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방바닥부터 짚어보던 때가 있었습니다.
따뜻하면 밤새 불이 살아 있었다는 뜻이었습니다.
평소보다 냉기가 돌면 이불 속에서도 알 수 있었습니다. 간밤에 갈아놓은 연탄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거나 어느새 불이 다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 시절 겨울에는 시계에 적혀 있지 않은 시간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연탄 갈 시간이었습니다.
아침에 한 번 갈아놓았다고 하루가 끝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음에 언제 갈아야 하는지 기억해야 했고, 외출이 길어질 때는 나가기 전에 불부터 살폈습니다. 밤이 깊었어도 때가 되면 새 연탄을 올려놓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요즘은 사람이 원할 때 난방을 켭니다.
그때는 사람이 불의 시간에 맞춰 살았습니다.
아침은 방바닥의 온도로 시작됐다
연탄은 장작보다 오래 탔고 비교적 일정하게 열을 냈습니다. 1950년대 중반부터 가정의 난방연료로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식당과 점포, 학교와 사무실에서도 사용됐습니다.¹⁾
오래 탄다는 것은 분명 편리했습니다.
하지만 한번 불을 붙여놓으면 잊어도 되는 연료는 아니었습니다.
불이 충분히 남아 있을 때 다음 연탄으로 이어야 했습니다. 때를 놓쳐 완전히 꺼지고 나면 다시 불을 살려야 했습니다.
연탄을 오래 사용한 집에서는 자연스럽게 감각이 생겼습니다. 아궁이를 열어 연탄의 빛깔을 보면 어느 정도 탔는지 짐작했습니다. 새 연탄을 올린 뒤에는 위아래 구멍을 맞췄습니다.
처음에는 서툴던 일도 겨울을 몇 번 보내고 나면 몸에 익었습니다.
몇 시에 갈았는지 일일이 적어두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이제 한번 봐야겠다.”
그럴 때쯤이면 정말 아궁이를 살펴볼 때가 되어 있었습니다.
집 안의 하루와 아궁이 속 시간이 함께 흘렀습니다.
불이 꺼진 날에는 옆집 문을 두드렸다
그래도 불을 꺼뜨리는 날은 있었습니다.
외출이 예상보다 길어질 때도 있었고, 밤사이 새 연탄으로 불이 제대로 옮겨붙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방바닥이 싸늘했습니다.
아궁이를 열어보면 전날 밤까지 벌겋던 연탄이 식어 있었습니다.
연탄은 처음 불을 붙이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충분히 마르지 않은 연탄은 불붙이기가 더 어려웠고, 한번 완전히 꺼진 불을 처음부터 다시 살리는 것도 번거로웠습니다.²⁾
그럴 때 옆집 문을 두드리기도 했습니다.
“연탄불 꺼졌는데 하나 좀 빌립시다.”
불붙은 연탄 한 장을 빌려왔습니다.
벌겋게 살아 있는 연탄을 자기 집 아궁이에 넣고 그 위에 새 연탄을 올렸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옆집에서 건너온 불이 자기 집 연탄으로 옮겨붙었습니다.
연탄이 떨어지면 몇 장을 꾸었습니다.
불이 꺼지면 불붙은 연탄을 빌려오기도 했습니다.
연탄만 꾸는 것이 아니라 불까지 꾸던 시절이었습니다.
빌려온 것은 연탄 한 장이었지만 정작 필요했던 것은 그 안에 살아 있던 불이었습니다.
한집에서 건너온 불이 다른 집의 저녁을 다시 데웠습니다.
연탄집게는 늘 아궁이 곁에 있었다
연탄을 때던 집에는 연탄집게가 있었습니다.
특별할 것 없는 쇠붙이였지만 겨울이면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었습니다.
새 연탄을 올리고, 타고 남은 연탄을 들어내고, 다 탄 재를 꺼낼 때도 집게를 사용했습니다.
연탄을 오래 갈다 보면 힘을 주는 정도도 몸에 익었습니다. 너무 거칠게 다루면 다 타가는 연탄이 부서질 수 있었습니다.
연탄을 간다는 것은 새것과 헌것을 바꾸는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남아 있는 불을 다음 연탄으로 넘기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장에서 다음 한 장으로 불이 이어졌습니다.
검은 연탄은 하얀 재가 되어 나왔다
밤새 방을 데운 연탄은 아침이면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 있었습니다.
검고 묵직했던 몸은 희끗한 회색으로 변했습니다.
연탄재였습니다.
불은 끝났지만 사람의 일은 조금 남았습니다.
열기가 남아 있지 않은지 살핀 뒤 밖으로 내놓았습니다. 온전히 빠져나온 것도 있었고 중간이 깨진 것도 있었습니다. 잘못 건드리면 푸석하게 무너지며 잿가루가 떨어졌습니다.
겨울이면 골목 한쪽에 다 타고 남은 연탄재가 쌓였습니다.
1990년대 초까지도 이런 풍경은 낯설지 않았습니다.³⁾
며칠 전에는 검은 연탄이 골목을 따라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이제는 하얀 재가 되어 같은 골목으로 나왔습니다.
연탄이 들어오는 것도 보였고, 다 타고 나가는 것도 보였습니다.
겨울은 그렇게 골목에 흔적을 남겼습니다.
연탄불 하나가 여러 일을 맡았다
연탄불은 방만 데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집의 구조에 따라 밥을 짓고 국을 끓였으며 물을 데우는 데에도 사용했습니다.⁴⁾
이미 피워놓은 불을 한 가지 용도로만 쓰지 않았습니다.
방을 데우고 음식을 익혔습니다.
솥에 물을 올려두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불이 꺼진다는 것은 방 하나가 식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한집의 여러 생활이 함께 불편해졌습니다.
지금은 난방과 취사, 온수를 서로 다른 장치가 맡습니다.
그때는 연탄불 하나가 여러 일을 함께 떠받치고 있던 집이 많았습니다.
연탄 한 장의 쓰임은 생각보다 집 안 깊숙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연탄더미를 보면 남은 겨울이 보였다
겨울을 앞두고 연탄을 들여놓았습니다.
검은 연탄이 한쪽에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김장을 마치고 연탄까지 들여놓으면 큰 겨울 준비를 해놓은 셈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든든했습니다.
하지만 겨울이 깊어질수록 연탄더미는 낮아졌습니다.
매일 몇 장쯤 쓰는 집에서는 남은 양을 보면 앞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도 대강 알았습니다.
날씨가 매섭게 추워지면 줄어드는 속도도 빨라졌습니다.
바닥이 가까워지면 다시 연탄을 들여놓아야 했습니다.
문제는 돈만 있다고 언제나 원하는 만큼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데 있었습니다.
연탄 사용이 크게 늘면서 겨울철 공급난도 여러 차례 찾아왔습니다. 석유파동 이후에는 연탄 수요가 몰리면서 공급을 걱정해 미리 사두려는 움직임까지 나타났습니다.⁵⁾
그런 시절에는 쌓여 있는 연탄의 높이가 달리 보였습니다.
단순히 몇 장 남았느냐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겨울의 양처럼 보였습니다.
집 안에도 이름 없는 일이 있었다
탄광에서는 광부가 석탄을 캤습니다.
공장에서는 그 석탄으로 연탄을 만들었습니다.
트럭이 실어 날랐고 배달하는 사람이 집까지 옮겼습니다.
그런데 연탄이 집에 도착했다고 사람의 일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뒤의 일은 생활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아궁이를 살피고 연탄을 갈았습니다. 다 탄 재를 밖으로 내놓았습니다. 쌓아둔 연탄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헤아렸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이런 일을 거드는 집도 있었습니다.
월급을 받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직업 이름도 없었습니다.
그저 집에서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하지 않으면 방이 식었습니다.
탄광에서 시작된 수많은 사람의 일이 연탄공장과 배달에서 끝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연탄 한 장의 마지막에는 그것을 불로 이어가는 생활의 손이 있었습니다.
산업의 끝과 사람의 일상이 아궁이 앞에서 만났습니다.
연탄은 한 시대의 생활연료였다
연탄에 대한 기억이 많은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이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연탄 소비량은 1970년 1,183만 톤에서 1980년 2,083만 톤으로 늘었고, 1986년에는 2,692만 톤에 이르렀습니다. 서울의 연탄 사용 가구도 1983년 211만 가구에서 1986년 234만 가구로 늘었습니다.⁶⁾
1980년대 중반까지 연탄은 이미 지나간 옛날 연료가 아니었습니다.
그때도 수많은 집에서 타고 있던 생활연료였습니다.
그래서 연탄집게와 연탄재, 골목의 연탄가게와 연탄차가 한 세대의 기억 속에 함께 남았습니다.
개인의 추억처럼 보이지만 그 밑에는 거대한 에너지 소비의 변화가 놓여 있었습니다.
산에서 캐낸 석탄이 공장을 거쳐 연탄이 되고, 다시 수많은 집의 아궁이로 들어갔습니다.
한 장씩 보면 작은 연탄이었습니다.
모아놓고 보면 한 시대를 데운 연료였습니다.
연탄이 물러나자 하루도 달라졌다
그렇게 널리 쓰이던 연탄도 서서히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1986년 무렵 정점에 이른 국내 무연탄 생산은 이후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정과 상업 부문의 연탄 소비가 줄었고, 1986년과 1987년 액화천연가스가 도입되면서 취사와 난방 연료도 점차 달라졌습니다.⁷⁾
연료 하나가 바뀐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생활에서는 여러 가지가 함께 사라졌습니다.
골목의 연탄가게가 줄었습니다.
집 한쪽에 겨울치 연탄을 쌓아놓을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연탄집게가 손에서 멀어졌습니다.
아침마다 재를 들고 밖으로 나가는 일도 줄어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사람은 조금씩 불의 시간에서 벗어났습니다.
연탄은 때가 되면 갈아야 했습니다.
외출이 길어지면 불이 걱정됐습니다.
잠들기 전에는 밤새 이어질 불을 살펴야 했습니다.
난방 방식이 달라지면서 그런 시간을 헤아리는 일도 사라져갔습니다.
난방 기술의 변화는 방을 데우는 방법만 바꾼 것이 아니었습니다.
겨울을 보내는 사람의 시간도 달라졌습니다.
연탄 한 장으로 겨울을 난다는 것
연탄 한 장은 몇 시간이 지나면 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다음 연탄이 그 불을 이어받았습니다.
그 일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 겨울 내내 계속됐습니다.
아침에는 방바닥의 온기로 불이 살아 있는지 알았습니다.
때가 되면 아궁이를 살폈습니다.
불을 꺼뜨린 날에는 옆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밤새 제 몫을 다한 연탄은 아침이면 하얀 재가 되어 골목으로 나갔습니다.
그 불로 밥을 짓고 물을 데웠습니다.
방을 덥혔습니다.
가족은 그 온기 위에서 겨울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연탄을 기억한다는 것은 검은 연료 하나를 추억하는 일만은 아닙니다.
연탄을 중심으로 움직였던 하루의 방식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석탄이 어떻게 연탄이 되어 집까지 왔는지를 따라가면 산업이 보입니다.
그 연탄이 집 안에서 어떻게 타고 사라졌는지를 따라가면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생활에는 따뜻함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밤새 방을 덥혀주던 바로 그 불 때문에 겨울이면 사람들이 두려워하던 것이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잠든 사이 방 안으로 스며들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연탄가스라고 불렀습니다.
각주
- 한국학중앙연구원, 「연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연탄의 가정용 보급과 난방·취사 등 생활연료로서의 이용에 관한 설명.
- 한국학중앙연구원, 「연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연탄의 착화 특성과 번개탄의 등장 등에 관한 설명.
- 국가기록원, 「길고 춥던 그 시절 겨울 풍경―연탄재 쌓인 골목길」. 1990년대 초까지 연탄이 겨울나기의 주요 연료였으며 골목에 쌓인 연탄재가 흔한 겨울 풍경이었다고 기록한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연탄」 및 국가기록원 연탄 관련 기록. 연탄은 가정의 난방뿐 아니라 취사 등에도 널리 이용됐다.
- 국가기록원, 「길고 춥던 그 시절 겨울 풍경―연탄재 쌓인 골목길」. 겨울철 연탄 수급과 석유파동 이후의 연탄 공급 문제를 다룬 기록이 수록되어 있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연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연탄 소비량은 1970년 1,183만 톤, 1980년 2,083만 톤, 1986년 2,692만 톤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서울의 연탄 사용 가구 수도 함께 제시되어 있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연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내 무연탄 생산은 1986년 약 2,760만 톤을 기점으로 감소했고, 가정·상업 부문의 연탄 소비 감소와 LNG 도입에 따른 연료 전환이 이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