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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볼까?

    우리,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볼까?

    점심을 먹고 식당을 나왔습니다.

    세 사람이었습니다.
    알고 지낸 햇수를 굳이 세어본 적은 없지만, 처음 만났던 때의 얼굴보다 지금의 얼굴이 더 익숙할 만큼 오래된 사이였습니다.
    예전에는 따로 날짜를 잡지 않아도 자주 마주쳤고, 일이 끝날 무렵 누군가 밥이나 먹자고 하면 별다른 약속 없이도 한자리에 앉았습니다.
    요즘은 한 사람이 먼저 연락하고, 세 사람의 사정을 맞추고, 한두 번 날짜를 바꾼 뒤에야 겨우 얼굴을 봅니다.

    그래도 막상 만나면 오래간만이라는 느낌은 금세 사라집니다.

    한 사람은 메뉴판을 오래 들여다보다 결국 늘 먹던 것을 골랐고, 다른 사람은 예전에 했던 이야기를 또 꺼냈습니다.
    누가 먼저 그 일을 시작했느냐를 두고 기억이 달라 한동안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이미 여러 번 했던 이야기였지만 아무도 그만하자고 하지 않았습니다.
    음식이 나오고 한참이 지나도록 이야기가 이어졌고, 식사가 끝날 무렵에는 처음 주문할 때보다 목소리가 조금씩 커져 있었습니다.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고 앞으로 자주 만나자는 약속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말해봐야 각자의 생활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것을 세 사람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식당을 나와 횡단보도 앞에서 헤어졌습니다.
    한 사람은 길 건너편 정류장으로 가야 했고, 한 사람은 주차장으로 향했습니다.
    남은 한 사람은 반대편 골목으로 걸어가야 했습니다.

    “다음에 또 보자.”

    “그래. 연락해.”

    늘 하던 인사였습니다.

    한 사람은 횡단보도를 건넜고 두 사람도 각자의 방향으로 걸었습니다.
    오늘 잘 만났으니 다음에 또 만나면 됩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걷다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볼까?

    오래 알았다는 것과 앞으로 많이 본다는 것

    그런 생각을 할 만한 일은 없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함께 밥을 먹었고, 웃었고, 다음에 또 보자며 헤어졌습니다.
    사이가 멀어진 것도 아닙니다.
    전화번호도 그대로 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연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든’이라는 말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오래 알고 지냈다는 사실과 앞으로도 많이 만날 것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한데 놓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때는 오늘 못 보면 내일 볼 수 있었고 이번 주에 시간이 맞지 않으면 다음 주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먼저 집에 가더라도 아쉬울 것이 없었습니다.
    며칠 지나면 다시 얼굴을 볼 테니까요.

    그때는 한 번의 만남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귀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셀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함께 먹은 밥이 몇 끼인지 모릅니다.
    일을 마치고 같이 걸었던 길도, 잠깐 앉아 이야기를 나눈 저녁도 몇 번인지 알지 못합니다.
    기억에 남지 않은 날이 훨씬 많습니다.
    무엇을 먹었는지조차 떠오르지 않는 식사가 대부분이고,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사라진 오후도 많습니다.

    돌아보면 바로 그런 날들이 관계의 대부분을 만들었습니다.

    특별한 사건 몇 개가 사람 사이를 오래 붙들어준 것이 아니라, 별일 없던 수많은 날에 같은 공간에 있었습니다.
    다시 만나는 일이 쉬웠기 때문에 한 번의 만남에 의미를 붙일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생활이 달라졌습니다.

    한 사람은 좀 멀리 이사를 갔고 다른 사람은 하루의 시간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마주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됐지만 이제는 만나기 위해 약속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관계를 설명하는 말은 그대로였습니다.

    오래된 친구이고, 가까운 사람이고, 언제든 연락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언제든’은 달력에 없다

    며칠 뒤 세 사람이 있는 대화방에 메시지가 하나 올라왔습니다.

    “다음에는 ○○도 같이 보자.”

    지난번 식사 자리에서 이름이 나왔던 사람이었습니다.

    “좋지.”

    “한번 보자.”

    두 사람이 곧바로 답했습니다.

    그러고는 대화가 끝났습니다.

    누구도 날짜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당장 약속을 잡아야 하는 일도 아니었고, 한 달쯤 지나 연락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며칠 뒤 다른 일정을 확인하려고 달력을 펼쳤다가 그 대화가 생각났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이미 일이 있었습니다.
    다음 주에는 집에서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고, 그다음 주에는 먼저 잡힌 약속이 있었습니다.
    한 주를 더 넘기니 달력도 다음 달로 넘어갔습니다.

    분명 언제든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달력에는 ‘언제든’이라는 날이 없었습니다.

    날짜는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만나는 날은 하나도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먼저 날짜를 정해야 했습니다.
    내가 되는 날과 상대가 되는 날이 같아야 했고, 세 사람이면 세 사람의 시간이 겹쳐야 했습니다.
    만나고 싶은 마음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정한 날까지 별다른 일이 생기지 않아야 했고, 그날이 오면 실제로 집을 나서야 했습니다.

    시간이 있다는 것과 만날 기회가 있다는 것이 처음으로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한 해에는 열두 달이 있습니다.
    달력만 보면 아직 많은 날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과 실제로 만날 수 있는 날은 그 많은 날짜 가운데 드문드문 있을 뿐입니다.

    그날을 한번 넘기면 다음 기회가 언제 올지는 모릅니다.

    그래도 우리는 별로 걱정하지 않습니다.

    다음 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 달이 오면 또 그다음 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중한 사람도 미룬다

    여기까지 생각하다 보니 조금 불편한 사실도 보였습니다.

    사람을 만나지 못한 이유가 언제나 바빴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있었는데도 만나지 않은 날이 있었습니다.
    연락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내일로 미룬 적도 있었고, 만나자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번 주에는 그냥 집에 있고 싶어 다음으로 넘긴 적도 있었습니다.

    반가운 이름이 떠올랐지만 전화를 걸지 않은 날도 있습니다.

    그 사람이 싫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렇게 미룬 적이 많았습니다.

    다음에 연락해도 이해할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몇 달 만에 만나도 어색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고, 오래 연락하지 않은 이유를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였습니다.

    한동안 만나지 않아도 관계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사람 사이를 편하게 해줍니다.
    그런데 그 믿음 덕분에 만남을 뒤로 미루기도 합니다.

    급한 일은 오늘 합니다.
    기한이 있는 일도 먼저 처리합니다.
    누군가 기다리고 있는 약속이라면 시간을 맞춥니다.

    오래된 사람에게는 다음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주에 못 보면 다음 주가 있고, 이번 달에 못 보면 다음 달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루가 복잡할 때 뒤로 밀리는 것은 오히려 오래된 사람일 때가 있습니다.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몇 번을 미루어도 관계는 그대로인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관계는 그대로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만나지 않은 시간은 지나갑니다.

    자주 만나야 좋은 사이일까

    여기까지 생각하면 금세 한쪽으로 기울기 쉽습니다.

    소중한 사람이라면 자주 만나야 하고, 미루지 말아야 하며, 시간이 있을 때 얼굴을 봐야 한다는 쪽입니다.

    그런데 실제 사람 사이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몇 달에 한 번 만나도 충분한 사람이 있습니다.
    일 년에 한 번 얼굴을 보면서도 어제 만난 사람처럼 편한 사이가 있습니다.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아도 서로의 자리를 의심하지 않는 관계도 있습니다.

    반대로 자주 만난다고 반드시 가까운 것도 아닙니다.

    매일 마주쳐도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을 수 있고, 자주 식사를 하면서도 정해진 이야기만 주고받는 사이가 있습니다.

    만남의 횟수로 관계의 깊이를 재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볼지를 생각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횟수를 늘리라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누구를 얼마나 자주 만나야 좋은 관계가 되는지 정할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처음의 질문은 다른 곳을 건드리고 있었습니다.

    다음에.

    우리는 이 말을 너무 쉽게 씁니다.

    오늘 못 보면 다음에 보면 되고, 이번 달에 안 되면 다음 달에 보면 됩니다.
    다음이 있다는 사실을 굳이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음이 있다는 것과 다음이 저절로 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연락하고 다른 사람이 답해야 합니다.
    날짜 하나가 정해져야 하고, 그날까지 각자의 생활을 지나온 사람들이 실제로 한곳에 모여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 한 번이 생깁니다.

    그렇다고 그 사실을 안 뒤부터 약속을 서둘러 잡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생활은 여전히 생활대로 흘러갔습니다.

    다만 누군가 “다음에 보자”고 말할 때 그 말을 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듣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지나온 삼십 년과 앞으로의 한 번

    오래된 사람을 떠올릴 때 우리는 지나온 시간부터 셉니다.

    십 년을 알았고, 이십 년을 함께 지냈고, 삼십 년 친구라고 말합니다.
    그 햇수 안에는 수많은 장면이 들어 있습니다.

    젊었을 때의 얼굴을 알고 있습니다.
    서로 처음 어떤 일을 시작했는지도 기억합니다.
    지금은 사라진 가게에서 밥을 먹었던 이야기를 하고, 그때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를 두고 여전히 서로 기억이 맞다고 우깁니다.

    그 많은 기억 때문에 관계가 넉넉하게 느껴집니다.

    이미 함께한 시간이 많으니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온 삼십 년은 이미 생긴 시간입니다.

    앞으로의 한 번은 아직 없습니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컸습니다.

    과거에는 수없이 많이 만났더라도 앞으로 한 번을 더 만나려면 다시 날짜를 정해야 합니다.
    같은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같은 이야기를 듣고, 헤어질 때 인사를 해야 비로소 새로운 한 번이 생깁니다.

    그렇다고 남은 만남을 계산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사람을 앞으로 열 번 보려면 십 년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사람 사이가 너무 삭막해집니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이번이 몇 번째인지 세고 싶지도 않습니다.

    몇 번 남았는지 알 수도 없습니다.

    처음 떠올랐던 질문에는 애초부터 숫자로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 질문이 남긴 것은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오래 알았다는 사실이 앞으로의 한 번까지 만들어놓지는 않는다는 것.

    그것뿐이었습니다.

    만나지 않은 날도 우리의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만나지 않은 시간을 아깝다고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각자 살아야 할 하루가 있었습니다.

    일을 해야 했고 집에서 해야 할 일도 있었습니다.
    혼자 있고 싶은 날도 있었으며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은 때도 있었습니다.
    약속 하나 없이 보내는 오후가 좋았던 날도 있습니다.

    그 시간 역시 삶입니다.

    누군가를 만나지 않았다고 잘못 보낸 하루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달력을 보면서도 굳이 약속을 잡지 않았습니다.
    대화방에 다시 날짜를 묻지도 않았습니다.
    생활은 전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음’이라는 말은 전과 똑같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도록 쌓여 있는 시간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실제로 다시 만나기 전까지는 한 번으로 셀 수도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안다고 하루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늘 만나지 않는다고 오늘을 잘못 산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다음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만 남았습니다.

    한 번은 그냥 한 번이었다

    몇 달 뒤 세 사람은 다시 만났습니다.

    누가 먼저 연락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날짜를 맞추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처음 말한 날에는 한 사람이 안 됐고, 다음 날짜에는 다른 사람에게 일이 있었습니다.
    몇 번 메시지가 오간 끝에 토요일 점심으로 정했습니다.

    지난번과 다른 식당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조금 늦었습니다.

    먼저 도착한 두 사람이 메뉴판을 보고 있는데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습니다.

    “많이 기다렸어?”

    “아니. 우리도 방금 왔어.”

    사실 십 분쯤 기다렸습니다.

    자리에 앉자 지난번에 하던 이야기의 뒤가 이어졌습니다.
    몇 달이 지나 있었지만 대화는 잠깐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웠습니다.

    음식을 먹다가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우리 지난번에 언제 봤지?”

    한 사람이 휴대전화를 꺼냈습니다.
    사진을 찾아보려는 것 같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말했습니다.

    “됐어. 밥이나 먹어.”

    휴대전화를 다시 내려놓았습니다.

    아무도 날짜를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그날이 올해 몇 번째 만남인지도 세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만날 수 있을지 말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냥 밥을 먹었습니다.

    한 사람이 전에 했던 이야기를 또 꺼냈습니다.

    “그 이야기 지난번에도 했어.”

    “내가 언제?”

    “했어.”

    “기억 안 나는데?”

    또 웃었습니다.

    그 순간에는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몇 번을 더 만날지도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그냥 한 번이었습니다.

    같은 자리에 앉아 밥을 먹고, 이미 들었던 이야기를 또 듣고, 별것 아닌 일로 웃는 몇 시간이었습니다.

    예전에는 그런 한 번이 너무 흔해서 세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세지 않는 이유가 조금 달라졌습니다.

    셀 필요가 없었습니다.

    지금 만나고 있었으니까요.

    다음에 또 보자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비가 조금 내리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만 우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처마 아래에 서서 비가 잦아들기를 잠깐 기다렸습니다.

    한 사람이 주차장까지 뛰어가 차를 가져오겠다고 했고 다른 사람이 됐다며 손을 저었습니다.
    역까지 멀지 않으니 그냥 가겠다고 했습니다.

    몇 마디를 더 주고받다가 결국 각자 가기로 했습니다.

    헤어지기 전에 누군가 말했습니다.

    “다음에 또 보자.”

    예전과 똑같은 말이었습니다.

    이번에도 날짜는 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

    한 사람은 우산을 펴고 걸어갔고 다른 사람은 가방을 머리 위에 올렸습니다.
    몇 걸음 지나자 세 사람의 거리가 조금씩 벌어졌습니다.

    몇 번 남았는지 세지 않았습니다.

    셀 수도 없었습니다.

    나도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습니다.

    뒤에서 한 사람이 불렀습니다.

    “야.”

    돌아보았습니다.

    “다음엔 네가 사.”

    웃음이 나왔습니다.

    “알았어.”

    그 사람이 손을 한번 들고 다시 걸어갔습니다.

    다음이 언제인지는 묻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