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일하며 살아온 사람에게 하루는 온전히 자기 것이었던 적이 많지 않습니다.
일어나야 할 때가 있고, 가야 할 곳이 있습니다. 맡은 일이 있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키지 않는 날에도 나가야 하고, 그만두고 싶은 순간에도 끝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런 날들이 오래 이어지면 자유는 자연스럽게 그 반대편에 놓입니다.
출근하지 않는 날.
재촉받지 않는 하루.
아무도 무엇을 하라고 말하지 않는 생활.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삶.
그런데 정말 그런 날이 찾아오면 전에는 잘 보이지 않던 장면 하나가 나타납니다.
아무도 나를 붙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바로 알지 못합니다.
자유라고 생각했던 자리에서 뜻밖의 질문이 시작됩니다.
매이지 않는 것과 자유로운 것은 같은 말일까.
매여 있을 때에는 분명했던 것
일에 매여 있을 때에는 싫은 것이 비교적 선명합니다.
출근하기 싫은 날이 있습니다. 반복되는 일이 지겹습니다. 다른 사람이 정한 일정에 맞추어 움직이는 것이 답답합니다.
벗어나고 싶은 것이 분명하니 자유도 분명해 보입니다.
저것만 없어지면 됩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때 생각했던 자유의 모습은 대부분 지금의 생활이 반대편에서 만들어낸 것이었습니다.
출근이 있었기에 출근하지 않는 날을 생각했습니다.
마감이 있었기에 쫓기지 않는 하루를 기다렸습니다.
정해진 일이 있었기에 내 마음대로 사는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무엇에서 벗어나고 싶은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벗어난 뒤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는 아직 묻지 않았습니다.
두 질문은 같은 것처럼 붙어 있었지만 실제로는 달랐습니다.
일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
일은 사람을 붙듭니다.
때로는 지나치게 붙듭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반복된 생활을 자세히 보면 일은 사람을 묶는 것만 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아침에 나갈 이유가 있었습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누군가와 약속한 것이 있었습니다.
끝냈다는 감각도 있었습니다.
일이 사라지면 싫었던 것만 빠져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생활과 함께 움직이던 여러 가지가 한꺼번에 자리를 비웁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홀가분함과 허전함을 같은 날 경험합니다.
모순처럼 보이지만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벗어나고 싶었던 생활 속에도 자신의 하루를 붙들어주던 부분이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자유는 처음보다 조금 복잡한 얼굴을 드러냅니다.
나를 붙들던 것이 없어졌다는 사실만으로는 아직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남습니다.
아무도 정해주지 않을 때
해야 할 일이 사라진 아침은 조용합니다.
누가 부르지 않습니다.
어디에 가지 않아도 됩니다.
처음에는 그 고요함이 좋습니다.
그런데 그런 날이 이어지면 전에는 남이 정해주던 것들이 하나씩 자기 앞으로 돌아옵니다.
오늘 무엇을 할 것인가.
어디에 갈 것인가.
누구를 만날 것인가.
무엇은 하지 않을 것인가.
자유가 없을 때에는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 답답했습니다.
막상 선택해야 할 것이 많아지면 다른 어려움이 나타납니다.
정해진 것이 없다는 사실과 내가 원하는 것을 안다는 사실은 서로 다릅니다.
이 차이는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둘 다 자유로운 하루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전혀 다른 질문이 됩니다.
다시 스스로를 묶는 사람
한동안 아무 일정도 두지 않던 사람이 어느 날 다시 약속을 만듭니다.
정해진 날에 어디론가 갑니다.
맡은 일이 생깁니다.
반복해서 하는 것도 생깁니다.
이상하게 보입니다.
그토록 매이지 않는 삶을 원했는데 다시 자신을 무언가에 묶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과 완전히 같지는 않습니다.
누가 시켜서 가는 자리가 아닌데도 갑니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인데 계속합니다.
그만두어도 나무랄 사람이 없는데 약속을 지킵니다.
여기에서 ‘매임’이라는 말이 흔들립니다.
사람을 붙드는 것은 모두 자유의 반대편에 있는 것일까요.
자기가 고른 약속도 사람을 붙듭니다.
좋아하는 일도 반복되면 일정이 됩니다.
소중한 관계에도 지켜야 할 것이 생깁니다.
무엇에도 매이지 않는 삶을 자유라고 부른다면 이런 장면들은 설명하기 어려워집니다.
사람은 벗어나기 위해 살아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떠나고 싶지 않은 무엇인가를 만들어갑니다.
자유를 얻고 다시 책임을 고르는 일
오래 맡았던 책임을 내려놓은 사람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맡고 싶지 않았습니다.
누가 부탁해도 피했습니다.
그동안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작은 일을 하나 맡습니다.
처음에는 가벼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기다리는 사람이 생깁니다.
약속한 날을 기억하게 됩니다.
빠뜨리지 않으려고 챙깁니다.
책임이 다시 생겼습니다.
예전 같으면 벗어나고 싶었을 말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릅니다.
책임이라는 단어가 달라진 것이 아닙니다.
그 책임과 자신의 관계가 달라졌습니다.
이 장면 앞에서는 자유를 단순히 책임이 없는 상태라고 말하기 어려워집니다.
책임이 없어 홀가분한 날도 있고, 자신이 받아들인 책임 때문에 오히려 생활이 또렷해지는 날도 있습니다.
자유와 책임이 언제나 서로 밀어내는 것만은 아니라는 장면이 여기 있습니다.
내가 고른 것이라면 모두 자유로운가
그렇다고 자신이 선택한 것은 모두 자유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시작한 일에도 끌려갈 수 있습니다.
좋아서 시작했지만 멈추지 못하는 일이 생깁니다.
내가 만든 약속이 어느 순간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원해서 들어간 자리에서 다시 벗어나고 싶어질 때도 있습니다.
‘내가 선택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자유를 설명하면 또 다른 장면들이 남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자유일까요.
매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부족합니다.
내가 골랐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말만으로도 다 담기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자유라는 말은 쉽게 정의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이 무엇에 묶여 있는지, 그것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함께 바라보게 합니다.
벗어나는 것보다 어려운 질문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면 몸은 가벼워집니다.
그 순간만큼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짐을 내려놓는 것과 어디로 걸어갈 것인지는 다른 일입니다.
오랫동안 일을 해온 사람에게도 비슷한 순간이 찾아옵니다.
끝난 것이 있습니다.
내려놓은 책임이 있습니다.
더 이상 가지 않아도 되는 곳이 있습니다.
그것은 실제로 큰 변화입니다.
그러나 삶은 그 자리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다음 날이 옵니다.
또 다음 날이 옵니다.
그때부터는 자신을 붙들던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하루가 정해지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질문의 방향이 바뀝니다.
무엇에서 벗어나고 싶은가.
그 질문에는 오래 대답해왔습니다.
그다음은 조금 낯섭니다.
아무도 나를 붙들지 않을 때 나는 무엇과 함께 살아갈 것인가.
자유라는 말 앞에서
일에 매이지 않으면 자유로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일은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가기 싫어도 가야 하고, 내키지 않아도 해야 하며, 때로는 내 생활보다 먼저 놓아야 하는 책임도 있습니다.
그것에서 벗어났을 때 느끼는 가벼움도 실제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오래 서 있으면 자유는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넓은 질문이 됩니다.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는 것.
내가 고른 것을 하는 것.
책임을 내려놓는 것.
다시 책임을 맡는 것.
혼자 결정하는 것.
누군가와 약속하는 것.
서로 반대처럼 보이는 장면들이 한 사람의 삶 안에 함께 들어옵니다.
그래서 자유를 한 문장으로 서둘러 묶지 않게 됩니다.
오히려 한 사람을 바라보게 됩니다.
벗어나고 싶어 하는 사람.
마침내 벗어난 사람.
그리고 어느 날 자기가 고른 무엇인가를 향해 다시 걸어가는 사람.
그 사람은 다시 매인 것일까요.
아니면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유로운 것일까요.
답을 먼저 정해놓으면 그 장면 가운데 일부를 놓치게 됩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처음의 질문을 그대로 남겨둡니다.
일에 매이지 않으면 정말 자유로울까.
처음에는 답하기 쉬워 보였던 질문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하루를 오래 들여다볼수록, 그 물음은 쉽게 닫히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