옮기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익숙한 생활 전체를 두고 가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1960년대 중반 이후 산업화가 진행되고 도시의 고용기회가 늘어나면서 농촌에서 도시로 향하는 인구이동이 뚜렷해졌습니다. 농촌에서는 절대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고 도시에는 사람이 집중되었습니다.²⁾

    사람이 고향을 떠난 이유를 하나로 묶을 수는 없습니다.

    농사만으로 생활을 꾸리기 어려운 집이 있었습니다. 가족 가운데 누군가는 다른 벌이를 찾아야 했습니다. 학교를 더 다니고 싶은 젊은이도 있었습니다. 먼저 도시로 간 친척이나 고향 사람을 따라 길을 나선 사람도 있었습니다.

    반대로 도시에서는 사람을 필요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농촌에서 사람을 밀어내는 힘과 도시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함께 커지고 있었습니다.

    그 두 힘 사이에서 수많은 사람이 고향을 떠났습니다.

    나라가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시작되었습니다.

    농업생산력을 높이고 기간산업과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며 수출과 고용을 늘리는 일이 국가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경제를 성장시키고 기술을 축적하며 산업을 키우려는 계획이 실제 공장과 도로, 발전시설과 산업단지의 건설로 이어졌습니다.

    계획표에 적힌 산업은 결국 땅 위의 시설이 되어야 했습니다.

    공장을 지으려면 땅이 필요했습니다.

    전기가 들어와야 했습니다.

    원료를 실어 나를 도로와 철도가 필요했고 제품을 내보낼 항구도 필요했습니다.

    공장을 짓는 데에는 철과 목재와 유리와 시멘트가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공장이 완성되면 그 안에서 일할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1962년 울산공업지구가 지정되었습니다. 서울 구로에서는 1964년 수출산업공업단지 조성이 시작됐고, 1967년 4월 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 제1단지 준공식이 열렸습니다. 이후 여러 지방도시에도 공업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³⁾

    지도 위에 공업지구 하나가 그어질 때마다 그곳에는 공장만 들어선 것이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일터가 생겼습니다.

    사람이 움직일 이유가 하나씩 더 생겼습니다.

    처음부터 거대한 기계가 모든 일을 한 것은 아니었다

    오늘날 공장을 떠올리면 자동화된 생산라인과 로봇을 먼저 생각하기 쉽습니다.

    초기의 수출공장은 모습이 달랐습니다.

    당시 산업의 상당 부분은 많은 사람의 손을 필요로 했습니다.

    구로공단에는 의류와 봉제제품 업체가 많이 들어왔고 전자·음향기기, 전기·광학기기 등의 업체도 자리 잡았습니다. 생산량이 늘어나려면 그만큼 많은 사람이 공장 안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⁴⁾

    옷 한 벌을 만드는 데에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천을 다루고 재단하고 봉제하고 검사하고 포장해야 했습니다.

    전자제품을 만드는 데에도 부품을 조립하는 사람이 필요했고 완성된 물건을 검사하고 포장하고 옮기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공장 하나가 문을 열면 공장 안의 일자리만 생기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원료를 가져오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제품을 운반하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기계를 고치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 밥을 파는 곳이 생기고 물건을 파는 가게가 생겼습니다. 방이 필요했고 교통수단이 필요했습니다.

    한 산업의 성장은 그 산업의 울타리 안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이동을 불렀고, 이동한 사람이 다시 새로운 시장을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사람이 움직였다

    숫자로 보면 변화의 크기가 더 분명해집니다.

    1961년부터 1966년 사이 시·도 및 시·군 경계를 넘어 이동한 사람은 약 148만 명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약 113만 명, 76%가 도시지역으로 들어갔습니다.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한 경우만 따로 보아도 전체 이동인구의 41%였습니다. 서울로 들어간 사람은 약 69만 명으로 전체 이동인구의 47%에 이르렀습니다.⁵⁾

    이것은 단순한 주소 이동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사는 곳이 바뀌면서 일하는 곳도 달라졌습니다.

    농사짓던 집의 아들과 딸 가운데 누군가는 공장으로 들어갔습니다.

    누군가는 건설현장과 운수업으로 갔고 장사를 시작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도시로 왔다고 모두 안정된 일자리를 얻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도시가 받아들인 사람의 수만큼 좋은 일자리가 곧바로 생겨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불안정한 벌이로 생활을 이어간 사람도 있었습니다.

    산업화가 사람에게 새로운 길을 열었지만 모든 사람에게 같은 길을 내어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1970년대에 들어서자 인구이동은 별도의 연구가 필요할 정도로 커졌습니다.

    한국개발연구원은 1965년부터 1970년까지의 인구이동을 연구하면서 농촌과 도시 사이의 이동뿐 아니라 이동한 사람의 성별과 연령, 교육수준, 경제활동, 산업과 직업까지 분석했습니다.⁶⁾

    우리나라의 직업지도가 사람의 이동과 함께 다시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먼저 움직였다

    이동에는 세대의 차이도 있었습니다.

    1960년대 인구이동 자료를 보면 가족 전체가 함께 움직이는 경우와 달리 혼자 이동한 사람 가운데 젊은 층의 비중이 높았습니다.

    특히 여성 단독 전입자 가운데 15세에서 24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60%에 이르렀습니다.⁷⁾

    농촌의 젊은 여성이 도시와 공장으로 이동하는 모습은 당시 산업화를 이해할 때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의류봉제업 노동자의 생애를 추적한 연구에서는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 당시 여성에게 주어진 제한된 기회, 농촌에서 느낀 앞날의 제약, 진학에 대한 바람 등이 노동자가 되는 과정과 함께 나타납니다.⁸⁾

    먼저 도시로 간 사람의 소개를 받아 공장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장으로 갔다고 곧바로 더 나은 생활이 보장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자리는 얻었지만 노동환경은 거칠었습니다.

    오랜 시간 일해야 하는 곳도 있었고 임금이 넉넉하지 않은 곳도 있었습니다. 숙소가 부족했고 여러 사람이 좁은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기도 했습니다.

    고향을 떠나는 것과 생활이 나아지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움직였지만 그 가능성에 도착하기까지 또 다른 어려움을 지나야 했습니다.

    공장 옆에는 사람이 살 집이 필요했다

    구로공단의 변화는 이 과정을 압축해서 보여줍니다.

    1967년 말 공단 가동 초기 구로공단 근로자는 2,460명이었습니다.

    1978년 말에는 11만 4천여 명에 이르렀습니다.⁹⁾

    십여 년 사이 엄청난 수의 사람이 한 지역의 일터로 모여든 것입니다.

    11만 명이 넘는 사람이 공장에서만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일이 끝나면 돌아가 잠을 자야 했습니다.

    밥을 먹어야 했습니다.

    옷을 빨아야 했고 필요한 물건을 사야 했습니다.

    아프면 치료를 받아야 했고 고향에 갈 때는 버스나 기차를 타야 했습니다.

    공단에서는 미혼 여성 근로자를 위한 기숙사와 생활관 건립을 장려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짧은 기간에 늘어난 노동자를 충분히 수용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공단 주변에는 작은 방들이 밀집한 이른바 ‘벌집’ 형태의 주거가 나타났습니다.¹⁰⁾

    공장의 역사를 공장 안에서만 보면 이 장면이 빠집니다.

    기계와 생산량과 수출액만 남습니다.

    공장 문 밖으로 한 걸음 나오면 사람이 보입니다.

    좁은 방에서 아침을 맞고 공장으로 걸어가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월급을 받아 생활비를 남기고 고향집에 돈을 보내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일하면서 공부할 길을 찾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산업화는 숫자로 기록되었지만 그 숫자를 움직인 것은 하루하루를 살아간 사람들이었습니다.

    논밭의 시간과 공장의 시간은 달랐다

    사람이 농촌에서 도시로 옮겨오면서 바뀐 것은 직업의 이름만이 아니었습니다.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도 달라졌습니다.

    농사의 시간에는 계절이 중요했습니다.

    모내기할 때가 있었고 김을 맬 때가 있었고 수확할 때가 있었습니다. 하루의 일도 날씨와 햇빛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공장의 시간은 달랐습니다.

    출근시간이 있었습니다.

    작업 시작 시간이 있었습니다.

    정해진 공정과 생산계획이 있었습니다.

    사람은 자연의 시간뿐 아니라 시계와 생산계획에 맞추어 움직여야 했습니다.

    돈을 받는 방식도 달라졌습니다.

    농사는 한 해의 수확과 농산물 가격에 생활이 크게 좌우되었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면 노동의 대가를 임금으로 받았습니다.

    이 변화는 돈의 형태만 바꾼 것이 아니었습니다.

    생활의 계산법도 바꾸었습니다.

    한 달에 얼마를 벌고, 방값으로 얼마를 쓰고, 밥값으로 얼마를 쓰고, 얼마를 모으고, 얼마를 고향집으로 보낼지를 계산하는 생활이 커졌습니다.

    오늘날 너무 익숙한 월급생활이 수많은 사람의 일상으로 들어오는 과정이었습니다.

    사람이 떠난 자리도 달라졌다

    도시로 간 사람만 바라보면 변화의 절반만 보게 됩니다.

    사람이 빠져나간 농촌도 달라졌습니다.

    특히 젊은 사람이 빠져나가면 농촌에 남은 가족이 맡아야 할 일이 달라집니다.

    한 집의 노동력이 줄어듭니다.

    마을의 연령구성도 달라집니다.

    도시의 공장이 사람을 얻는 동안 농촌에서는 사람이 줄어들었습니다.

    1960년 취업인구의 66.0%였던 농림어업 비중은 1970년 50.83%, 1980년 37.81%로 내려갔습니다.

    같은 기간 제조업은 6.79%에서 14.27%, 다시 22.06%로 올라갔습니다.¹¹⁾

    숫자 두 줄 사이에서 수많은 사람의 일터가 바뀌었습니다.

    그 변화는 어느 날 한꺼번에 일어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이 떠났습니다.

    먼저 도시로 간 사람이 자리를 잡으면 뒤이어 가족이나 고향 사람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사람의 길이 만들어졌습니다.

    도시가 커지자 새로운 일이 생겼다

    사람이 모이면 사람이 필요로 하는 일이 생깁니다.

    공장 노동자가 늘어나면 그들을 태울 교통수단이 필요합니다.

    집이 필요하면 건설의 일이 늘어납니다.

    건물을 지으려면 시멘트와 철근과 유리와 목재가 필요합니다.

    그 재료를 생산하고 운반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가구가 늘어나면 시장과 식당과 상점이 늘어납니다.

    돈을 벌고 모으는 사람이 늘어나면 금융을 다루는 일도 커집니다.

    제품 생산이 늘어나면 창고와 운송과 판매의 일이 따라옵니다.

    이렇게 보면 공장노동자라는 하나의 직업만 생긴 것이 아닙니다.

    공장을 중심으로 새로운 생활권이 만들어졌고 그 생활권 안에서 수많은 일이 함께 자라났습니다.

    앞선 글에서 보았던 시멘트도 여기서 다시 만납니다.

    시멘트는 공장에서 생산되는 상품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공장을 짓는 재료였습니다.

    도로와 다리와 주택을 만드는 재료였고 도시가 넓어지는 데 필요한 물건이었습니다.

    사람이 도시로 움직였고 도시가 커지면서 건설재료가 더 필요해졌습니다.

    재료를 더 만들려면 다시 공장과 광산과 운송이 필요했습니다.

    하나의 변화가 다른 변화를 불렀습니다.

    직업은 사라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동했다

    우리는 시대가 바뀌면 흔히 어떤 직업이 없어졌는지를 먼저 봅니다.

    하지만 이 시기의 변화를 따라가 보면 조금 다른 모습이 보입니다.

    사람의 일이 통째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일의 자리가 크게 이동했습니다.

    논밭에서 하는 일이 줄어드는 동안 공장에서 하는 일이 늘었습니다.

    공장이 늘자 건설과 운송의 일이 커졌습니다.

    생산량이 늘자 판매와 유통의 일이 늘었습니다.

    도시가 커지자 도시생활을 유지하는 새로운 일이 생겼습니다.

    한 사람이 농민에서 공장노동자가 되는 순간 그 사람의 직업만 바뀐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디에서 사는지가 바뀌었습니다.

    누구와 하루를 보내는지가 바뀌었습니다.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이 바뀌었습니다.

    돈을 버는 방법이 바뀌었습니다.

    자녀에게 기대하는 미래도 달라졌습니다.

    직업의 변화는 생활 전체의 변화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세대는 또 다른 곳으로 갔다

    공장으로 향하던 길이 영원히 같은 방향으로 이어진 것은 아닙니다.

    1960년 6.79%였던 제조업 취업 비중은 1970년 14.27%, 1980년 22.06%, 1990년 27.43%까지 높아졌습니다.

    이후 제조업 취업 비중은 낮아졌고 서비스산업의 비중이 크게 확대되었습니다.¹²⁾

    어떤 집에서는 부모가 논밭에서 일했고 자녀가 도시의 공장으로 갔습니다.

    그다음 세대 가운데서는 사무실과 상점, 병원과 학교 같은 서비스 일터로 향하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이후 컴퓨터가 거의 모든 일터 안으로 들어왔고 지금은 그 컴퓨터 안으로 인공지능까지 들어오고 있습니다.

    세대가 바뀌면서 일터도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변화가 찾아올 때마다 사람 앞에 놓인 질문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제 나는 무엇으로 먹고살 것인가.

    1960년대 고향을 떠나던 젊은이도 이 질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오늘 새로운 기술 앞에 서 있는 사람도 같은 질문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논밭을 떠난 사람을 다시 바라보는 이유

    우리가 지금 그 시절을 들여다보는 것은 산업화를 칭찬하거나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변화가 사람에게 어떻게 찾아오는지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공장은 지금 우리가 보는 오래된 산업시설이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먹고살 길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고향을 떠나야 하는 이유였고 누군가에게는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가족의 생활을 돕는 월급이었고 누군가에게는 힘겨운 노동의 시작이었습니다.

    같은 공장 문을 통과했어도 사람마다 그 문이 가진 의미는 달랐습니다.

    그러므로 산업의 역사를 생산량만으로 읽으면 사람이 빠집니다.

    수출액만으로 읽어도 사람이 빠집니다.

    경제성장률만으로 읽어도 사람이 빠집니다.

    그 숫자 사이에는 고향집을 떠난 사람이 있었습니다.

    처음 기차를 타고 도시로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공장 기숙사에서 잠을 청한 사람이 있었고 좁은 방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살았던 때도 있었습니다.

    낯선 기계를 처음 배운 사람이 있었습니다.

    월급봉투를 받아 일부를 고향으로 보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움직이면서 우리나라의 일자리 지도가 움직였습니다.

    먹고사는 길은 사람을 따라 움직였다

    논밭에서 공장으로 향했던 길을 따라가 보면 한 가지가 보입니다.

    직업은 혼자 태어나지 않습니다.

    원료가 달라지고 기술이 생깁니다.

    돈이 투자되고 공장이 세워집니다.

    도로와 철도가 놓입니다.

    물건을 만들고 옮기고 팔기 시작합니다.

    그곳으로 사람이 움직입니다.

    사람이 모이면 집과 시장과 학교와 교통이 따라옵니다.

    새로운 생활이 만들어지고 그 생활이 다시 새로운 직업을 만듭니다.

    1960년대의 사람들은 이 거대한 변화를 ‘산업구조 전환’이라는 말로 살아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는 그저 집을 나섰습니다.

    일자리가 있다는 말을 듣고 도시로 갔습니다.

    처음 보는 기계 앞에 섰습니다.

    하루를 일했습니다.

    월급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일터로 갔습니다.

    그 평범한 하루가 수없이 겹치면서 나라의 모습이 바뀌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도시와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는 출근길도 그 변화의 연장선 위에 있습니다.

    그래서 논밭을 떠나 공장으로 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끝난 옛날이야기가 아닙니다.

    세상이 먹고사는 방법을 바꿀 때 사람이 어떻게 자기 자리를 옮기고 다시 만들어 왔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공장으로 향했던 길 뒤에 또 다른 길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손으로 하던 일 가운데 일부를 기계가 맡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변화는 그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각주

    1. 국사편찬위원회, 「산업구조 변화」, 『광복 60년; 한국의 변화와 성장 그리고 희망』,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표 1> 「산업구조변화, 1949~2003」. 1960년 농림어업 취업비중 66.00%, 제조업 6.79%. 자료는 각년도 센서스 및 경제활동인구 관련 통계를 토대로 작성되었으며 시기별 산업분류체계에는 차이가 있다.
    2. 한국학중앙연구원, 「인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인구이동’ 관련 항목. 산업구조 변화와 도시지역 고용기회 증가에 따른 1960년대 중반 이후 이농향도형 인구이동과 농촌지역 인구감소를 설명한다.
    3. 국가기록원, 「1960년대 산업단지 개발」, 『산업단지』 기록콘텐츠; 국가기록원, 「구로공단」,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 울산공업지구 지정 및 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 조성·준공 과정에 관한 기록.
    4. 국가기록원, 「구로공단」,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 구로공단의 주요 입주 업종과 노동집약적 산업구조에 관한 기록.
    5. 한국학중앙연구원, 「인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66년 특별인구조사를 토대로 한 1961~1966년 국내 인구이동 분석. 총이동인구 약 148만 명 가운데 약 113만 명이 도시지역으로 전입했으며 농촌→도시 이동은 전체의 41%, 서울 전입은 약 69만 명으로 제시되어 있다.
    6. 김대영·이효구, 『우리나라 인구이동의 특징, 1965~70』, 한국개발연구원 연구보고서 제76-01권, 1976.5.1. 연구는 농촌·도시간 이동, 성·연령, 교육, 경제활동, 산업 및 직업별 이동을 분석한다.
    7. 한국학중앙연구원, 앞의 「인구」. 단독 전입인구에서 미혼 젊은 연령층의 비중이 높으며 여성 단독 전입자의 경우 15~24세가 60%를 차지한 것으로 설명한다.
    8. 김귀옥, 「1960,70년대 의류봉제업 노동자 형성과정―반도상사(부평공장)의 사례를 중심으로」, 『경제와사회』 제61호, 비판사회학회, 2004, pp.10-41.
    9. 국가기록원, 앞의 「구로공단」. 구로공단 근로자 수는 1967년 말 2,460명에서 1978년 말 11만 4천여 명으로 증가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0. 국가기록원, 앞의 「구로공단」. 미혼 여성 근로자를 위한 기숙사·생활관과 급격한 노동인구 증가에 따른 공단 주변 ‘벌집’ 형태 주거에 관한 기록.
    11. 국사편찬위원회, 앞의 「산업구조 변화」, <표 1>. 농림어업 취업비중은 1960년 66.00%, 1970년 50.83%, 1980년 37.81%; 제조업은 같은 시기 6.79%, 14.27%, 22.06%로 집계되어 있다.
    12. 국사편찬위원회, 앞의 자료. 제조업 취업비중은 1990년 27.43%까지 높아진 뒤 2003년 20.15%로 낮아졌고, 같은 기간 서비스 관련 산업의 취업비중은 확대되었다.

  • 우리는 무엇으로 먹고살아 왔을까

    우리는 무엇으로 먹고살아 왔을까

    아침에 눈을 뜨면 우리는 이미 수많은 사람의 일을 만납니다.

    불을 켭니다.
    수돗물을 씁니다.
    휴대전화를 확인합니다.
    냉장고 문을 열고, 옷을 입고, 자동차나 버스에 오릅니다.

    너무 익숙해서 특별할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시간을 거꾸로 돌려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지금은 흔해서 눈길조차 가지 않는 물건 가운데 상당수는 한때 귀한 것이었습니다. 어떤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고, 어떤 것은 있어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물건이 하나 들어오면 그 물건만 들어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을 만들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원료를 구할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기계를 만들고 고칠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완성된 물건을 옮길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창고에 쌓고, 가게에 진열하고, 사람들에게 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물건이 달라지자 일이 달라졌습니다.

    일이 달라지자 사람이 사는 곳도 달라졌습니다.

    사는 곳이 달라지면서 돈을 버는 방법과 쓰는 방법도 달라졌습니다.

    우리가 지나온 시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언제나 먹고사는 방법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먹고사는 일은 땅 가까이에 있었다

    오랫동안 먹고사는 일은 땅과 가까이 있었습니다.

    논과 밭에서 곡식을 길렀습니다.
    산에서는 나무를 얻었습니다.
    바다와 강에서는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땅속에서는 돌과 광물을 캐냈습니다.

    집과 일터의 거리도 지금처럼 멀지 않았습니다.

    먹을 것을 직접 생산하는 집이 많았고, 생활에 필요한 물건 가운데 상당수도 가까운 곳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마을 안에서 품을 나누었고, 장이 서는 날이면 농산물과 생활용품이 한곳으로 모였습니다.

    그 시절에도 수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 장사하는 사람, 대장장이, 목수, 옹기를 굽는 사람, 베를 짜는 사람, 물건을 나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산업이 커지면서 물건 하나가 만들어져 사람의 손에 들어오기까지의 거리가 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먼 곳에서 원료를 가져왔습니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었습니다.

    다시 먼 곳으로 옮겼습니다.

    그 사이사이에 새로운 일이 생겨났습니다.

    원료와 공장 사이에는 운송이 필요했습니다. 공장을 움직이는 기계가 늘어나자 기계를 만들고 고치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전기를 사용하는 공장이 늘어나면 발전과 송전이 필요했습니다.

    생산량이 많아지면 창고가 필요했습니다.

    물건을 전국으로 보내려면 철도와 도로와 항만이 필요했습니다.

    상품을 안전하게 옮기려면 포장도 필요했습니다.

    거래 규모가 커지면 금융과 보험도 따라붙었습니다.

    한 사람이 만들고 한 사람이 팔던 물건이 점점 더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먹고사는 일이 거대한 연결망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폐허를 다시 세우는 데에도 물건이 필요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는 무너진 것을 다시 세워야 했습니다.

    산업시설과 철도, 도로를 복구해야 했고 학교와 병원, 공공시설과 집도 다시 지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건물을 세우려면 의지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나무가 있어야 합니다.

    철이 있어야 합니다.

    유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시멘트가 필요했습니다.

    전쟁 뒤 시멘트 생산시설의 복구와 확충은 국가 재건사업의 중요한 일부였습니다.

    유엔한국재건단은 삼척시멘트공장의 연간 생산능력을 6만 톤에서 10만 톤으로 늘렸습니다. 문경에는 새로운 시멘트공장이 들어섰습니다. 국가기록원에 남아 있는 1957년 기록에 따르면 문경공장은 그해 11월 생산을 시작했으며 연간 20만 톤의 시멘트를 생산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¹⁾

    당시 문경공장 하나의 생산능력은 전국 시멘트 수요의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였습니다.²⁾

    지금은 공사현장에서 흔히 보는 회색 가루가 그때에는 나라를 다시 세우는 데 필요한 중요한 산업재였습니다.

    공장 하나를 세운다는 것도 공장 건물 하나를 짓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석회석이 필요했습니다.

    광산이 필요했습니다.

    연료와 전기가 필요했습니다.

    원료를 나를 길이 필요했습니다.

    기계를 설치하고 운전하고 고치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완성된 시멘트를 전국으로 옮길 철도와 차량이 필요했습니다.

    시멘트라는 물건 하나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주변에서 다른 일도 함께 움직였습니다.

    수입하던 시멘트를 우리가 만들기 시작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변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습니다.

    1961년 말 국내 시멘트 생산능력은 약 72만 톤이었습니다.

    1962년 생산능력은 약 73만 톤이었지만 실제 생산량은 약 51만 톤이었습니다. 이후 공장이 늘고 설비가 확충되면서 1971년에는 생산능력 약 692만 톤, 실제 생산량 약 687만 톤에 이르렀습니다.³⁾

    여기서 생산능력과 실제 생산량은 구별해서 봐야 합니다.

    공장이 1년에 73만 톤을 만들 수 있다고 해서 실제로 그만큼 생산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래서 산업의 변화를 볼 때는 큰 숫자 하나만 보는 것보다 그 숫자가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더 눈여겨볼 변화가 있습니다.

    한때 시멘트를 계속 수입해야 했던 한국이 1971년에는 94만 톤을 해외로 수출했습니다.³⁾

    필요한 물건을 밖에서 들여오던 나라가 공장을 짓고 설비를 늘리고 기술을 익혀 해외에 내다파는 단계까지 간 것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야기는 아주 반듯해 보입니다.

    수입하던 나라가 생산국이 되고, 생산국이 수출국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산업의 역사는 그렇게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수출하던 나라가 다시 시멘트를 수입했다

    1980년대 말 건설수요가 빠르게 늘면서 상황이 다시 달라졌습니다.

    주택과 건물, 도로와 각종 개발사업이 한꺼번에 늘어나자 국내 생산만으로 필요한 물량을 제때 공급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1990년에는 이것이 이른바 ‘시멘트 파동’으로 번졌습니다.

    당시 보도를 보면 그해 시멘트 수요는 3,637만 톤으로 예상됐지만 공급능력은 3,509만 톤이었습니다. 상반기에만 수요가 1,654만 톤에 이른 데 비해 공급은 1,593만 톤에 그쳐 약 60만5천 톤이 부족했습니다.⁴⁾

    숫자보다 당시 현장의 모습이 더 선명합니다.

    40kg 한 포대의 대리점 판매가격은 2,100원이었지만 건재상이나 공사현장에서는 5,000원을 넘기도 했습니다. 정부는 1990년 7월부터 시멘트 수출을 전면 중단하고 수입을 확대했습니다.⁴⁾

    그해 9월에는 상황이 더 나빠졌습니다.

    수해로 일부 공장의 가동이 중단되고 운송에도 차질이 생기면서 시멘트 한 포대에 1만 원 이상을 주고도 구하기 어렵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일부 건설현장에서는 시멘트 부족으로 공사가 중단됐습니다.⁵⁾

    한때 수입하던 시멘트를 국내에서 만들기 시작했고, 마침내 수출까지 했던 나라가 다시 해외에서 시멘트를 급히 사와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때 중국산 시멘트가 대량으로 들어왔습니다.

    1990년 수입된 시멘트는 219만 톤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중국산은 208만 톤으로 약 95%를 차지했습니다. 1991년 들어서도 상황은 이어졌습니다. 그해 5월 말까지 수입한 185만 톤 가운데 약 178만 톤, 96%가 중국산이었습니다.⁶⁾

    당시를 살아온 사람 가운데에는 중국산 시멘트를 둘러싼 품질 이야기를 기억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기억을 그대로 사실로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당시 기록을 보면 1990년 수입된 중국산 등 외국산 시멘트가 KS 허가기준은 넘었지만 국내산보다 품질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있었고, 그 때문에 부실공사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⁴⁾

    기억과 기록이 만나는 지점입니다.

    시멘트가 모자랐습니다.

    가격이 뛰었습니다.

    수출을 중단했습니다.

    해외에서 물량을 들여왔습니다.

    중국산 시멘트가 대량으로 들어왔습니다.

    품질을 둘러싼 우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멘트 부족은 시멘트업계 안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1991년에는 벌크시멘트 부족으로 레미콘과 콘크리트파일 등 시멘트를 원료로 사용하는 업체들이 조업을 줄였고, 출하량이 평소보다 40~50% 이상 감소했다는 당시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⁷⁾

    시멘트 하나가 부족했는데 레미콘 생산이 줄었습니다.

    건설현장이 영향을 받았습니다.

    가격이 움직였습니다.

    수입이 늘었습니다.

    항만의 하역과 운송도 문제가 됐습니다.

    물건 하나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시멘트 한 포대에는 몇 사람의 일이 들어 있을까

    시멘트 한 포대를 앞에 놓고 보면 회색 가루를 담은 종이포대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 포대를 거꾸로 따라가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먼저 석회석을 캐야 합니다.

    광산이 필요합니다.

    암반을 뚫고 깨는 장비가 필요합니다.

    캐낸 돌을 옮겨야 합니다.

    돌을 부수고 원료를 배합합니다.

    높은 온도의 가마에서 굽습니다.

    다시 분쇄합니다.

    품질을 검사합니다.

    공장의 기계와 전기설비를 관리합니다.

    완성된 시멘트를 저장합니다.

    포대에 담습니다.

    그런데 포대도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종이를 만드는 일이 있습니다.

    인쇄가 있습니다.

    접착제가 필요합니다.

    포대를 만드는 기계가 있습니다.

    완성된 포대를 시멘트공장까지 가져오는 운송도 있습니다.

    시멘트공장을 떠난 포대는 다시 움직입니다.

    트럭을 탑니다.

    철도를 이용합니다.

    배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창고와 대리점을 거쳐 공사현장으로 갑니다.

    포대에 담지 않고 벌크 상태로 레미콘공장에 들어가는 물량도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1965년 레미콘공장이 가동되기 시작하면서 벌크 출하가 시작됐고, 1987년에는 내수 시멘트 사용량 가운데 레미콘용 비중이 절반을 넘었습니다.³⁾

    레미콘공장에 간 시멘트는 모래와 자갈과 물을 만납니다.

    건설현장에서는 다시 철근과 벽돌, 유리와 목재, 배관과 전선 같은 전혀 다른 산업의 물건들과 만납니다.

    이쯤 되면 질문이 달라집니다.

    시멘트 한 포대와 연결된 직업은 몇 개일까.

    숫자를 먼저 정해 놓고 셀 수는 없습니다.

    석회석을 캐는 사람과 시멘트를 만드는 사람까지만 셀 것인지, 운송과 판매까지 포함할 것인지, 기계를 만드는 사람과 포대를 만드는 사람까지 포함할 것인지에 따라 숫자는 달라집니다.

    도로와 학교와 아파트와 공장이 세워지면서 생긴 일자리까지 계산한다면 범위는 훨씬 넓어집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몇 개라는 숫자가 아닙니다.

    한 포대의 시멘트가 얼마나 많은 산업과 사람의 일을 이어 놓고 있었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시멘트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공장이 들어오자 사람도 움직였다

    1960년대부터 한국의 산업구조는 빠르게 달라졌습니다.

    전후 복구를 지나 경제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섬유와 의류, 합판 같은 노동집약적 산업이 수출산업으로 성장했고, 이후 산업의 중심은 점차 더 넓은 제조업으로 이동했습니다.⁸⁾

    공장이 세워지면 공장만 생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공업용수가 필요했습니다.

    전기가 필요했습니다.

    도로가 필요했습니다.

    항만이 필요했습니다.

    공장을 건설할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기계를 설치하고 운전할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생산된 물건을 창고로 옮기고 다시 시장으로 보낼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움직였습니다.

    농촌을 떠나 도시와 공업지역으로 향하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주소만 달라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는 일이 달라졌습니다.

    생활시간이 달라졌습니다.

    농사철과 날씨에 맞춰 움직이던 생활에서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생활로 옮겨간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월급이라는 형태로 생활비를 마련하는 가정도 늘었습니다.

    처음 보는 기계를 배워야 했고 낯선 도시에서 살 집을 구해야 했습니다.

    ‘산업화’라는 큰 말은 한 사람의 하루에서는 그렇게 나타났습니다.

    사는 곳이 바뀌고, 하는 일이 바뀌고, 돈을 버는 방법이 바뀌는 일이었습니다.

    철과 석유와 전기가 뒤따랐다

    시멘트만 움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철강산업이 성장하면 철을 사용하는 산업이 함께 커집니다.

    기계를 만듭니다.

    배를 만듭니다.

    자동차를 만듭니다.

    공장을 세웁니다.

    건물의 뼈대를 만듭니다.

    석유도 자동차의 연료로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정제와 저장과 운송이 필요했습니다.

    석유화학산업의 원료가 되었고 수많은 생활제품으로 갈라졌습니다.

    전기는 또 다른 길을 열었습니다.

    공장의 기계를 움직였습니다.

    도시의 밤을 밝혔습니다.

    가정 안으로 새로운 전기제품을 불러들였습니다.

    이때부터 한 직업을 그 직업만으로 설명하기가 더욱 어려워집니다.

    자동차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자동차회사가 있다고 그 사람의 일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철강이 있어야 합니다.

    고무와 유리가 필요합니다.

    수많은 부품이 필요합니다.

    부품을 만드는 공장이 필요합니다.

    공장설비와 전기가 필요합니다.

    완성된 자동차를 옮길 물류가 필요합니다.

    판매점이 필요합니다.

    정비소가 필요합니다.

    도로가 필요합니다.

    보험과 금융도 따라옵니다.

    주유소도 생깁니다.

    자동차 한 대가 세상에 나오면서 서로 전혀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의 거대한 연결망 안으로 들어옵니다.

    직업은 혼자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기계가 들어오자 사람의 일이 움직였다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더 빠르고 일정하게 물건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기계가 들어왔습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직접 하던 일을 기계가 대신했습니다.

    그런데 기계가 들어오자 또 다른 일이 생겼습니다.

    기계를 설치해야 했습니다.

    운전해야 했습니다.

    고쳐야 했습니다.

    전기를 공급해야 했습니다.

    생산공정을 관리해야 했습니다.

    자동화가 진행되면서 변화는 한 번 더 일어났습니다.

    사람이 직접 기계를 움직이던 일 가운데 일부가 줄어드는 대신 기계를 설계하고 제어하고 정비하는 일이 중요해졌습니다.

    현장에서 하던 일이 제어실로 옮겨가기도 했습니다.

    직업 이름은 그대로인데 하는 일이 달라지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가 보입니다.

    기술이 바뀐다고 사람의 일이 언제나 통째로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일은 사라집니다.

    어떤 일은 줄어듭니다.

    어떤 일은 기계로 넘어갑니다.

    어떤 일은 다른 직업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전에 없던 일이 생겨납니다.

    세상의 변화는 그렇게 움직였습니다.

    만드는 방법 다음에는 파는 방법이 바뀌었다

    물건을 만드는 방법만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파는 방법도 달라졌습니다.

    장터가 있었습니다.

    상점이 커졌습니다.

    전문점이 생겼습니다.

    백화점과 슈퍼마켓, 대형마트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이 나타났습니다.

    가게에 사람이 들어오지 않아도 물건을 팔 수 있게 됐습니다.

    그 순간 또 다른 일이 생겨났습니다.

    상품을 화면에 올리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주문을 처리하는 시스템이 필요했습니다.

    결제를 처리해야 했습니다.

    물류센터에서 수많은 상품을 분류해야 했습니다.

    상자에 담아야 했습니다.

    전국의 집 앞까지 가져갈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스마트폰은 이 변화를 다시 밀어붙였습니다.

    상점이 손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은행도 들어왔습니다.

    신문도 들어왔습니다.

    카메라도 들어왔습니다.

    음식점도 들어왔습니다.

    택시를 부르는 일도 들어왔습니다.

    사람들이 물건과 서비스를 사는 방법이 달라지자 사람들이 돈을 버는 방법도 다시 달라졌습니다.

    사라진 직업의 이름만 보면 놓치는 것이 있다

    기술이 새로 등장할 때마다 사람들은 묻습니다.

    어떤 직업이 없어질까.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버스 안내양이라는 직업이 사라졌다면 그 사람이 하던 모든 일도 함께 사라졌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타자수라는 직업이 줄었다고 글자를 입력하는 일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은행 창구를 찾는 사람이 줄었다면 금융업무가 없어진 것인지, 그 업무 가운데 일부를 고객이 직접 하게 된 것인지 구별해야 합니다.

    사진관이 줄었다고 사람들이 사진을 적게 찍게 된 것도 아닙니다.

    직업은 사라져도 그 직업이 하던 일은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기계로 갑니다.

    소비자에게 갑니다.

    다른 직업으로 들어갑니다.

    새로운 산업 안에서 다시 나타납니다.

    그래서 직업의 변화를 보려면 직업의 이름만 세어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봐야 합니다.

    이제 기계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지금 우리는 또 하나의 큰 변화를 보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입니다.

    과거의 기계가 주로 사람의 힘을 대신했다면 지금의 기술은 글을 쓰고, 자료를 정리하고, 번역하고, 그림을 만들고, 계산하고,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일에도 들어오고 있습니다.

    공장 안의 변화만이 아닙니다.

    사무실 안의 일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공지능 역시 화면에 보이는 프로그램 하나만 놓고 보면 전체를 볼 수 없습니다.

    반도체가 필요합니다.

    데이터센터가 필요합니다.

    전력이 필요합니다.

    통신망이 필요합니다.

    냉각설비가 필요합니다.

    연구개발이 필요합니다.

    투자가 필요합니다.

    설비를 만들고 설치하고 운용하고 고치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AI 역시 혼자 온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일을 생각할 때도 “AI가 몇 개의 직업을 없앨 것인가”라는 질문 하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사람이 하던 일 가운데 무엇이 기계로 옮겨가는지 봐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새로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봐야 합니다.

    그 변화에 필요한 원료와 에너지와 기술과 돈이 어디에서 오는지도 봐야 합니다.

    그래야 변화의 전체 모습이 드러납니다.

    숫자 뒤에는 사람이 있었다

    산업의 역사를 읽다 보면 숫자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몇 톤을 생산했습니다.

    몇 대를 만들었습니다.

    몇 달러어치를 수출했습니다.

    몇 퍼센트 성장했습니다.

    몇 명이 취업했습니다.

    모두 필요한 기록입니다.

    하지만 그 숫자 뒤에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농촌에서 도시로 처음 올라온 사람에게 산업화는 경제성장률이 아니었습니다.

    처음 보는 기계를 배우는 일이었습니다.

    낯선 도시에서 방을 구하는 일이었습니다.

    아침마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공장으로 가는 생활에 익숙해지는 일이었습니다.

    한 가지 기술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에게 자동화 역시 생산성이라는 숫자만은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잘하던 일의 일부를 기계가 가져가는 경험이었습니다.

    반대로 새로운 기술을 익힌 사람에게 변화는 전에 없던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 산업이 커지는 동안 누군가는 새로운 일자리를 얻었습니다.

    그 뒤편에서는 다른 산업이 줄었습니다.

    누군가는 다른 일을 배워야 했고, 누군가는 다른 지역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산업의 변화에는 늘 사람의 이동이 있었습니다.

    평범한 물건 하나를 끝까지 따라가 보면

    다시 시멘트 한 포대를 바라봅니다.

    아까와는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그 안에는 석회석이 있습니다.

    광산이 있습니다.

    공장이 있습니다.

    불과 전기가 있습니다.

    기계가 있습니다.

    운송이 있습니다.

    판매가 있습니다.

    건설현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곳에 사람이 있습니다.

    스마트폰 한 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손바닥만 한 기계 안에 광물과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와 배터리와 통신망과 소프트웨어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자동차 한 대도 그렇습니다.

    쌀 한 톨도 그렇습니다.

    택배 상자 하나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는 평범한 물건 하나를 끝까지 따라가면 그 시대의 사람들이 무엇으로 먹고살았는지가 보입니다.

    그리고 그 물건이 다른 것으로 바뀌기 시작하는 순간을 보면 왜 어떤 일이 줄고 새로운 일이 생겼는지도 보입니다.

    먹고사는 방법은 계속 바뀌었다

    몇 세대만 나란히 놓아도 변화는 선명합니다.

    한 세대가 평생 해온 일을 다음 세대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지금은 평범한 직업 가운데 이전 세대가 젊었을 때에는 이름조차 없었던 일도 있습니다.

    원재료가 달라졌습니다.

    에너지가 달라졌습니다.

    기술이 달라졌습니다.

    돈이 몰리는 곳이 달라졌습니다.

    만드는 방법이 달라졌습니다.

    옮기는 방법이 달라졌습니다.

    파는 방법이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도 달라졌습니다.

    그 변화가 겹친 자리에서 새로운 일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어떤 일은 조용히 뒤로 물러났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때마다 다시 먹고살 방법을 찾았습니다.

    새로운 기술을 배웠습니다.

    하던 일을 바꾸었습니다.

    다른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새로운 물건을 만들었습니다.

    새로운 방법으로 팔았습니다.

    누구에게나 그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변화를 먼저 이용한 사람도 있었고 뒤늦게 따라간 사람도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익힌 기술의 가치가 갑자기 달라지는 일을 겪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새로운 산업에서 전혀 다른 기회를 얻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변화 역시 언젠가는 그렇게 기록될 것입니다.

    인공지능이 사람의 일상적인 업무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던 시대.

    로봇이 공장 안에서 더 넓은 영역으로 움직이던 시대.

    물건뿐 아니라 지식과 경험도 디지털 공간을 통해 거래되던 시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아직 결말을 알지 못합니다.

    결말을 미리 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변화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사람의 일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앞에서는 늘 무언가가 먼저 움직였습니다.

    새로운 원료를 사용했습니다.

    새로운 에너지를 얻었습니다.

    기술이 발전했습니다.

    돈이 투자됐습니다.

    생산방식이 달라졌습니다.

    도로와 철도와 항만이 열렸습니다.

    판매방법이 바뀌었습니다.

    소비자의 선택이 달라졌습니다.

    그 뒤를 사람이 따라갔습니다.

    때로는 밀려서 움직였고, 때로는 새로운 기회를 보고 먼저 움직였습니다.

    그렇게 앞선 세대가 먹고살았습니다.

    우리 세대가 먹고살았습니다.

    지금의 젊은 세대도 자기 시대의 방법으로 먹고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어떻게 먹고살아 왔는지를 살펴본다는 것은 오래된 직업 이름을 모아놓는 일이 아닙니다.

    산업의 연대표를 외우는 일도 아닙니다.

    세상이 움직일 때 사람이 어떻게 자기 자리를 만들고 다시 만들어왔는지를 보는 일입니다.

    그 길에는 논밭이 있습니다.

    광산이 있습니다.

    공장이 있습니다.

    시멘트가 있습니다.

    철과 석유와 전기가 있습니다.

    시장과 상점이 있습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인공지능이 그 길 위에 들어와 있습니다.

    시대마다 물건은 달라졌고 기술도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는 오래도록 같은 질문을 품고 살아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제 무엇으로 먹고살 것인가.

    우리가 지나온 시간을 다시 들여다보아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과거를 그리워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미래를 두려워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알아야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각주

    1) 공보실 선전국 영화과, 「UNKRA의 업적」, 1957, 국가기록원, 관리번호 CEN0002073. 삼척시멘트공장의 연간 생산능력이 6만 톤에서 10만 톤으로 증가했으며 문경시멘트공장이 1957년 11월 생산을 시작해 연간 20만 톤을 생산할 것으로 예상됐다는 기록. 검색일 2026. 9. 23.

    2) 공보실 선전국 영화과, 「콜터장군」, 1958, 국가기록원, 관리번호 CEN0002154. 1957년 9월 문경시멘트공장 준공 및 연간 생산능력 20만 톤, 당시 전국 수요의 절반에 해당한다는 기록. 검색일 2026. 9. 23.

    3) 한국학중앙연구원, 「시멘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61년 말 생산능력 72만 톤, 1962년 생산능력 73만 톤·생산량 51만 톤, 1971년 생산능력 692만 톤·생산량 687만 톤·수출량 94만 톤 및 1965년 이후 벌크 출하와 레미콘 관련 내용을 수록. 검색일 2026. 9. 23.

    4) 정종석, 「시멘트품귀 수그러들 기미 없다/‘파동’의 문제점과 전망」, 『서울신문』, 1990. 7. 26., 7면. 1990년 시멘트 수급 전망, 상반기 부족량, 가격 상승, 수출 중단, 수입 확대 및 당시 수입시멘트의 품질 문제에 관한 보도.

    5) 「시멘트품귀에 건설공사 중단 속출」, 『서울신문』, 1990. 9. 26., 6면. 수해에 따른 생산·수송 차질과 시멘트 가격 상승 및 건설현장의 공급난에 관한 보도.

    6) 정종석, 「몰려오는 중국 상품… 국내업계 ‘비상’」, 『서울신문』, 1991. 6. 7., 6면. 1990년 수입시멘트 219만 톤 가운데 중국산 208만 톤, 1991년 1~5월 수입시멘트 185만 톤 가운데 중국산 약 178만 톤이라는 당시 수입실적 보도.

    7) 「시멘트 품귀현상 심각/본격 건축성수기… 각종공사 중단위기」, 『서울신문』, 1991. 6. 2., 7면. 벌크시멘트 부족으로 레미콘·콘크리트제품 생산업체의 조업이 줄고 출하량이 평소보다 40~50% 이상 감소했다는 보도.

    8) 한국학중앙연구원, 「산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62~1971년 노동집약적 경공업인 섬유·의류·합판 등을 중심으로 한 수출산업화와 산업정책의 변화에 관한 내용. 검색일 2026. 9. 23.

  • 65세 이상 교통혜택 총정리, 지하철부터 열차·항공·여객선까지

    65세 이상 교통혜택 총정리, 지하철부터 열차·항공·여객선까지

    2026년 9월 22일 현재, 65세 이상이 받을 수 있는 교통혜택은 교통수단과 지역에 따라 상당히 다릅니다.

    “65세가 넘으면 지하철은 무료다.”

    이 정도는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다른 지역으로 가려고 하면 이야기가 복잡해집니다.

    청주에 사는 사람이 서울에 가도 지하철을 무료로 탈 수 있을까요. 서울에서 쓰던 어르신 교통카드를 부산에서도 그대로 쓸 수 있을까요. 1회용 우대권이라는 것은 한 번만 쓸 수 있다는 뜻일까요, 하루 동안 쓸 수 있다는 뜻일까요. 지하철이 무료라면 버스도 무료일까요.

    KTX를 타거나 비행기를 탈 때도 비슷합니다.

    65세가 넘었다고 모든 교통수단에 같은 할인율이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65세 이상 교통혜택 안에 서로 성격이 다른 제도가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이것부터 구분해 놓으면 이후가 훨씬 쉬워집니다.

    구분대표적인 사례거주지역이 중요한가
    법령에 근거한 경로우대철도·도시철도 등제도별 확인
    지방자치단체 지원버스·택시·지역 교통카드중요함
    운송회사 자체 할인항공·일부 여객선 등회사별 조건 확인

    노인복지법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65세 이상에게 수송시설 등을 무료 또는 할인해 이용하도록 할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하지만 이 조항 하나가 모든 버스·항공기·배까지 전국 어디서나 같은 조건으로 무료 또는 할인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바로 이 차이를 알고 있어야 여행지에서 엉뚱한 카드를 내밀거나 받을 수 있는 혜택을 놓치지 않습니다.

    청주에 살아도 서울 지하철을 무료로 탈 수 있다

    가장 궁금한 경우부터 보겠습니다.

    청주에 사는 만 65세 이상 사람이 서울에 갔습니다.

    서울시가 발급하는 반영구적인 우대용 교통카드는 주민등록상 서울 거주자가 대상입니다. 서울시도 현재 이를 명확하게 안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서울 시민이 아니면 수도권 도시철도 경로우대를 받을 수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서울에 사는 사람은 서울시가 발급하는 상시 우대카드를 사용할 수 있고, 다른 지역에서 방문한 경로우대자는 역사에서 1회용 우대용 교통카드를 발급받아 이용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수도권에서 사용되는 1회용 교통카드는 보증금 500원을 내고 발급받은 뒤 목적지에서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받는 구조입니다. 인천교통공사도 만 65세 이상 경로우대자가 출발역에서 신분증을 인식시키고 보증금 500원을 넣어 우대용 교통카드를 발급받은 뒤 도착역에서 보증금을 환불받는 방법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청주에 산다는 이유로 서울·수도권 도시철도 경로우대를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신분증을 가지고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1회용 우대권은 하루 자유이용권이 아니다

    여기서 많이 헷갈리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1회용입니다.

    이것은 오늘 하루에 딱 한 번만 경로우대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반대로 카드 한 장으로 하루 종일 몇 번이고 타고 내릴 수 있다는 뜻도 아닙니다.

    한 번의 승차 여정에 사용하는 승차권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가장 쉽습니다.

    예를 들어 청주에서 서울역에 도착한 뒤 종로3가까지 지하철을 탄다고 하겠습니다.

    서울역에서 우대용 1회권을 발급받아 개찰구를 통과하고, 지하철 노선 안에서 정상적으로 환승한 뒤 종로3가역에서 개찰구 밖으로 나오면 그 승차는 끝납니다.

    점심을 먹고 다시 종로3가역에서 서울역으로 돌아온다면 새로 발급받아야 합니다.

    왕복이라고 해서 처음 받은 카드 한 장을 계속 가지고 다니는 방식이 아닙니다.

    하루에 세 번 서로 독립된 이동을 한다면 필요할 때마다 다시 발급받는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인천교통공사도 우대용 교통카드를 출발역에서 발급하고 도착역에서 보증금을 환불받는 방식으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1회용과 1일권은 전혀 다른 말입니다.

    서울 어르신 카드 한 장으로 전국을 다니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또 하나 구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서울시에서 발급받은 우대용 교통카드가 있다고 해서 그 카드 자체가 전국 모든 도시의 지하철과 버스를 무료로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서울시의 우대용 교통카드는 수도권 도시철도 무임승차 대상자 가운데 서울 거주자에게 발급하는 카드입니다.

    부산이나 광주, 대전에 가면 그 지역의 승차권 체계에 따라 이용하면 됩니다.

    즉 중요한 것은 내 카드가 전국에서 통하느냐보다 내가 그 지역의 경로우대 대상이고, 그곳에서는 어떤 우대권을 받아야 하느냐입니다.

    이 차이를 알아두면 여행이 훨씬 간단해집니다.

    인천에서는 신분증과 보증금 500원을 기억한다

    인천교통공사는 만 65세 이상을 우대용 교통카드 적용대상으로 안내합니다.

    출발역의 교통카드 발매기에서 신분증을 인식시키고 보증금 500원을 넣으면 우대용 교통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도착한 뒤 카드를 보증금 환급기에 넣으면 500원을 돌려받습니다.

    여기서도 65세 이상이라는 자격과 인천 주민에게 발급되는 상시카드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다른 지역에서 방문했다면 상시카드를 새로 만들 생각부터 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행 중에는 신분증을 가지고 1회용 우대권 이용방법을 확인하는 것이 간단합니다.

    부산에서는 만 65세 이상에게 우대권을 발급한다

    부산교통공사는 현재 도시철도에서 만 65세 이상 경로우대자에게 무임 우대권을 발급한다고 안내합니다.

    부산 역시 일반 승객이 사용하는 QR 승차권과 경로우대자의 우대권 체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지역에서 부산을 방문했다고 해서 평소 사용하던 어르신 교통카드가 부산에서 그대로 작동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편이 안전합니다.

    자신의 연령을 확인할 수 있는 신분증을 챙기고 부산 도시철도의 우대권을 이용하면 됩니다.

    여행할 때는 카드의 출신지역보다 현지의 발권방법을 확인하는 습관이 더 유용합니다.

    광주에서는 우대권을 이용한다

    광주교통공사는 만 65세 이상 경로자를 우대권 대상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대권은 토큰형이며 발급 당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일반 보통권도 한 번의 이용을 전제로 하고 있고, 우대권 역시 하루 무제한 이용권과는 다른 승차권입니다.

    신분증을 이용해 우대권을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광주교통공사는 주민등록증뿐 아니라 운전면허증 등을 우대권 발매기에서 인식할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변화도 예정되어 있습니다.

    광주교통공사는 모바일 신분증을 활용한 교통약자 모바일 승차권을 2026년 10월 1일부터 시행할 예정이라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글의 확인일인 9월 22일에는 아직 시행 전입니다.

    이런 사례 때문에 교통정보는 오래된 블로그 글보다 여행 직전에 운영기관의 현재 안내를 한 번 더 확인하는 편이 좋습니다.

    대전도 만 65세 이상이 우대권 대상이다

    대전교통공사 역시 만 65세 이상 노인을 우대권 이용대상으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지역 주민에게 발급하는 장기 교통카드와 방문객이 이용하는 우대권을 같은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청주에 사는 사람이 대전에 갔다고 해서 대전시민이 아니니 경로우대를 못 받는다고 단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역에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우대권 이용방법을 확인하면 됩니다.

    대구에서는 65세라는 숫자를 그대로 적용하면 안 된다

    대구는 다른 도시와 함께 묶어 기억하면 오히려 틀리기 쉽습니다.

    대구의 어르신 무임교통제도는 연령을 단계적으로 조정하고 있습니다.

    공식 조례의 연도별 기준을 보면 2026년은 도시철도·광역철도 만 68세 이상, 시내버스·수요응답형 교통은 만 72세 이상입니다. 2028년에는 두 기준 모두 만 70세 이상으로 맞춰집니다.

    그러므로 만 66세인 사람이 서울에서 도시철도 경로우대를 이용했다고 해서 대구에서도 같은 조건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대구에서는 여행하는 해의 연령기준을 확인해야 합니다.

    이 사례 하나만 봐도 65세 이상이면 전국 지하철이 모두 무료라고 한 문장으로 설명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분명합니다.

    서울 사람이 청주에 오면 버스도 무료일까

    이번에는 반대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서울에 사는 만 65세 이상 사람이 청주에 왔습니다.

    서울에서 사용하던 어르신 우대교통카드가 있으니 청주 시내버스도 무료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도시철도 경로우대와 시내버스의 어르신 지원은 같은 제도가 아닙니다.

    시내버스는 전국의 만 65세 이상에게 일률적으로 무료가 되는 교통수단이 아닙니다.

    지방자치단체가 별도의 어르신 교통비 지원사업을 시행한다면 연령뿐 아니라 해당 지역의 주민등록 여부, 카드 발급, 이용횟수와 지원한도 등을 따로 정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청주 사람이 서울에 가서 수도권 도시철도 경로우대를 받는 것과 서울 사람이 청주에 와서 시내버스를 타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이것은 여행할 때 상당히 중요한 차이입니다.

    지하철에서 무료였다고 버스까지 무료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이 한 가지만 기억해도 실수를 많이 줄일 수 있습니다.

    KTX는 사는 곳보다 나이와 타는 날짜가 중요하다

    철도는 지역 버스보다 기준이 단순합니다.

    코레일은 현재 65세 이상 노인에게 운임의 30%를 할인하고 있습니다. 다만 토요일·일요일·공휴일에는 이 할인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통근열차는 50% 할인으로 안내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주민등록지가 아닙니다.

    청주에 사는 사람이 오송역에서 타든 서울역에서 타든, 부산 사람이 서울에서 타든 경로할인의 기본 판단은 나이와 이용하는 열차·날짜의 할인조건입니다.

    예매할 때는 승객 유형에서 경로를 선택하면 됩니다. 코레일은 결제 단계에서 할인이 자동 적용된다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와 코레일톡, 역의 자동발매기와 매표창구 등에서 승차권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특히 주말 여행에서는 주의해야 합니다.

    금요일에 토요일 승차권을 예매한다고 금요일 기준으로 할인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열차를 이용하는 날이 토요일·일요일·공휴일이면 경로 30% 할인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그러므로 여행날짜를 하루 조정할 수 있다면 평일 운임도 함께 비교해 볼 만합니다.

    비행기는 경로할인보다 최종가격을 비교한다

    항공은 철도와 또 다릅니다.

    예를 들어 아시아나항공은 현재 국내선에서 만 65세 이상 경로우대자에게 정상운임의 10% 할인을 적용합니다.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여권 등 연령을 확인할 수 있는 서류가 필요하며 일부 공동운항편은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정상운임의 10%라는 말을 놓치면 안 됩니다.

    항공권에는 정상운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날짜와 시간대에 따라 일반 할인운임이나 특가운임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경로우대를 적용한 항공권보다 일반 할인항공권이 더 저렴한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비행기표를 살 때는 경로할인 버튼부터 누르기보다 같은 항공편의 실제 최종 결제금액을 비교하는 것이 낫습니다.

    경로할인이 있으니 이것이 가장 싸겠지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국제선도 국내 도시철도처럼 65세 이상 전국 공통 경로할인이 적용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용하려는 항공사의 실제 운임조건을 확인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인천공항에서는 70세를 기억한다

    비행기표와 별도로 공항에서 받을 수 있는 편의가 있습니다.

    인천국제공항은 현재 만 70세 이상 고령자를 교통약자 출국 우대서비스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증빙자료는 여권입니다.

    여기서는 65세가 아니라 70세가 기준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 서비스는 항공권을 할인해 주는 제도가 아닙니다.

    출국할 때 교통약자 우대출구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공항 이용편의입니다.

    따라서 항공료 할인과 공항에서 받는 우대서비스도 따로 생각해야 합니다.

    여객선은 전국 20% 할인이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여객선은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을 때 특히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65세 이상이면 연안여객선 20% 할인이라고 정리된 글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노인복지법 제26조는 65세 이상 경로우대의 근거를 두고 있으면서도 민간사업자에게는 요금 할인을 권유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모든 민간 교통수단에 동일한 할인율을 강제하는 조항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여객선은 항로와 선사, 지자체 지원제도에 따라 실제 부담액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특히 경로할인과 도서민 지원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섬 주민에게 제공되는 운임지원이 있다고 해서 다른 지역에서 여행 온 65세 이상 승객에게 똑같은 가격이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동차를 배에 싣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에게 적용되는 할인조건이 차량 선적료까지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각각 확인해야 합니다.

    따라서 배를 이용할 때는 65세니까 몇 퍼센트인가보다 내가 타려는 항로와 선사의 해당 날짜 운임에서 경로우대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확인되지 않은 전국 공통 할인율을 믿고 여행경비를 계산하는 것보다 훨씬 안전합니다.

    택시는 사는 지역의 제도를 찾아본다

    일반택시 역시 만 65세가 됐다고 전국에서 자동으로 요금이 할인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 지방자치단체에 따라 어르신 택시비 지원, 교통바우처, 행복택시나 마을택시 같은 사업을 운영하는 곳이 있습니다.

    이런 제도는 도시철도 경로우대와 성격이 다릅니다.

    대부분 확인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거주지역입니다.

    어느 지역에서 택시지원사업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해서 다른 지역 주민도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택시와 지역 버스의 혜택을 알아볼 때는 65세 교통할인이라고 검색하기보다 사는 시·군·구 이름과 어르신 교통지원을 함께 확인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부부가 함께 여행해도 자격은 각각 확인한다

    두 사람이 함께 여행할 때 한 사람만 만 65세 이상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경로우대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연령과 자격을 확인합니다.

    한 사람이 경로우대 대상이라고 해서 동행한 배우자까지 자동으로 같은 할인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우대용 교통카드 역시 원칙적으로 해당 자격을 가진 본인이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부부가 함께 승차권을 구입할 때도 두 사람의 승객 유형을 각각 선택하는 것이 맞습니다.

    여러 도시를 여행한다면 신분증 하나가 중요해진다

    청주에서 출발해 서울을 보고, 다음 날 부산으로 내려가고, 다시 광주를 여행한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서울에서 받은 1회용 우대권을 부산까지 들고 갈 필요가 없습니다.

    부산에서 받은 우대권을 광주에서 사용하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각 도시의 승차권 체계에 맞춰 새로 발급받으면 됩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준비물이 연령을 확인할 수 있는 신분증입니다.

    인천은 신분증을 인식시켜 우대용 교통카드를 발급하는 방법을 공식 안내하고 있고, 광주 역시 신분증을 활용한 우대권 발급체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만 들고 여행하려는 경우에는 더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바일 신분증이나 모바일 우대승차권을 지원하는 범위가 지역마다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광주처럼 모바일 승차권 도입을 준비하는 지역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지역으로 갈 때는 아직 실물 신분증을 함께 챙기는 편이 가장 안전합니다.

    여행 전에는 세 가지를 묻는다

    65세 이상 교통혜택은 외울 것이 많은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는 세 가지 질문으로 상당 부분 정리됩니다.

    첫째, 이 혜택은 나이 때문에 받는 것인가.

    도시철도의 경로우대나 철도의 경로할인처럼 연령이 핵심인 제도가 있습니다.

    둘째, 그 지역 주민에게 주는 지원인가.

    시내버스와 택시, 지방자치단체의 별도 교통지원에서는 주민등록지가 중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셋째, 운송회사가 정한 할인인가.

    항공과 여객선처럼 회사·노선·운임종류를 확인해야 하는 교통수단이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구분하면 여행지에서 생기는 질문 대부분을 풀 수 있습니다.

    청주 사람이 서울에 가도 수도권 도시철도의 경로우대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에서 받은 우대카드 한 장이 전국의 모든 버스와 지하철을 무료로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서울과 인천에서는 방문객이 1회용 우대교통카드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고, 부산·광주·대전에도 만 65세 이상 경로우대자를 위한 우대권 제도가 있습니다.

    대구처럼 연령기준 자체가 다른 지역도 있습니다. 2026년 대구의 기준은 도시철도·광역철도 68세 이상, 시내버스 등은 72세 이상입니다.

    KTX 등 코레일 경로할인은 지역주민 여부보다 연령과 이용일을 봅니다. 65세 이상은 운임 30% 할인이지만 토요일·일요일·공휴일은 제외됩니다.

    항공은 항공사별 운임을 비교해야 하고, 여객선은 선사와 항로를 확인해야 합니다. 버스와 택시의 별도 지원은 사는 지역의 제도를 먼저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결국 65세가 됐을 때 기억해야 할 것은 어디서나 무료라는 한 문장이 아닙니다.

    나이를 보는 혜택인지, 사는 곳을 보는 혜택인지, 운송회사가 정하는 혜택인지.

    이 세 가지만 구분해도 받을 수 있는 혜택은 놓치지 않고, 적용되지 않는 혜택 때문에 여행지에서 당황하는 일도 훨씬 줄어듭니다.

    그리고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날에는 평소 쓰는 교통카드와 함께 신분증을 챙겨 두는 것이 가장 간단하고 확실한 준비입니다.

    최종 확인일: 2026년 9월 22일

  • 65세 이상 운전면허 갱신, 70세.75세부터 무엇이 달라질까

    65세 이상 운전면허 갱신, 70세.75세부터 무엇이 달라질까

    운전면허증은 평소에는 자세히 들여다볼 일이 많지 않습니다.

    지갑 속에 넣어 두었다가 신분증이 필요할 때 꺼내는 정도입니다. 오랫동안 운전해 온 사람이라면 면허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 지냅니다.

    그런데 적성검사나 갱신할 때가 다가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65세부터 달라진다는 말이 있고, 70세가 넘으면 적성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설명도 나옵니다. 75세부터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1종과 2종도 다르고, 적성검사와 갱신이라는 말도 섞여 있습니다.

    건강검진을 받았으면 신체검사를 다시 받아야 하는지, 안경을 쓰는 사람은 어떻게 하는지, 동네 병원에서도 신체검사를 받을 수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주민등록지에 있는 경찰서로 가야 하는지, 다른 지역에서도 처리할 수 있는지도 선뜻 알기 어렵습니다.

    2026년부터는 적성검사와 갱신기간을 정하는 방식도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경우만 떼어 놓으면 그렇게 복잡하지 않습니다.

    먼저 운전면허증을 꺼내 1종인지 2종인지 확인합니다.

    그다음 자신의 나이가 65세 미만인지, 65~69세인지, 70~74세인지, 75세 이상인지 봅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적성검사 또는 갱신기간을 확인합니다.

    이 세 가지에서 시작하면 됩니다.

    먼저 1종과 2종을 확인한다

    1종 운전면허 소지자는 정기 적성검사를 받습니다.

    2종 운전면허 소지자는 기본적으로 면허갱신 대상입니다.

    다만 70세가 되면 달라집니다.

    70세 이상 2종 운전면허 소지자는 갱신기간에 적성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이것만 기억해도 됩니다.

    1종은 적성검사.

    70세 미만 2종은 일반 갱신.

    70세 이상 2종은 적성검사.

    여기에 자신의 나이를 대입하면 필요한 절차가 훨씬 간단해집니다.

    65세부터 달라지는 것

    65세에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검사 종류보다 주기입니다.

    2011년 12월 9일 이후 기준으로 65세 이상 운전자는 1종과 2종 모두 5년 주기가 적용됩니다.

    여기서 오해하기 쉬운 것이 고령운전자 교통안전교육입니다.

    65세 이상 운전면허 소지자를 위한 고령운전자 교통안전교육이 있지만, 65세부터 74세까지는 희망자를 대상으로 하는 권장교육입니다.

    75세 이상 적성검사 대상자의 의무교육과는 다릅니다.

    65~69세 1종

    1종이므로 적성검사를 받습니다.

    65세 이상이므로 5년 주기가 적용됩니다.

    1종 → 적성검사 → 5년 주기

    입니다.

    65~69세 2종

    2종은 아직 일반 면허갱신 대상입니다.

    다만 65세 이상이므로 5년 주기가 적용됩니다.

    2종 → 일반 갱신 → 5년 주기

    입니다.

    따라서 65세의 핵심은 복잡한 검사가 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갱신주기가 5년이 된다는 것입니다.

    70세부터 달라지는 것

    70세에서는 2종 면허 소지자가 특히 주의해야 합니다.

    69세까지 일반 갱신을 해왔더라도 70세 이상이 되면 2종도 적성검사 대상이 됩니다.

    70~74세 1종

    1종은 계속 적성검사를 받습니다.

    65세 이상이므로 5년 주기가 적용됩니다.

    1종 → 적성검사 → 5년 주기

    입니다.

    70~74세 2종

    2종은 여기서 절차가 달라집니다.

    69세까지는 일반 갱신이지만 70세 이상부터는 적성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2종 → 적성검사 → 5년 주기

    입니다.

    다만 아직 75세가 되지 않았다면 75세 이상 적성검사 대상자에게 적용되는 고령운전자 의무교육 대상은 아닙니다.

    70세의 핵심은 2종도 적성검사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75세부터 달라지는 것

    75세부터는 주기가 다시 짧아집니다.

    2019년 1월 1일 이후 75세 이상 운전자는 1종과 2종에 관계없이 3년 주기가 적용됩니다.

    그리고 75세 이상 적성검사 대상자는 고령운전자 교통안전교육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합니다.

    75세 이상 1종

    적성검사 → 3년 주기 → 고령운전자 교통안전교육

    이라는 흐름으로 보면 됩니다.

    75세 이상 2종

    2종도 이미 70세부터 적성검사 대상이므로 75세 이상에서는 마찬가지로 3년 주기와 고령운전자 의무교육이 적용됩니다.

    75세 이상에서는 인지기능과 관련된 절차도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검사 결과가 치매·경도인지장애 또는 인지저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치매진단서나 소견서 등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모든 75세 이상 운전자가 똑같은 진단서를 준비하는 것은 아니므로 자신의 검사 결과에 따라 필요한 서류를 확인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세 숫자로 줄이면 간단합니다.

    65세 → 5년 주기

    70세 → 2종도 적성검사

    75세 → 3년 주기와 고령운전자 의무교육

    건강검진을 받았다면 신체검사를 또 받아야 할까

    적성검사를 받는다고 해서 무조건 운전면허시험장 신체검사실부터 찾아갈 필요는 없습니다.

    최근 국가건강검진을 받았다면 그 결과를 이용할 수 있는지 먼저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검진 결과를 이용할 수 있으며, 적성검사에서는 2년 이내 건강검진 결과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시험장이나 경찰서를 방문해 행정정보 공동이용에 동의하면 건강검진 결과를 확인해 신체검사를 대신할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만 건강검진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적성검사를 통과하는 것은 아닙니다.

    검진 결과가 운전면허에 필요한 신체기준을 충족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면허가 같은 것은 아닙니다.

    1종 대형·특수면허는 건강검진 결과나 진단서로 신체검사를 대체하는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따라서 먼저 자신의 면허 종류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안경을 써도 시력검사를 받을 수 있다

    안경을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시력이 가장 궁금할 수 있습니다.

    운전면허 적성검사의 시력 기준에는 교정시력이 포함됩니다.

    따라서 안경이나 콘택트렌즈를 사용하는 사람은 이를 착용한 상태에서 기준을 충족하면 됩니다.

    1종은 두 눈을 동시에 뜨고 잰 시력이 0.8 이상이고 각각의 눈이 0.5 이상이어야 합니다.

    2종은 두 눈을 동시에 뜨고 잰 시력이 0.5 이상이어야 합니다.

    한쪽 눈을 보지 못하는 경우에는 별도의 시력과 시야 기준이 적용되므로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평소 안경을 쓴다면 맨눈 시력이 낮다는 이유로 먼저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적성검사를 받을 때 평소 운전하면서 사용하는 안경이나 콘택트렌즈를 착용하면 됩니다.

    일반 병원에서도 신체검사를 받을 수 있다

    건강검진 결과를 이용할 수 없다면 반드시 운전면허시험장 신체검사실로 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반 병·의원에서도 운전면허 적성검사용 신체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가까운 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고 신체검사서를 발급받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모든 병·의원이 실제로 이 업무를 취급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방문하기 전에 전화해서 “운전면허 적성검사용 신체검사서 발급이 됩니까?”라고 확인하는 편이 좋습니다.

    가능하다면 비용과 준비물도 함께 물어보면 됩니다.

    병원 신체검사 비용은 병원마다 다릅니다.

    결국 적성검사 대상자에게는 크게 세 가지 길이 있습니다.

    최근 2년 이내 건강검진 결과를 활용하거나, 신체검사장이 있는 운전면허시험장에서 검사받거나, 가까운 병·의원에서 운전면허용 신체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장 신체검사에서 확인하는 것

    운전면허 신체검사는 일반 종합건강검진과 다릅니다.

    혈액을 뽑고 엑스레이를 촬영하는 검사가 아니라 운전에 필요한 신체조건을 확인하는 검사입니다.

    정기 적성검사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시력입니다.

    면허 종류와 대상자의 상태에 따라 필요한 기준과 제출서류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체검사”라는 말만 듣고 종합건강검진을 새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운전면허시험장 입주 신체검사장을 이용할 경우 현재 신체검사료는 1종 대형·특수 8천 원, 기타 면허 7천 원입니다.

    일반 병·의원을 이용하면 병원별 의료수가에 따라 비용이 달라집니다.

    또 모든 운전면허시험장에 신체검사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문경·강릉·태백·광양·충주·춘천 운전면허시험장에는 신체검사장이 없습니다.

    이 시험장을 이용하면서 별도 신체검사가 필요한 사람은 가까운 병원을 이용해야 합니다.

    사진은 규격이 같고 매수가 다르다

    사진 때문에 헷갈릴 필요는 없습니다.

    갱신과 적성검사에 사용하는 사진의 규격은 같습니다.

    최근 6개월 이내 촬영한 3.5×4.5cm 여권용 컬러사진입니다.

    다른 것은 필요한 매수입니다.

    70세 미만 2종 일반 갱신 → 1매

    1종 및 70세 이상 2종 적성검사 → 2매

    입니다.

    온라인 신청 등 신청방식에 따라 사진을 제출하는 방식은 달라질 수 있으므로 인터넷으로 신청한다면 화면의 안내에 따라 준비하면 됩니다.

    수수료도 미리 확인한다

    현재 70세 미만 2종 일반 갱신 수수료는 일반 운전면허증 1만 원, 모바일IC 운전면허증 1만5천 원입니다.

    1종과 70세 이상 2종 적성검사는 일반 운전면허증 1만6천 원, 모바일IC 운전면허증 2만1천 원입니다.

    적성검사를 위해 별도의 신체검사를 받는다면 신체검사 비용은 따로 들어갑니다.

    따라서 적성검사 대상자는 면허증 발급 수수료와 신체검사 비용을 구분해서 생각하면 됩니다.

    주민등록지와 상관없이 신청할 수 있다

    운전면허 갱신을 앞두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주민등록 주소지에 있는 경찰서나 운전면허시험장으로 가야 하나?”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적성검사와 면허갱신은 전국 운전면허시험장과 해당 업무를 처리하는 경찰서 민원실에서 신청할 수 있습니다.

    주민등록지가 청주라고 해서 반드시 청주에서 처리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서울에 머물고 있다면 서울에서, 다른 지역에 장기간 머물고 있다면 그 지역에서 처리할 수 있습니다.

    직장이나 자녀 집 가까이에 있는 시험장을 이용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다만 전국의 모든 경찰서가 이 업무를 처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강남경찰서는 적성검사와 면허갱신 업무를 하지 않아 인접한 강남운전면허시험장을 이용해야 합니다.

    따라서 가까운 경찰서를 이용하려 한다면 출발하기 전에 적성검사나 면허갱신 업무를 처리하는지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시험장에서 신체검사까지 받을 생각이라면 해당 시험장에 신체검사장이 있는지도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주민등록지와 관계없이 신청할 수 있다는 것과 어느 곳에서나 모든 절차를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온라인으로 신청할 수 있는 경우

    직접 방문하지 않고 신청할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70세 미만 2종 일반 갱신은 인터넷 신청이 가능합니다.

    1종 보통과 70세 이상 2종 적성검사도 인터넷 신청이 가능한 경우가 있습니다.

    건강검진 결과나 진단서 등을 이용해 신체검사 요건을 충족할 수 있는지도 함께 확인하면 됩니다.

    대리접수도 가능한 경우가 있습니다.

    공단은 2종 갱신의 대리접수를 허용하고 있으며, 1종 보통 및 70세 이상 2종도 건강검진 결과나 진단서 등으로 신체검사서를 갈음하는 경우 필요한 서류와 위임장을 갖춰 대리접수할 수 있다고 안내합니다.

    다만 면허증 수령은 본인이 해야 합니다.

    직접 방문하기 어렵다면 무조건 포기하거나 기간을 넘기기보다 온라인 신청이나 대리접수가 가능한지 먼저 알아보는 편이 좋습니다.

    2026년부터 갱신기간 계산이 달라졌다

    2026년부터 운전면허 적성검사와 갱신기간을 계산하는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기본적으로 10년, 5년 또는 3년이 되는 날이 속하는 해의 생일을 기준으로 전후 각각 6개월 이내가 갱신기간이 됩니다.

    예전처럼 해당 연도의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다만 2026년 1월 1일 이전에 이미 갱신기간을 부여받은 사람에게는 경과규정이 있습니다.

    기존에 부여받은 갱신기간을 이용할 수 있는 경우가 있으므로 다른 사람의 사례를 보고 자신의 날짜를 계산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안전운전 통합민원 마이페이지나 경찰청 교통민원24에서 자신에게 실제로 적용된 적성검사·갱신기간을 직접 확인하는 것입니다.

    기간을 넘기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적성검사나 갱신기간을 놓쳤을 때의 결과도 면허 종류와 나이에 따라 다릅니다.

    1종은 과태료 3만 원

    1종 운전면허 소지자가 정해진 기간에 적성검사를 받지 않으면 과태료 3만 원이 부과됩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다음입니다.

    정기 적성검사를 받지 않은 채 1년이 지나면 운전면허가 취소됩니다.

    기간을 놓쳤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대로 두지 말고 바로 처리해야 합니다.

    70세 미만 2종은 과태료 2만 원

    정기 적성검사 대상이 아닌 2종 면허 소지자가 갱신기간 안에 면허증을 갱신하지 않으면 과태료 2만 원이 부과됩니다.

    1종 적성검사와 같은 방식으로 생각해서도 안 되고, 반대로 “2종이니까 갱신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정해진 기간에 갱신해야 합니다.

    70세 이상 2종은 과태료 3만 원

    70세 이상 2종은 적성검사 대상입니다.

    정해진 기간에 적성검사를 받지 않으면 과태료 3만 원이 부과됩니다.

    그리고 적성검사를 받지 않은 채 1년이 지나면 면허가 취소됩니다.

    같은 2종이라도 70세를 기준으로 달라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불가피한 사정이 있다면 연기할 수 있다

    갱신기간에 입원해 있거나 해외에 체류하거나 군복무, 법정구속 등 불가피한 사정으로 적성검사나 갱신을 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사전에 적성검사나 갱신을 받거나 연기를 신청할 수 있는 제도가 있습니다.

    연기 사유가 사라진 뒤에는 3개월 이내에 처리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질병으로 입원했다면 퇴원일부터, 해외에 체류했다면 귀국일부터, 군복무 중이었다면 전역일부터 3개월 이내입니다.

    중요한 것은 아무 조치 없이 기간을 넘기지 않는 것입니다.

    면허증부터 꺼내 보면 길이 보인다

    운전면허 갱신이 복잡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은 정보까지 한꺼번에 보기 때문입니다.

    68세 2종 운전자가 75세 이상 운전자의 절차까지 모두 외울 필요는 없습니다.

    72세 2종 운전자가 70세 미만의 일반 갱신 방법만 보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의 경험부터 찾기보다 자신의 조건부터 확인하는 것이 빠릅니다.

    나는 몇 살인가.

    1종인가, 2종인가.

    내 적성검사 또는 갱신기간은 언제인가.

    여기에서 시작합니다.

    65세가 되면 5년 주기를 확인합니다.

    70세가 되면 2종도 적성검사 대상이라는 점을 확인합니다.

    75세가 되면 3년 주기와 고령운전자 의무교육을 확인합니다.

    적성검사 대상이라면 최근 2년 이내 건강검진 결과를 이용할 수 있는지 살펴봅니다.

    건강검진 결과를 이용할 수 없다면 시험장 신체검사실이나 일반 병·의원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안경을 쓴다면 교정시력이 인정됩니다.

    주민등록지 때문에 원래 주소지까지 갈 필요도 없습니다.

    전국에서 자신이 이용하기 편한 운전면허시험장이나 해당 업무를 처리하는 경찰서 민원실을 찾으면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적성검사·갱신기간을 넘기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니 가장 먼저 할 일은 병원을 예약하는 것도, 사진을 찍는 것도 아닙니다.

    운전면허증을 한번 꺼내 보는 것입니다.

    면허 종류를 확인하고 자신의 나이에 해당하는 기준을 찾은 다음 정확한 적성검사 또는 갱신기간을 조회하면 됩니다.

    65, 70, 75.

    이 세 숫자와 자신의 면허 종류를 먼저 확인하면 복잡하게 보였던 운전면허 갱신도 훨씬 분명해집니다.

  • 하루 종일 바빴는데 왜 한 일이 없는 것 같을까

    하루 종일 바빴는데 왜 한 일이 없는 것 같을까

    아침에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오늘 할 일을 생각해봅니다.

    특별한 약속은 없습니다. 어디 멀리 갈 일도 없고 시간을 맞춰 만나야 할 사람도 없습니다. 달력을 봐도 오늘 칸은 비어 있습니다.

    이런 날은 마음이 조금 느긋합니다. 오늘은 별일 없겠구나 싶습니다.

    커피잔을 들고 베란다 쪽으로 갔다가 수납장 문을 엽니다. 건전지를 찾으려던 참입니다. 안쪽에 공구함이 보입니다.

    언제 한번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공구함입니다. 꺼내 바닥에 내려놓고 뚜껑을 여니 드라이버와 펜치가 뒤섞여 있고, 줄자 밑에는 전선 조각이 끼어 있습니다. 작은 통에는 크기가 다른 나사와 못이 한데 들어 있습니다.

    하나씩 꺼내놓습니다. 쓸 만한 나사는 따로 모으고 굳어버린 접착제는 버립니다. 거의 다 쓴 절연테이프도 치웁니다.

    그러다 밑바닥에서 작은 드라이버 하나를 발견합니다. 한동안 찾았던 것입니다.

    “여기 있었네.”

    드라이버를 손에 들자 며칠 전부터 흔들리던 책상 서랍 손잡이가 생각납니다. 공구함을 열어둔 채 책상으로 갑니다. 나사 하나를 조이고 손잡이를 몇 번 당겨봅니다. 이제 흔들리지 않습니다.

    드라이버를 내려놓으려는데 이번에는 방문 아래쪽 나사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것도 한번 조입니다.

    건전지를 찾으려고 수납장 문을 열었을 뿐인데 공구함을 정리하고, 서랍 손잡이를 고치고, 방문 나사까지 조였습니다.

    다시 공구함 앞으로 돌아왔을 때 휴대전화가 울립니다. 전화를 받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십여 분이 지나 있습니다.

    통화를 마치고 시계를 보다가 오전에 처리하려던 은행 일이 생각납니다. 지금 나가야겠습니다.

    공구함을 대충 마무리해 넣고 옷을 갈아입습니다. 은행에서 일을 마치고 나오니 점심때가 가까워졌습니다. 집으로 바로 갈까 하다가 며칠 전 택배로 받은 물건 하나를 반품해야 한다는 것이 생각납니다.

    어차피 나온 김입니다. 반품을 맡기고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릅니다. 우유가 떨어졌고 과일도 조금 사야 합니다. 몇 가지만 사려고 들어갔는데 매장을 돌다 보니 필요한 것이 하나씩 더 생각납니다.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났습니다.

    집에 돌아와 산 물건을 제자리에 넣고 늦은 점심을 먹습니다. 잠깐 앉아 있으려는데 아침에 열어놓았던 수납장이 보입니다. 공구함을 제자리에 넣고 바닥에 떨어진 작은 나사 하나도 주워 담습니다.

    이제 좀 쉬어야겠습니다.

    그런데 오후에도 일은 하나씩 생깁니다. 아침에 온 문자에 답하고, 확인할 것이 있어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다 다른 연락 하나를 처리합니다. 집 앞에 잠깐 나갔다 돌아오고 미뤄두었던 전화 한 통도 합니다.

    큰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시계는 자꾸 앞으로 갑니다.

    저녁을 먹고 소파에 앉습니다. 아침부터 가만히 있었던 시간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루를 떠올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오늘 내가 뭘 했지.

    한 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공구함을 정리했고 손잡이도 고쳤습니다. 은행에 다녀왔고 반품할 물건도 보냈습니다. 마트에도 다녀왔습니다. 전화도 했고 필요한 연락도 주고받았습니다.

    하나씩 적으면 제법 됩니다.

    그런데 하루 전체를 손에 올려놓고 보면 남아 있는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분명 바빴는데 무엇을 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루 종일 바빴는데 왜 한 일이 없는 것 같을까.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시간이 있다

    오전에 책을 두 시간 읽었다면 그 시간을 설명하기는 쉽습니다. “책을 읽었습니다”라고 하면 됩니다. 친구를 만나 점심을 먹었다면 “친구를 만났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산에 다녀왔다면 그날은 산에 다녀온 날로 남습니다.

    한 가지 일이 어느 정도 시간을 차지하면 그 시간에는 이름이 붙습니다. 나중에 하루를 떠올릴 때도 비교적 선명합니다.

    오늘 오전은 다릅니다.

    건전지를 찾고, 공구함을 열고, 드라이버를 발견하고, 손잡이를 조였습니다. 전화를 받고 옷을 갈아입고 은행으로 갔습니다. 기다렸다가 일을 처리했고, 반품을 맡긴 뒤 마트에 들렀습니다.

    하나하나는 분명한 행동입니다. 어느 것도 하지 않은 시간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것들을 한꺼번에 부를 만한 말이 없습니다.

    ‘공구함을 정리한 오전’이라고 하기에는 다른 일을 너무 많이 했고, ‘은행에 다녀온 오전’이라고 하기에는 은행보다 그 앞뒤에 쓴 시간이 더 많습니다. ‘볼일을 본 오전’이라고 하면 너무 많은 것이 한꺼번에 뭉개집니다.

    시간은 분명 지나갔는데 그 시간에 붙일 이름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시간은 기억에서도 쉽게 흐려집니다. 오래 한 가지에 머문 시간은 덩어리로 남지만, 십 분과 이십 분씩 여러 일 사이를 옮겨 다닌 시간은 잘게 흩어집니다.

    그래서 두세 시간이 지나 시계를 보면 놀랄 때가 있습니다.

    벌써 이렇게 됐나.

    시간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찾고, 조이고, 기다리고, 이동하고, 확인하고, 정리하는 사이에 나뉘어 들어갔을 뿐입니다.

    하루 종일 바빴는데 무엇을 했는지 선명하지 않은 날에는 이런 이름 없는 시간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이 아니라, 여러 곳에 흩어져 있어서 하나의 이름으로 기억되지 않는 시간입니다.

    작은 일은 혼자 오지 않는다

    아침에 하려던 일은 건전지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공구함을 정리할 계획도, 서랍 손잡이를 고칠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를 건드리자 옆에 있던 일이 따라왔습니다.

    생활 속의 작은 일은 자주 이런 식으로 이어집니다. 마트에 가려고 냉장고를 열었는데 우유만 없는 것이 아닙니다. 과일도 얼마 남지 않았고 다른 필요한 물건이 떠오릅니다.

    택배 하나를 반품하러 나갔다가 어차피 나온 김에 다른 볼일을 봅니다. 휴대전화로 한 가지를 확인하다가 답하지 않은 메시지를 발견하고, 답을 보내고 나면 다른 연락 하나가 생각납니다.

    처음에는 한 가지였습니다. 끝날 때에는 서너 가지가 되어 있습니다.

    그중 어느 것도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더 쉽게 끼어듭니다.

    한 시간씩 준비해야 하는 일이라면 오늘 할지 내일 할지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오 분이면 될 것 같은 일은 그냥 시작합니다. 그 오 분이 십 분이 되고, 거기에서 또 다른 십 분이 나옵니다.

    시간을 쓰는 것은 일 자체뿐만이 아닙니다.

    은행에서 실제로 일을 처리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아도 집을 나설 준비를 하고 이동하고 순서를 기다렸다가 다시 돌아오는 데에는 훨씬 긴 시간이 듭니다. 반품 하나도 상자를 챙겨 들고 맡길 곳까지 가야 합니다. 마트에서 우유 하나를 사는 일에도 오가는 시간이 붙습니다.

    우리는 나중에 하루를 떠올릴 때 가운데 있는 일만 기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은행 일, 반품, 장보기라고만 기억합니다.

    하지만 하루가 실제로 사용된 곳은 그 사이까지 포함합니다.

    신발을 신고 문을 나서는 시간, 차를 세우고 걷는 시간, 순서를 기다리는 시간,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 어느 것 하나 오래 걸리지 않았는데 모아놓으면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짧은 일을 많이 한 날에는 실제로 사용한 시간과 기억에 남은 시간이 크게 달라집니다.

    오전에는 시간이 넉넉하다고 생각했는데 오후가 되면 마음이 바빠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큰일 하나가 하루를 차지한 것이 아니라 작은 일과 그 사이의 시간이 빈 곳으로 계속 들어온 것입니다.

    별일이 없었던 것이지, 한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해놓고 나면 원래 그랬던 것처럼 보이는 일이 있다

    아침의 공구함은 어수선했습니다. 필요한 드라이버 하나를 찾으려면 이것저것 들춰야 했고 나사와 못은 한 통 안에서 뒤섞여 있었습니다.

    정리를 끝내고 뚜껑을 닫아 수납장 안에 넣습니다.

    그 순간부터 공구함은 보이지 않습니다.

    며칠 뒤 다시 열었을 때는 필요한 것을 쉽게 찾을 것입니다. 아마 그때 오늘 아침에 들인 시간을 떠올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냥 공구함이 정돈되어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손잡이도 그렇습니다.

    흔들릴 때에는 서랍을 열 때마다 거슬렸습니다. 나사를 조이는 데에는 몇 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고치고 나니 더 이상 생각할 일이 없습니다.

    잘해놓았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습니다.

    생활에는 이런 일이 많습니다.

    하지 않으면 금세 티가 나는데 해놓으면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보이는 일입니다.

    떨어진 물건을 사다 놓고, 납부할 것을 제때 처리하고, 헐거워진 것을 조이고, 사용한 것을 제자리에 돌려놓습니다. 다음에 필요할 것을 미리 챙겨두기도 합니다.

    이런 일은 무언가를 새로 만들어놓기보다 불편이 생기지 않도록 합니다.

    어수선했던 것이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부족했던 것이 채워집니다. 신경 쓰이던 것이 더는 신경 쓰이지 않습니다.

    문제가 없어지는 것이 결과입니다.

    그래서 일을 잘 끝낼수록 흔적도 함께 사라집니다.

    반품하지 않은 상자는 현관에서 계속 보입니다. 흔들리는 손잡이는 잡을 때마다 느껴집니다. 우유가 떨어지면 냉장고를 열 때 바로 알게 됩니다.

    그런데 처리하고 나면 그것들이 사라집니다.

    문제가 사라지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쓴 시간까지 함께 보이지 않게 됩니다.

    이런 일로 하루를 보낸 저녁에는 보여줄 것이 별로 없습니다. 새로 만든 것도 없고 눈에 띄는 결과물도 없습니다.

    아침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달라지지 않도록 손을 쓴 것입니다.

    일은 끝내고 나면 무엇을 했는지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생활은 조금 다릅니다. 해놓은 것이 눈에 띄기보다, 해놓았기 때문에 별일 없이 다음 시간이 이어집니다.

    공구함은 닫히고, 손잡이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필요한 것은 다시 제자리에 있습니다.

    그 평범한 상태를 유지하는 데에도 사람의 시간이 들어갑니다.

    그 시간을 계산에서 자꾸 빼놓으면 꽤 많이 움직인 날에도 “오늘은 한 일이 없다”는 말이 나오게 됩니다.

    끝난 것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계속 보인다

    저녁이 되어 아침에 하려고 했던 것 가운데 하나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 생각납니다.

    급한 일은 아닙니다. 내일 해도 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한 가지가 마음에 걸립니다.

    오늘 끝낸 일들은 잘 떠오르지 않는데 하지 못한 것은 금세 떠오릅니다.

    공구함은 이미 수납장 안에 있습니다. 반품한 택배 상자도 없습니다. 은행에서 처리한 일은 더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끝난 일은 생활 속으로 들어가 모습을 감췄습니다.

    남은 일만 아직 앞에 서 있습니다.

    아침에 해야 할 것이 다섯 가지였고 그중 네 가지를 끝냈다고 해봅니다. 저녁에 눈앞에 남은 것은 하나입니다.

    그 하나만 보고 있으면 네 가지를 해낸 사람보다 한 가지를 하지 못한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더구나 생활에는 완전히 끝나는 일이 많지 않습니다.

    오늘 장을 봤다고 장보기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며칠 뒤에는 다시 필요한 것이 생깁니다. 집 안 한 곳을 정리하면 시간이 지나 다시 흐트러집니다. 고장 난 것을 하나 고쳐놓아도 언젠가는 다른 것을 손볼 일이 생깁니다.

    모든 것을 끝내놓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태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생활은 완성해놓고 진열하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계속 쓰고, 흐트러지고, 채우고, 다시 손보면서 이어집니다.

    그런데 하루만큼은 자꾸 완성품처럼 바라봅니다. 오늘 해야 할 것을 다 했는지 확인하고, 남은 것이 있으면 어딘가 덜 끝난 하루처럼 느낍니다.

    그 기준을 따라가면 하루는 좀처럼 완료되지 않습니다.

    내일 할 일이 남았다는 사실과 오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인데도 말입니다.

    바빴다는 것과 하루가 남는다는 것은 다르다

    하루 종일 볼일을 보고 돌아온 날이 있습니다.

    여기저기 이동하고 순서를 기다리고 필요한 것을 사고 연락할 사람에게 전화를 합니다. 집에 돌아오면 몸은 피곤합니다.

    분명 바빴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는 시간이 그냥 빠져나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반대인 날도 있습니다.

    오후에 친구를 만나 두어 시간 이야기를 나눈 날입니다. 한 일의 개수로 따지면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무엇을 했느냐고 물으면 대답은 금방 나옵니다.

    친구를 만났습니다.

    책을 오래 읽은 날도 그렇습니다. 동네를 천천히 걸었던 날도 그렇습니다.

    무엇을 많이 처리한 날은 아닌데 하루에는 모양이 있습니다.

    바빴다는 것과 하루가 채워졌다고 느끼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여러 곳을 오가며 잘게 쓴 세 시간보다 한 가지에 머문 한 시간이 더 길게 기억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빴던 날이 허전할 수 있고, 별일 없었던 날이 오히려 오래 남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루가 허전하면 할 일을 더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오늘 별로 한 것이 없는 것 같으니 내일은 좀 바쁘게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습니다. 미뤄둔 일을 찾아내고 일정을 채웁니다.

    하지만 이미 하루 종일 바빴는데도 허전했다면 일을 하나 더 넣는다고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일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작은 일 사이를 오가느라 어디에도 오래 머물지 못했던 하루였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한 가지 오래된 습관도 섞여 있습니다.

    우리는 하루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결과를 찾습니다.

    무엇을 끝냈는가. 무엇이 달라졌는가. 무엇을 남겼는가.

    해야 할 일이 분명한 시간에는 이런 질문이 필요합니다. 일을 맡았다면 끝내야 하고 약속한 것이 있다면 지켜야 합니다. 시작한 일을 어디까지 했는지 확인할 때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 자를 하루 전체에 대기 시작할 때 생깁니다.

    친구와 나눈 이야기는 무엇을 끝낸 시간이 아닙니다. 커피 한 잔을 천천히 마신 시간에도 결과는 없습니다. 잠깐 창밖을 보거나 동네를 걷는다고 눈에 보이는 무엇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런 시간을 모두 빈칸으로 처리할 수는 없습니다.

    공구함 정리를 거창한 성과라고 부를 필요도 없습니다. 마트에 다녀온 일을 훌륭한 하루의 증거로 만들 이유도 없습니다.

    평범한 일은 평범한 일인 채로 있으면 됩니다.

    다만 평범하다는 이유로 없었던 일처럼 지우지 않는 것입니다.

    하루에는 결과를 남기는 시간도 있고 생활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시간도 있습니다. 아무 결과 없이 그냥 지나가는 시간도 있습니다.

    그것들이 함께 하루를 만듭니다.

    그런데 결과가 남은 시간만 제대로 쓴 시간이라고 여기면 나머지는 기억에서 빠집니다.

    그때 하루는 실제보다 훨씬 작아집니다.

    내가 고른 삼십 분

    저녁을 먹고 밖으로 나갑니다.

    무엇을 사러 가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를 만나기로 한 것도 아닙니다.

    그냥 조금 걷고 싶습니다.

    낮에 몇 번이나 지나갔던 길을 이번에는 천천히 걷습니다. 가게 불빛이 하나둘 켜져 있고, 낮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작은 화분이 가게 앞에 놓여 있습니다.

    골목을 돌아 조금 더 걷습니다.

    어디까지 가야 한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몇 걸음 더 걷다가 돌아서도 되고 한 블록 더 가도 됩니다.

    낮에는 계속 다음 일이 있었습니다.

    은행 일을 마치면 반품할 것이 생각났고, 반품을 하고 나니 마트에 들러야 했습니다. 집에 돌아오자 정리할 것이 보였고 휴대전화를 들면 답할 것이 있었습니다.

    한 일을 끝낼 때마다 다음 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없습니다.

    걷고 난 뒤에 무엇을 끝냈다고 표시할 곳도 없습니다.

    삼십 분쯤 걷다가 집으로 돌아옵니다.

    오늘 사용한 시간을 따지면 은행에서 기다린 시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마트에서 보낸 시간보다 짧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삼십 분은 이상하게 또렷합니다.

    해야 해서 쓴 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 일도 해결하지 않았고 필요한 것도 사지 않았습니다. 누구에게 보여줄 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저 내가 걷고 싶어서 걸었습니다.

    하루 종일 필요한 일에 반응하며 움직였다면 이 시간만큼은 내가 먼저 골랐습니다.

    그 차이가 작지만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산책을 매일 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산책마저 ‘오늘 해야 할 일’이 되는 순간 또 하나의 목록이 생깁니다.

    어떤 날에는 책 몇 쪽일 수 있고, 어떤 날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시간일 수 있습니다. 공구함을 정말 정리하고 싶어서 꺼낸 날이라면 그것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시간으로 또 하나의 성과를 만드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늘의 시간을 전부 다음 일에 밀려가며 쓰지는 않았다는 것, 잠깐이라도 내가 머물고 싶은 곳에 머물렀다는 것만 남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닫습니다.

    불을 켜고 방으로 들어가다가 책상 앞에서 잠깐 멈춥니다.

    아침에 고친 서랍 손잡이를 한번 당겨봅니다.

    흔들리지 않습니다.

    베란다 쪽 수납장 문도 닫혀 있습니다. 그 안에는 아침에 정리한 공구함이 들어 있습니다.

    굳이 다시 열어보지는 않습니다.

    냉장고에는 사온 우유와 과일이 들어 있고 현관에 놓여 있던 반품 상자는 없습니다.

    오늘 손을 댄 것들은 대부분 이렇게 눈에 띄지 않는 모습으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하려고 했지만 하지 못한 일 하나가 떠오릅니다.

    잠시 생각합니다.

    내일 하면 됩니다.

    오늘 무엇을 했는지 다시 세어보지 않습니다.

    공구함 하나, 은행 한 번, 반품 하나, 장보기 한 번을 목록으로 만들어 오늘도 열심히 살았다고 확인할 필요는 없습니다.

    반대로 큰일 하나를 끝내지 못했다고 오늘을 빈칸으로 만들 이유도 없습니다.

    아침에는 별일 없는 하루가 될 줄 알았습니다.

    실제로 큰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찾고, 고치고, 기다리고, 이동하고, 사고, 정리하고, 이야기하고, 걸었습니다.

    어떤 시간에는 이름이 있었고 어떤 시간에는 이름이 없었습니다.

    해놓자마자 흔적이 사라진 일도 있었고 아무 결과 없이 지나간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것이 오늘 하루였습니다.

    불을 끄기 전에 다시 한번 서랍을 봅니다.

    손잡이는 가만히 제자리에 있습니다.

    수납장 안의 공구함도 더는 생각나지 않습니다.

    내일 할 일은 하나 남아 있습니다.

    그대로 둡니다.

    다 끝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하루는 끝났습니다.

  • 예전보다 돈을 덜 쓰는데 왜 돈 걱정은 더 많아질까

    예전보다 돈을 덜 쓰는데 왜 돈 걱정은 더 많아질까

    평일 늦은 저녁, 마트 계산대 앞에 섭니다.

    카트에는 우유와 달걀, 두부, 과일 몇 가지가 들어 있습니다.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바코드가 하나씩 찍힐 때마다 화면의 금액이 올라갑니다.

    마지막 물건이 계산대를 지나자 합산된 금액이 뜹니다.

    예전 같으면 별생각 없이 카드를 내밀었을 금액입니다. 요즘 물가가 많이 올랐다고 생각하고 넘어갔을 것입니다.

    잠시 생각하다 결제를 마치고 몇 걸음 옮기다가 멈춰 서서 받은 영수증을 펼쳐봅니다.

    무엇이 이렇게 많이 나왔나 싶어 위에서부터 천천히 내려다봅니다.

    우유, 달걀, 두부, 과일.

    하나씩 보면 모두 필요해서 산 것들이지 괜히 집어넣은 물건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주차장으로 가는 동안 금액이 머릿속에 남습니다.

    내가 요즘 너무 많이 쓰고 있나.

    생각해보면 이상합니다.

    예전보다 외식도 줄었습니다. 옷을 사는 횟수도 줄었고, 새 물건을 보면 갖고 싶다는 마음도 전보다 적습니다.

    무엇을 하나 사더라도 정말 필요한지 한 번 더 생각합니다.

    분명 돈을 덜 쓰는데 돈 생각은 더 자주 합니다.

    통장 잔액을 확인하는 횟수가 늘고 다음 달에 나갈 돈을 미리 계산합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지출까지 머릿속에서 먼저 더해봅니다.

    돈을 많이 쓸 때보다 오히려 아껴 쓰는 지금, 돈 걱정은 왜 더 많아진 걸까.

    돈을 쓰는 순간보다 남은 돈을 보는 시간이 길어진다

    예전에도 돈 걱정은 있었습니다.

    월급날을 기다렸고 카드값이 많이 나온 달에는 다음 달 지출을 줄였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돈이 나가면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그때의 돈 걱정과 지금의 돈 걱정에는 사뭇 다른 점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번 달을 많이 생각했습니다.

    월급이 들어오고 카드값과 공과금이 빠져나갑니다. 남은 돈으로 한 달을 보냅니다. 부족하면 다음 월급날을 기다립니다.

    돈은 들어오고 나가는 흐름 속에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선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이번 달에 얼마를 썼는지만 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얼마가 필요할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 통장에 있는 돈보다 앞으로 들어올 돈이 얼마나 되는지, 지금의 생활을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는지가 마음에 걸립니다.

    잔액이 같은 숫자라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 것입니다.

    통장에 돈이 있어도 마음이 쉽게 놓이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그 돈이 오늘만을 위한 돈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번 달 생활비도 그 안에 있고 다음 달에 필요한 돈도 있습니다. 몇 달 뒤 필요한 돈과 아직 정해지지 않은 지출까지 한 통장 안에 겹쳐 보입니다.

    돈을 쓰고 난 뒤에는 산 물건보다 남은 금액을 먼저 확인하게 됩니다.

    지금 얼마가 있는가보다 이 돈으로 앞으로 얼마나 오래 갈 수 있는가를 생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전에는 물건을 사고 나면 물건이 남았습니다.

    지금은 물건을 사고 나면 줄어든 잔액이 함께 보입니다.

    같은 소비인데 시선이 머무는 곳이 달라졌습니다.

    돈을 쓴 기쁨보다 남아 있는 돈을 확인하는 일이 먼저가 되면 소비를 줄여도 돈에서 마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살 수 있는 것과 사도 되는 것이 달라진다

    신발 매장 앞을 지나다 마음에 드는 신발 한 켤레를 봅니다.

    잠깐 들어가 가격표를 확인합니다.

    살 수 없는 가격은 아닙니다.

    예전 같으면 몇 번 신을지 생각한 뒤 마음에 들면 샀을 것입니다.

    그런데 신발장을 먼저 떠올립니다.

    비슷한 신발이 하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밑창이 조금 닳았지만 닦아서 신으면 한동안 더 신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들었던 신발을 신어보지도 않고 다시 내려놓습니다.

    돈이 없어서 사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살 수 있지만 사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이 하나둘 늘어납니다.

    가전제품도 새 제품을 구경하다가 지금 쓰는 것이 멀쩡하면 창을 닫습니다.

    물건 하나를 사는 데 돈 외의 질문이 갈수록 길게 따라붙습니다.

    정말 필요한가.

    지금 사야 하는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질문 끝에 사지 않기로 결정하면 돈은 그대로 남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또 다른 물건 앞에서 같은 계산을 합니다.

    한 번 아끼는 일은 금방 끝납니다.

    계속 아껴야 한다는 생각은 쉽게 끝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출을 줄였는데도 마음까지 반드시 편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필요와 욕심을 가르는 일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질문이 모든 소비 앞에 붙기 시작할 때입니다.

    양말 몇 켤레를 사면서도 집에 남은 것이 몇 개인지 떠올리고, 오래 사용한 프라이팬 하나를 바꾸면서도 조금만 더 쓰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금액의 크기와 상관없이 돈을 쓰는 행동 자체가 점점 무거워집니다.

    돈을 쓰지 않는 데 익숙해진 사람에게는 필요한 돈을 쓰는 일도 결심이 필요한 일이 됩니다.

    작은 금액에도 이유를 붙이게 된다

    카페 앞을 지나가다가 커피가 생각납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려다가 잠시 멈춥니다.

    집에 가면 커피가 있습니다.

    몇 천 원입니다.

    그 돈을 쓴다고 생활이 크게 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생각합니다.

    굳이 여기서 마셔야 하나.

    예전에는 이런 작은 지출에 이유까지 붙이지 않았습니다.

    마시고 싶으면 마셨고 점심을 먹다가 메뉴 하나를 더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작은 돈에도 질문이 생깁니다.

    필요한 지출인지, 그냥 습관인지, 집에 가서 해결해도 되는 것인지 생각합니다.

    이런 계산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마트에서 평소보다 조금 비싼 과일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기도 합니다.

    온라인 장바구니에 필요한 생활용품을 담아놓고 무료 배송 금액을 맞추려다가 창을 닫기도 합니다.

    점심 메뉴를 고를 때도 천 원, 이천 원의 차이가 눈에 먼저 들어오는 날이 있습니다.

    각각은 작은 금액입니다.

    한 번 아낀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고 한 번 쓴다고 생활이 흔들리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작은 지출일수록 오히려 자주 만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선택해야 하니 돈을 쓰지 않은 횟수만큼 돈을 생각한 횟수도 늘어납니다.

    아낀 금액은 몇 천 원인데 그 몇 천 원을 결정하는 데 마음을 여러 번 사용한 셈입니다.

    그런데 며칠 뒤에는 조금 다른 일이 생깁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과 차를 마십니다.

    한 시간쯤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집니다.

    돌아오는 길에 그날 쓴 커피값은 별로 생각나지 않습니다.

    같은 금액인데 느낌은 다릅니다.

    금액이 달라진 것이 아닙니다.

    돈을 어디에 썼는지가 달라졌습니다.

    어떤 돈은 쓰고 난 뒤 금액이 오래 남고, 어떤 돈은 그 돈으로 보낸 시간이 더 오래 남습니다.

    이 차이를 알게 되면서 돈을 덜 쓰는 것만큼 어디에 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줄어든 것은 지출인데 늘어난 것은 계산이다

    저녁을 먹고 휴대전화를 보다가 은행 앱을 엽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며칠 전에도 확인했습니다.

    잔액이 갑자기 크게 달라질 일도 없습니다.

    그래도 한번 봅니다.

    이번 달 카드 사용액도 확인합니다.

    자동이체 날짜를 떠올리고 앞으로 빠져나갈 금액을 대강 빼봅니다.

    계산을 마치면 잠시 마음이 놓입니다.

    적어도 지금 얼마가 있는지는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며칠 뒤 다시 앱을 엽니다.

    숫자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같은 계산을 또 합니다.

    이번 달 숫자는 보이지만 몇 달 뒤의 생활은 화면에 나오지 않습니다.

    지금 가진 돈은 정확히 셀 수 있지만 앞으로 필요한 돈을 모두 정확하게 계산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계산을 마쳐도 완전히 끝났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지출은 줄었는데 계산은 늘어나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통장의 숫자를 보면서 현재만 보는 것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시간까지 함께 바라보고 있습니다.

    확실하게 보이는 숫자 하나로 아직 알 수 없는 여러 날을 헤아리려 하니 계산이 자꾸 길어집니다.

    한 번 확인해서 마음이 놓였다면 그것으로 끝나야 하는데 며칠 뒤 다시 같은 숫자를 확인합니다.

    그 사이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숫자가 필요해서라기보다 달라진 것이 없는지 확인하고 싶은 것입니다.

    돈을 세는 일이 어느 순간 생활을 확인하는 일이 된 셈입니다.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더 또렷하게 보인다

    오랫동안 일을 할 때는 돈이 들어오는 날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매달 비슷한 시기에 돈이 들어오고 그 안에서 생활했습니다.

    물론 그때도 걱정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음 달에도 다시 들어오는 돈이 있다는 사실이 생활의 바닥을 받쳐주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이 익숙한 흐름에도 변화가 생깁니다.

    일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고 수입이 예전과 같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언제까지 지금처럼 일할 것인지 생각하는 시기도 찾아옵니다.

    반면 나가는 고정비는 계속 눈에 보입니다.

    관리비가 나갑니다.

    보험료가 빠져나갑니다.

    장보는 돈이 들고 자동차를 유지하는 데에도 돈이 필요합니다.

    집 안의 물건 하나가 고장 나면 예정에 없던 지출이 생깁니다.

    생활을 단순하게 해도 없어지지 않는 비용이 있습니다.

    달력을 넘길 때마다 비슷한 날짜에 같은 항목이 돌아옵니다.

    지난달에 냈다고 이번 달 관리비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번 달 통신비를 냈다고 다음 달에는 내지 않아도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옷이나 가전제품은 사지 않으면 지출을 멈출 수 있지만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돈 가운데에는 마음먹는다고 없앨 수 없는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소비를 줄였다는 사실과 생활비가 줄었다는 사실이 꼭 같지는 않습니다.

    사고 싶은 것을 참았는데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돈은 여전히 많아 보이는 날이 있습니다.

    그때는 무엇을 더 줄여야 하는지 찾기 시작합니다.

    이미 줄인 사람에게 더 줄일 곳을 찾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여기서 돈을 바라보는 마음에 묘한 차이가 생깁니다.

    앞으로 들어올 돈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부분이 있는데, 나갈 돈 가운데 상당수는 날짜와 금액까지 보입니다.

    수입은 앞으로의 일처럼 느껴지고 지출은 이미 기다리고 있는 일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니 실제 소비를 많이 하지 않는 사람도 돈 걱정이 많아질 수 있습니다.

    오늘 얼마를 썼느냐보다 앞으로 돈의 흐름이 어떻게 달라질지를 더 자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마트에서 쓴 몇 만 원이 유난히 크게 보이는 날도 사실은 그 몇 만 원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돈 뒤에 이어질 다음 달과 그다음 달까지 함께 보고 있는 것입니다.

    아끼는 것과 못 쓰는 것은 같지 않다

    냉장고가 오래됐습니다.

    아직 작동은 하지만 소리가 전보다 커졌습니다.

    새 제품을 찾아봅니다.

    가격을 비교하고 크기도 확인합니다.

    마음에 드는 제품을 하나 골라놓고도 결제 버튼을 누르지 않습니다.

    조금 더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며칠이 지나 다시 찾아봅니다.

    멀쩡한 물건을 오래 사용하는 것은 좋은 절약입니다.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을 사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바꿀 필요가 있는 물건까지 계속 미루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냉장고 소리가 날 때마다 신경이 쓰입니다.

    멈출 때까지 쓰자며 교체를 미루고, 고쳐야 할 작은 물건도 그대로 두게 됩니다.

    신발 하나를 새로 사는 대신 오래된 것을 계속 신으면서 불편함을 견디기도 합니다.

    통장의 숫자는 지켰는데 생활에는 작은 불편이 하나씩 남습니다.

    돈을 아끼는 데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필요하지 않은 곳에 덜 쓰고 필요한 곳에 쓸 여유를 남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쓰지 않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면 필요한 지출과 불필요한 지출의 경계가 흐려집니다.

    절약과 불안은 겉으로 보면 비슷합니다.

    둘 다 지갑을 닫게 합니다.

    차이는 그다음에 드러납니다.

    사지 않고 돌아왔는데 마음이 편하다면 지금은 필요하지 않았던 물건일 수 있습니다.

    사지 않고 돌아왔는데 며칠 동안 같은 물건을 계속 찾아보고 생활의 불편도 그대로 남아 있다면 다른 질문이 필요해집니다.

    나는 지금 돈을 아끼고 있는가. 아니면 돈을 쓰는 일이 불편해진 것인가.

    그 차이는 영수증에 찍히지 않습니다.

    아끼는 데 익숙해질수록 이 차이를 놓치기 쉽습니다.

    쓰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선택이 잘된 것은 아닙니다.

    필요한 것을 제때 사서 오래 사용하는 편이 나은 경우도 있고, 당장의 지출을 미뤘다가 더 큰 불편을 감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많이 쓰느냐 적게 쓰느냐만이 아니라 그 돈이 내 생활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가입니다.

    돈 걱정은 돈이 부족할 때만 생기지 않는다

    돈 걱정을 하면 흔히 돈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생활비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돈 걱정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통장에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데도 계속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숫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앞으로의 생활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을 때가 그렇습니다.

    지금과 같은 수입이 계속될지, 예상하지 못한 큰 지출이 생길지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은 오늘 필요한 돈만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다음 달의 생활도 지금과 이어져 있고 내년의 생활도 오늘의 선택과 이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돈을 바라보면서 앞으로의 시간을 함께 생각합니다.

    걱정의 크기가 언제나 통장 잔액과 똑같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입니다.

    같은 금액을 가지고 있어도 앞으로의 생활이 비교적 선명하게 보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느끼는 마음은 다를 수 있습니다.

    많이 갖고 싶은 마음과 지금의 생활을 오래 유지하고 싶은 마음도 다릅니다.

    어느 순간부터 돈을 더 많이 쓰고 싶은 마음보다 지금 누리고 있는 생활을 잃지 않고 싶다는 생각이 커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돈은 물건을 사는 수단만이 아닙니다.

    지금의 생활을 계속 이어갈 수 있다는 마음의 여유와도 연결됩니다.

    그래서 돈을 덜 쓰는데도 돈 생각은 오히려 많아질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갖고 싶은 것을 사기 위해 돈을 모았다면 지금은 특별히 사고 싶은 것이 없어도 돈을 남겨두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무엇을 살지 정해져 있어서가 아닙니다.

    필요할 때 꺼낼 수 있는 돈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마음을 받쳐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통장에 남겨둔 돈에는 금액 이상의 의미가 붙습니다.

    쓰지 않은 돈이 곧 선택할 수 있는 여유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바라보기 시작하면 돈을 쓰는 일은 단순히 잔액을 줄이는 행동이 아니게 됩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여유 하나를 줄이는 일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쓰지 않은 돈이 모두 안심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한 달을 꽤 알뜰하게 보냈습니다.

    외식을 줄였고 불필요한 물건도 사지 않았습니다.

    카드 사용액을 보니 지난달보다 적습니다.

    자신에게 잘했다고 칭찬합니다.

    그런데 다음 달이 되면 다시 같은 걱정을 시작합니다.

    이번 달도 조금 줄여야 할 것 같습니다.

    더 아낄 곳을 찾습니다.

    그렇게 계속 줄이다 보면 어느 순간 질문 하나가 생깁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아끼고 있는 걸까.

    이 질문에는 사람마다 다른 답이 있습니다.

    앞으로 필요한 돈을 준비하기 위해 아낄 수 있습니다.

    가족과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모을 수도 있습니다.

    마음 편히 생활할 여유를 만들기 위해 지출을 줄일 수도 있습니다.

    목적이 보이면 절약에는 방향이 생깁니다.

    하지만 막연한 불안 때문에 계속 줄이기만 하면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지난달보다 덜 썼는데 이번 달에는 그보다 더 줄여야 할 것 같습니다.

    커피값을 아끼고 나면 식비에서 줄일 것이 보입니다.

    식비를 줄이고 나면 다른 지출이 눈에 들어옵니다.

    돈은 남는데 충분하다는 느낌은 좀처럼 오지 않습니다.

    한 달 지출이 줄었다는 것을 확인한 날에도 다음 달 계획을 다시 세웁니다.

    이번에는 어디에서 조금 더 줄일 수 있을지 생각합니다.

    이쯤 되면 절약의 성과보다 아직 줄이지 못한 항목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아끼는 일이 생활을 편하게 하기 위한 방법이었는데 어느 순간 생활 전체가 아낄 곳을 찾는 일이 되어버립니다.

    이때 부족한 것은 반드시 돈만은 아닙니다.

    어디까지 아끼면 되는지에 대한 내 기준이 없는 것일 수 있습니다.

    기준이 없으면 충분하다는 지점도 없습니다.

    얼마를 남겨도 조금 더 남겨야 할 것 같고, 얼마를 줄여도 더 줄일 곳이 보입니다.

    반대로 내가 지키고 싶은 생활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줄이지 않을 것도 생깁니다.

    한 달에 한두 번 사람을 만나는 비용은 남겨둘 수 있습니다.

    오래 사용해 불편해진 물건은 바꿀 수 있습니다.

    먹고 싶은 것을 가끔 사는 돈까지 모두 낭비라고 여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절약의 기준이 생활이 아니라 막연한 불안이 되면 돈을 덜 쓰면서도 마음은 가벼워지지 않습니다.

    아끼는 데에도 멈출 곳이 필요합니다.

    돈을 쓰는 데에도 내 기준이 필요해진다

    오랜만에 가족과 식사를 하러 갑니다.

    메뉴판을 펼칩니다.

    평소 혼자 먹는 한 끼보다 가격이 높습니다.

    그런데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까 보았던 가격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돈을 썼다는 사실보다 함께 보낸 시간이 남습니다.

    며칠 뒤 집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물건 하나를 발견합니다.

    샀을 때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왜 샀는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가격은 가족과 먹었던 식사보다 비쌌습니다.

    돈의 크기만으로 어느 지출이 아깝고 어느 지출이 아깝지 않은지 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필요한 것은 무조건 덜 쓰는 방법만은 아닙니다.

    내가 무엇에는 기꺼이 쓰고 무엇에는 쓰지 않을지를 아는 일도 중요해집니다.

    누군가에게는 편안한 집이 중요합니다.

    누군가에게는 가끔 떠나는 여행이 중요하고 누군가에게는 좋은 음식을 먹는 시간이 중요합니다.

    같은 금액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남들이 많이 쓰는 곳에 따라 쓸 필요도 없고 남들이 아끼는 곳이라고 나까지 아낄 이유도 없습니다.

    돈을 아끼는 기준만큼 돈을 쓰는 기준도 내 생활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 기준이 있으면 쓰지 않았을 때도 이유를 알고, 썼을 때도 이유를 압니다.

    돈을 쓴 뒤마다 스스로를 나무라지 않아도 됩니다.

    아끼는 것과 쓰는 것은 서로 반대편에 있는 일이 아닙니다.

    둘 다 내가 가진 돈으로 내 생활을 꾸려가는 선택입니다.

    어떤 날은 쓰지 않은 돈이 마음을 편하게 합니다.

    어떤 날은 잘 쓴 돈이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돈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잘한 소비가 되는 것도 아니고, 돈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잘못한 소비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마트에서 필요한 식재료를 사고, 낡은 물건을 제때 바꾸고, 만나고 싶은 사람과 차 한 잔을 마시는 데에는 각각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를 내가 알고 있다면 금액만으로 모든 지출을 판단할 필요는 없습니다.

    돈을 덜 쓰는데도 걱정이 많아졌다면 지갑을 더 단단히 닫기 전에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합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지키기 위해 아끼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돈을 쓰고 싶은가.

    두 질문은 비슷해 보이지만 바라보는 방향은 다릅니다.

    첫 번째는 앞으로 지키고 싶은 생활을 향하고, 두 번째는 지금 살아가는 생활을 향합니다.

    둘 가운데 하나만 바라보면 마음이 한쪽으로 기울기 쉽습니다.

    앞으로만 바라보면 오늘 쓰는 돈이 자꾸 아깝게 보입니다.

    오늘만 바라보면 앞으로 필요한 돈을 놓칠 수 있습니다.

    돈을 덜 쓰면서도 걱정이 많아진 마음에는 이 두 시간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지금의 생활도 놓치고 싶지 않고 앞으로의 생활도 지키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돈 앞에서 망설이는 일이 전보다 많아졌습니다.

    그 망설임을 모두 없앨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무엇 때문에 망설이고 있는지는 알 수 있습니다.

    가격 때문인지, 필요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앞으로가 걱정되어 쓰지 못하고 있는지.

    그 차이가 보이기 시작하면 아끼는 일과 쓰는 일 사이에도 조금씩 자기 기준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 기준이 생긴 뒤에는 통장의 숫자만으로 오늘의 생활을 판단하지 않게 됩니다.

  • 50대가 넘으니 만나고 싶은 사람이 줄어드는 이유

    50대가 넘으니 만나고 싶은 사람이 줄어드는 이유

    토요일 오전, 휴대전화에 메시지가 하나 들어옵니다.

    오랜만에 얼굴 한번 보자는 말입니다.

    예전 같으면 달력을 먼저 열어보았을 텐데 요즘은 답장을 쓰기 전에 잠깐 망설입니다.

    싫은 사람도 아닙니다.
    만나면 반갑고, 한때는 자주 어울렸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선뜻 약속을 잡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약속이 없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만날 기회가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닙니다.
    다만 예전처럼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시간을 비워두고 옷을 챙겨 입고 먼 길을 나서는 일이 가볍지 않습니다.

    때로는 약속이 취소됐다는 연락을 받고 서운하기보다 마음이 조금 편해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 묻게 됩니다.

    내가 사람을 싫어하게 된 걸까.

    조금 오래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사람을 향한 마음이 식었다기보다 사람을 만나는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젊을 때는 관계가 넓어지는 일이 자연스러웠습니다.
    학교와 직장, 동네와 여러 모임에서 새로운 사람을 계속 만났고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일은 내가 살아갈 세계가 넓어지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50대를 지나면서는 조금 달라집니다.

    이미 많은 사람을 만나보았습니다.
    어떤 만남이 편한지, 어떤 자리는 돌아온 뒤에도 오래 피곤한지 경험으로 알게 됩니다.

    사람을 많이 아는 것보다 누구와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가 조금씩 중요해집니다.

    연락처는 그대로인데 연락하는 사람은 줄어든다

    휴대전화 연락처를 열어보면 이름은 많습니다.

    한동안 함께 일했던 사람, 오래전 같은 모임에 있던 사람, 자주 식사하던 사람, 명절이면 안부를 주고받던 사람까지 수백 명이 남아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별다른 이유 없이 전화를 걸 수 있는 사람을 떠올려보면 숫자가 크게 줄어 있습니다.

    살아온 세월이 늘었으니 아는 사람도 늘었는데 실제로 만나는 사람은 오히려 적어졌습니다.

    관계에는 시간이 쌓입니다.
    동시에 각자의 사정도 쌓입니다.

    직장이 달라지고 사는 곳이 바뀝니다.
    하루를 보내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예전에는 같은 공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관계가 그 공간을 벗어나자 천천히 느슨해지기도 합니다.

    누가 잘못한 것은 아닙니다.

    연락을 끊겠다고 결정한 것도 아닙니다.

    한 달이 석 달이 되고, 석 달이 일 년이 됩니다.
    가끔 안부를 묻지만 다시 예전처럼 자주 만나지는 않습니다.

    책상 서랍을 정리하다 오래된 명함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이름을 보는 순간 얼굴이 떠오릅니다.
    한동안 자주 만나고 전화도 많이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언제 만났는지는 쉽게 생각나지 않습니다.

    명함을 버릴까 하다가 다시 서랍에 넣습니다.

    그 사람과 관계가 나빠진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서로의 하루에서 차지하던 자리가 달라졌습니다.

    모든 관계가 같은 모습으로 평생 이어지기는 어렵습니다.

    함께 일할 때 가까웠던 사람은 그 시절의 하루를 함께 보낸 사람이고, 아이들이 어릴 때 자주 만났던 이웃은 그때의 생활을 함께 나눈 사람입니다.

    생활이 달라지면 만남의 간격도 달라집니다.

    연락처의 숫자와 지금 내 곁의 사람 숫자가 달라지는 것은 살아온 시간이 관계에 남긴 흔적이기도 합니다.

    만남이 끝난 뒤의 마음을 보게 된다

    젊을 때는 불편한 자리에서도 제법 오래 앉아 있었습니다.

    대화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웃으며 넘겼고 모임에 빠지는 것이 더 신경 쓰여 내키지 않아도 나가는 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만남이 끝난 뒤에 남는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두 시간을 만나고 돌아왔는데 집에 와서도 내가 한 말이 마음에 걸립니다.
    괜히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의 사정을 오래 듣고 온 날에는 집에 돌아와서도 그 이야기가 머릿속에 남습니다.

    누군가의 생활 이야기를 듣다가 나도 모르게 내 형편과 비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도 있습니다.

    만남은 끝났는데 그 자리의 기분은 저녁까지 따라옵니다.

    반대로 별것 아닌 이야기를 하고 돌아왔는데 마음이 편한 사람도 있습니다.

    무엇을 증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헤어진 뒤 그 사람이 했던 말을 다시 해석할 필요도 없습니다.

    식당을 나서면서 다음에 또 보자는 말이 의례적인 인사가 아니라 정말 그렇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차이를 여러 번 겪고 나면 약속을 잡는 기준이 달라집니다.

    누가 더 도움이 되는 사람인가보다 만나고 돌아온 뒤 내 하루가 어떤지를 보게 됩니다.

    사람을 계산해서가 아닙니다.

    경험이 쌓이면서 내 마음이 편한 관계와 오래 힘이 드는 관계를 조금씩 구별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을 만나기 싫어진 것과 불편한 만남을 예전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된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약속 없는 오후가 좋아진다

    예전에는 주말에 약속이 없으면 허전할 때가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만나야 할 것 같고 집에만 있으면 하루를 제대로 보내지 못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크게 내키지 않는 자리에도 나갔습니다.

    한 번 얻어먹었으니 다음에는 내가 사야 하고, 지난번에 참석했으니 이번에도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 내 일을 챙겼으니 나도 그 사람의 일을 챙겨야 한다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이런 주고받음이 관계를 이어주는 힘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모든 관계를 같은 힘으로 유지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한 달에 쓸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습니다.

    하루에 다른 사람에게 내어줄 수 있는 마음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토요일 오후에 아무 일정이 없는 날이 있습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해놓습니다.
    미뤄둔 서랍 하나를 정리하고 커피를 내려 창가에 앉습니다.

    누구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도 없고 몇 시까지 어디에 가야 한다는 약속도 없습니다.

    잠깐 동네를 걷고 돌아왔는데 아직 저녁까지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하루를 심심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아무 일도 없는 시간이 비어 있는 시간이 아니라 내 속도대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됩니다.

    그 시간을 좋아하게 되면 약속 하나의 무게도 달라집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싫어서가 아니라 혼자 보내는 시간 역시 충분히 좋은 시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관계라고 늘 편한 것은 아니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을 만나면 설명할 것이 적습니다.

    젊었을 때의 나를 알고 있고 어떤 시절을 지나왔는지도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오래된 사람이 주는 편안함은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오래됐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관계가 편안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변합니다.

    생활도 변하고 관심도 달라집니다.

    예전에는 몇 시간을 이야기해도 부족했던 사이가 이제는 한 시간쯤 지나면 대화가 자꾸 과거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그때 너 기억나?”

    처음에는 함께 웃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오래전의 내가 지금의 나보다 더 크게 자리 잡을 때가 있습니다.

    늘 들어주던 사람은 다시 듣는 사람이 되고, 분위기를 맞추던 사람은 또 분위기를 맞춥니다.

    누군가 가볍게 말합니다.

    “너는 옛날부터 그랬잖아.”

    웃으며 넘기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 말이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나는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 앞에서는 오래전 자리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듭니다.

    상대가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닙니다.

    사람은 변했는데 관계의 방식은 예전 자리에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관계를 끝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주 만나던 사람을 가끔 만나도 되고, 긴 시간을 보내던 사람과 짧게 차 한 잔만 마셔도 됩니다.

    관계를 이어간다는 것이 반드시 예전과 똑같이 지낸다는 뜻은 아닙니다.

    평범한 질문도 다르게 들릴 때가 있다

    중년 이후의 만남에는 각자 살아온 시간이 함께 들어옵니다.

    누군가는 일을 계속하고 있고 누군가는 일을 마쳤습니다.
    누군가는 새로운 일을 시작했고 누군가는 한동안 쉬고 있습니다.

    사는 곳도 달라지고 하루를 보내는 모습도 달라집니다.

    예전에는 비슷한 생활을 하던 사람들의 사정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벌어집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이 묻습니다.

    “요즘 뭐 하고 지내?”

    아주 평범한 질문입니다.

    그런데 대답하기 쉬운 날도 있고 잠깐 생각하게 되는 날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여행 이야기를 합니다.

    즐겁게 듣다가 문득 나는 마지막으로 어디를 다녀왔는지 생각합니다.

    누군가 새로 시작한 일을 이야기합니다.

    축하해주면서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떠올리게 됩니다.

    상대가 나를 비교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다른 사람의 생활을 통해 내 생활을 바라보게 되는 순간이 생깁니다.

    그 일이 반복되면 어떤 자리는 조금 피곤해집니다.

    여기서 상대를 나쁜 사람으로 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왜 그 자리에서 편하지 않았는지를 가만히 돌아보면 됩니다.

    질문 때문이었는지, 반복되는 비교 때문이었는지, 지금의 내 사정을 설명하는 일이 부담스러웠는지에 따라 같은 관계도 다르게 보입니다.

    사람이 싫은 것과 그 사람을 만날 때 반복되는 어떤 방식이 힘든 것은 다릅니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남는다

    오래 살수록 말이 잘 통하는 사람보다 설명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편할 때가 있습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 크게 보이려고 하지 않아도 되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입니다.

    서로의 형편을 자세히 캐묻지 않습니다.

    잠시 말이 끊겨도 서둘러 다른 이야기를 찾지 않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굳이 다른 곳으로 옮겨 더 오래 앉아 있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보자.”

    그 말에 섭섭해하지 않습니다.

    다음 약속을 바로 정하지 않아도 관계가 흔들리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과는 식사를 하면서 계속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야 합니다.

    침묵이 생기면 어색해집니다.

    반면 어떤 사람과는 잠시 창밖을 보아도 괜찮습니다.

    그 짧은 침묵이 대화의 빈자리가 아니라 함께 있는 시간의 일부가 됩니다.

    50대 이후 만나고 싶은 사람이 줄어드는 데에는 이런 변화도 있습니다.

    관계에서 원하는 것이 복잡해지기보다 오히려 단순해집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다 편안하게 함께 있을 수 있는지가 중요해집니다.

    시간을 바라보는 마음도 달라진다

    하루는 여전히 스물네 시간입니다.

    50대가 되었다고 시간이 갑자기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달라지는 것은 시간을 바라보는 마음입니다.

    예전에는 다음 달도, 내년도 지금과 비슷하게 이어질 것처럼 살았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조금 미뤄도 괜찮았고 마음이 내키지 않는 자리에 오후 하나를 쓰는 것도 크게 아깝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달력이 넘어가는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계절이 한 번 지나갔는데 하려고 했던 일을 시작하지 못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지난해에도 만나자고 했던 사람과 올해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정리하겠다고 마음먹은 방 한쪽은 그대로입니다.

    그때부터 하루가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오후를 사용하면 그 시간에는 다른 일을 할 수 없습니다.

    혼자 쉬는 시간도, 가족과 밥을 먹는 시간도, 오래 미뤄둔 일을 하는 시간도 같은 하루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약속 하나를 잡을 때 예전보다 생각이 많아집니다.

    이 사람을 만나고 싶은가.

    아니면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두 질문은 비슷해 보이지만 답은 다를 때가 있습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줄어든 것은 시간이 부족해졌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내 시간을 어디에 쓰고 싶은지가 조금 더 분명해졌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혼자가 편한 것과 사람이 필요 없는 것은 다르다

    “요즘은 혼자가 편해.”

    이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혼자 밥을 먹는 것이 편하고 주말에 약속이 없는 것도 좋습니다.

    그렇다고 사람을 전혀 만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하루 종일 아무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으면 휴대전화를 한번 확인하게 되는 날도 있습니다.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누구에게 말할지 떠올려보기도 합니다.

    길을 걷다가 예전에 함께 왔던 장소를 지나면 문득 그 사람의 안부가 궁금해집니다.

    사람 마음은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지 않습니다.

    혼자 있고 싶으면서도 누군가가 그리울 수 있습니다.

    모임은 귀찮으면서도 오랫동안 연락이 없으면 서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덜 만나는 생활을 무조건 좋은 변화라고 말하기도 어렵고, 관계가 줄었다고 외로운 생활이라고 정하기도 어렵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숫자보다 지금의 생활이 내게 어떤 느낌을 주는가입니다.

    약속을 줄인 뒤 하루가 편안해졌다면 그 변화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반대로 사람을 만나지 않는 날들이 이어지면서 마음 한쪽이 오래 허전하다면 그것 또한 지금의 관계를 바라보게 하는 한 장면입니다.

    숫자로는 그 차이를 알 수 없습니다.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서 기다리고 있을 때가 있다

    연락이 줄어든 데에는 조금 다른 모습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생각나는 사람이 있으면 전화를 걸었습니다.

    별일이 없어도 밥을 먹었느냐고 물었고 근처에 왔다며 잠깐 얼굴을 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전화기를 들었다가 내려놓을 때가 있습니다.

    아직 일하고 있을까.

    가족과 함께 있는 것은 아닐까.

    괜히 바쁜 사람을 붙잡는 것은 아닐까.

    상대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서로 방해하지 않으려고 기다리는 동안 연락이 뜸해집니다.

    한쪽에서는 ‘요즘 연락이 없네’라고 생각하고 다른 쪽에서도 똑같은 생각을 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먼저 메시지를 보냅니다.

    “잘 지내지?”

    길지 않은 한마디입니다.

    그런데 답장은 생각보다 빨리 옵니다.

    “그러게. 나도 연락하려고 했어.”

    관계가 멀어진 줄 알았는데 단지 둘 다 먼저 연락하지 않았던 경우도 있습니다.

    50대 이후 관계가 줄어드는 이유를 모두 마음의 변화에서만 찾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생활이 달라졌고 연락하는 습관도 달라졌습니다.

    만나는 횟수가 줄었다고 마음의 거리까지 같은 만큼 멀어진 것은 아닙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줄었다면

    오랜만에 온 연락을 보고 한참 뒤에 답장을 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예전의 나라면 바로 약속을 잡았을 텐데 왜 이러나 싶습니다.

    혹시 내가 너무 무심해진 것은 아닌지, 사람들과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연락처의 숫자보다 최근에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려봅니다.

    누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 가벼웠는지.

    누구 앞에서는 자꾸 나를 설명해야 했는지.

    누구와 있을 때 시계를 자주 보지 않았는지.

    어떤 약속은 취소됐을 때 마음 한쪽이 편해졌는지.

    그 장면들 속에 지금 내가 원하는 관계의 모습이 들어 있습니다.

    사람을 오래 알았다는 이유만으로 계속 가까워야 하는 것도 아니고 자주 만나지 않는다고 관계가 끝난 것도 아닙니다.

    한 달에 한 번 만나도 기다려지는 사람이 있고 자주 만나도 피곤한 사람이 있습니다.

    50대 이후 관계에서 달라지는 것은 사람의 숫자만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내어줄 수 있는 시간과 마음을 바라보는 기준도 함께 달라집니다.

    그래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줄어드는 일을 너무 빨리 쓸쓸함이라고 이름 붙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몇 사람만 남기고 다른 관계를 모두 정리해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모든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된 것에 가깝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주 만나고, 어떤 사람은 가끔 안부만 묻습니다.

    몇 년 만에 만나도 어제 본 사람처럼 이야기를 이어가는 사이도 있습니다.

    관계마다 맞는 거리가 다릅니다.

    토요일 오전에 도착했던 메시지를 다시 봅니다.

    답장을 쓰기 전에 잠깐 망설였던 그 사람입니다.

    이번에는 달력을 열어봅니다.

    다음 주에는 조금 바쁘고, 그다음 주 토요일 오후는 비어 있습니다.

    잠시 생각하다 답장을 보냅니다.

    “그날 오후는 어때?”

    모든 사람을 만나고 싶지는 않아졌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만나고 싶은 사람은 있습니다.

    달라진 것은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의 크기가 아닙니다.

    이제는 그 마음을 누구와 어떤 시간 속에 오래 두고 싶은지, 전보다 조금 더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 주문하지 않은 택배가 왔다

    주문하지 않은 택배가 왔다

    내가 주문한 것이 아닌데

    토요일 오전이었습니다.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아내가 주방에 있어서 제가 현관으로 나갔습니다.

    문을 열자 택배 기사가 작은 상자 하나를 내려놓고 있었습니다.

    “택배 왔습니다.”

    상자를 받아 들었습니다.

    크지도 무겁지도 않았습니다.

    “당신 뭐 샀어?”

    주방을 향해 물었습니다.

    “아니요.”

    “택배 왔는데?”

    “당신 거 아니에요?”

    “내가 산 게 없는데.”

    식탁 위에 상자를 올려놓고 송장을 봤습니다.

    이름은 제 이름이었습니다.

    주소도 맞았습니다.

    전화번호 끝 네 자리도 제 번호였습니다.

    며칠 전 휴대전화로 무언가를 보다가 주문했나 싶었습니다.

    쇼핑몰 주문 내역을 열어봤습니다.

    없었습니다.

    카드 사용 내역도 확인했습니다.

    그쪽에도 없었습니다.

    아내가 행주에 손을 닦으며 주방에서 나왔습니다.

    “보낸 사람은요?”

    송장에는 처음 보는 업체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생활용품을 파는 곳 같았습니다.

    “모르는 데야.”

    “그럼 잘못 온 거 아니에요?”

    “내 이름으로 왔잖아.”

    아내도 송장을 들여다봤습니다.

    “주소도 맞네.”

    둘이 상자를 앞에 두고 잠깐 서 있었습니다.

    “일단 뜯어봐요.”

    “남의 물건이면?”

    “당신 이름으로 왔는데 무슨 남의 물건이에요.”

    가위를 가져왔습니다.

    테이프를 자르고 상자를 열었습니다.

    안에는 전기주전자 하나가 들어 있었습니다.

    아내가 먼저 말했습니다.

    “주전자네.”

    새 제품이었습니다.

    포장 비닐도 뜯지 않은 채였습니다.

    우리는 잠깐 서로 얼굴을 봤습니다.

    전기주전자라면 이미 있었습니다.

    싱크대 한쪽에 오래된 것이 하나 놓여 있었습니다.

    손잡이 아래쪽에 금이 가 검은 테이프를 감아놓기는 했지만 아직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새 주전자를 보다가 저를 봤습니다.

    “혹시 당신이 주문하고 잊어버린 거 아니에요?”

    “아니라니까.”

    “저거 바꾸자고 몇 번 말했잖아요.”

    “당신이 말했지. 내가 산다고 했어?”

    “그건 아니고.”

    상자 안을 다시 살폈습니다.

    제품 밑에 작은 종이 한 장이 끼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사용설명서인 줄 알았습니다.

    꺼내 보니 손으로 쓴 메모였습니다.

    ‘그날 커피 잘 마셨습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이름도 없었습니다.

    아내가 제 손에 든 메모를 읽었습니다.

    “누구예요?”

    “그러니까.”

    저도 다시 읽어봤습니다.

    그날 커피 잘 마셨습니다.

    “최근에 누구한테 커피 타줬어요?”

    “글쎄.”

    “집에 온 사람 생각해봐요.”

    그제야 최근에 집에 왔던 사람들을 하나씩 떠올려봤습니다.

    많지는 않았습니다.

    요즘은 사람을 만나도 밖에서 보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집으로 찾아오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휴대전화의 최근 통화 목록도 내려봤습니다.

    몇 사람의 이름이 나왔습니다.

    그중 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너 혹시 나한테 뭐 보냈냐?”

    “뭘?”

    “주전자.”

    “아니. 갑자기 웬 주전자야?”

    “아니면 됐어.”

    전화를 끊었습니다.

    아내가 물었습니다.

    “아니래요?”

    “응.”

    “사람들한테 하나씩 다 전화해볼 거예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것도 우스웠습니다.

    누가 보냈는지 찾겠다고 아는 사람들에게 주전자를 보냈느냐고 전화를 돌릴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냥 놔둬요. 보낸 사람이 연락하겠죠.”

    상자는 식탁 한쪽으로 밀어두었습니다.

    한번 궁금해지고 나니 지나갈 때마다 눈이 갔습니다.

    선물을 받았는데 고맙다고 할 사람을 모른다는 것도 이상했습니다.

    오후가 되자 아내가 상자에서 새 주전자를 꺼냈습니다.

    “이거 그냥 쓰면 안 돼요?”

    “잠깐 놔둬봐.”

    “왜요?”

    “누가 보낸 건지는 알아야지.”

    “알면 물이 더 잘 끓어요?”

    제가 쳐다보자 아내가 웃었습니다.

    “알았어요. 안 쓸게요.”

    새 주전자는 다시 상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날 커피 잘 마셨습니다

    저녁 무렵 커피를 마시려고 주방으로 갔습니다.

    낡은 주전자에 물을 받았습니다.

    손잡이를 잡는 순간 검은 테이프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때 몇 주 전 일이 생각났습니다.

    오래 알고 지낸 친구 하나가 집에 왔었습니다.

    예전에는 자주 만났는데 요즘은 두어 달에 한 번 얼굴을 보면 많이 보는 편이었습니다.

    그날도 특별한 약속을 하고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근처에 볼일이 있어 왔다가 생각나서 들렀다고 했습니다.

    제가 커피를 끓였습니다.

    친구가 식탁에 앉아 있다가 주전자를 보더니 물었습니다.

    “형, 이거 아직도 써?”

    “왜?”

    “손잡이가 왜 이래?”

    “조금 깨졌어.”

    “조금 깨진 게 아니라 테이프까지 감았구먼.”

    “물 끓이는 데는 문제없어.”

    친구가 주전자를 들어 손잡이 쪽을 살펴봤습니다.

    “이러다 뜨거운 물 쏟으면 어쩌려고 그래.”

    “안 쏟아.”

    “하나 사. 얼마 한다고.”

    “네가 사주든가.”

    제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친구도 웃었습니다.

    옆에 있던 아내가 한마디 했습니다.

    “내가 바꾸자고 해도 말을 안 들어요.”

    친구가 바로 아내 편을 들었습니다.

    “형수님, 그냥 버리세요. 안 버리니까 계속 쓰는 겁니다.”

    “내 물건을 왜 마음대로 버려.”

    그때는 셋이 웃고 말았습니다.

    곧 다른 이야기가 시작됐고 주전자는 더 이상 화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장면이 떠오르자 휴대전화를 들었습니다.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너 혹시 나한테 주전자 보냈냐?’

    곧바로 답은 오지 않았습니다.

    휴대전화를 식탁 위에 내려놓았습니다.

    저녁 준비를 하던 아내가 물었습니다.

    “그 친구한테 물어봤어요?”

    “문자 보냈어.”

    “뭐래요?”

    “아직.”

    잠시 뒤 문자 알림이 울렸습니다.

    친구였습니다.

    ‘갔어?’

    그 짧은 답을 보는 순간 알았습니다.

    바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친구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네가 보낸 거야?”

    “갔으면 됐네.”

    “야, 이걸 왜 보냈어?”

    “형이 사달라며.”

    “내가 언제?”

    “기억도 안 나?”

    잠깐 생각하다가 웃음이 나왔습니다.

    “야, 그건 농담으로 한 말이지.”

    “나는 진담으로 들었는데?”

    “누가 커피 한 잔 얻어먹고 주전자를 보내냐.”

    “커피 때문에 보낸 거 아니야.”

    “그럼?”

    “그날 형이 물 따르는데 손잡이가 흔들리더라.”

    저도 모르게 싱크대 쪽을 봤습니다.

    검은 테이프를 감아놓은 주전자가 그대로 있었습니다.

    친구가 말을 이었습니다.

    “형은 맨날 쓰니까 모르겠지만 나는 오랜만에 봤잖아. 저걸 아직도 쓰나 싶더라고.”

    “물은 잘 끓어.”

    “물이 끓는 게 문제가 아니라 손잡이가 깨졌잖아.”

    “안 떨어져.”

    “떨어지고 나서 바꾸려고?”

    옆에서 듣고 있던 아내가 물었습니다.

    “그 친구예요?”

    제가 휴대전화를 잠깐 떼고 대답했습니다.

    “응. 맞아.”

    아내가 전화기 쪽으로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잘하셨어요. 내가 그렇게 바꾸자고 해도 안 바꿔요.”

    친구가 웃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거봐. 형수님도 내 편이잖아.”

    “둘이 아주 잘한다.”

    “형, 새것 써. 옛날 것은 버리고.”

    “알았어.”

    “알았다고만 하지 말고 진짜 버려.”

    “내가 알아서 해.”

    전화를 끊었습니다.

    아내가 기다렸다는 듯 상자를 열었습니다.

    새 주전자를 꺼내며 말했습니다.

    “잘됐네. 이제 저건 버리면 되겠네.”

    싱크대에 있던 낡은 주전자를 가리켰습니다.

    저도 그쪽을 봤습니다.

    “그래야겠지.”

    그때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아내가 새 주전자를 씻었습니다.

    물을 한 번 가득 받아 끓였다가 버리고 다시 헹궜습니다.

    낡은 주전자는 싱크대 구석으로 밀려났습니다.

    새것이 있는데도

    다음 날 아침 새 주전자를 처음 사용했습니다.

    물을 받고 스위치를 눌렀습니다.

    며칠 동안은 자연스럽게 새것을 썼습니다.

    낡은 주전자는 싱크대 구석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버리지도 않았고 다시 쓸 생각을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어느 아침이었습니다.

    아직 잠이 덜 깬 채 주방으로 나왔습니다.

    주전자를 집어 물을 받고 스위치를 눌렀습니다.

    식탁에 있던 아내가 저를 보더니 말했습니다.

    “그걸 왜 써요?”

    그제야 손에 잡은 것을 봤습니다.

    낡은 주전자였습니다.

    저도 웃었습니다.

    “그냥 집었네.”

    “새것이 바로 옆에 있는데?”

    “손에 먼저 잡혔어.”

    “그러니까 저걸 버려야 한다니까.”

    “나중에.”

    “언제요?”

    “못 쓰게 되면.”

    아내가 주전자 손잡이를 가리켰습니다.

    “지금도 충분히 못 쓰게 생겼어요.”

    “물은 잘 끓잖아.”

    말하고 나니 며칠 전 친구에게 했던 말과 똑같았습니다.

    아내는 더 말하지 않았습니다.

    잠시 뒤 물이 끓었습니다.

    컵에 물을 붓다가 손잡이를 한 번 더 단단히 잡았습니다.

    그날 오후 낡은 주전자를 자세히 들여다봤습니다.

    언제 샀는지는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어디에서 샀는지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누가 선물한 물건도 아니었습니다.

    대단한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이거 언제 산 건지 기억나?”

    아내가 주전자를 봤습니다.

    “아니요.”

    “당신이 산 거 아니야?”

    “내가요?”

    “나는 산 기억이 없는데.”

    “나도 없어요.”

    “그럼 누가 샀지?”

    “둘 중 하나가 샀겠죠.”

    아내가 웃었습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해요?”

    “아니. 그냥 궁금해서.”

    그것으로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며칠이 더 지났습니다.

    친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다른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친구가 물었습니다.

    “참, 주전자는 잘 써?”

    “응.”

    “옛날 것은 버렸고?”

    “아직.”

    친구가 웃었습니다.

    “설마 아직도 쓰는 건 아니지?”

    “가끔.”

    “형은 진짜 이상하다.”

    “뭐가.”

    “새것이 있는데 왜 깨진 걸 계속 써?”

    “멀쩡한 걸 왜 버려.”

    “또 멀쩡하대.”

    잠시 뒤 친구가 말했습니다.

    “근데 형, 그 주전자 진짜 오래됐다.”

    “그런가?”

    “내가 옛날에 형네 집 자주 들락거릴 때도 그걸로 커피 끓였잖아.”

    “그때도 저거였나?”

    “그랬던 것 같은데.”

    저도 기억을 더듬어봤습니다.

    친구가 우리 집에 자주 오던 때가 있었습니다.

    약속을 따로 잡지 않아도 근처를 지나다가 들르곤 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가기도 했고 커피 한 잔만 마시고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때도 있었던 것 같네.”

    “그럼 더 오래됐네.”

    “그렇겠지.”

    “그러니까 버려.”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 얘기가 왜 또 거기로 가.”

    친구도 웃었습니다.

    오늘은 내가 버린다

    주말에 그 친구가 근처에 볼일이 있다며 집에 들렀습니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오더니 주방 쪽을 한번 봤습니다.

    새 주전자와 낡은 주전자가 여전히 나란히 놓여 있었습니다.

    친구가 걸음을 멈췄습니다.

    “형.”

    “왜.”

    “설마 저거 아직도 쓰는 거야?”

    “가끔.”

    친구가 낡은 주전자의 손잡이를 잡아봤습니다.

    들뜬 테이프를 손가락으로 눌렀습니다.

    “이거 봐. 더 벌어졌잖아.”

    “괜찮아.”

    “뭐가 괜찮아.”

    친구가 주전자를 들어 올렸습니다.

    “안 되겠다. 오늘은 내가 버린다.”

    “놔.”

    제 입에서 바로 말이 나왔습니다.

    친구가 저를 봤습니다.

    “왜?”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냥 놔.”

    “이유가 뭐야?”

    “내 물건이잖아.”

    친구는 잠깐 저를 보더니 주전자를 내려놓았습니다.

    “알았어. 형 마음대로 해.”

    제가 새 주전자에 물을 받았습니다.

    친구가 그 모습을 보고 웃었습니다.

    “그래도 커피는 새것으로 끓여주네.”

    “손님이니까.”

    “새것으로 끓이면 맛이 좀 다른가?”

    “똑같아.”

    “내가 사준 거라 더 맛있을 텐데.”

    “네가 무슨 주전자 장인이냐.”

    친구가 웃었습니다.

    커피를 마시고 나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습니다.

    친구는 요즘 오래 앉아 있으면 허리가 뻐근하다고 했습니다.

    병원에 갔더니 많이 걸으라는 말을 들었다며 휴대전화를 꺼내 하루 걸음 수를 보여줬습니다.

    저도 제 휴대전화를 꺼냈습니다.

    누가 더 많이 걷느냐를 비교하다가 지난주에는 어디를 걸었는지, 동네에 새로 생긴 산책길은 어떤지 한참 이야기했습니다.

    주전자 이야기는 다시 나오지 않았습니다.

    친구는 두 시간쯤 있다가 돌아갔습니다.

    테이프를 다시 떼었다

    며칠 뒤 아침이었습니다.

    낡은 주전자에 물을 받으려다가 손잡이의 테이프가 다시 들뜬 것을 봤습니다.

    끝부분이 손가락에 걸렸습니다.

    서랍을 열었습니다.

    검은 테이프를 꺼냈습니다.

    가위로 한 조각을 잘랐습니다.

    주전자를 식탁 위에 놓고 들뜬 부분을 눌러 한 바퀴 감았습니다.

    두 번째를 감으려다가 손을 멈췄습니다.

    아내가 주방을 지나가다가 저를 봤습니다.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아무 말 없이 방금 감은 테이프를 다시 떼었습니다.

    “버리게요?”

    아내가 물었습니다.

    “그래야겠지.”

    “갑자기?”

    “갑자기는 아니지.”

    코드를 감았습니다.

    주전자를 들고 현관으로 나갔습니다.

    문 앞에 내려놓고 돌아서려다가 한번 봤습니다.

    손잡이에는 오래 붙어 있던 검은 테이프 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아내가 안에서 물었습니다.

    “뭐 해요?”

    “들어가.”

    문을 닫았습니다.

    한 시간쯤 뒤 외출하려고 문을 열었습니다.

    주전자는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 옆을 지나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오후에 돌아왔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우리 집 문 앞이 먼저 보였습니다.

    주전자는 없었습니다.

    집에 들어가 신발을 벗었습니다.

    “주전자 없어졌네.”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그래요?”

    “누가 치웠나 봐.”

    “그랬겠죠.”

    아내는 하던 일을 계속했습니다.

    저도 더 말하지 않았습니다.

    주방에는 새 주전자 하나만 남았습니다.

    며칠 뒤 친구가 근처에 왔다며 전화를 했습니다.

    “형, 집이야?”

    “응.”

    “잠깐 들러도 돼?”

    “와.”

    십여 분 뒤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친구가 들어와 외투를 벗어 의자에 걸고 식탁에 앉았습니다.

    “커피 한 잔 줘.”

    “오자마자 커피부터 찾냐.”

    “그거 얻어먹으려고 주전자까지 사줬는데.”

    제가 웃으며 주방으로 갔습니다.

    새 주전자에 물을 받았습니다.

    친구가 주방 쪽을 보다가 말했습니다.

    “어?”

    “왜.”

    “옛날 거 없어졌네.”

    “버렸어.”

    친구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잘했네.”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커피 한 잔 마실 거지?”

    “그거 얻어먹으려고 왔다니까.”

    물이 끓었습니다.

    커피 두 잔을 만들어 식탁으로 가져갔습니다.

    친구가 한 모금 마시더니 저를 봤습니다.

    “형.”

    “왜.”

    “주전자는 좋아졌는데 커피 맛은 그대로네.”

    “그럼 마시지 마.”

    “공짜니까 마셔야지.”

    친구가 다시 컵을 들었습니다.

    한동안 다른 이야기를 했습니다.

    돌아갈 시간이 되자 친구가 빈 컵을 싱크대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잘 마셨어.”

    “다음에는 네가 사 와.”

    “뭘?”

    “커피.”

    “주전자까지 사줬으면 됐지.”

    친구가 웃으며 현관으로 갔습니다.

    문을 닫고 돌아오니 아내가 싱크대에 놓인 컵을 씻고 있었습니다.

    컵을 엎어놓고 새 주전자를 옆으로 조금 밀었습니다.

    “이제 이것도 제법 익숙해졌네.”

    “그러게.”

    다음 날 아침 주방으로 나왔습니다.

    주전자에 물을 받았습니다.

    스위치를 눌렀습니다.

    물이 끓는 동안 컵을 꺼내 커피를 담았습니다.

    잠시 뒤 스위치가 올라갔습니다.

    주전자를 들어 컵에 물을 부었습니다.

  • 요즘 뭐 하세요?

    요즘 뭐 하세요?

    토요일 오전이었습니다.

    휴대전화가 울렸습니다.

    오래전에 함께 일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한동안 연락이 없던 사람이라 무슨 일인가 싶어 전화를 받았습니다.

    “형님, 오늘 뭐 하세요?”

    딱히 할 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입에서는 다른 말이 먼저 나왔습니다.

    “오늘은 좀 일이 있어.”

    전화를 끊고 나서도 처음에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만나자는 말이 나올 것 같아서 미리 피한 것뿐이었습니다.

    씻고 나가는 것도 귀찮았고, 갑자기 생긴 약속에 몇 시간을 내주는 것도 내키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조용히 있고 싶었습니다.

    점심때가 지나자 문자 하나가 왔습니다.

    ‘알겠습니다. 다음에 뵐게요.’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그날 오후에는 정말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점심을 먹고 TV를 조금 보다가 잠깐 졸았습니다. 일어나 보니 세 시가 넘었습니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고 창밖을 보다가 아침 전화가 생각났습니다.

    무슨 일이 있다고 했지?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누가 물어본 것도 아닌데 혼자 조금 우스워졌습니다.

    바빠서 못 만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싫었던 것도 아닙니다. 만나면 반가웠을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없는 일까지 만들어냈을까.

    며칠 뒤 동네에서 아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요즘 바쁘세요?”

    “그냥 이것저것 하지.”

    집으로 돌아오다가 그 말이 걸렸습니다.

    이것저것.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말하려니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습니다.

    예전에는 바쁘다는 말을 별로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일정이 많았습니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 돌아올 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날도 있었고, 달력을 펴면 이미 약속이 들어 있는 날도 많았습니다.

    누가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으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바쁘지.”

    그 한마디면 대충 통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많아진 뒤에도 그 말은 남아 있었습니다.

    약속을 미룰 때도 그랬고, 전화를 짧게 끝낼 때도 그랬습니다.

    어느 날 전화를 끊고 책상 위 달력을 보았습니다.

    그 주에는 적혀 있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한동안 달력을 들여다보다가 피식 웃었습니다.

    나는 누구한테 바쁘다고 한 거지?

    바쁘지 않은데 바쁘다고 말했다

    그 주 금요일, 토요일에 전화했던 사람에게 다시 연락했습니다.

    “지난번에 왜 전화했어?”

    잠깐 침묵이 있었습니다.

    “별일 아니었어요.”

    “그래도.”

    “그냥 형님 생각나서 밥이나 먹을까 했죠.”

    “오늘은?”

    이번에는 상대가 웃었습니다.

    “오늘은 제가 일이 있어요.”

    “그래?”

    “다음에 제가 전화할게요.”

    전화를 끊었습니다.

    조금 아쉬웠습니다.

    지난 토요일에는 만나자는 말이 나올까 봐 먼저 피했는데, 정작 상대가 시간이 없다고 하자 밥 한 끼가 아쉬워졌습니다.

    며칠 뒤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오늘은 뭐 하세요?”

    이번에도 특별한 일정은 없었습니다.

    대답하려다 잠깐 멈췄습니다.

    “아무것도 안 해.”

    전화기 너머에서 웃음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럼 나오세요.”

    “어디로?”

    “나오시면 정하죠.”

    전화를 끊고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둘은 식당에서 만났습니다.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셨습니다.

    대단한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예전에 같이 일하던 사람들 이야기가 나왔고, 누가 어디로 갔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한때는 매일 얼굴을 보던 사람의 이름이 바로 떠오르지 않아 둘이 한참 기억을 더듬었습니다.

    “그 사람 있잖아요. 맨날 제일 먼저 출근하던 사람.”

    “안경 쓴 사람?”

    “아니요. 그 사람 말고.”

    이름 하나를 놓고 한동안 헤맸습니다.

    겨우 생각났을 때는 그것만으로 한참 웃었습니다.

    그러다 그 사람이 물었습니다.

    “형님, 요즘은 진짜 뭐 하세요?”

    이번에는 ‘이것저것’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냥 지내.”

    “심심하지 않아요?”

    잠시 생각했습니다.

    “심심할 때도 있지.”

    말하고 나서 상대의 얼굴을 한번 보았습니다.

    별 반응이 없었습니다.

    “나도 쉬는 날은 그래요.”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조금 전 생각난 사람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히려 그 짧은 대화가 오래 남았습니다.

    그냥 지낸다.

    심심할 때도 있다.

    말해버리고 나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누가 안쓰럽게 보지도 않았고,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묻지도 않았습니다.

    아무 데도 안 다닙니다

    며칠 뒤 은행에 갔습니다.

    번호표를 뽑으니 앞에 일곱 명이 있었습니다.

    빈 의자를 찾아 앉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이름을 불렀습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한동안 얼굴을 못 봤던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오랜만입니다.”

    “그러게요. 여기서 다 보네.”

    그 사람도 옆에 앉았습니다.

    자녀 이야기를 조금 했고, 동네에 새로 생긴 가게 이야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그가 물었습니다.

    “요즘 어디 다니세요?”

    예전 같으면 대답 뒤에 무언가를 붙였을 것입니다.

    준비하는 것이 있다거나, 이것저것 하고 있다거나, 요즘도 정신없이 지낸다는 말 같은 것들입니다.

    그날은 그냥 말했습니다.

    “아무 데도 안 다녀.”

    상대가 잠깐 저를 쳐다봤습니다.

    그 짧은 침묵이 예전 같으면 불편했을 겁니다.

    이번에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잠시 뒤 그가 말했습니다.

    “좋으시겠네.”

    뜻밖의 대답이었습니다.

    “뭐가 좋아?”

    “아무 데도 안 가도 되잖아요.”

    둘이 웃었습니다.

    마침 그의 번호가 불렸습니다.

    “먼저 갈게요.”

    “그래요.”

    그는 창구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저는 다시 번호표를 보았습니다.

    아직 두 사람이 남아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그 말이 몇 번 생각났습니다.

    아무 데도 안 가도 된다.

    저는 그동안 비슷한 생활을 전혀 다른 말로 보고 있었습니다.

    아무 데도 갈 데가 없다.

    두 문장은 닮아 있었지만 듣고 나면 달랐습니다.

    그렇다고 그 말을 들었다고 다음 날부터 생활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무료한 날은 여전히 무료했습니다. 아침을 먹고 나면 점심까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집 안을 서성이는 날도 있었습니다.

    어떤 날에는 예전처럼 일정이 빽빽했던 때가 그리웠습니다.

    다만 누군가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을 때 대답할 말을 미리 준비하는 일은 조금씩 줄었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며칠 뒤 그 사람과 다시 점심을 먹게 되었습니다.

    자리에 앉자 그가 휴대전화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먼저 물었습니다.

    “요즘 바빠?”

    “죽겠어요.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얼마 전까지 제가 자주 하던 말이었습니다.

    “그렇게 바빠?”

    “이것저것 할 게 많아요.”

    웃음이 나올 뻔했습니다.

    이것저것.

    저도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음식을 주문하고 나서도 그는 휴대전화 화면을 몇 번 켰다가 다시 내려놓았습니다.

    “무슨 일 있어?”

    “아니요.”

    “그런데 뭘 자꾸 봐?”

    “그냥 습관이죠.”

    음식이 나왔습니다.

    밥을 먹으면서 무엇이 그렇게 바쁜지 물었습니다.

    며칠 전에는 집에 있는 전등을 바꿨고, 어제는 차를 정비소에 맡겼다고 했습니다. 건강검진 예약도 하나 잡혀 있었고, 주말에는 장을 보러 갈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그게 죽을 만큼 바쁜 거야?”

    제가 웃으며 물었습니다.

    그도 웃었습니다.

    “그러게요.”

    잠시 밥을 먹었습니다.

    그러다 그가 숟가락을 내려놓았습니다.

    “사실 바쁜 건 아닌데요.”

    말끝이 조금 느려졌습니다.

    “집에 있으면 하루가 너무 길어요.”

    이번에는 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뭐라도 해야 될 것 같고요. 약속 하나 있으면 그날은 괜찮은데, 아무것도 없는 날은 아침부터 좀 그래요.”

    “뭐가?”

    “모르겠어요. 그냥 오늘 뭐 하지 싶죠.”

    얼마 전의 제 모습과 닮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닮았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할 일을 만들 때도 있어요. 차도 아직 더 타도 되는데 정비소 갔다 왔고, 멀쩡한 전등도 바꿨고.”

    “장을 보는 것도?”

    “그건 가야죠.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둘이 웃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커피 마실래?”

    제가 물었습니다.

    그가 시계를 보았습니다.

    “그러죠.”

    둘은 가까운 카페로 갔습니다.

    자리에 앉은 뒤에도 그가 먼저 시계를 보았습니다.

    “몇 시까지 가야 돼?”

    “아무 때나요.”

    “그럼 왜 자꾸 시계를 봐?”

    그가 자기 손목을 내려다봤습니다.

    “그러게요.”

    커피가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예전 직장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다 자녀 이야기가 나왔고, 한동안 가지 않았던 동네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우리 예전에 출장 갔다가 국수 먹은 데 기억나요?”

    기억이 났습니다.

    길을 잘못 들어 우연히 들어갔던 작은 가게였습니다.

    “거기 국수 괜찮았는데.”

    “아직 있으려나?”

    그가 휴대전화를 꺼냈습니다.

    검색을 하더니 화면을 제 쪽으로 돌렸습니다.

    “있네요.”

    간판은 바뀌어 있었지만 가게는 남아 있었습니다.

    “한번 가볼까요?”

    그가 말했습니다.

    저는 화면을 들여다봤습니다.

    차로 한 시간 조금 넘게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지금?”

    그가 저를 쳐다봤습니다.

    “지금요?”

    “가자며.”

    “오늘?”

    “오늘 가면 안 돼?”

    그가 다시 시계를 봤습니다.

    이번에는 둘 다 웃었습니다.

    국수 한 그릇 먹으러

    계산을 하고 카페에서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농담처럼 꺼낸 이야기였습니다.

    둘 다 집으로 돌아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주차장에 내려와서도 아무도 먼저 집에 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차에 올라 내비게이션에 가게 이름을 넣었습니다.

    한 시간 십여 분.

    “진짜 가요?”

    “싫으면 지금 말해.”

    “아니요. 갑시다.”

    차가 출발했습니다.

    처음 삼십 분쯤은 조금 전 카페에서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그러다 익숙한 도로를 벗어나자 말이 줄었습니다.

    라디오에서는 오래된 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 둘 다 아는 노래였지만 제목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이 창밖을 보다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국수 먹으러 이렇게 멀리 가는 사람들이었나?”

    “오늘부터 그런 사람인가 보지.”

    둘이 웃었습니다.

    조금 뒤에는 말이 끊겼습니다.

    굳이 무슨 이야기를 찾아내지 않았습니다.

    차창 밖으로 논과 낮은 건물들이 지나갔습니다. 신호에 걸리면 멈췄고, 다시 파란불이 켜지면 출발했습니다.

    예전에는 누군가와 차를 타고 이렇게 오래 가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시간이 어색했습니다. 무슨 이야기라도 해야 할 것 같았고, 도착할 때까지 침묵이 길어지면 괜히 라디오 소리를 키우기도 했습니다.

    그날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동네는 기억과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예전에 있던 주유소가 보이지 않았고 넓은 공터에는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습니다.

    “여기가 맞아?”

    “내비는 맞다고 하는데.”

    길을 잘못 든 줄 알고 다시 확인했습니다.

    가게는 있었습니다.

    다만 우리가 기억하던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낡은 간판은 새것으로 바뀌어 있었고 문 앞에는 키오스크까지 놓여 있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주인도 예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여기 맞아요?”

    그 사람이 작게 물었습니다.

    “주소는 맞는데.”

    둘은 국수를 주문했습니다.

    음식이 나오자 한동안 말없이 먹었습니다.

    그 사람이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맛이 이랬어요?”

    “모르겠는데.”

    “내 기억에는 엄청 맛있었는데.”

    “그때 배가 고팠겠지.”

    또 웃었습니다.

    굳이 여기까지 올 필요는 없었습니다.

    동네에도 국숫집은 많았습니다. 왕복 두 시간이 넘게 걸렸고 기름값까지 생각하면 꽤 비싼 국수였습니다.

    그렇다고 괜히 왔다는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바로 차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근처를 조금 걸었습니다.

    예전에 보았던 건물이 하나쯤 남아 있을까 찾아보았지만 대부분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골목 하나를 가리켰습니다.

    “우리 저쪽으로 갔던 것 같은데.”

    “나는 반대쪽 같은데.”

    “형님 기억도 이제 못 믿겠네요.”

    “네 기억은 믿을 만하고?”

    그날 있었던 일을 두 사람이 서로 다르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누가 운전했는지부터 달랐고, 왜 그 동네에 갔는지도 정확하지 않았습니다.

    확실한 것은 국수를 먹었다는 것뿐이었습니다.

    그것도 맛이 어땠는지는 이제 자신이 없었습니다.

    카페에서 우연히 꺼낸 기억 하나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우리가 찾던 것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커피나 한잔하고 갑시다.”

    “아까 마셨잖아.”

    “오늘 바쁘세요?”

    그가 물었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대답했습니다.

    “아니.”

    근처 카페에 들어갔습니다.

    창가에 앉았습니다.

    이번에는 아무도 시계를 보지 않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갈 때보다 말이 적었습니다.

    피곤해서였는지, 더 할 이야기가 없어서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차 안에는 라디오 소리만 작게 흘렀습니다.

    한참 뒤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오늘 하루 다 갔네요.”

    창밖을 보니 해가 많이 기울어 있었습니다.

    “그러네.”

    “국수 먹다가 하루 다 갔어요.”

    “그러게.”

    그 사람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 창밖을 보았습니다.

    저도 앞을 보았습니다.

    그날 하루를 어디에 썼느냐고 묻는다면 국수 한 그릇에 썼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오늘 뭐 하셨어요?

    집에 돌아오니 저녁이 가까웠습니다.

    신발을 벗고 들어와 가방을 내려놓았습니다.

    아침에는 이런 하루가 될 줄 몰랐습니다.

    누군가 아침에 오늘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었다면 국수를 먹으러 한 시간 넘게 차를 타고 갈 거라고는 말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계획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옷을 갈아입고 소파에 앉았습니다.

    몸은 조금 피곤했습니다.

    한동안 그대로 앉아 있었습니다.

    저녁을 늦게 먹었습니다.

    그날 밤 다른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가 물었습니다.

    “오늘 뭐 하셨어요?”

    국숫집 이야기를 하려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처음부터 설명하려면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았습니다.

    “그냥 사람 하나 만나고 왔어.”

    “바쁘셨네.”

    그 말을 듣고 웃었습니다.

    “아니. 안 바빴어.”

    “그래요?”

    “응.”

    상대는 더 묻지 않았습니다.

    대화는 그대로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습니다.

    전화를 끊고 소파에 다시 앉았습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까지만 해도 오늘은 사람을 만나 점심이나 먹고 들어오는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점심이 국수가 되었고, 국수가 한 시간 넘는 길이 되었고, 길 끝에서 오래전의 동네를 다시 보았습니다.

    하루는 계획한 것보다 길게 움직였지만 이상하게도 ‘바빴다’는 말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며칠 뒤에는 아무 약속도 없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신문을 조금 읽었습니다.

    점심 무렵에는 냉장고에 남은 것을 꺼내 먹었습니다.

    오후에는 잠깐 졸았습니다.

    눈을 떠보니 네 시가 가까웠습니다.

    휴대전화에는 메시지가 하나 와 있었습니다.

    국수를 함께 먹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집 생각나네요.’

    웃음이 났습니다.

    ‘맛있어서?’

    잠시 뒤 답이 왔습니다.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럼 왜?’

    한참 답이 없었습니다.

    저녁을 준비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습니다.

    ‘그냥 그날이 재밌었어요.’

    그 문장을 한번 읽었습니다.

    답장을 쓰려다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습니다.

    냉장고를 열어 저녁거리를 꺼냈습니다.

    그날은 누구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멀리 가지도 않았습니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했습니다.

    TV를 켰다가 볼 만한 것이 없어 다시 껐습니다.

    밤이 조금 깊었을 때 전화가 왔습니다.

    “오늘 뭐 하셨어요?”

    예전 같으면 잠깐 머릿속을 뒤졌을 것입니다.

    그날 있었던 일을 모아 대답할 만한 것을 하나 찾았을 것입니다.

    그날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오늘?”

    창밖을 한번 보았습니다.

    “아무것도 안 했어.”

    상대가 웃었습니다.

    “팔자 좋으시네요.”

    저도 웃었습니다.

    “그런가 봐.”

    전화가 끝났습니다.

    탁자 위에는 아침에 읽다 만 신문이 놓여 있었습니다.

    신문을 접어 한쪽에 두었습니다.

    주방으로 가서 물을 한 잔 따라 마셨습니다.

    컵을 씻어 엎어놓았습니다.

    거실 불을 끄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 우리,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볼까?

    우리,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볼까?

    점심을 먹고 식당을 나왔습니다.

    세 사람이었습니다.
    알고 지낸 햇수를 굳이 세어본 적은 없지만, 처음 만났던 때의 얼굴보다 지금의 얼굴이 더 익숙할 만큼 오래된 사이였습니다.
    예전에는 따로 날짜를 잡지 않아도 자주 마주쳤고, 일이 끝날 무렵 누군가 밥이나 먹자고 하면 별다른 약속 없이도 한자리에 앉았습니다.
    요즘은 한 사람이 먼저 연락하고, 세 사람의 사정을 맞추고, 한두 번 날짜를 바꾼 뒤에야 겨우 얼굴을 봅니다.

    그래도 막상 만나면 오래간만이라는 느낌은 금세 사라집니다.

    한 사람은 메뉴판을 오래 들여다보다 결국 늘 먹던 것을 골랐고, 다른 사람은 예전에 했던 이야기를 또 꺼냈습니다.
    누가 먼저 그 일을 시작했느냐를 두고 기억이 달라 한동안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이미 여러 번 했던 이야기였지만 아무도 그만하자고 하지 않았습니다.
    음식이 나오고 한참이 지나도록 이야기가 이어졌고, 식사가 끝날 무렵에는 처음 주문할 때보다 목소리가 조금씩 커져 있었습니다.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고 앞으로 자주 만나자는 약속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말해봐야 각자의 생활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것을 세 사람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식당을 나와 횡단보도 앞에서 헤어졌습니다.
    한 사람은 길 건너편 정류장으로 가야 했고, 한 사람은 주차장으로 향했습니다.
    남은 한 사람은 반대편 골목으로 걸어가야 했습니다.

    “다음에 또 보자.”

    “그래. 연락해.”

    늘 하던 인사였습니다.

    한 사람은 횡단보도를 건넜고 두 사람도 각자의 방향으로 걸었습니다.
    오늘 잘 만났으니 다음에 또 만나면 됩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걷다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볼까?

    오래 알았다는 것과 앞으로 많이 본다는 것

    그런 생각을 할 만한 일은 없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함께 밥을 먹었고, 웃었고, 다음에 또 보자며 헤어졌습니다.
    사이가 멀어진 것도 아닙니다.
    전화번호도 그대로 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연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든’이라는 말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오래 알고 지냈다는 사실과 앞으로도 많이 만날 것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한데 놓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때는 오늘 못 보면 내일 볼 수 있었고 이번 주에 시간이 맞지 않으면 다음 주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먼저 집에 가더라도 아쉬울 것이 없었습니다.
    며칠 지나면 다시 얼굴을 볼 테니까요.

    그때는 한 번의 만남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귀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셀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함께 먹은 밥이 몇 끼인지 모릅니다.
    일을 마치고 같이 걸었던 길도, 잠깐 앉아 이야기를 나눈 저녁도 몇 번인지 알지 못합니다.
    기억에 남지 않은 날이 훨씬 많습니다.
    무엇을 먹었는지조차 떠오르지 않는 식사가 대부분이고,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사라진 오후도 많습니다.

    돌아보면 바로 그런 날들이 관계의 대부분을 만들었습니다.

    특별한 사건 몇 개가 사람 사이를 오래 붙들어준 것이 아니라, 별일 없던 수많은 날에 같은 공간에 있었습니다.
    다시 만나는 일이 쉬웠기 때문에 한 번의 만남에 의미를 붙일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생활이 달라졌습니다.

    한 사람은 좀 멀리 이사를 갔고 다른 사람은 하루의 시간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마주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됐지만 이제는 만나기 위해 약속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관계를 설명하는 말은 그대로였습니다.

    오래된 친구이고, 가까운 사람이고, 언제든 연락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언제든’은 달력에 없다

    며칠 뒤 세 사람이 있는 대화방에 메시지가 하나 올라왔습니다.

    “다음에는 ○○도 같이 보자.”

    지난번 식사 자리에서 이름이 나왔던 사람이었습니다.

    “좋지.”

    “한번 보자.”

    두 사람이 곧바로 답했습니다.

    그러고는 대화가 끝났습니다.

    누구도 날짜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당장 약속을 잡아야 하는 일도 아니었고, 한 달쯤 지나 연락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며칠 뒤 다른 일정을 확인하려고 달력을 펼쳤다가 그 대화가 생각났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이미 일이 있었습니다.
    다음 주에는 집에서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고, 그다음 주에는 먼저 잡힌 약속이 있었습니다.
    한 주를 더 넘기니 달력도 다음 달로 넘어갔습니다.

    분명 언제든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달력에는 ‘언제든’이라는 날이 없었습니다.

    날짜는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만나는 날은 하나도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먼저 날짜를 정해야 했습니다.
    내가 되는 날과 상대가 되는 날이 같아야 했고, 세 사람이면 세 사람의 시간이 겹쳐야 했습니다.
    만나고 싶은 마음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정한 날까지 별다른 일이 생기지 않아야 했고, 그날이 오면 실제로 집을 나서야 했습니다.

    시간이 있다는 것과 만날 기회가 있다는 것이 처음으로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한 해에는 열두 달이 있습니다.
    달력만 보면 아직 많은 날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과 실제로 만날 수 있는 날은 그 많은 날짜 가운데 드문드문 있을 뿐입니다.

    그날을 한번 넘기면 다음 기회가 언제 올지는 모릅니다.

    그래도 우리는 별로 걱정하지 않습니다.

    다음 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 달이 오면 또 그다음 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중한 사람도 미룬다

    여기까지 생각하다 보니 조금 불편한 사실도 보였습니다.

    사람을 만나지 못한 이유가 언제나 바빴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있었는데도 만나지 않은 날이 있었습니다.
    연락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내일로 미룬 적도 있었고, 만나자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번 주에는 그냥 집에 있고 싶어 다음으로 넘긴 적도 있었습니다.

    반가운 이름이 떠올랐지만 전화를 걸지 않은 날도 있습니다.

    그 사람이 싫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렇게 미룬 적이 많았습니다.

    다음에 연락해도 이해할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몇 달 만에 만나도 어색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고, 오래 연락하지 않은 이유를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였습니다.

    한동안 만나지 않아도 관계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사람 사이를 편하게 해줍니다.
    그런데 그 믿음 덕분에 만남을 뒤로 미루기도 합니다.

    급한 일은 오늘 합니다.
    기한이 있는 일도 먼저 처리합니다.
    누군가 기다리고 있는 약속이라면 시간을 맞춥니다.

    오래된 사람에게는 다음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주에 못 보면 다음 주가 있고, 이번 달에 못 보면 다음 달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루가 복잡할 때 뒤로 밀리는 것은 오히려 오래된 사람일 때가 있습니다.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몇 번을 미루어도 관계는 그대로인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관계는 그대로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만나지 않은 시간은 지나갑니다.

    자주 만나야 좋은 사이일까

    여기까지 생각하면 금세 한쪽으로 기울기 쉽습니다.

    소중한 사람이라면 자주 만나야 하고, 미루지 말아야 하며, 시간이 있을 때 얼굴을 봐야 한다는 쪽입니다.

    그런데 실제 사람 사이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몇 달에 한 번 만나도 충분한 사람이 있습니다.
    일 년에 한 번 얼굴을 보면서도 어제 만난 사람처럼 편한 사이가 있습니다.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아도 서로의 자리를 의심하지 않는 관계도 있습니다.

    반대로 자주 만난다고 반드시 가까운 것도 아닙니다.

    매일 마주쳐도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을 수 있고, 자주 식사를 하면서도 정해진 이야기만 주고받는 사이가 있습니다.

    만남의 횟수로 관계의 깊이를 재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볼지를 생각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횟수를 늘리라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누구를 얼마나 자주 만나야 좋은 관계가 되는지 정할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처음의 질문은 다른 곳을 건드리고 있었습니다.

    다음에.

    우리는 이 말을 너무 쉽게 씁니다.

    오늘 못 보면 다음에 보면 되고, 이번 달에 안 되면 다음 달에 보면 됩니다.
    다음이 있다는 사실을 굳이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음이 있다는 것과 다음이 저절로 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연락하고 다른 사람이 답해야 합니다.
    날짜 하나가 정해져야 하고, 그날까지 각자의 생활을 지나온 사람들이 실제로 한곳에 모여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 한 번이 생깁니다.

    그렇다고 그 사실을 안 뒤부터 약속을 서둘러 잡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생활은 여전히 생활대로 흘러갔습니다.

    다만 누군가 “다음에 보자”고 말할 때 그 말을 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듣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지나온 삼십 년과 앞으로의 한 번

    오래된 사람을 떠올릴 때 우리는 지나온 시간부터 셉니다.

    십 년을 알았고, 이십 년을 함께 지냈고, 삼십 년 친구라고 말합니다.
    그 햇수 안에는 수많은 장면이 들어 있습니다.

    젊었을 때의 얼굴을 알고 있습니다.
    서로 처음 어떤 일을 시작했는지도 기억합니다.
    지금은 사라진 가게에서 밥을 먹었던 이야기를 하고, 그때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를 두고 여전히 서로 기억이 맞다고 우깁니다.

    그 많은 기억 때문에 관계가 넉넉하게 느껴집니다.

    이미 함께한 시간이 많으니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온 삼십 년은 이미 생긴 시간입니다.

    앞으로의 한 번은 아직 없습니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컸습니다.

    과거에는 수없이 많이 만났더라도 앞으로 한 번을 더 만나려면 다시 날짜를 정해야 합니다.
    같은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같은 이야기를 듣고, 헤어질 때 인사를 해야 비로소 새로운 한 번이 생깁니다.

    그렇다고 남은 만남을 계산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사람을 앞으로 열 번 보려면 십 년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사람 사이가 너무 삭막해집니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이번이 몇 번째인지 세고 싶지도 않습니다.

    몇 번 남았는지 알 수도 없습니다.

    처음 떠올랐던 질문에는 애초부터 숫자로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 질문이 남긴 것은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오래 알았다는 사실이 앞으로의 한 번까지 만들어놓지는 않는다는 것.

    그것뿐이었습니다.

    만나지 않은 날도 우리의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만나지 않은 시간을 아깝다고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각자 살아야 할 하루가 있었습니다.

    일을 해야 했고 집에서 해야 할 일도 있었습니다.
    혼자 있고 싶은 날도 있었으며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은 때도 있었습니다.
    약속 하나 없이 보내는 오후가 좋았던 날도 있습니다.

    그 시간 역시 삶입니다.

    누군가를 만나지 않았다고 잘못 보낸 하루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달력을 보면서도 굳이 약속을 잡지 않았습니다.
    대화방에 다시 날짜를 묻지도 않았습니다.
    생활은 전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음’이라는 말은 전과 똑같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도록 쌓여 있는 시간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실제로 다시 만나기 전까지는 한 번으로 셀 수도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안다고 하루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늘 만나지 않는다고 오늘을 잘못 산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다음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만 남았습니다.

    한 번은 그냥 한 번이었다

    몇 달 뒤 세 사람은 다시 만났습니다.

    누가 먼저 연락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날짜를 맞추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처음 말한 날에는 한 사람이 안 됐고, 다음 날짜에는 다른 사람에게 일이 있었습니다.
    몇 번 메시지가 오간 끝에 토요일 점심으로 정했습니다.

    지난번과 다른 식당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조금 늦었습니다.

    먼저 도착한 두 사람이 메뉴판을 보고 있는데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습니다.

    “많이 기다렸어?”

    “아니. 우리도 방금 왔어.”

    사실 십 분쯤 기다렸습니다.

    자리에 앉자 지난번에 하던 이야기의 뒤가 이어졌습니다.
    몇 달이 지나 있었지만 대화는 잠깐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웠습니다.

    음식을 먹다가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우리 지난번에 언제 봤지?”

    한 사람이 휴대전화를 꺼냈습니다.
    사진을 찾아보려는 것 같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말했습니다.

    “됐어. 밥이나 먹어.”

    휴대전화를 다시 내려놓았습니다.

    아무도 날짜를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그날이 올해 몇 번째 만남인지도 세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만날 수 있을지 말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냥 밥을 먹었습니다.

    한 사람이 전에 했던 이야기를 또 꺼냈습니다.

    “그 이야기 지난번에도 했어.”

    “내가 언제?”

    “했어.”

    “기억 안 나는데?”

    또 웃었습니다.

    그 순간에는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몇 번을 더 만날지도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그냥 한 번이었습니다.

    같은 자리에 앉아 밥을 먹고, 이미 들었던 이야기를 또 듣고, 별것 아닌 일로 웃는 몇 시간이었습니다.

    예전에는 그런 한 번이 너무 흔해서 세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세지 않는 이유가 조금 달라졌습니다.

    셀 필요가 없었습니다.

    지금 만나고 있었으니까요.

    다음에 또 보자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비가 조금 내리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만 우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처마 아래에 서서 비가 잦아들기를 잠깐 기다렸습니다.

    한 사람이 주차장까지 뛰어가 차를 가져오겠다고 했고 다른 사람이 됐다며 손을 저었습니다.
    역까지 멀지 않으니 그냥 가겠다고 했습니다.

    몇 마디를 더 주고받다가 결국 각자 가기로 했습니다.

    헤어지기 전에 누군가 말했습니다.

    “다음에 또 보자.”

    예전과 똑같은 말이었습니다.

    이번에도 날짜는 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

    한 사람은 우산을 펴고 걸어갔고 다른 사람은 가방을 머리 위에 올렸습니다.
    몇 걸음 지나자 세 사람의 거리가 조금씩 벌어졌습니다.

    몇 번 남았는지 세지 않았습니다.

    셀 수도 없었습니다.

    나도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습니다.

    뒤에서 한 사람이 불렀습니다.

    “야.”

    돌아보았습니다.

    “다음엔 네가 사.”

    웃음이 나왔습니다.

    “알았어.”

    그 사람이 손을 한번 들고 다시 걸어갔습니다.

    다음이 언제인지는 묻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