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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은 있는데, 하고 싶은 것이 없다면

    시간은 있는데, 하고 싶은 것이 없다면

    시간이 없다는 말을 오래 했습니다.

    아침에는 나갈 시간이 정해져 있었고, 낮에는 해야 할 일이 이어졌습니다. 저녁이 되어도 내일을 위해 남겨두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쉬는 날에는 평일에 미뤄둔 것을 처리했습니다.

    그럴 때는 시간이 생기면 해보고 싶은 것이 많을 것 같았습니다.

    책도 천천히 읽고 싶었습니다. 어디든 느긋하게 다녀오고 싶었습니다. 배우고 싶었던 것도 있었습니다. 손으로 무엇인가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문제는 늘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시간이 생긴 어느 날, 전과 다른 아침이 찾아옵니다.

    서둘러 나갈 이유가 없습니다. 오늘 안에 끝내야 할 일도 예전보다 적습니다. 시계를 한번 보고 다시 내려놓습니다.

    시간은 분명 내 앞에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대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시간이 없을 때에는 시간이 문제인 줄 알았습니다.

    시간이 생기고 나서야 그 뒤에 있던 다른 질문이 보입니다.

    시간이 없어서 못 했던 것

    바쁠 때 떠올렸던 일들을 하나씩 꺼내봅니다.

    읽고 싶었던 책이 있습니다. 배워보고 싶었던 것이 있습니다.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도 있습니다. 갖추어 놓으면 무엇인가 시작할 것 같아 눈여겨보던 도구도 있습니다.

    이제 시간이 있으니 시작해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작은 차이가 생깁니다.

    시간이 없을 때 하고 싶었던 것 가운데 실제로 시작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막상 시간이 생겨도 좀처럼 손이 가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갖고 싶었던 물건을 마련했는데 생각보다 자주 사용하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꼭 배우겠다고 생각했던 것을 시작했는데 몇 번 지나지 않아 흥미가 옅어지기도 합니다.

    반대의 일도 생깁니다.

    별생각 없이 한번 손대본 일이 자꾸 눈에 들어옵니다. 필요한 것만 간단히 고치려고 시작했는데 다른 것도 만져보고 싶어집니다. 한번 해본 것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다음에 무엇을 해볼지 생각하게 됩니다.

    멀리서 바라보며 좋아했던 것과 직접 시간을 건넸을 때 자꾸 돌아가는 곳이 반드시 같지는 않습니다.

    그 차이는 꽤 흥미롭습니다.

    시간이 없던 시절에는 ‘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고 여기기 쉽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생겨 직접 해보기 시작하면 생각 속의 나와 생활 속의 내가 조금씩 어긋나는 장면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때부터 ‘하고 싶은 것’이라는 말이 전보다 복잡해집니다.

    꿈이 없어서 그런 걸까

    하고 싶은 것이 선뜻 떠오르지 않으면 ‘꿈’이라는 말이 따라붙기 쉽습니다.

    꿈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익숙합니다.

    어릴 때는 장래희망을 물었습니다. 학교를 마칠 무렵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 물었습니다. 일을 하는 동안에는 다음 목표가 무엇인지 묻습니다.

    무엇을 향해 가는 사람의 모습은 설명하기 쉽습니다.

    목적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긴 시간을 살아온 뒤에도 사람의 삶을 같은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무엇이 되고 싶다는 말은 없지만 아침이면 화분부터 살피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단한 목표는 없지만 오래된 물건을 손보는 시간이 좋은 사람도 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기록을 남기고, 무언가를 만들고, 궁금한 것을 찾아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도 꿈이라는 이름이 필요한지는 알 수 없습니다.

    반대로 오래 품어온 꿈이 있다고 해서 실제 하루가 언제나 그쪽으로 향하는 것도 아닙니다.

    꿈이라는 말은 삶을 설명하는 좋은 말이지만, 한 사람의 모든 시간을 담기에는 조금 큰 그릇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것이 떠오르지 않는 어느 날을 두고 곧바로 “내게는 꿈이 없다”고 결론 내리면 그 말 밖으로 밀려나는 것들이 생깁니다.

    아직 이름을 붙이지 않은 관심.

    해보지 않아서 모르는 즐거움.

    예전에는 좋아했지만 지금은 달라진 마음.

    그리고 자신도 아직 눈여겨보지 않았던 생활의 방향입니다.

    생각했던 나와 움직이는 나

    어떤 사람은 목공을 하는 모습을 오래 바라봅니다.

    나무를 자르고 다듬어 하나의 물건을 만드는 일이 좋아 보입니다. 작업장을 갖춘 사람을 보면 부럽기도 합니다. 언젠가 시간이 생기면 나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조금씩 도구를 마련합니다.

    새것도 사고 중고도 구합니다.

    그런데 정작 시간이 생기고 손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집니다.

    나무보다 쇠를 더 자주 만집니다.

    떨어진 것을 붙이고, 필요한 부분을 자르고, 거친 곳을 갈아냅니다. 고장 난 것을 그냥 버리기보다 어떻게든 다시 써보려고 들여다봅니다.

    처음 품었던 목공에 대한 마음이 거짓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쇠를 만지는 일이 숨어 있던 진짜 꿈이었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저 한 가지 장면이 남습니다.

    생각으로 그려놓은 나와 실제 시간을 건네는 나는 완전히 같지 않았습니다.

    이 장면이 흥미로운 것은 목공과 철공 가운데 무엇이 더 맞는가에 있지 않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아가는 일이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오래 바라보았던 것보다 우연히 손댄 것을 더 오래 붙잡을 때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좋아했던 것이 몇 번의 경험 뒤에 멀어지기도 합니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이 몇 해 뒤에도 곁에 남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는 생각만으로 대답하기 어려운 부분도 남습니다.

    살아보지 않고는 알기 어려운 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해야 할 일이 먼저였던 날들

    오랫동안 일하며 살아온 사람의 하루에는 질문보다 일정이 먼저 들어오는 날이 많습니다.

    몇 시까지 가야 합니다.

    오늘 끝낼 일이 있습니다.

    누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약속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 안에서도 사람은 수많은 선택을 합니다. 하지만 모든 선택이 ‘내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것’에서 시작되지는 않습니다.

    해야 하니까 하는 일도 있습니다.

    책임졌으니 끝내는 일도 있습니다.

    마음은 다른 곳에 있지만 자리를 지키는 날도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온 시간이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을 넘어가면 ‘오늘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아도 하루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다가 해야 할 일이 크게 줄어든 아침이 옵니다.

    처음에는 비어 있는 일정이 보입니다.

    조금 더 지나면 그 빈칸을 무엇으로 채울지 생각합니다.

    여기까지는 시간의 문제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답을 정해주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면 질문은 조금씩 사람 쪽으로 이동합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지?

    오랫동안 다른 질문에 대답하며 살아온 사람에게는 낯선 물음일 수 있습니다.

    매인 것이 없어지면 자유로운가

    일에 매여 있을 때 자유는 선명해 보입니다.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것.

    마감에 쫓기지 않는 것.

    누군가 정한 시간에 움직이지 않는 것.

    내 시간을 내가 쓰는 것.

    그런 날을 기다린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매인 것이 줄어든 하루에 들어가면 자유에도 이전에는 잘 보이지 않던 부분이 있습니다.

    아무도 오늘의 일정을 정해주지 않습니다.

    그 말은 무엇을 해도 된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무엇을 할지는 자신이 정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오전 열 시입니다.

    나갈 수도 있고 집에 머물 수도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배우는 사람도 있고, 별다른 계획 없이 하루를 보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에는 일정이 하루를 끌고 갔다면 이제는 빈 시간이 먼저 나를 바라보는 듯합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구별이 생깁니다.

    매이지 않는 것과 가고 싶은 곳을 아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자유가 없어서 가지 못했던 길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유가 생겼는데도 어느 쪽으로 갈지 모르겠는 순간도 있습니다.

    그 앞에서 질문은 달라집니다.

    나를 붙들던 것이 무엇이었는가보다, 아무도 붙들지 않을 때 나는 어디로 움직이는가.

    시간의 이야기가 어느새 사람의 이야기로 바뀝니다.

    빈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이쯤에서 가장 쉬운 답들이 나타납니다.

    운동을 시작합니다.

    취미를 만듭니다.

    사람들을 만납니다.

    여행을 다니거나 새로운 것을 배우기도 합니다.

    좋은 시간을 만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글이 처음부터 묻고 있던 것은 할 일을 몇 가지 더 만드는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시간표의 빈칸만 문제라면 일정 몇 개를 넣으면 됩니다.

    월요일에는 운동을 하고, 수요일에는 무언가를 배우고, 금요일에는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달력은 다시 채워집니다.

    하지만 달력이 채워졌다는 사실과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감각은 같은 것일까요.

    여기에서 ‘시간을 채우는 것’과 ‘시간을 건네는 것’ 사이에 작은 차이가 보입니다.

    빈칸은 무엇으로든 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하루를 어디에 건넬지는 조금 다른 문제입니다.

    누구에게 건넬 것인가.

    무엇에 건넬 것인가.

    무엇을 하며 보낸 시간이 이상하게 아깝지 않았는가.

    끝내고 돌아왔는데도 다시 해보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는가.

    생활 속에는 그렇게 작은 흔적들이 남습니다.

    손이 자꾸 가는 곳

    거창한 계획보다 먼저 나타나는 작은 움직임이 있습니다.

    서점에 가면 늘 비슷한 곳에서 걸음이 느려집니다.

    영상 하나를 보다가 관련된 것을 몇 개 더 찾아봅니다.

    망가진 물건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한번 들여다봅니다.

    누군가 이야기를 꺼냈을 때 유난히 오래 듣게 되는 주제가 있습니다.

    그 하나하나가 꿈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그저 생활에 남아 있는 흔적입니다.

    어떤 흔적은 금방 사라집니다.

    어떤 것은 한동안 이어지다가 멈춥니다.

    그런데 몇 번을 돌아서도 다시 같은 곳에 눈이 가는 일이 있습니다.

    말로는 별것 아니라고 하면서 시간을 씁니다.

    잘하지 못해도 또 해봅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계속 들여다봅니다.

    그 모습을 오래 바라보다 보면 질문이 조금 달라집니다.

    ‘내 꿈은 무엇인가’보다 먼저 다른 물음이 떠오릅니다.

    나는 지금까지 내 시간을 어디에 자꾸 건네왔는가.

    생각으로 만든 대답과 살아온 시간이 남긴 대답이 같은지 바라보게 됩니다.

    하고 싶은 것이 없다는 말

    처음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시간은 있는데, 하고 싶은 것이 없습니다.”

    처음 들으면 답이 필요한 말처럼 보입니다.

    꿈을 찾아야 할 것 같고, 목표를 세워야 할 것 같고, 새로운 취미라도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말을 오래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서로 다른 질문들이 겹쳐 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아직 말로 정리되지 않은 것인지.

    예전에 원했던 것과 지금 원하는 것이 달라진 것인지.

    해야 하는 일을 먼저 살아오느라 이 질문 자체가 낯선 것인지.

    직접 해보지 않아 아직 모르는 것인지.

    같은 “하고 싶은 것이 없다”라는 말 아래에서도 사람마다 다른 시간이 흐릅니다.

    그래서 이 말 하나만으로 그 사람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정할 수 없습니다.

    꿈이 부족하다고도, 의지가 부족하다고도, 목표가 필요하다고도 곧장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보다 먼저 보이는 장면이 있습니다.

    시간은 생겼는데 그 시간을 어디에 건넬 것인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빈 달력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그 달력을 살아갈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시간은 답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시간이 없을 때에는 시간이 생기면 많은 것이 분명해질 것 같았습니다.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가고 싶었던 곳에 가고, 미뤄둔 것을 시작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시작되는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공간을 만들어주어도 그 안에 들어갈 답까지 함께 가져오지는 않습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오래 하고 싶은지.

    무엇에 내 하루를 건네고 싶은지.

    그것은 빈 시간이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저절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어 있는 시간이 전에 잘 보이지 않던 것을 드러내는 날이 있습니다.

    해야 하는 일이 줄어든 자리에서 남는 것은 ‘무엇을 할까’라는 질문만이 아닙니다.

    그 질문을 오래 붙들고 있으면 한 층 아래에 있던 물음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꽤 오래 물으며 살아왔습니다.

    그 질문에 답하느라 수많은 아침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른 질문이 앞에 놓입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여전히 대답이 나오지 않는 날도 있습니다.

    그러면 질문은 한 번 더 깊어집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지, 얼마나 알고 살아왔는가.

    시간은 있는데 하고 싶은 것이 없다는 말.

    처음에는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관한 말처럼 들렸습니다.

    오래 들여다보고 나니 그보다 조금 더 깊은 곳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빈 것은 시간표였는데, 그 빈자리에서 비로소 내가 나에게 묻게 되었습니다.

    나는 앞으로 내 시간을 어디에 건네며 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