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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탄은 어떻게 연탄이 되어 집으로 들어왔나

    깊은 어둠 속 막장에서 땀방울과 함께 캐낸 검은 석탄은 덜컹거리는 기차를 타고 도심의 연탄공장으로 향했습니다.

    잘게 부서진 탄가루는 거친 기계의 압력을 견뎌내며 스물두 개의 숨구멍을 품은 단단한 연탄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삼륜차에 실려 좁은 골목을 누비고, 리어카에 실리거나 배달부의 굽은 등과 낡은 지게에 얹혀 가파른 언덕길을 오른 끝에 마침내 우리 집 마당 한구석, 보일러실에 닿았습니다.

    검은 먼지를 털어내며 차곡차곡 쌓인 연탄은 찬 바람 부는 계절마다 아랫목을 설레게 덥히며 가장 소박하고도 뜨거운 겨울의 온기가 되어주었습니다.

    석탄가루가 연탄 한 장이 되기까지

    연탄의 주원료는 무연탄이었습니다.

    공장으로 들어온 원료탄은 그대로 성형기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연탄을 만들기에 알맞은 상태로 준비되어야 했습니다.

    크기가 큰 것은 부수고 원료의 상태를 고르게 만들었습니다.

    일반적인 연탄 제조에서는 석탄가루에 점결제와 수분을 더해 성형하기 좋은 상태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다만 국내에서 생산된 무연탄은 점결성이 좋아 별도의 점결제를 섞지 않고 구멍탄을 찍어낼 수 있었습니다.¹⁾

    준비된 탄가루가 성형기로 들어갔습니다.

    초기에는 사람의 힘으로 연탄을 찍는 수동식 기계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석탄박물관에는 19개의 구멍을 가진 연탄을 만들던 수동식 19공탄 제조기가 남아 있습니다. 이후 연탄 소비가 늘면서 한 번에 한 장을 찍는 단탄윤전기에서 두 장을 찍는 쌍탄윤전기, 세 장을 찍어내는 윤전기로 제조설비도 발전했습니다.²⁾

    연탄이 압축될 때 원통 가운데에는 여러 개의 구멍이 함께 만들어졌습니다.

    그 구멍은 모양을 내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연탄이 타려면 공기가 지나갈 길이 필요했습니다.

    아래쪽에서 들어온 공기가 구멍을 통과하면서 연소를 도왔습니다. 구멍의 수는 화력과 연소시간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³⁾

    성형을 마친 연탄은 쉽게 부서지지 않도록 다뤄야 했습니다.

    처음 찍어냈을 때 수분을 품고 있던 연탄은 마르면서 무게도 줄었습니다. 당시 일반 가정용 연탄은 처음 성형했을 때 약 3.6킬로그램이었고, 건조된 뒤에는 3.3킬로그램 이상이 기준이었습니다.¹⁾

    그렇게 단단해진 연탄이 공장을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석탄가루였던 것이 이제 사람이 들고 나르고 아궁이에 넣을 수 있는 연료 한 장이 된 것입니다.

    19공탄에서 22공탄으로

    연탄은 처음부터 우리가 기억하는 한 가지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시기에 따라 여러 규격이 사용됐습니다.

    구멍 수에 따라 19공탄·31공탄 같은 이름이 사용됐고, 가정에서는 훗날 22개의 구멍을 가진 연탄이 널리 쓰였습니다.¹⁾

    1950년대 중반 시중에 가정용 연탄이 본격적으로 등장했을 때에는 19공탄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지역과 생산업체에 따라 다른 구멍 수의 제품도 만들어졌습니다.⁴⁾

    1970년대에는 가정용으로 19·23·31공탄, 업소용으로 41·42·49공탄 등이 사용됐습니다. 이후 규격을 정리하는 과정을 거쳐 1978년에는 22공탄으로 통일됐고, 다시 22공탄과 25공탄으로 나뉘었습니다.³⁾

    예전 사람들이 흔히 ‘구공탄’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 구멍이 아홉 개인 연탄만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생활 속에서는 ‘구멍탄’이 변한 말로 연탄을 가리키는 이름으로도 사용됐습니다.³⁾

    연탄의 규격이 중요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타고 있는 연탄 위에 새 연탄을 올려 불을 이어가려면 위아래 연탄의 구멍이 맞아야 했습니다.

    연탄을 갈아본 사람이라면 새 연탄을 올려놓고 집게로 살짝 돌리던 손의 움직임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구멍이 맞으면 아래쪽의 열과 공기가 새 연탄으로 이어졌습니다.

    공장에서 똑같은 규격으로 연탄을 찍어내는 일이 결국 한 집의 아궁이와 연결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연탄 한 장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가정에서 사용하던 일반 연탄은 지름 약 15센티미터, 높이 약 14.2센티미터였고 처음 찍어냈을 때 무게는 약 3.6킬로그램이었습니다.¹⁾

    한 장만 놓고 보면 그리 무거워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두 장이면 7킬로그램이 넘습니다.

    열 장이면 36킬로그램입니다.

    백 장이면 360킬로그램입니다.

    몇백 장을 한꺼번에 들여놓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공장에서 연탄을 찍어내는 것으로 일이 끝날 수 없었습니다.

    연탄을 옮겨야 했습니다.

    차량에 실어야 했습니다.

    판매점으로 가져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집까지 들어가야 했습니다.

    탄광에서 시작된 일의 사슬이 공장 밖에서도 계속됐습니다.

    공장에서 골목까지 사람이 옮겼다

    공장에서 나온 연탄은 소비지로 향했습니다.

    도시 곳곳에는 연탄공장과 연탄을 파는 가게가 있었습니다.

    공장에서 많은 양을 차량으로 옮길 수는 있었지만 자동차가 모든 집의 문 앞까지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좁은 골목이 있었고, 비탈길에다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집도 있었습니다.

    차가 멈춘 곳에서부터는 다시 사람의 일이었습니다.

    연탄을 내렸습니다.

    지게나 리어카에 실었습니다.

    집 안의 연탄을 쌓아두는 곳까지 날랐습니다.

    겨울철 주문이 몰리면 이 일은 하루 종일 이어졌습니다.

    탄광에서는 광부가 석탄을 캐냈습니다.

    공장에서는 사람들이 연탄을 만들었습니다.

    도로에서는 운전기사가 실어 날랐습니다.

    골목에서는 배달하는 사람이 다시 연탄을 날랐습니다.

    산속에서 시작한 일이 도시의 좁은 골목까지 이어졌습니다.

    새끼줄에 두 장씩 꿰어 들었다

    모든 집이 몇백 장씩 한꺼번에 주문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필요한 만큼 조금씩 사다 쓰는 집도 있었습니다.

    연탄가게가 가까우면 직접 사 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때 새끼줄이 등장했습니다.

    연탄 구멍에 새끼줄을 꿰어 두 장씩 묶었습니다.

    그것을 양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당시 골목에서 볼 수 있었던 풍경이었습니다. 인천의 생활사를 다룬 기록에도 새끼줄에 두 장의 연탄을 매달아 들고 가는 사람의 모습이 남아 있습니다.⁵⁾

    양손에 두 장씩이면 네 장입니다.

    3.6킬로그램을 기준으로 하면 14킬로그램이 넘습니다.

    평지에서 잠깐 드는 것과 언덕길을 걸어 집까지 가져가는 것은 달랐습니다.

    손에는 새끼줄이 걸렸습니다.

    옷에는 검은 탄가루가 묻었습니다.

    그래도 들고 갔습니다.

    그날 밤 방을 덥힐 연료였기 때문입니다.

    연탄 몇 장을 들고 골목을 걷는 모습에는 당시의 살림살이도 함께 담겨 있었습니다.

    연탄을 채우고 김장을 하면 겨울 준비가 끝났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집집마다 겨울을 준비했습니다.

    연탄을 사용하는 집에서는 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겨울 동안 사용할 연탄을 들여놓았습니다.

    트럭에서 연탄이 내려왔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다시 한 장씩 옮겼습니다.

    마당 한쪽이나 창고, 처마 아래처럼 비와 눈을 피할 수 있는 곳에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아래부터 줄을 맞췄습니다.

    무너지지 않도록 살피며 한 단씩 높였습니다.

    검은 연탄이 벽처럼 쌓여갔습니다.

    그리고 김장을 했습니다.

    배추를 절였습니다.

    양념을 만들고 버무렸습니다.

    겨우내 밥상에 올릴 김치를 마련했습니다.

    집집마다 형편도 달랐고 준비하는 양도 달랐습니다.

    그래도 연탄을 채워놓고 김장까지 해놓으면 이제 겨울 준비는 다 했다는 말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하나는 집을 따뜻하게 할 것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겨울 밥상을 지킬 것이었습니다.

    연탄이 든든하게 쌓이고 김장까지 끝나면 긴 겨울을 맞을 채비가 갖춰졌습니다.

    지금은 난방을 준비한다고 몇 달 치 연료를 집 안에 쌓아놓지 않습니다.

    당시에는 겨울을 얼마나 준비했는지가 눈에 보였습니다.

    쌓인 연탄이 줄어드는 것을 보며 겨울이 얼마나 지나갔는지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연탄더미는 단순한 연료 창고가 아니었습니다.

    한 집이 겨울을 건너기 위해 마련해놓은 준비였습니다.

    연탄은 불을 붙이는 것부터 일이었다

    연탄을 집에 쌓아놓았다고 바로 따뜻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연탄은 성냥불 하나를 갖다 댄다고 금세 활활 타오르는 연료가 아니었습니다.

    고체연료인 데다 처음 불이 붙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잘 마르지 않은 연탄은 불을 붙이기가 더 어려웠습니다.¹⁾

    그러니 처음 불을 살리는 데에도 수고가 들었습니다.

    하지만 한번 불이 살아난 뒤에는 이야기가 달라졌습니다.

    중요한 것은 불을 꺼뜨리지 않고 이어가는 일이었습니다.

    타고 있는 연탄 위에 새 연탄을 올렸습니다.

    연탄집게로 새 연탄을 조금씩 돌려 아래 연탄과 구멍을 맞췄습니다.

    공기가 통하면서 아래 연탄의 열이 위 연탄으로 이어졌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새 연탄도 붉게 달아올랐습니다.

    때를 놓치지 않고 다음 연탄을 갈아야 했습니다.

    아침에 살폈습니다.

    저녁에도 살폈습니다.

    잠들기 전에도 불이 얼마나 남았는지 보는 집이 있었습니다.

    연탄은 값만 치르고 사오면 끝나는 연료가 아니었습니다.

    사람의 손과 시간을 계속 요구했습니다.

    불이 꺼지면 이웃집 연탄을 빌려왔다

    아무리 살펴도 불을 꺼뜨리는 날은 있었습니다.

    갈아야 할 시간을 놓치기도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궁이가 싸늘해져 있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 처음부터 다시 불을 붙이는 방법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웃집에 가서 불이 붙어 있는 연탄 한 장을 빌려오기도 했습니다.

    벌겋게 살아 있는 연탄을 받아와 자기 집 아궁이에 넣었습니다.

    그 위에 새 연탄을 올렸습니다.

    그러면 옆집에서 건너온 불이 자기 집 연탄으로 이어졌습니다.

    연탄을 꾸기도 했고 불붙은 연탄을 빌려오기도 했습니다.

    연탄만 꾸는 것이 아니라 불까지 꾸던 시절이었습니다.

    한집의 불이 꺼졌을 때 옆집의 불이 다시 그 집의 방을 데웠습니다.

    같은 골목의 집들이 비슷한 연료를 사용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풍경이었습니다.

    그 시절 이웃은 담장 너머에 사는 사람이기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급할 때 연탄 한 장을 꾸러 갈 수 있는 집이었습니다.

    꺼진 불을 다시 살릴 수 있는 불붙은 연탄 한 장을 빌릴 수 있는 집이기도 했습니다.

    연탄이 부족하면 겨울이 불안해졌다

    그래서 겨울이 오기 전에 연탄을 마련하는 일은 중요했습니다.

    추워질수록 수요가 몰렸습니다.

    공장에서 많이 생산하더라도 운송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면 필요한 때에 연탄을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1966년에는 가격통제와 공급 부족 등이 겹치면서 연탄 부족이 심해졌습니다. 겨울을 앞두고 한두 장이라도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⁶⁾

    연탄이 떨어진다는 것은 생활이 불편해지는 정도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난방이 멈췄습니다.

    취사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러니 연탄이 넉넉히 쌓여 있으면 당분간은 마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연탄더미의 바닥이 보이기 시작하면 다시 가게를 생각해야 했습니다.

    검은 연탄 한 장이 한겨울에는 생활의 시간을 움직였습니다.

    연탄 한 장은 혼자 집까지 오지 않았다

    연탄을 떠올리면 먼저 검은 원통이 생각납니다.

    그러나 그 한 장을 거꾸로 따라가 보면 사람이 보입니다.

    탄광에서 무연탄을 캐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원료를 운반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공장에서 탄가루를 준비하고 성형기를 움직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찍혀 나온 연탄을 옮기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연탄을 차량에 싣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연탄가게에서 주문을 받고 물건을 관리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트럭을 운전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골목에서는 다시 사람이 연탄을 날랐습니다.

    마지막에는 그것을 받아 쌓는 집의 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집에 들어온 연탄에는 다시 사람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불을 붙였습니다.

    때를 맞춰 새 연탄을 올렸습니다.

    구멍을 맞췄습니다.

    재를 치웠습니다.

    불이 꺼지지 않았는지 살폈습니다.

    불이 꺼지면 옆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탄광에서 캐낸 검은 돌 하나가 공장을 거쳐 연탄이 되고, 연탄가게를 지나 골목으로 들어와 한 집의 불이 되기까지 수많은 손이 이어졌습니다.

    산업은 공장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집 안으로 들어와 생활이 되었을 때 비로소 마지막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마당 한쪽에는 연탄이 쌓여 있었습니다.

    김장은 끝났습니다.

    아궁이에는 연탄불이 살아 있었습니다.

    그 세 가지를 바라보며 사람들은 긴 겨울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그 집의 연탄불이 꺼지는 날이면 이웃집의 불 한 장이 담장을 넘어왔습니다.

    석탄의 이야기는 그렇게 산업의 이야기에서 사람의 생활 이야기로 들어왔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바로 그 집 안에서 이어집니다.

    연탄 한 장으로 겨울을 나던 시절.

    연탄을 갈고, 꾸어 쓰고, 재를 내다 버리며 하루의 시간을 연탄불에 맞춰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각주

    1. 한국학중앙연구원, 「연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연탄의 원료와 성형 특성, 일반 가정용 연탄의 무게와 규격, 연탄의 착화가 쉽지 않았던 특성 등을 설명하고 있다. 일반적인 연탄 제조에는 점결제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으나 국내 무연탄은 점결성이 좋아 별도의 점결제를 넣지 않고 구멍탄을 성형할 수 있었다고 기록한다.

    2. 보령석탄박물관, 「석탄의 채굴이용관」. 19공탄을 만들던 수동식 제조기와 연탄 수요 증가에 따라 한 장씩 찍는 단탄윤전기, 두 장씩 찍는 쌍탄윤전기, 세 장씩 생산하는 윤전기로 제조설비가 변화한 과정을 전시·설명하고 있다.

    3. 국립민속박물관, 「그 겨울 우리가 의지했던 연탄」. 연탄의 구멍이 공기 순환과 연소시간에 영향을 주며, 1970년대 가정용 19·23·31공탄과 업소용 41·42·49공탄 등이 사용된 뒤 1978년 22공탄으로 통일되고 이후 다시 22공탄과 25공탄으로 나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4. 국가기록원,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연탄」. 1950년대 중반부터 연탄이 가정용 난방연료로 판매되기 시작했으며 1955년 생산된 19공탄이 주를 이루었고, 지역에 따라 구멍 수가 다른 연탄도 생산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5. 인천광역시, 『굿모닝인천』,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혹시 연탄」. 당시 생활 풍경 가운데 새끼줄에 연탄 두 장을 매달아 직접 들고 가는 사람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6. 한국학중앙연구원, 「연탄파동」,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65년 이후 수요 증가와 가격 문제, 1966년의 심각한 공급 부족을 설명하며, 겨울을 앞두고 시민들이 한두 장의 연탄이라도 사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렸던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