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되면 일터로 가는 것이 지금은 당연한 일처럼 보입니다.
집을 나서 버스를 타고, 자동차를 몰고, 지하철에 올라 회사나 공장으로 갑니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한 달 동안 일한 뒤 월급을 받습니다. 어느 직장에서 일하는지가 자신을 소개하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온 것은 아닙니다.
한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큰 일터는 논과 밭이었습니다. 집과 일터가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았습니다. 날이 밝으면 일을 시작했고 계절이 바뀌면 해야 할 일도 달라졌습니다. 씨를 뿌리는 때와 거두는 때가 있었고, 비가 너무 와도 걱정이었고 오지 않아도 걱정이었습니다.
먹고사는 일은 땅과 가까이 붙어 있었습니다.
1960년 우리나라 취업인구 가운데 농림어업에 종사한 사람은 66.0%였습니다. 제조업 종사자는 6.79%였습니다. 열 명 가운데 여섯 명이 넘는 사람이 농림어업에서 일하던 때였습니다.¹⁾
불과 몇십 년 뒤 이 모습은 크게 달라집니다.
사람이 갑자기 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먹고사는 방법을 둘러싼 세상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고향을 떠나는 것이 처음부터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농촌에서 산다는 것은 단순히 한 장소에 거주한다는 뜻만은 아니었습니다.
집이 있었고 논과 밭이 있었습니다. 부모와 형제가 가까이 살았고 이웃집 사정도 대강 알고 지냈습니다. 어느 집에 일손이 부족한지, 어느 논에 물이 필요한지 서로 알고 살았습니다.
사람의 일과 생활과 관계가 한곳에 묶여 있었습니다.
그곳을 떠난다는 것은 주소 하나를 옮기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익숙한 생활 전체를 두고 가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1960년대 중반 이후 산업화가 진행되고 도시의 고용기회가 늘어나면서 농촌에서 도시로 향하는 인구이동이 뚜렷해졌습니다. 농촌에서는 절대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고 도시에는 사람이 집중되었습니다.²⁾
사람이 고향을 떠난 이유를 하나로 묶을 수는 없습니다.
농사만으로 생활을 꾸리기 어려운 집이 있었습니다. 가족 가운데 누군가는 다른 벌이를 찾아야 했습니다. 학교를 더 다니고 싶은 젊은이도 있었습니다. 먼저 도시로 간 친척이나 고향 사람을 따라 길을 나선 사람도 있었습니다.
반대로 도시에서는 사람을 필요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농촌에서 사람을 밀어내는 힘과 도시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함께 커지고 있었습니다.
그 두 힘 사이에서 수많은 사람이 고향을 떠났습니다.
나라가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시작되었습니다.
농업생산력을 높이고 기간산업과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며 수출과 고용을 늘리는 일이 국가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경제를 성장시키고 기술을 축적하며 산업을 키우려는 계획이 실제 공장과 도로, 발전시설과 산업단지의 건설로 이어졌습니다.
계획표에 적힌 산업은 결국 땅 위의 시설이 되어야 했습니다.
공장을 지으려면 땅이 필요했습니다.
전기가 들어와야 했습니다.
원료를 실어 나를 도로와 철도가 필요했고 제품을 내보낼 항구도 필요했습니다.
공장을 짓는 데에는 철과 목재와 유리와 시멘트가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공장이 완성되면 그 안에서 일할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1962년 울산공업지구가 지정되었습니다. 서울 구로에서는 1964년 수출산업공업단지 조성이 시작됐고, 1967년 4월 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 제1단지 준공식이 열렸습니다. 이후 여러 지방도시에도 공업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³⁾
지도 위에 공업지구 하나가 그어질 때마다 그곳에는 공장만 들어선 것이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일터가 생겼습니다.
사람이 움직일 이유가 하나씩 더 생겼습니다.
처음부터 거대한 기계가 모든 일을 한 것은 아니었다
오늘날 공장을 떠올리면 자동화된 생산라인과 로봇을 먼저 생각하기 쉽습니다.
초기의 수출공장은 모습이 달랐습니다.
당시 산업의 상당 부분은 많은 사람의 손을 필요로 했습니다.
구로공단에는 의류와 봉제제품 업체가 많이 들어왔고 전자·음향기기, 전기·광학기기 등의 업체도 자리 잡았습니다. 생산량이 늘어나려면 그만큼 많은 사람이 공장 안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⁴⁾
옷 한 벌을 만드는 데에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천을 다루고 재단하고 봉제하고 검사하고 포장해야 했습니다.
전자제품을 만드는 데에도 부품을 조립하는 사람이 필요했고 완성된 물건을 검사하고 포장하고 옮기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공장 하나가 문을 열면 공장 안의 일자리만 생기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원료를 가져오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제품을 운반하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기계를 고치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 밥을 파는 곳이 생기고 물건을 파는 가게가 생겼습니다. 방이 필요했고 교통수단이 필요했습니다.
한 산업의 성장은 그 산업의 울타리 안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이동을 불렀고, 이동한 사람이 다시 새로운 시장을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사람이 움직였다
숫자로 보면 변화의 크기가 더 분명해집니다.
1961년부터 1966년 사이 시·도 및 시·군 경계를 넘어 이동한 사람은 약 148만 명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약 113만 명, 76%가 도시지역으로 들어갔습니다.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한 경우만 따로 보아도 전체 이동인구의 41%였습니다. 서울로 들어간 사람은 약 69만 명으로 전체 이동인구의 47%에 이르렀습니다.⁵⁾
이것은 단순한 주소 이동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사는 곳이 바뀌면서 일하는 곳도 달라졌습니다.
농사짓던 집의 아들과 딸 가운데 누군가는 공장으로 들어갔습니다.
누군가는 건설현장과 운수업으로 갔고 장사를 시작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도시로 왔다고 모두 안정된 일자리를 얻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도시가 받아들인 사람의 수만큼 좋은 일자리가 곧바로 생겨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불안정한 벌이로 생활을 이어간 사람도 있었습니다.
산업화가 사람에게 새로운 길을 열었지만 모든 사람에게 같은 길을 내어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1970년대에 들어서자 인구이동은 별도의 연구가 필요할 정도로 커졌습니다.
한국개발연구원은 1965년부터 1970년까지의 인구이동을 연구하면서 농촌과 도시 사이의 이동뿐 아니라 이동한 사람의 성별과 연령, 교육수준, 경제활동, 산업과 직업까지 분석했습니다.⁶⁾
우리나라의 직업지도가 사람의 이동과 함께 다시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먼저 움직였다
이동에는 세대의 차이도 있었습니다.
1960년대 인구이동 자료를 보면 가족 전체가 함께 움직이는 경우와 달리 혼자 이동한 사람 가운데 젊은 층의 비중이 높았습니다.
특히 여성 단독 전입자 가운데 15세에서 24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60%에 이르렀습니다.⁷⁾
농촌의 젊은 여성이 도시와 공장으로 이동하는 모습은 당시 산업화를 이해할 때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의류봉제업 노동자의 생애를 추적한 연구에서는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 당시 여성에게 주어진 제한된 기회, 농촌에서 느낀 앞날의 제약, 진학에 대한 바람 등이 노동자가 되는 과정과 함께 나타납니다.⁸⁾
먼저 도시로 간 사람의 소개를 받아 공장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장으로 갔다고 곧바로 더 나은 생활이 보장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자리는 얻었지만 노동환경은 거칠었습니다.
오랜 시간 일해야 하는 곳도 있었고 임금이 넉넉하지 않은 곳도 있었습니다. 숙소가 부족했고 여러 사람이 좁은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기도 했습니다.
고향을 떠나는 것과 생활이 나아지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움직였지만 그 가능성에 도착하기까지 또 다른 어려움을 지나야 했습니다.
공장 옆에는 사람이 살 집이 필요했다
구로공단의 변화는 이 과정을 압축해서 보여줍니다.
1967년 말 공단 가동 초기 구로공단 근로자는 2,460명이었습니다.
1978년 말에는 11만 4천여 명에 이르렀습니다.⁹⁾
십여 년 사이 엄청난 수의 사람이 한 지역의 일터로 모여든 것입니다.
11만 명이 넘는 사람이 공장에서만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일이 끝나면 돌아가 잠을 자야 했습니다.
밥을 먹어야 했습니다.
옷을 빨아야 했고 필요한 물건을 사야 했습니다.
아프면 치료를 받아야 했고 고향에 갈 때는 버스나 기차를 타야 했습니다.
공단에서는 미혼 여성 근로자를 위한 기숙사와 생활관 건립을 장려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짧은 기간에 늘어난 노동자를 충분히 수용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공단 주변에는 작은 방들이 밀집한 이른바 ‘벌집’ 형태의 주거가 나타났습니다.¹⁰⁾
공장의 역사를 공장 안에서만 보면 이 장면이 빠집니다.
기계와 생산량과 수출액만 남습니다.
공장 문 밖으로 한 걸음 나오면 사람이 보입니다.
좁은 방에서 아침을 맞고 공장으로 걸어가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월급을 받아 생활비를 남기고 고향집에 돈을 보내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일하면서 공부할 길을 찾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산업화는 숫자로 기록되었지만 그 숫자를 움직인 것은 하루하루를 살아간 사람들이었습니다.
논밭의 시간과 공장의 시간은 달랐다
사람이 농촌에서 도시로 옮겨오면서 바뀐 것은 직업의 이름만이 아니었습니다.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도 달라졌습니다.
농사의 시간에는 계절이 중요했습니다.
모내기할 때가 있었고 김을 맬 때가 있었고 수확할 때가 있었습니다. 하루의 일도 날씨와 햇빛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공장의 시간은 달랐습니다.
출근시간이 있었습니다.
작업 시작 시간이 있었습니다.
정해진 공정과 생산계획이 있었습니다.
사람은 자연의 시간뿐 아니라 시계와 생산계획에 맞추어 움직여야 했습니다.
돈을 받는 방식도 달라졌습니다.
농사는 한 해의 수확과 농산물 가격에 생활이 크게 좌우되었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면 노동의 대가를 임금으로 받았습니다.
이 변화는 돈의 형태만 바꾼 것이 아니었습니다.
생활의 계산법도 바꾸었습니다.
한 달에 얼마를 벌고, 방값으로 얼마를 쓰고, 밥값으로 얼마를 쓰고, 얼마를 모으고, 얼마를 고향집으로 보낼지를 계산하는 생활이 커졌습니다.
오늘날 너무 익숙한 월급생활이 수많은 사람의 일상으로 들어오는 과정이었습니다.
사람이 떠난 자리도 달라졌다
도시로 간 사람만 바라보면 변화의 절반만 보게 됩니다.
사람이 빠져나간 농촌도 달라졌습니다.
특히 젊은 사람이 빠져나가면 농촌에 남은 가족이 맡아야 할 일이 달라집니다.
한 집의 노동력이 줄어듭니다.
마을의 연령구성도 달라집니다.
도시의 공장이 사람을 얻는 동안 농촌에서는 사람이 줄어들었습니다.
1960년 취업인구의 66.0%였던 농림어업 비중은 1970년 50.83%, 1980년 37.81%로 내려갔습니다.
같은 기간 제조업은 6.79%에서 14.27%, 다시 22.06%로 올라갔습니다.¹¹⁾
숫자 두 줄 사이에서 수많은 사람의 일터가 바뀌었습니다.
그 변화는 어느 날 한꺼번에 일어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이 떠났습니다.
먼저 도시로 간 사람이 자리를 잡으면 뒤이어 가족이나 고향 사람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사람의 길이 만들어졌습니다.
도시가 커지자 새로운 일이 생겼다
사람이 모이면 사람이 필요로 하는 일이 생깁니다.
공장 노동자가 늘어나면 그들을 태울 교통수단이 필요합니다.
집이 필요하면 건설의 일이 늘어납니다.
건물을 지으려면 시멘트와 철근과 유리와 목재가 필요합니다.
그 재료를 생산하고 운반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가구가 늘어나면 시장과 식당과 상점이 늘어납니다.
돈을 벌고 모으는 사람이 늘어나면 금융을 다루는 일도 커집니다.
제품 생산이 늘어나면 창고와 운송과 판매의 일이 따라옵니다.
이렇게 보면 공장노동자라는 하나의 직업만 생긴 것이 아닙니다.
공장을 중심으로 새로운 생활권이 만들어졌고 그 생활권 안에서 수많은 일이 함께 자라났습니다.
앞선 글에서 보았던 시멘트도 여기서 다시 만납니다.
시멘트는 공장에서 생산되는 상품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공장을 짓는 재료였습니다.
도로와 다리와 주택을 만드는 재료였고 도시가 넓어지는 데 필요한 물건이었습니다.
사람이 도시로 움직였고 도시가 커지면서 건설재료가 더 필요해졌습니다.
재료를 더 만들려면 다시 공장과 광산과 운송이 필요했습니다.
하나의 변화가 다른 변화를 불렀습니다.
직업은 사라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동했다
우리는 시대가 바뀌면 흔히 어떤 직업이 없어졌는지를 먼저 봅니다.
하지만 이 시기의 변화를 따라가 보면 조금 다른 모습이 보입니다.
사람의 일이 통째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일의 자리가 크게 이동했습니다.
논밭에서 하는 일이 줄어드는 동안 공장에서 하는 일이 늘었습니다.
공장이 늘자 건설과 운송의 일이 커졌습니다.
생산량이 늘자 판매와 유통의 일이 늘었습니다.
도시가 커지자 도시생활을 유지하는 새로운 일이 생겼습니다.
한 사람이 농민에서 공장노동자가 되는 순간 그 사람의 직업만 바뀐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디에서 사는지가 바뀌었습니다.
누구와 하루를 보내는지가 바뀌었습니다.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이 바뀌었습니다.
돈을 버는 방법이 바뀌었습니다.
자녀에게 기대하는 미래도 달라졌습니다.
직업의 변화는 생활 전체의 변화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세대는 또 다른 곳으로 갔다
공장으로 향하던 길이 영원히 같은 방향으로 이어진 것은 아닙니다.
1960년 6.79%였던 제조업 취업 비중은 1970년 14.27%, 1980년 22.06%, 1990년 27.43%까지 높아졌습니다.
이후 제조업 취업 비중은 낮아졌고 서비스산업의 비중이 크게 확대되었습니다.¹²⁾
어떤 집에서는 부모가 논밭에서 일했고 자녀가 도시의 공장으로 갔습니다.
그다음 세대 가운데서는 사무실과 상점, 병원과 학교 같은 서비스 일터로 향하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이후 컴퓨터가 거의 모든 일터 안으로 들어왔고 지금은 그 컴퓨터 안으로 인공지능까지 들어오고 있습니다.
세대가 바뀌면서 일터도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변화가 찾아올 때마다 사람 앞에 놓인 질문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제 나는 무엇으로 먹고살 것인가.
1960년대 고향을 떠나던 젊은이도 이 질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오늘 새로운 기술 앞에 서 있는 사람도 같은 질문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논밭을 떠난 사람을 다시 바라보는 이유
우리가 지금 그 시절을 들여다보는 것은 산업화를 칭찬하거나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변화가 사람에게 어떻게 찾아오는지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공장은 지금 우리가 보는 오래된 산업시설이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먹고살 길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고향을 떠나야 하는 이유였고 누군가에게는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가족의 생활을 돕는 월급이었고 누군가에게는 힘겨운 노동의 시작이었습니다.
같은 공장 문을 통과했어도 사람마다 그 문이 가진 의미는 달랐습니다.
그러므로 산업의 역사를 생산량만으로 읽으면 사람이 빠집니다.
수출액만으로 읽어도 사람이 빠집니다.
경제성장률만으로 읽어도 사람이 빠집니다.
그 숫자 사이에는 고향집을 떠난 사람이 있었습니다.
처음 기차를 타고 도시로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공장 기숙사에서 잠을 청한 사람이 있었고 좁은 방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살았던 때도 있었습니다.
낯선 기계를 처음 배운 사람이 있었습니다.
월급봉투를 받아 일부를 고향으로 보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움직이면서 우리나라의 일자리 지도가 움직였습니다.
먹고사는 길은 사람을 따라 움직였다
논밭에서 공장으로 향했던 길을 따라가 보면 한 가지가 보입니다.
직업은 혼자 태어나지 않습니다.
원료가 달라지고 기술이 생깁니다.
돈이 투자되고 공장이 세워집니다.
도로와 철도가 놓입니다.
물건을 만들고 옮기고 팔기 시작합니다.
그곳으로 사람이 움직입니다.
사람이 모이면 집과 시장과 학교와 교통이 따라옵니다.
새로운 생활이 만들어지고 그 생활이 다시 새로운 직업을 만듭니다.
1960년대의 사람들은 이 거대한 변화를 ‘산업구조 전환’이라는 말로 살아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는 그저 집을 나섰습니다.
일자리가 있다는 말을 듣고 도시로 갔습니다.
처음 보는 기계 앞에 섰습니다.
하루를 일했습니다.
월급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일터로 갔습니다.
그 평범한 하루가 수없이 겹치면서 나라의 모습이 바뀌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도시와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는 출근길도 그 변화의 연장선 위에 있습니다.
그래서 논밭을 떠나 공장으로 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끝난 옛날이야기가 아닙니다.
세상이 먹고사는 방법을 바꿀 때 사람이 어떻게 자기 자리를 옮기고 다시 만들어 왔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공장으로 향했던 길 뒤에 또 다른 길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손으로 하던 일 가운데 일부를 기계가 맡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변화는 그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각주
- 국사편찬위원회, 「산업구조 변화」, 『광복 60년; 한국의 변화와 성장 그리고 희망』,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표 1> 「산업구조변화, 1949~2003」. 1960년 농림어업 취업비중 66.00%, 제조업 6.79%. 자료는 각년도 센서스 및 경제활동인구 관련 통계를 토대로 작성되었으며 시기별 산업분류체계에는 차이가 있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인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인구이동’ 관련 항목. 산업구조 변화와 도시지역 고용기회 증가에 따른 1960년대 중반 이후 이농향도형 인구이동과 농촌지역 인구감소를 설명한다.
- 국가기록원, 「1960년대 산업단지 개발」, 『산업단지』 기록콘텐츠; 국가기록원, 「구로공단」,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 울산공업지구 지정 및 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 조성·준공 과정에 관한 기록.
- 국가기록원, 「구로공단」,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 구로공단의 주요 입주 업종과 노동집약적 산업구조에 관한 기록.
- 한국학중앙연구원, 「인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66년 특별인구조사를 토대로 한 1961~1966년 국내 인구이동 분석. 총이동인구 약 148만 명 가운데 약 113만 명이 도시지역으로 전입했으며 농촌→도시 이동은 전체의 41%, 서울 전입은 약 69만 명으로 제시되어 있다.
- 김대영·이효구, 『우리나라 인구이동의 특징, 1965~70』, 한국개발연구원 연구보고서 제76-01권, 1976.5.1. 연구는 농촌·도시간 이동, 성·연령, 교육, 경제활동, 산업 및 직업별 이동을 분석한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앞의 「인구」. 단독 전입인구에서 미혼 젊은 연령층의 비중이 높으며 여성 단독 전입자의 경우 15~24세가 60%를 차지한 것으로 설명한다.
- 김귀옥, 「1960,70년대 의류봉제업 노동자 형성과정―반도상사(부평공장)의 사례를 중심으로」, 『경제와사회』 제61호, 비판사회학회, 2004, pp.10-41.
- 국가기록원, 앞의 「구로공단」. 구로공단 근로자 수는 1967년 말 2,460명에서 1978년 말 11만 4천여 명으로 증가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 국가기록원, 앞의 「구로공단」. 미혼 여성 근로자를 위한 기숙사·생활관과 급격한 노동인구 증가에 따른 공단 주변 ‘벌집’ 형태 주거에 관한 기록.
- 국사편찬위원회, 앞의 「산업구조 변화」, <표 1>. 농림어업 취업비중은 1960년 66.00%, 1970년 50.83%, 1980년 37.81%; 제조업은 같은 시기 6.79%, 14.27%, 22.06%로 집계되어 있다.
- 국사편찬위원회, 앞의 자료. 제조업 취업비중은 1990년 27.43%까지 높아진 뒤 2003년 20.15%로 낮아졌고, 같은 기간 서비스 관련 산업의 취업비중은 확대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