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퇴직 후 시간

  • 퇴직 후 할 일이 없을 때, 왜 마음까지 허전해질까

    퇴직 후 할 일이 없을 때, 왜 마음까지 허전해질까

    퇴직한 다음 날 아침에도 눈은 비슷한 시간에 떠집니다.

    알람이 울리지 않았는데도 몸은 먼저 아침을 알아봅니다.
    수십 년 동안 같은 시간에 일어나 씻고, 옷을 입고, 집을 나섰던 몸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출근할 곳이 없습니다.

    아침을 먹고 커피를 한 잔 마십니다.
    시계를 봅니다.

    아직 여덟 시가 조금 넘었습니다.

    어제까지라면 이미 길 위에 있었을 시간입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을 머릿속으로 헤아리거나, 도착하자마자 처리할 일을 생각하고 있었을 시간입니다.

    오늘은 그 시간이 비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늦은 아침 자체가 낯섭니다.

    출근 시간을 맞출 일도 없고, 오전에 처리할 업무도 없습니다.

    며칠이 지나고 몇 주가 흐릅니다.

    오전이 길게 느껴지는 날이 있습니다.
    점심을 먹고도 오후가 많이 남습니다.
    휴대전화가 유난히 조용한 날도 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뭘 하지?

    아주 평범한 질문입니다.

    하지만 그 질문을 오래 들여다보면 조금 다른 말이 따라옵니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가지?

    직장을 떠나는 데에는 하루면 충분합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보낸 시간은 수십 년입니다.

    퇴직 날짜 하나만으로 그 긴 시간을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몸은 퇴직했는데 마음은 아직 출근하고 있다

    퇴직하는 날에는 여러 가지가 분명하게 끝납니다.

    출입증을 반납합니다.

    책상을 비웁니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눕니다.

    달력에는 퇴직일이라는 정확한 날짜도 남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몸은 어제까지 하던 일을 기억하는 듯 움직입니다.

    전과 비슷한 시간에 눈이 떠집니다.

    특별한 일정이 없는데도 시계를 봅니다.

    무언가 해야 할 일을 빠뜨린 것처럼 머릿속으로 오늘의 일정을 찾아보기도 합니다.

    몸은 출근하지 않는데 생활에는 어제의 시간표가 남아 있습니다.

    수십 년 동안 반복한 하루에는 출퇴근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몇 시에 움직여야 하는지, 무엇을 먼저 처리해야 하는지, 누구의 연락에 답해야 하는지, 어느 시간까지 일을 마쳐야 하는지가 하루의 순서를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규칙으로 살아온 사람이 이제 출근하지 않습니다.

    직장을 떠나는 일은 하루에 끝났지만, 어제까지의 생활과 오늘의 생활 사이에는 생각보다 넓은 간격이 놓여 있습니다.

    아침이 왔지만 서둘러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시계는 전과 같은 속도로 가는데 그 시간 안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달라졌습니다.

    그 낯선 아침 앞에서 지나온 생활의 흔적을 봅니다.

    직장이 가져간 것보다 직장에 두고 온 것이 더 많을 때

    직장생활을 할 때에는 직장이 내 시간을 얼마나 차지하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합니다.

    출퇴근에도 시간을 씁니다.

    집에 돌아온 뒤까지 일 생각이 이어지는 날도 있습니다.

    그래서 퇴직을 앞두고 이제 내 시간이 많아지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막상 직장을 떠난 뒤에는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곳에 무엇을 두고 나왔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아침이면 갈 곳이 있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내 자리가 있었습니다.

    내가 맡은 일이 있었고, 그 일을 두고 사람들과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이름 뒤에는 직함이 붙었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이 묻습니다.

    “무슨 일을 하십니까?”

    직업을 말하면 짧은 대답 하나로 자신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생활을 삼십 년, 사십 년 가까이 이어온 사람도 있습니다.

    그 긴 시간 동안 일은 생계를 위한 수단이면서 하루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생활이기도 했습니다.

    직장에서 맡은 역할은 자신을 설명하는 여러 말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러다가 퇴직합니다.

    일이 끝납니다.

    직함을 내려놓습니다.

    매일 출근하던 곳으로 가지 않습니다.

    달라진 것은 월급을 받던 일자리 하나만이 아닙니다.

    하루의 순서가 달라졌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방식도 달라졌습니다.

    늘 맡아오던 몫이 없어졌고, 자신을 소개할 때 먼저 꺼내던 말 하나도 사라졌습니다.

    시간표에 생긴 빈칸보다 그곳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할 일이 없다”는 말 아래에 있는 것

    퇴직한 사람이 “할 일이 없다”고 말하면 주변에서는 해결책을 먼저 꺼내기도 합니다.

    운동을 해보라고 합니다.

    취미를 만들고, 여행을 다니고, 친구를 만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해보라는 말도 듣습니다.

    그런 일로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할 일이 없다”는 말에는 하루의 일정만 들어 있을까요.

    정말 그리운 것이 일인가?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아침마다 마주치던 얼굴이 있습니다.

    점심을 함께 먹으며 별것 아닌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이 있습니다.

    자신이 책임지던 일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군가 판단을 기다렸고, 내가 맡아야 하는 몫이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사용했던 책상 하나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크지도 특별하지도 않았지만 매일 앉았던 ‘내 자리’였습니다.

    “할 일이 없다”는 같은 말 안에도 서로 다른 빈자리가 들어 있습니다.

    사람이 그리운 것인지,

    맡았던 일이 그리운 것인지,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하던 순간이 그리운 것인지,

    매일 반복하던 하루의 질서가 그리운 것인지.

    빈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라는 질문보다 그 자리에 무엇이 있었는가라는 질문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이유입니다.

    내가 비었다고 느끼는 이 자리에는 그동안 무엇이 있었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는 누구인가?

    직장에서는 내가 맡은 일이 비교적 분명합니다.

    무엇을 잘하는지 주변 사람들이 압니다.

    어떤 일을 맡길 수 있는지도 압니다.

    문제가 생기면 경험 있는 사람을 찾습니다.

    내 이름을 부르는 이유가 있고, 내가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이유도 비교적 분명합니다.

    오랫동안 그런 생활을 해온 사람이 퇴직합니다.

    전화가 전보다 줄어든 사람도 있습니다.

    판단을 구하는 사람이 줄어들기도 합니다.

    어제까지 내 몫이었던 일을 이제 다른 사람이 할 것입니다.

    그 장면 앞에서 일의 빈자리와는 조금 다른 질문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는 여전히 괜찮은 사람인가?

    오랫동안 무엇을 하고, 책임지고, 결과를 만들어내며 살아온 사람에게 이 질문은 가볍지 않습니다.

    잘하면 인정받았습니다.

    성과는 평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맡은 일을 끝내는 것이 책임을 다했다는 표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시간이 길었던 사람에게 직장에서의 역할과 자기 자신은 얼마나 가까이 붙어 있었을까요?

    직함은 어느 날 되돌려 줍니다.

    그러나 직함을 달고 살아온 시간은 되돌려 줄 곳이 없습니다.

    실패하며 배운 것,

    사람을 만나며 알게 된 것,

    어려운 순간에 선택했던 것,

    자기 몫이라고 생각해 책임졌던 것.

    그것들은 어디로 갈까요?

    역할이 끝난 자리에서 사람까지 함께 끝나는 것은 무엇일까?

    오히려 질문은 반대편을 향합니다.

    역할이 끝난 뒤에도 내게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

    퇴직 이후, 내 시간이 달라진다는 것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하루의 많은 부분에는 이미 일정이 들어 있습니다.

    아침이면 갈 곳이 있습니다.

    회의 시간이 있습니다.

    마감도 있습니다.

    내가 정하지 않았어도 오늘 해야 하는 일이 앞에 놓입니다.

    퇴직한 뒤에도 모든 사람이 마음대로 시간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생업을 찾아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족을 돌보는 데 많은 시간을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퇴직 전보다 오히려 다른 책임이 커진 사람도 있습니다.

    퇴직 이후의 시간을 모두 ‘자유시간’이라고 한정 짓지 않습니다.

    다만 출근과 직장 업무가 차지하던 시간이 사라진 사람에게는 이전과 다른 종류의 시간이 놓입니다.

    누가 정해준 회의도 없습니다.

    업무 마감도 없습니다.

    직장이라는 시간표가 빠져나간 자리에 스스로 정해야 하는 시간이 생깁니다.

    그 앞에서 “오늘 뭐 하지?”라는 질문이 나옵니다.

    오늘의 일정만 묻는 말일까요?

    아니면 다른 질문까지 들어 있을까요?

    남이 정해주던 일정이 사라진 자리에서 나는 하루를 무엇으로 정할 것인가?

    직장에서는 해야 할 일을 끝내는 것이 하루를 판단하는 기준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 기준이 사라진 자리에서는 시간 자체를 바라보는 눈도 흔들립니다.

    많이 했는가?

    쓸모 있게 보냈는가?

    무언가 남겼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시간인가?

    퇴직 이후의 긴 하루 앞에서 이런 질문들이 나란히 놓입니다.

    빈자리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큰 가구를 오랫동안 놓아두었던 방에서 가구를 치우면 방이 이상하게 넓어 보입니다.

    바닥에는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가구에 가려져 있던 벽은 다른 곳과 색이 조금 다릅니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부분이 한꺼번에 드러납니다.

    비어 있는 곳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그 빈자리를 보면 다른 가구를 가져다 놓는 일이 먼저 떠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동안 바라보고 있으면 전에는 가려져 있던 것도 눈에 들어옵니다.

    벽이 보입니다.

    창에서 들어오는 빛이 어디까지 닿는지도 보입니다.

    방이 생각보다 넓었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퇴직 뒤의 빈자리도 이 모습과 닮은 데가 있습니다.

    직장이 있던 자리가 비었습니다.

    그곳에 무엇을 새로 놓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따라옵니다.

    새로운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과의 만남일 수도 있습니다.

    배움이나 오래 미뤄두었던 일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 이름도 붙이지 않은 시간이 그 자리에 놓일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가져다 놓을 것인가를 묻다 보면 또 하나의 질문과 만납니다.

    여기에는 그동안 무엇이 있었는가?

    일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있었습니다.

    책임이 있었습니다.

    생활의 리듬이 있었습니다.

    인정받았던 순간도 있었고 견뎌야 했던 날도 있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빠져나간 자리라면, 지금 보이는 빈 공간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빈자리는 단순히 아무것도 없는 곳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무엇인가 오래 머물렀다는 흔적이 가장 선명하게 남는 곳이기도 합니다.

    직함을 내려놓고 남는 질문

    처음 직장 문을 들어서던 날을 기억합니다.

    직함도 없었습니다.

    경험도 많지 않았습니다.

    작은 일 하나를 배우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경험이 쌓였습니다.

    책임이 커졌습니다.

    이름 뒤에 직함이 붙었습니다.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그 직함을 내려놓습니다.

    직함이 사라진 자리에서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업무 목록과 경력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일을 중요하게 여겼는지,

    무엇 때문에 끝까지 책임지려 했는지,

    어떤 순간에 보람을 느꼈는지,

    무엇을 지키려고 어려운 선택을 했는지가 함께 남아 있습니다.

    젊은 날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돌아갈 이유도 없습니다.

    삼십 년, 사십 년을 살아온 사람은 그 시간을 지나온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과거의 처음으로 돌아가는 대신 지금의 자리에서 물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나는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왔는가?

    직함이 답해주던 질문이 사라진 자리에서 이 질문은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그 일을 했느냐는 질문입니다.

    퇴직은 경력의 마지막 줄을 적는 일로 끝났지만, 그 경력을 살아낸 사람에게는 아직 물을 것이 남아 있습니다.

    맡았던 역할과 앞으로의 시간 사이에서

    우리는 살아오며 스스로 택한 일도 했고, 그저 내게 주어진 몫을 감당하기도 했습니다.

    먹고살기 위해 일을 선택했습니다.

    가족을 돌보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을 먼저 놓은 날도 있었습니다.

    하고 싶은 것보다 책임져야 하는 일을 앞세운 때도 있었습니다.

    자기 뜻대로 결정한 일과 형편 때문에 받아들인 일이 한 사람의 삶 안에 함께 있습니다.

    퇴직했다고 현실적인 책임까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일을 해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족을 위해 계속 자기 시간을 내어놓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퇴직은 한숨 돌릴 수 있는 때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생업을 찾아야 하는 때입니다.

    퇴직 이후의 삶을 한 가지 모습으로 그릴 수 없는 까닭입니다.

    그 서로 다른 형편 속에서도 시간이 지나가는 것만은 같습니다.

    하루가 오고 또 하루가 갑니다.

    그 앞에서 한 가지 질문이 남습니다.

    앞으로의 시간을 나는 어디에 쓰며 살아갈 것인가?

    그 답이 반드시 새로운 직업일 이유는 없습니다.

    새로운 직함일 이유도 없습니다.

    반대로 다시 일을 선택하는 사람에게 그 선택이 덜 의미 있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답이 옳으냐는 판정이 아니라 그 시간이 누구의 삶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남은 시간을 어디에 쓸 것인가라는 질문은 결국 삶의 방향을 묻습니다.

    그 방향에는 명함에 적을 이름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긴 하루 앞에서 시간을 다시 묻다

    퇴직 뒤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지는 것 가운데 하나가 시간인 사람도 있습니다.

    오후 두 시인데 예정했던 일이 거의 끝났습니다.

    시계를 보니 하루가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그 시간을 ‘남는 시간’이라고 부르는 순간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시간은 전에도 하루 안에 있었습니다.

    출퇴근에 썼습니다.

    회의에 썼습니다.

    다른 사람의 일정에 맞추는 데 썼습니다.

    맡은 책임을 감당하는 데에도 썼습니다.

    그 시간 역시 내 삶이었습니다.

    퇴직했다고 과거의 시간이 빼앗긴 시간으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지금 내 앞에 놓인 시간의 모양이 달라졌습니다.

    직장에서는 같은 시간 안에 여러 일을 처리해야 하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정해진 기한도 있었습니다.

    성과라는 기준도 있었습니다.

    퇴직한 이후에는 그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시간이 생깁니다.

    천천히 걷는 한 시간이 있습니다.

    누군가와 오래 이야기하는 오후가 있습니다.

    책장을 넘기다가 어느새 해가 기우는 날도 있습니다.

    직장에서는 이런 시간을 업무 성과로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하루에서는 어떨까요?

    무언가를 만들어낸 시간만 제대로 보낸 시간인가?

    누군가에게 보여줄 결과가 없는 하루는 빈 하루인가?

    나는 그동안 시간을 무엇으로 판단하며 살아왔는가?

    길어진 오후는 때때로 그 질문을 눈앞에 놓습니다.

    역할이 끝난 자리에서

    예전 동료들의 소식을 들으며 지나온 시간을 떠올리는 날이 있습니다.

    한때 익숙했던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내가 하던 일을 다른 사람이 이어갑니다.

    그 모습을 보며 여러 생각이 겹칩니다.

    그때 무엇이 끝났고 무엇이 남았는지를 묻게 됩니다.

    퇴직으로 끝난 것은 한 시절 내가 맡았던 자리입니다.

    직함도 그 자리에 두고 나왔습니다.

    하지만 살아온 시간을 그곳에 놓고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수많은 선택이 있었습니다.

    그 선택으로 얻은 것도 있고 놓친 것도 있습니다.

    잘한 일도 있고 다시 생각나는 일도 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도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지나온 사람이 지금 여기 있습니다.

    역할 하나가 사라졌을 때 사람은 무엇으로 자신을 설명할까요?

    또 다른 역할을 찾아야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직함이 없는 나는 이전의 나보다 적은 사람일까요?

    이미 많은 장을 써온 사람이 다음 장을 펼치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앞에 쓴 이야기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음 장은 아직 쓰이지 않았습니다.

    그 빈 페이지 앞에 같은 사람이 앉아 있습니다.

    아직 무엇을 담을지 정하지 않은 하루

    다시 아침입니다.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십니다.

    시계를 봅니다.

    아직 아홉 시입니다.

    어제까지의 시간표라면 이미 많은 일이 시작되었을 시간입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오늘은 할 일이 없는 하루인가?

    아니면,

    아직 무엇을 담을지 정하지 않은 하루인가?

    두 문장은 같은 시간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라보는 곳은 조금 다릅니다.

    ‘할 일이 없다’는 말은 비어 있는 곳을 봅니다.

    ‘아직 정하지 않았다’는 말은 그 빈자리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봅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는 여전히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걷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을 만나는 날도 있을 것입니다.

    다시 일을 시작하는 날도 있을 것입니다.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 하루가 가는 날도 있을 것입니다.

    어느 것이 퇴직 이후의 정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하루는 각자의 형편 속에서 흘러갑니다.

    그 하루 앞에 선 사람에게 남는 질문은 조금 다릅니다.

    오늘 나는 무엇에 시간을 건넬 것인가?

    퇴직 후,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 길

    평생 우리는 수많은 질문에 답하며 살았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언제까지 해야 하는가?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가?

    어떤 선택이 가족에게 필요한가?

    내가 맡은 자리에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 질문들에 답하며 살아오는 동안 뒤로 밀렸던 질문도 있습니다.

    나는 어떤 하루를 살고 싶은가?

    퇴직한 뒤 어느 아침에는 하던 일이 없습니다.

    매일 가던 직장도 없습니다.

    전화가 조용한 날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직함 뒤에서 오랫동안 자기 몫을 감당하며 살아온 내가 있습니다.

    직함을 내려놓고 나니 그동안 직함이 대신 대답해주던 질문이 다시 남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무엇을 좋아하는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겼는가?

    무엇을 할 때 시간이 아깝지 않았는가?

    누구와 있을 때 내 모습으로 살아 있었는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보다 이런 질문들이 먼저 떠오르는 날도 있습니다.

    퇴직 전에는 아침마다 갈 곳이 있었습니다.

    몇 시까지 도착해야 하는지도 알았습니다.

    오늘 해야 할 일도 대체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퇴직한 뒤의 어느 아침에는 그 자리가 비어 있습니다.

    시계를 봅니다.

    아직 아홉 시입니다.

    하루가 많이 남았습니다.

    그 앞에서 “오늘은 뭘 하지?”라고 묻습니다.

    처음에는 하루의 빈칸을 묻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오래 들여다보면 그 질문 속에는 지나온 시간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왔는가?

    그 일은 내게 무엇이었는가?

    그 일을 하지 않는 나는 나를 무엇으로 설명하는가?

    그리고 이제,

    내 앞에 놓인 이 하루를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퇴직 후의 허전함 앞에서 오래 남는 것은 답보다 이런 질문들인지도 모릅니다.

    아침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시계는 가고 있습니다.

    출근할 시간은 지났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나는 다시 시계를 봅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시계보다 조금 오래,

    나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