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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에 매이지 않으면 정말 자유로울까

    일에 매이지 않으면 정말 자유로울까

    오랫동안 일하며 살아온 사람에게 하루는 온전히 자기 것이었던 적이 많지 않습니다.

    일어나야 할 때가 있고, 가야 할 곳이 있습니다. 맡은 일이 있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키지 않는 날에도 나가야 하고, 그만두고 싶은 순간에도 끝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런 날들이 오래 이어지면 자유는 자연스럽게 그 반대편에 놓입니다.

    출근하지 않는 날.

    재촉받지 않는 하루.

    아무도 무엇을 하라고 말하지 않는 생활.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삶.

    그런데 정말 그런 날이 찾아오면 전에는 잘 보이지 않던 장면 하나가 나타납니다.

    아무도 나를 붙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바로 알지 못합니다.

    자유라고 생각했던 자리에서 뜻밖의 질문이 시작됩니다.

    매이지 않는 것과 자유로운 것은 같은 말일까.

    매여 있을 때에는 분명했던 것

    일에 매여 있을 때에는 싫은 것이 비교적 선명합니다.

    출근하기 싫은 날이 있습니다. 반복되는 일이 지겹습니다. 다른 사람이 정한 일정에 맞추어 움직이는 것이 답답합니다.

    벗어나고 싶은 것이 분명하니 자유도 분명해 보입니다.

    저것만 없어지면 됩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때 생각했던 자유의 모습은 대부분 지금의 생활이 반대편에서 만들어낸 것이었습니다.

    출근이 있었기에 출근하지 않는 날을 생각했습니다.

    마감이 있었기에 쫓기지 않는 하루를 기다렸습니다.

    정해진 일이 있었기에 내 마음대로 사는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무엇에서 벗어나고 싶은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벗어난 뒤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는 아직 묻지 않았습니다.

    두 질문은 같은 것처럼 붙어 있었지만 실제로는 달랐습니다.

    일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

    일은 사람을 붙듭니다.

    때로는 지나치게 붙듭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반복된 생활을 자세히 보면 일은 사람을 묶는 것만 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아침에 나갈 이유가 있었습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누군가와 약속한 것이 있었습니다.

    끝냈다는 감각도 있었습니다.

    일이 사라지면 싫었던 것만 빠져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생활과 함께 움직이던 여러 가지가 한꺼번에 자리를 비웁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홀가분함과 허전함을 같은 날 경험합니다.

    모순처럼 보이지만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벗어나고 싶었던 생활 속에도 자신의 하루를 붙들어주던 부분이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자유는 처음보다 조금 복잡한 얼굴을 드러냅니다.

    나를 붙들던 것이 없어졌다는 사실만으로는 아직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남습니다.

    아무도 정해주지 않을 때

    해야 할 일이 사라진 아침은 조용합니다.

    누가 부르지 않습니다.

    어디에 가지 않아도 됩니다.

    처음에는 그 고요함이 좋습니다.

    그런데 그런 날이 이어지면 전에는 남이 정해주던 것들이 하나씩 자기 앞으로 돌아옵니다.

    오늘 무엇을 할 것인가.

    어디에 갈 것인가.

    누구를 만날 것인가.

    무엇은 하지 않을 것인가.

    자유가 없을 때에는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 답답했습니다.

    막상 선택해야 할 것이 많아지면 다른 어려움이 나타납니다.

    정해진 것이 없다는 사실과 내가 원하는 것을 안다는 사실은 서로 다릅니다.

    이 차이는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둘 다 자유로운 하루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전혀 다른 질문이 됩니다.

    다시 스스로를 묶는 사람

    한동안 아무 일정도 두지 않던 사람이 어느 날 다시 약속을 만듭니다.

    정해진 날에 어디론가 갑니다.

    맡은 일이 생깁니다.

    반복해서 하는 것도 생깁니다.

    이상하게 보입니다.

    그토록 매이지 않는 삶을 원했는데 다시 자신을 무언가에 묶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과 완전히 같지는 않습니다.

    누가 시켜서 가는 자리가 아닌데도 갑니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인데 계속합니다.

    그만두어도 나무랄 사람이 없는데 약속을 지킵니다.

    여기에서 ‘매임’이라는 말이 흔들립니다.

    사람을 붙드는 것은 모두 자유의 반대편에 있는 것일까요.

    자기가 고른 약속도 사람을 붙듭니다.

    좋아하는 일도 반복되면 일정이 됩니다.

    소중한 관계에도 지켜야 할 것이 생깁니다.

    무엇에도 매이지 않는 삶을 자유라고 부른다면 이런 장면들은 설명하기 어려워집니다.

    사람은 벗어나기 위해 살아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떠나고 싶지 않은 무엇인가를 만들어갑니다.

    자유를 얻고 다시 책임을 고르는 일

    오래 맡았던 책임을 내려놓은 사람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맡고 싶지 않았습니다.

    누가 부탁해도 피했습니다.

    그동안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작은 일을 하나 맡습니다.

    처음에는 가벼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기다리는 사람이 생깁니다.

    약속한 날을 기억하게 됩니다.

    빠뜨리지 않으려고 챙깁니다.

    책임이 다시 생겼습니다.

    예전 같으면 벗어나고 싶었을 말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릅니다.

    책임이라는 단어가 달라진 것이 아닙니다.

    그 책임과 자신의 관계가 달라졌습니다.

    이 장면 앞에서는 자유를 단순히 책임이 없는 상태라고 말하기 어려워집니다.

    책임이 없어 홀가분한 날도 있고, 자신이 받아들인 책임 때문에 오히려 생활이 또렷해지는 날도 있습니다.

    자유와 책임이 언제나 서로 밀어내는 것만은 아니라는 장면이 여기 있습니다.

    내가 고른 것이라면 모두 자유로운가

    그렇다고 자신이 선택한 것은 모두 자유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시작한 일에도 끌려갈 수 있습니다.

    좋아서 시작했지만 멈추지 못하는 일이 생깁니다.

    내가 만든 약속이 어느 순간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원해서 들어간 자리에서 다시 벗어나고 싶어질 때도 있습니다.

    ‘내가 선택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자유를 설명하면 또 다른 장면들이 남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자유일까요.

    매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부족합니다.

    내가 골랐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말만으로도 다 담기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자유라는 말은 쉽게 정의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이 무엇에 묶여 있는지, 그것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함께 바라보게 합니다.

    벗어나는 것보다 어려운 질문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면 몸은 가벼워집니다.

    그 순간만큼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짐을 내려놓는 것과 어디로 걸어갈 것인지는 다른 일입니다.

    오랫동안 일을 해온 사람에게도 비슷한 순간이 찾아옵니다.

    끝난 것이 있습니다.

    내려놓은 책임이 있습니다.

    더 이상 가지 않아도 되는 곳이 있습니다.

    그것은 실제로 큰 변화입니다.

    그러나 삶은 그 자리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다음 날이 옵니다.

    또 다음 날이 옵니다.

    그때부터는 자신을 붙들던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하루가 정해지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질문의 방향이 바뀝니다.

    무엇에서 벗어나고 싶은가.

    그 질문에는 오래 대답해왔습니다.

    그다음은 조금 낯섭니다.

    아무도 나를 붙들지 않을 때 나는 무엇과 함께 살아갈 것인가.

    자유라는 말 앞에서

    일에 매이지 않으면 자유로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일은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가기 싫어도 가야 하고, 내키지 않아도 해야 하며, 때로는 내 생활보다 먼저 놓아야 하는 책임도 있습니다.

    그것에서 벗어났을 때 느끼는 가벼움도 실제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오래 서 있으면 자유는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넓은 질문이 됩니다.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는 것.

    내가 고른 것을 하는 것.

    책임을 내려놓는 것.

    다시 책임을 맡는 것.

    혼자 결정하는 것.

    누군가와 약속하는 것.

    서로 반대처럼 보이는 장면들이 한 사람의 삶 안에 함께 들어옵니다.

    그래서 자유를 한 문장으로 서둘러 묶지 않게 됩니다.

    오히려 한 사람을 바라보게 됩니다.

    벗어나고 싶어 하는 사람.

    마침내 벗어난 사람.

    그리고 어느 날 자기가 고른 무엇인가를 향해 다시 걸어가는 사람.

    그 사람은 다시 매인 것일까요.

    아니면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유로운 것일까요.

    답을 먼저 정해놓으면 그 장면 가운데 일부를 놓치게 됩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처음의 질문을 그대로 남겨둡니다.

    일에 매이지 않으면 정말 자유로울까.

    처음에는 답하기 쉬워 보였던 질문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하루를 오래 들여다볼수록, 그 물음은 쉽게 닫히지 않습니다.

  • 시간은 있는데, 하고 싶은 것이 없다면

    시간은 있는데, 하고 싶은 것이 없다면

    시간이 없다는 말을 오래 했습니다.

    아침에는 나갈 시간이 정해져 있었고, 낮에는 해야 할 일이 이어졌습니다. 저녁이 되어도 내일을 위해 남겨두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쉬는 날에는 평일에 미뤄둔 것을 처리했습니다.

    그럴 때는 시간이 생기면 해보고 싶은 것이 많을 것 같았습니다.

    책도 천천히 읽고 싶었습니다. 어디든 느긋하게 다녀오고 싶었습니다. 배우고 싶었던 것도 있었습니다. 손으로 무엇인가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문제는 늘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시간이 생긴 어느 날, 전과 다른 아침이 찾아옵니다.

    서둘러 나갈 이유가 없습니다. 오늘 안에 끝내야 할 일도 예전보다 적습니다. 시계를 한번 보고 다시 내려놓습니다.

    시간은 분명 내 앞에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대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시간이 없을 때에는 시간이 문제인 줄 알았습니다.

    시간이 생기고 나서야 그 뒤에 있던 다른 질문이 보입니다.

    시간이 없어서 못 했던 것

    바쁠 때 떠올렸던 일들을 하나씩 꺼내봅니다.

    읽고 싶었던 책이 있습니다. 배워보고 싶었던 것이 있습니다.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도 있습니다. 갖추어 놓으면 무엇인가 시작할 것 같아 눈여겨보던 도구도 있습니다.

    이제 시간이 있으니 시작해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작은 차이가 생깁니다.

    시간이 없을 때 하고 싶었던 것 가운데 실제로 시작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막상 시간이 생겨도 좀처럼 손이 가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갖고 싶었던 물건을 마련했는데 생각보다 자주 사용하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꼭 배우겠다고 생각했던 것을 시작했는데 몇 번 지나지 않아 흥미가 옅어지기도 합니다.

    반대의 일도 생깁니다.

    별생각 없이 한번 손대본 일이 자꾸 눈에 들어옵니다. 필요한 것만 간단히 고치려고 시작했는데 다른 것도 만져보고 싶어집니다. 한번 해본 것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다음에 무엇을 해볼지 생각하게 됩니다.

    멀리서 바라보며 좋아했던 것과 직접 시간을 건넸을 때 자꾸 돌아가는 곳이 반드시 같지는 않습니다.

    그 차이는 꽤 흥미롭습니다.

    시간이 없던 시절에는 ‘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고 여기기 쉽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생겨 직접 해보기 시작하면 생각 속의 나와 생활 속의 내가 조금씩 어긋나는 장면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때부터 ‘하고 싶은 것’이라는 말이 전보다 복잡해집니다.

    꿈이 없어서 그런 걸까

    하고 싶은 것이 선뜻 떠오르지 않으면 ‘꿈’이라는 말이 따라붙기 쉽습니다.

    꿈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익숙합니다.

    어릴 때는 장래희망을 물었습니다. 학교를 마칠 무렵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 물었습니다. 일을 하는 동안에는 다음 목표가 무엇인지 묻습니다.

    무엇을 향해 가는 사람의 모습은 설명하기 쉽습니다.

    목적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긴 시간을 살아온 뒤에도 사람의 삶을 같은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무엇이 되고 싶다는 말은 없지만 아침이면 화분부터 살피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단한 목표는 없지만 오래된 물건을 손보는 시간이 좋은 사람도 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기록을 남기고, 무언가를 만들고, 궁금한 것을 찾아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도 꿈이라는 이름이 필요한지는 알 수 없습니다.

    반대로 오래 품어온 꿈이 있다고 해서 실제 하루가 언제나 그쪽으로 향하는 것도 아닙니다.

    꿈이라는 말은 삶을 설명하는 좋은 말이지만, 한 사람의 모든 시간을 담기에는 조금 큰 그릇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것이 떠오르지 않는 어느 날을 두고 곧바로 “내게는 꿈이 없다”고 결론 내리면 그 말 밖으로 밀려나는 것들이 생깁니다.

    아직 이름을 붙이지 않은 관심.

    해보지 않아서 모르는 즐거움.

    예전에는 좋아했지만 지금은 달라진 마음.

    그리고 자신도 아직 눈여겨보지 않았던 생활의 방향입니다.

    생각했던 나와 움직이는 나

    어떤 사람은 목공을 하는 모습을 오래 바라봅니다.

    나무를 자르고 다듬어 하나의 물건을 만드는 일이 좋아 보입니다. 작업장을 갖춘 사람을 보면 부럽기도 합니다. 언젠가 시간이 생기면 나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조금씩 도구를 마련합니다.

    새것도 사고 중고도 구합니다.

    그런데 정작 시간이 생기고 손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집니다.

    나무보다 쇠를 더 자주 만집니다.

    떨어진 것을 붙이고, 필요한 부분을 자르고, 거친 곳을 갈아냅니다. 고장 난 것을 그냥 버리기보다 어떻게든 다시 써보려고 들여다봅니다.

    처음 품었던 목공에 대한 마음이 거짓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쇠를 만지는 일이 숨어 있던 진짜 꿈이었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저 한 가지 장면이 남습니다.

    생각으로 그려놓은 나와 실제 시간을 건네는 나는 완전히 같지 않았습니다.

    이 장면이 흥미로운 것은 목공과 철공 가운데 무엇이 더 맞는가에 있지 않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아가는 일이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오래 바라보았던 것보다 우연히 손댄 것을 더 오래 붙잡을 때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좋아했던 것이 몇 번의 경험 뒤에 멀어지기도 합니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이 몇 해 뒤에도 곁에 남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는 생각만으로 대답하기 어려운 부분도 남습니다.

    살아보지 않고는 알기 어려운 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해야 할 일이 먼저였던 날들

    오랫동안 일하며 살아온 사람의 하루에는 질문보다 일정이 먼저 들어오는 날이 많습니다.

    몇 시까지 가야 합니다.

    오늘 끝낼 일이 있습니다.

    누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약속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 안에서도 사람은 수많은 선택을 합니다. 하지만 모든 선택이 ‘내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것’에서 시작되지는 않습니다.

    해야 하니까 하는 일도 있습니다.

    책임졌으니 끝내는 일도 있습니다.

    마음은 다른 곳에 있지만 자리를 지키는 날도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온 시간이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을 넘어가면 ‘오늘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아도 하루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다가 해야 할 일이 크게 줄어든 아침이 옵니다.

    처음에는 비어 있는 일정이 보입니다.

    조금 더 지나면 그 빈칸을 무엇으로 채울지 생각합니다.

    여기까지는 시간의 문제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답을 정해주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면 질문은 조금씩 사람 쪽으로 이동합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지?

    오랫동안 다른 질문에 대답하며 살아온 사람에게는 낯선 물음일 수 있습니다.

    매인 것이 없어지면 자유로운가

    일에 매여 있을 때 자유는 선명해 보입니다.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것.

    마감에 쫓기지 않는 것.

    누군가 정한 시간에 움직이지 않는 것.

    내 시간을 내가 쓰는 것.

    그런 날을 기다린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매인 것이 줄어든 하루에 들어가면 자유에도 이전에는 잘 보이지 않던 부분이 있습니다.

    아무도 오늘의 일정을 정해주지 않습니다.

    그 말은 무엇을 해도 된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무엇을 할지는 자신이 정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오전 열 시입니다.

    나갈 수도 있고 집에 머물 수도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배우는 사람도 있고, 별다른 계획 없이 하루를 보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에는 일정이 하루를 끌고 갔다면 이제는 빈 시간이 먼저 나를 바라보는 듯합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구별이 생깁니다.

    매이지 않는 것과 가고 싶은 곳을 아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자유가 없어서 가지 못했던 길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유가 생겼는데도 어느 쪽으로 갈지 모르겠는 순간도 있습니다.

    그 앞에서 질문은 달라집니다.

    나를 붙들던 것이 무엇이었는가보다, 아무도 붙들지 않을 때 나는 어디로 움직이는가.

    시간의 이야기가 어느새 사람의 이야기로 바뀝니다.

    빈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이쯤에서 가장 쉬운 답들이 나타납니다.

    운동을 시작합니다.

    취미를 만듭니다.

    사람들을 만납니다.

    여행을 다니거나 새로운 것을 배우기도 합니다.

    좋은 시간을 만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글이 처음부터 묻고 있던 것은 할 일을 몇 가지 더 만드는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시간표의 빈칸만 문제라면 일정 몇 개를 넣으면 됩니다.

    월요일에는 운동을 하고, 수요일에는 무언가를 배우고, 금요일에는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달력은 다시 채워집니다.

    하지만 달력이 채워졌다는 사실과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감각은 같은 것일까요.

    여기에서 ‘시간을 채우는 것’과 ‘시간을 건네는 것’ 사이에 작은 차이가 보입니다.

    빈칸은 무엇으로든 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하루를 어디에 건넬지는 조금 다른 문제입니다.

    누구에게 건넬 것인가.

    무엇에 건넬 것인가.

    무엇을 하며 보낸 시간이 이상하게 아깝지 않았는가.

    끝내고 돌아왔는데도 다시 해보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는가.

    생활 속에는 그렇게 작은 흔적들이 남습니다.

    손이 자꾸 가는 곳

    거창한 계획보다 먼저 나타나는 작은 움직임이 있습니다.

    서점에 가면 늘 비슷한 곳에서 걸음이 느려집니다.

    영상 하나를 보다가 관련된 것을 몇 개 더 찾아봅니다.

    망가진 물건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한번 들여다봅니다.

    누군가 이야기를 꺼냈을 때 유난히 오래 듣게 되는 주제가 있습니다.

    그 하나하나가 꿈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그저 생활에 남아 있는 흔적입니다.

    어떤 흔적은 금방 사라집니다.

    어떤 것은 한동안 이어지다가 멈춥니다.

    그런데 몇 번을 돌아서도 다시 같은 곳에 눈이 가는 일이 있습니다.

    말로는 별것 아니라고 하면서 시간을 씁니다.

    잘하지 못해도 또 해봅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계속 들여다봅니다.

    그 모습을 오래 바라보다 보면 질문이 조금 달라집니다.

    ‘내 꿈은 무엇인가’보다 먼저 다른 물음이 떠오릅니다.

    나는 지금까지 내 시간을 어디에 자꾸 건네왔는가.

    생각으로 만든 대답과 살아온 시간이 남긴 대답이 같은지 바라보게 됩니다.

    하고 싶은 것이 없다는 말

    처음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시간은 있는데, 하고 싶은 것이 없습니다.”

    처음 들으면 답이 필요한 말처럼 보입니다.

    꿈을 찾아야 할 것 같고, 목표를 세워야 할 것 같고, 새로운 취미라도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말을 오래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서로 다른 질문들이 겹쳐 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아직 말로 정리되지 않은 것인지.

    예전에 원했던 것과 지금 원하는 것이 달라진 것인지.

    해야 하는 일을 먼저 살아오느라 이 질문 자체가 낯선 것인지.

    직접 해보지 않아 아직 모르는 것인지.

    같은 “하고 싶은 것이 없다”라는 말 아래에서도 사람마다 다른 시간이 흐릅니다.

    그래서 이 말 하나만으로 그 사람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정할 수 없습니다.

    꿈이 부족하다고도, 의지가 부족하다고도, 목표가 필요하다고도 곧장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보다 먼저 보이는 장면이 있습니다.

    시간은 생겼는데 그 시간을 어디에 건넬 것인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빈 달력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그 달력을 살아갈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시간은 답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시간이 없을 때에는 시간이 생기면 많은 것이 분명해질 것 같았습니다.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가고 싶었던 곳에 가고, 미뤄둔 것을 시작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시작되는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공간을 만들어주어도 그 안에 들어갈 답까지 함께 가져오지는 않습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오래 하고 싶은지.

    무엇에 내 하루를 건네고 싶은지.

    그것은 빈 시간이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저절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어 있는 시간이 전에 잘 보이지 않던 것을 드러내는 날이 있습니다.

    해야 하는 일이 줄어든 자리에서 남는 것은 ‘무엇을 할까’라는 질문만이 아닙니다.

    그 질문을 오래 붙들고 있으면 한 층 아래에 있던 물음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꽤 오래 물으며 살아왔습니다.

    그 질문에 답하느라 수많은 아침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른 질문이 앞에 놓입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여전히 대답이 나오지 않는 날도 있습니다.

    그러면 질문은 한 번 더 깊어집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지, 얼마나 알고 살아왔는가.

    시간은 있는데 하고 싶은 것이 없다는 말.

    처음에는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관한 말처럼 들렸습니다.

    오래 들여다보고 나니 그보다 조금 더 깊은 곳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빈 것은 시간표였는데, 그 빈자리에서 비로소 내가 나에게 묻게 되었습니다.

    나는 앞으로 내 시간을 어디에 건네며 살 것인가.

  • 퇴직 후 할 일이 없을 때, 왜 마음까지 허전해질까

    퇴직 후 할 일이 없을 때, 왜 마음까지 허전해질까

    퇴직한 다음 날 아침에도 눈은 비슷한 시간에 떠집니다.

    알람이 울리지 않았는데도 몸은 먼저 아침을 알아봅니다.
    수십 년 동안 같은 시간에 일어나 씻고, 옷을 입고, 집을 나섰던 몸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출근할 곳이 없습니다.

    아침을 먹고 커피를 한 잔 마십니다.
    시계를 봅니다.

    아직 여덟 시가 조금 넘었습니다.

    어제까지라면 이미 길 위에 있었을 시간입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을 머릿속으로 헤아리거나, 도착하자마자 처리할 일을 생각하고 있었을 시간입니다.

    오늘은 그 시간이 비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늦은 아침 자체가 낯섭니다.

    출근 시간을 맞출 일도 없고, 오전에 처리할 업무도 없습니다.

    며칠이 지나고 몇 주가 흐릅니다.

    오전이 길게 느껴지는 날이 있습니다.
    점심을 먹고도 오후가 많이 남습니다.
    휴대전화가 유난히 조용한 날도 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뭘 하지?

    아주 평범한 질문입니다.

    하지만 그 질문을 오래 들여다보면 조금 다른 말이 따라옵니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가지?

    직장을 떠나는 데에는 하루면 충분합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보낸 시간은 수십 년입니다.

    퇴직 날짜 하나만으로 그 긴 시간을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몸은 퇴직했는데 마음은 아직 출근하고 있다

    퇴직하는 날에는 여러 가지가 분명하게 끝납니다.

    출입증을 반납합니다.

    책상을 비웁니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눕니다.

    달력에는 퇴직일이라는 정확한 날짜도 남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몸은 어제까지 하던 일을 기억하는 듯 움직입니다.

    전과 비슷한 시간에 눈이 떠집니다.

    특별한 일정이 없는데도 시계를 봅니다.

    무언가 해야 할 일을 빠뜨린 것처럼 머릿속으로 오늘의 일정을 찾아보기도 합니다.

    몸은 출근하지 않는데 생활에는 어제의 시간표가 남아 있습니다.

    수십 년 동안 반복한 하루에는 출퇴근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몇 시에 움직여야 하는지, 무엇을 먼저 처리해야 하는지, 누구의 연락에 답해야 하는지, 어느 시간까지 일을 마쳐야 하는지가 하루의 순서를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규칙으로 살아온 사람이 이제 출근하지 않습니다.

    직장을 떠나는 일은 하루에 끝났지만, 어제까지의 생활과 오늘의 생활 사이에는 생각보다 넓은 간격이 놓여 있습니다.

    아침이 왔지만 서둘러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시계는 전과 같은 속도로 가는데 그 시간 안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달라졌습니다.

    그 낯선 아침 앞에서 지나온 생활의 흔적을 봅니다.

    직장이 가져간 것보다 직장에 두고 온 것이 더 많을 때

    직장생활을 할 때에는 직장이 내 시간을 얼마나 차지하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합니다.

    출퇴근에도 시간을 씁니다.

    집에 돌아온 뒤까지 일 생각이 이어지는 날도 있습니다.

    그래서 퇴직을 앞두고 이제 내 시간이 많아지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막상 직장을 떠난 뒤에는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곳에 무엇을 두고 나왔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아침이면 갈 곳이 있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내 자리가 있었습니다.

    내가 맡은 일이 있었고, 그 일을 두고 사람들과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이름 뒤에는 직함이 붙었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이 묻습니다.

    “무슨 일을 하십니까?”

    직업을 말하면 짧은 대답 하나로 자신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생활을 삼십 년, 사십 년 가까이 이어온 사람도 있습니다.

    그 긴 시간 동안 일은 생계를 위한 수단이면서 하루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생활이기도 했습니다.

    직장에서 맡은 역할은 자신을 설명하는 여러 말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러다가 퇴직합니다.

    일이 끝납니다.

    직함을 내려놓습니다.

    매일 출근하던 곳으로 가지 않습니다.

    달라진 것은 월급을 받던 일자리 하나만이 아닙니다.

    하루의 순서가 달라졌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방식도 달라졌습니다.

    늘 맡아오던 몫이 없어졌고, 자신을 소개할 때 먼저 꺼내던 말 하나도 사라졌습니다.

    시간표에 생긴 빈칸보다 그곳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할 일이 없다”는 말 아래에 있는 것

    퇴직한 사람이 “할 일이 없다”고 말하면 주변에서는 해결책을 먼저 꺼내기도 합니다.

    운동을 해보라고 합니다.

    취미를 만들고, 여행을 다니고, 친구를 만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해보라는 말도 듣습니다.

    그런 일로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할 일이 없다”는 말에는 하루의 일정만 들어 있을까요.

    정말 그리운 것이 일인가?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아침마다 마주치던 얼굴이 있습니다.

    점심을 함께 먹으며 별것 아닌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이 있습니다.

    자신이 책임지던 일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군가 판단을 기다렸고, 내가 맡아야 하는 몫이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사용했던 책상 하나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크지도 특별하지도 않았지만 매일 앉았던 ‘내 자리’였습니다.

    “할 일이 없다”는 같은 말 안에도 서로 다른 빈자리가 들어 있습니다.

    사람이 그리운 것인지,

    맡았던 일이 그리운 것인지,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하던 순간이 그리운 것인지,

    매일 반복하던 하루의 질서가 그리운 것인지.

    빈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라는 질문보다 그 자리에 무엇이 있었는가라는 질문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이유입니다.

    내가 비었다고 느끼는 이 자리에는 그동안 무엇이 있었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는 누구인가?

    직장에서는 내가 맡은 일이 비교적 분명합니다.

    무엇을 잘하는지 주변 사람들이 압니다.

    어떤 일을 맡길 수 있는지도 압니다.

    문제가 생기면 경험 있는 사람을 찾습니다.

    내 이름을 부르는 이유가 있고, 내가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이유도 비교적 분명합니다.

    오랫동안 그런 생활을 해온 사람이 퇴직합니다.

    전화가 전보다 줄어든 사람도 있습니다.

    판단을 구하는 사람이 줄어들기도 합니다.

    어제까지 내 몫이었던 일을 이제 다른 사람이 할 것입니다.

    그 장면 앞에서 일의 빈자리와는 조금 다른 질문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는 여전히 괜찮은 사람인가?

    오랫동안 무엇을 하고, 책임지고, 결과를 만들어내며 살아온 사람에게 이 질문은 가볍지 않습니다.

    잘하면 인정받았습니다.

    성과는 평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맡은 일을 끝내는 것이 책임을 다했다는 표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시간이 길었던 사람에게 직장에서의 역할과 자기 자신은 얼마나 가까이 붙어 있었을까요?

    직함은 어느 날 되돌려 줍니다.

    그러나 직함을 달고 살아온 시간은 되돌려 줄 곳이 없습니다.

    실패하며 배운 것,

    사람을 만나며 알게 된 것,

    어려운 순간에 선택했던 것,

    자기 몫이라고 생각해 책임졌던 것.

    그것들은 어디로 갈까요?

    역할이 끝난 자리에서 사람까지 함께 끝나는 것은 무엇일까?

    오히려 질문은 반대편을 향합니다.

    역할이 끝난 뒤에도 내게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

    퇴직 이후, 내 시간이 달라진다는 것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하루의 많은 부분에는 이미 일정이 들어 있습니다.

    아침이면 갈 곳이 있습니다.

    회의 시간이 있습니다.

    마감도 있습니다.

    내가 정하지 않았어도 오늘 해야 하는 일이 앞에 놓입니다.

    퇴직한 뒤에도 모든 사람이 마음대로 시간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생업을 찾아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족을 돌보는 데 많은 시간을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퇴직 전보다 오히려 다른 책임이 커진 사람도 있습니다.

    퇴직 이후의 시간을 모두 ‘자유시간’이라고 한정 짓지 않습니다.

    다만 출근과 직장 업무가 차지하던 시간이 사라진 사람에게는 이전과 다른 종류의 시간이 놓입니다.

    누가 정해준 회의도 없습니다.

    업무 마감도 없습니다.

    직장이라는 시간표가 빠져나간 자리에 스스로 정해야 하는 시간이 생깁니다.

    그 앞에서 “오늘 뭐 하지?”라는 질문이 나옵니다.

    오늘의 일정만 묻는 말일까요?

    아니면 다른 질문까지 들어 있을까요?

    남이 정해주던 일정이 사라진 자리에서 나는 하루를 무엇으로 정할 것인가?

    직장에서는 해야 할 일을 끝내는 것이 하루를 판단하는 기준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 기준이 사라진 자리에서는 시간 자체를 바라보는 눈도 흔들립니다.

    많이 했는가?

    쓸모 있게 보냈는가?

    무언가 남겼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시간인가?

    퇴직 이후의 긴 하루 앞에서 이런 질문들이 나란히 놓입니다.

    빈자리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큰 가구를 오랫동안 놓아두었던 방에서 가구를 치우면 방이 이상하게 넓어 보입니다.

    바닥에는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가구에 가려져 있던 벽은 다른 곳과 색이 조금 다릅니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부분이 한꺼번에 드러납니다.

    비어 있는 곳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그 빈자리를 보면 다른 가구를 가져다 놓는 일이 먼저 떠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동안 바라보고 있으면 전에는 가려져 있던 것도 눈에 들어옵니다.

    벽이 보입니다.

    창에서 들어오는 빛이 어디까지 닿는지도 보입니다.

    방이 생각보다 넓었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퇴직 뒤의 빈자리도 이 모습과 닮은 데가 있습니다.

    직장이 있던 자리가 비었습니다.

    그곳에 무엇을 새로 놓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따라옵니다.

    새로운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과의 만남일 수도 있습니다.

    배움이나 오래 미뤄두었던 일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 이름도 붙이지 않은 시간이 그 자리에 놓일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가져다 놓을 것인가를 묻다 보면 또 하나의 질문과 만납니다.

    여기에는 그동안 무엇이 있었는가?

    일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있었습니다.

    책임이 있었습니다.

    생활의 리듬이 있었습니다.

    인정받았던 순간도 있었고 견뎌야 했던 날도 있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빠져나간 자리라면, 지금 보이는 빈 공간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빈자리는 단순히 아무것도 없는 곳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무엇인가 오래 머물렀다는 흔적이 가장 선명하게 남는 곳이기도 합니다.

    직함을 내려놓고 남는 질문

    처음 직장 문을 들어서던 날을 기억합니다.

    직함도 없었습니다.

    경험도 많지 않았습니다.

    작은 일 하나를 배우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경험이 쌓였습니다.

    책임이 커졌습니다.

    이름 뒤에 직함이 붙었습니다.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그 직함을 내려놓습니다.

    직함이 사라진 자리에서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업무 목록과 경력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일을 중요하게 여겼는지,

    무엇 때문에 끝까지 책임지려 했는지,

    어떤 순간에 보람을 느꼈는지,

    무엇을 지키려고 어려운 선택을 했는지가 함께 남아 있습니다.

    젊은 날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돌아갈 이유도 없습니다.

    삼십 년, 사십 년을 살아온 사람은 그 시간을 지나온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과거의 처음으로 돌아가는 대신 지금의 자리에서 물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나는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왔는가?

    직함이 답해주던 질문이 사라진 자리에서 이 질문은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그 일을 했느냐는 질문입니다.

    퇴직은 경력의 마지막 줄을 적는 일로 끝났지만, 그 경력을 살아낸 사람에게는 아직 물을 것이 남아 있습니다.

    맡았던 역할과 앞으로의 시간 사이에서

    우리는 살아오며 스스로 택한 일도 했고, 그저 내게 주어진 몫을 감당하기도 했습니다.

    먹고살기 위해 일을 선택했습니다.

    가족을 돌보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을 먼저 놓은 날도 있었습니다.

    하고 싶은 것보다 책임져야 하는 일을 앞세운 때도 있었습니다.

    자기 뜻대로 결정한 일과 형편 때문에 받아들인 일이 한 사람의 삶 안에 함께 있습니다.

    퇴직했다고 현실적인 책임까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일을 해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족을 위해 계속 자기 시간을 내어놓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퇴직은 한숨 돌릴 수 있는 때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생업을 찾아야 하는 때입니다.

    퇴직 이후의 삶을 한 가지 모습으로 그릴 수 없는 까닭입니다.

    그 서로 다른 형편 속에서도 시간이 지나가는 것만은 같습니다.

    하루가 오고 또 하루가 갑니다.

    그 앞에서 한 가지 질문이 남습니다.

    앞으로의 시간을 나는 어디에 쓰며 살아갈 것인가?

    그 답이 반드시 새로운 직업일 이유는 없습니다.

    새로운 직함일 이유도 없습니다.

    반대로 다시 일을 선택하는 사람에게 그 선택이 덜 의미 있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답이 옳으냐는 판정이 아니라 그 시간이 누구의 삶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남은 시간을 어디에 쓸 것인가라는 질문은 결국 삶의 방향을 묻습니다.

    그 방향에는 명함에 적을 이름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긴 하루 앞에서 시간을 다시 묻다

    퇴직 뒤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지는 것 가운데 하나가 시간인 사람도 있습니다.

    오후 두 시인데 예정했던 일이 거의 끝났습니다.

    시계를 보니 하루가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그 시간을 ‘남는 시간’이라고 부르는 순간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시간은 전에도 하루 안에 있었습니다.

    출퇴근에 썼습니다.

    회의에 썼습니다.

    다른 사람의 일정에 맞추는 데 썼습니다.

    맡은 책임을 감당하는 데에도 썼습니다.

    그 시간 역시 내 삶이었습니다.

    퇴직했다고 과거의 시간이 빼앗긴 시간으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지금 내 앞에 놓인 시간의 모양이 달라졌습니다.

    직장에서는 같은 시간 안에 여러 일을 처리해야 하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정해진 기한도 있었습니다.

    성과라는 기준도 있었습니다.

    퇴직한 이후에는 그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시간이 생깁니다.

    천천히 걷는 한 시간이 있습니다.

    누군가와 오래 이야기하는 오후가 있습니다.

    책장을 넘기다가 어느새 해가 기우는 날도 있습니다.

    직장에서는 이런 시간을 업무 성과로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하루에서는 어떨까요?

    무언가를 만들어낸 시간만 제대로 보낸 시간인가?

    누군가에게 보여줄 결과가 없는 하루는 빈 하루인가?

    나는 그동안 시간을 무엇으로 판단하며 살아왔는가?

    길어진 오후는 때때로 그 질문을 눈앞에 놓습니다.

    역할이 끝난 자리에서

    예전 동료들의 소식을 들으며 지나온 시간을 떠올리는 날이 있습니다.

    한때 익숙했던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내가 하던 일을 다른 사람이 이어갑니다.

    그 모습을 보며 여러 생각이 겹칩니다.

    그때 무엇이 끝났고 무엇이 남았는지를 묻게 됩니다.

    퇴직으로 끝난 것은 한 시절 내가 맡았던 자리입니다.

    직함도 그 자리에 두고 나왔습니다.

    하지만 살아온 시간을 그곳에 놓고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수많은 선택이 있었습니다.

    그 선택으로 얻은 것도 있고 놓친 것도 있습니다.

    잘한 일도 있고 다시 생각나는 일도 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도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지나온 사람이 지금 여기 있습니다.

    역할 하나가 사라졌을 때 사람은 무엇으로 자신을 설명할까요?

    또 다른 역할을 찾아야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직함이 없는 나는 이전의 나보다 적은 사람일까요?

    이미 많은 장을 써온 사람이 다음 장을 펼치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앞에 쓴 이야기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음 장은 아직 쓰이지 않았습니다.

    그 빈 페이지 앞에 같은 사람이 앉아 있습니다.

    아직 무엇을 담을지 정하지 않은 하루

    다시 아침입니다.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십니다.

    시계를 봅니다.

    아직 아홉 시입니다.

    어제까지의 시간표라면 이미 많은 일이 시작되었을 시간입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오늘은 할 일이 없는 하루인가?

    아니면,

    아직 무엇을 담을지 정하지 않은 하루인가?

    두 문장은 같은 시간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라보는 곳은 조금 다릅니다.

    ‘할 일이 없다’는 말은 비어 있는 곳을 봅니다.

    ‘아직 정하지 않았다’는 말은 그 빈자리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봅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는 여전히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걷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을 만나는 날도 있을 것입니다.

    다시 일을 시작하는 날도 있을 것입니다.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 하루가 가는 날도 있을 것입니다.

    어느 것이 퇴직 이후의 정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하루는 각자의 형편 속에서 흘러갑니다.

    그 하루 앞에 선 사람에게 남는 질문은 조금 다릅니다.

    오늘 나는 무엇에 시간을 건넬 것인가?

    퇴직 후,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 길

    평생 우리는 수많은 질문에 답하며 살았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언제까지 해야 하는가?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가?

    어떤 선택이 가족에게 필요한가?

    내가 맡은 자리에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 질문들에 답하며 살아오는 동안 뒤로 밀렸던 질문도 있습니다.

    나는 어떤 하루를 살고 싶은가?

    퇴직한 뒤 어느 아침에는 하던 일이 없습니다.

    매일 가던 직장도 없습니다.

    전화가 조용한 날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직함 뒤에서 오랫동안 자기 몫을 감당하며 살아온 내가 있습니다.

    직함을 내려놓고 나니 그동안 직함이 대신 대답해주던 질문이 다시 남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무엇을 좋아하는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겼는가?

    무엇을 할 때 시간이 아깝지 않았는가?

    누구와 있을 때 내 모습으로 살아 있었는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보다 이런 질문들이 먼저 떠오르는 날도 있습니다.

    퇴직 전에는 아침마다 갈 곳이 있었습니다.

    몇 시까지 도착해야 하는지도 알았습니다.

    오늘 해야 할 일도 대체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퇴직한 뒤의 어느 아침에는 그 자리가 비어 있습니다.

    시계를 봅니다.

    아직 아홉 시입니다.

    하루가 많이 남았습니다.

    그 앞에서 “오늘은 뭘 하지?”라고 묻습니다.

    처음에는 하루의 빈칸을 묻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오래 들여다보면 그 질문 속에는 지나온 시간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왔는가?

    그 일은 내게 무엇이었는가?

    그 일을 하지 않는 나는 나를 무엇으로 설명하는가?

    그리고 이제,

    내 앞에 놓인 이 하루를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퇴직 후의 허전함 앞에서 오래 남는 것은 답보다 이런 질문들인지도 모릅니다.

    아침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시계는 가고 있습니다.

    출근할 시간은 지났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나는 다시 시계를 봅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시계보다 조금 오래,

    나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