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연탄가스

  • 연탄불의 두 얼굴

    연탄불의 두 얼굴

    겨울밤 방이 따뜻해지면 사람들은 이불을 폈습니다.

    밖에서 돌아와 아랫목에 발을 넣으면 얼었던 몸이 조금씩 풀렸습니다.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있으면 밖의 찬바람이 잠시 먼 세상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온기는 아궁이에서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연탄을 사용하던 집에서 따뜻한 방이 반드시 마음 놓고 잠들 수 있는 방은 아니었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한 번 더 살펴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불이 잘 타고 있는지도 보았지만, 연기가 제대로 빠져나가는지도 중요했습니다. 방바닥에 금이 간 곳은 없는지, 연통이 벌어진 곳은 없는지 신경을 썼습니다.

    잘못하면 연탄가스가 방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연탄 사용이 늘어난 1960년대에는 연탄가스 중독사고도 급증했습니다. 한겨울에 수백 명이 희생될 정도였습니다. 정부가 강습회를 열고 관련 영화를 상영하며 예방운동을 벌였지만 사고는 쉽게 줄지 않았습니다. 국가기록원은 1970~80년대에 연탄가스 사고가 오히려 증가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¹⁾

    한쪽에는 겨울을 견디게 해준 따뜻한 아랫목이 있었습니다.

    그 아래에는 밤새 조심해야 하는 불이 타고 있었습니다.

    연탄불의 두 얼굴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연탄가스

    연탄가스 중독에서 특히 위험한 것은 일산화탄소였습니다.

    연기가 방 안에 가득 차 눈이 맵다면 위험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일산화탄소는 그렇게 쉽게 경고해주지 않습니다.

    잠든 사이 몸에 들어오면 머리가 아프거나 어지러워지고, 심하면 의식을 잃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연탄을 사용하는 집이 워낙 많았다는 데 있었습니다.

    연탄은 어느 특별한 장소에서만 사용하는 연료가 아니었습니다. 도시의 단독주택과 골목 안 작은 집, 새로 지은 주택에서도 흔히 사용했습니다. 한 집에서 매일 사용하는 난방연료의 위험이었으니 겨울이 올 때마다 같은 문제가 되풀이됐습니다.

    사고가 이어지면서 원인을 사람의 부주의만으로 돌릴 수도 없게 됐습니다.

    아궁이에서 나온 가스가 굴뚝까지 빠져나가는 과정에는 여러 곳이 연결돼 있었습니다.

    아궁이가 있었습니다.

    구들이 있었습니다.

    연기가 지나가는 길이 있었고 끝에는 굴뚝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어느 곳에 틈이 생겨도 문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집을 어떻게 짓느냐도 중요해졌습니다.

    1960년대 말부터 정부 주도의 연구사업이 시작됐고, 사고가 발생한 건물의 건물주와 시공사에 책임을 묻는 조치도 나왔습니다. 미장이에게 안전한 시공법을 교육하고 수료증을 발급했으며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에는 안전검사를 실시했습니다.¹⁾

    연탄가스 사고가 한 가정의 조심성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주거 안전의 문제로 넓어진 것입니다.

    따뜻한 방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연탄만 잘 태우면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불이 지나가는 길까지 안전해야 했습니다.

    방바닥과 연통을 살피던 겨울

    1988년 11월 23일 대한뉴스에는 「연탄가스 사고주의」라는 41초짜리 짧은 영상이 방송됐습니다.

    내용은 놀랄 만큼 구체적입니다.

    방바닥에 틈이 없는지 살펴보라고 했습니다.

    연통의 틈으로 가스가 새지 않도록 막으라고 했습니다.

    가스경보기와 가스배출기를 켜놓으라는 안내도 나왔습니다.

    사고가 발생하면 119에 신고하라는 내용까지 들어 있었습니다.²⁾

    1988년이면 연탄을 사용하기 시작한 지 이미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습니다.

    그런데도 겨울이 오면 국가가 방송을 통해 방바닥과 연통을 확인하라고 알려야 했습니다.

    당시 촬영된 미공개 대한뉴스 영상에는 그 경고가 실제 생활에서 어떤 모습이었는지도 남아 있습니다.

    연탄가스 사고 환자가 구급차로 실려 갑니다.

    가정에서는 가스가 새는 곳을 살핍니다.

    화면은 병원 응급실로 이어지고 고압산소치료기도 등장합니다.³⁾

    한쪽에서는 평범한 겨울을 보내기 위해 연탄불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그 불 때문에 사람이 병원으로 실려 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겨울을 준비한다는 말에는 연탄을 마련하는 일만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집도 살펴야 했습니다.

    방바닥에 전에 없던 금이 생기지는 않았는지, 연통이 빠지거나 벌어지지는 않았는지 확인했습니다.

    작은 틈 하나가 대수롭지 않은 집수리가 아니라 사람의 안전과 관계된 문제가 됐습니다.

    겨울을 앞두고 집을 손보는 일에도 이런 걱정이 따라다녔습니다.

    방바닥에 생긴 금을 메우고 아궁이와 굴뚝 사이를 살폈습니다. 연통이 빠졌거나 벌어진 곳은 없는지도 확인했습니다. 평소에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던 작은 틈이 연탄을 때기 시작하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 됐습니다.

    연탄가스 사고를 막는 일은 특별한 날 한 번 하는 점검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난방을 계속하는 동안 집의 상태도 함께 살펴야 했습니다. 연탄을 사용하는 겨울에는 집 자체가 난방기구의 한 부분이었던 셈입니다.

    1970년대에는 정부가 연탄가스 사고를 막기 위한 여러 대책을 추진했고, 1980년대 말까지도 가스경보기와 배출기를 사용하라는 캠페인이 계속됐습니다.

    1972년 대한뉴스에는 아예 「연탄가스를 조심하자」라는 영상이 제작됐습니다. 16년 뒤인 1988년에도 같은 주제의 캠페인이 다시 등장했습니다.⁴⁾

    오랜 기간 같은 경고가 반복됐다는 사실 자체가 당시 연탄가스 문제가 얼마나 생활 가까이에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동치미를 찾던 집과 병원으로 향하던 사람들

    연탄가스 이야기를 기억하는 세대에게는 조금 뜻밖의 음식 하나가 따라옵니다.

    동치미입니다.

    연탄가스에 취한 사람이 생기면 동치미 국물을 먹였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동치미 국물 가져와.”

    이 말을 실제로 들었던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겨울이면 집에 동치미가 있었습니다. 병원이 지금처럼 가까운 곳에 있지 않았고, 응급의료 체계도 오늘과 달랐습니다. 갑자기 사람이 쓰러지면 가족은 당장 할 수 있다고 알고 있던 방법부터 찾았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동치미 국물이었습니다.

    여기서 당시의 생활과 오늘의 의학은 분명하게 나누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동치미 국물은 당시에 널리 알려져 있던 민간의 대처였습니다.

    오늘날 일산화탄소 중독은 신속한 의료적 처치가 필요한 응급상황이며 동치미 국물은 치료법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동치미가 연탄가스를 치료했느냐가 아닙니다.

    왜 많은 사람이 연탄가스 이야기를 하면서 동치미까지 함께 기억하느냐입니다.

    그 기억 속에는 당시의 생활조건이 들어 있습니다.

    집집마다 연탄을 사용했습니다.

    사고가 일어나면 가족과 이웃이 먼저 달려왔습니다.

    구급차와 전문적인 치료를 받기까지 지금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던 방법으로 먼저 움직였습니다.

    한편 병원에서는 다른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연탄가스 중독 환자를 살리기 위한 고압산소치료가 도입됐고, 정부도 종합병원 등에 관련 치료장비를 설치하는 대책을 추진했습니다.

    1988년 대한뉴스 미공개 촬영본에 응급실과 고압산소치료기가 함께 등장하는 것도 그런 변화가 이미 의료현장에 들어와 있었음을 보여줍니다.³⁾

    집에서 동치미 국물을 찾던 기억과 병원에서 고압산소치료를 받던 장면은 서로 다른 이야기가 아닙니다.

    같은 위험을 두고 생활의 경험과 의료기술이 서로 다른 자리에서 대응하고 있던 모습입니다.

    군대의 겨울에는 페치카가 있었다

    같은 시절 군대에는 또 다른 겨울 풍경이 있었습니다.

    페치카였습니다.

    오래전에 군 생활을 한 사람에게 페치카라는 말은 낯설지 않습니다.

    뻬치카나 베치카처럼 조금씩 다르게 부르기도 했습니다.

    2001년 MBC는 병영 개선사업으로 사라져가는 군부대 페치카를 취재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페치카는 1950년대부터 군 내무반 난방기구로 사용됐습니다. 처음에는 나무와 분탄을 때다가 1970년대부터 조개탄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 말까지 거의 모든 군부대가 페치카를 사용했습니다.⁵⁾

    군대의 겨울은 집과 달랐습니다.

    특히 전방에서 야간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병사에게 따뜻한 내무반은 몸을 녹일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문제는 페치카가 저절로 타지 않았다는 데 있었습니다.

    MBC 보도에는 아예 ‘페치카 담당병’이 등장합니다.

    겨울이 오면 담당병이 바빠졌습니다.

    잠깐 한눈을 팔아 불이 꺼지면 다시 살려야 했습니다. 난방을 계속하려면 연료를 넣고 불의 상태를 살펴야 했습니다.

    특히 추위가 매서운 곳에서는 불이 꺼진 뒤에야 그 차이가 분명해졌습니다. 밤새 식은 내무반을 다시 데우려면 시간이 걸렸습니다. 페치카를 맡은 병사에게 불은 단순히 켜고 끄는 난방기구가 아니었습니다.

    근무를 나가는 병사와 돌아오는 병사가 밤새 바뀌는 동안에도 난방은 이어져야 했습니다. 다른 병사들이 잠든 시간에도 불의 상태를 확인해야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래전 군 생활의 페치카 기억에는 따뜻함과 함께 불을 꺼뜨리지 않아야 했던 수고가 남아 있습니다.

    집에서 가족이 아궁이를 확인하던 시간에 군대에서는 병사가 페치카를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페치카 주변에는 난방 이상의 생활도 모였습니다.

    뜨거운 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보도에 등장한 군인의 회고에는 페치카에서 몰래 라면을 끓여 먹다가 걸려 얼차려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고참들이 따뜻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가 힘들어하는 이등병을 불러 손을 녹이게 해주고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기억도 남아 있습니다.⁵⁾

    그래서 페치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난방기구의 구조보다 먼저 자기 군 생활의 한 장면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밖은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근무를 마치고 내무반으로 돌아왔습니다.

    페치카에는 불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 앞에서 언 손을 녹였습니다.

    다음 근무를 나갈 사람도 같은 불 곁을 지나갔습니다.

    그런 기억은 난방기구의 성능표에 남지 않습니다.

    그것을 사용했던 사람에게 남습니다.

    따뜻한 불 뒤에는 관리하는 일이 있었다

    연탄불과 페치카에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연료를 넣는다고 일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불이 제대로 타는지 살펴야 했습니다.

    집에서는 가스가 새지 않는지도 확인해야 했습니다.

    사고가 계속되면서 그 주변의 일은 더 세분됐습니다.

    집을 지을 때는 연탄가스가 새지 않도록 시공해야 했습니다.

    미장이에게 안전교육을 실시했습니다.

    공동주택에는 안전검사가 들어갔습니다.

    가스가 새는 것을 알리는 경보기가 생겼습니다.

    가스를 밖으로 빼내는 장치도 사용됐습니다.

    사고가 발생하면 구급차가 움직였고 병원에서는 중독환자를 치료했습니다.

    연탄가스 문제를 줄이기 위해 정부는 예방교육과 캠페인을 계속했습니다.⁶⁾

    이 대목에서 앞서 살펴본 석탄과 연탄의 길이 다시 조금 달라집니다.

    탄광에서 시작한 석탄은 공장을 거쳐 연탄이 됐고, 연탄가게와 골목을 지나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연탄이 집에 도착했다고 그 물건을 둘러싼 일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사용하는 동안에는 다른 종류의 수고가 이어졌습니다.

    불을 관리했습니다.

    집을 손봤습니다.

    안전장치를 만들었습니다.

    사고를 예방하는 방법을 알렸습니다.

    중독된 사람을 치료하는 기술도 발전했습니다.

    연탄가스라는 위험이 사회문제가 되면서 집을 짓는 방법과 겨울을 보내는 습관, 병원의 치료까지 영향을 받았습니다.

    1970~80년대에도 사고가 증가했다는 국가기록원의 기록은 그 변화가 짧은 기간에 끝난 일이 아니었음을 말해줍니다.¹⁾

    연탄은 값싸고 편리한 생활연료였지만 그 편리함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의 손이 계속 필요했습니다.

    그것이 당시 난방의 또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난방이 바뀌자 겨울밤도 달라졌다

    연탄의 자리는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사용해온 연료였고 많은 집이 연탄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부터 가정의 난방 방식에는 큰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가스와 기름보일러가 보급되면서 연탄 사용은 점차 줄었습니다.

    국가기록원은 연탄가스 사고가 생활 주변에서 사라지기 시작한 시점을 1990년대 가스와 기름보일러 사용이 보편화된 때와 연결해 설명합니다.¹⁾

    연료가 바뀌었다는 말만으로는 생활에서 일어난 변화를 모두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겨울밤에 해야 할 일이 달라졌습니다.

    잠들기 전에 방바닥과 연통을 살피는 일은 점차 줄었습니다.

    연탄가스가 새지 않을까 걱정하며 자는 집도 줄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불의 상태를 확인하는 일도 예전의 풍경이 됐습니다.

    군대도 변했습니다.

    1990년대 병영 개선사업이 진행되면서 기름보일러가 페치카를 대신하기 시작했습니다.

    2001년 MBC가 취재했을 때 페치카는 최전방에서도 보기 힘든 시설이 됐습니다. 당시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페치카는 철거하지 않고 군 역사시설로 보존하기로 했습니다.⁵⁾

    난방기구 하나가 바뀌면서 군대에서 맡아야 했던 일 하나도 함께 없어졌습니다.

    페치카 담당병입니다.

    예전에는 병사가 불을 살렸습니다.

    새로운 난방시설에서는 기계가 온도를 유지했습니다.

    집에서도 비슷했습니다.

    사람이 아궁이를 열어 불을 확인하던 자리에 보일러가 들어왔습니다.

    불을 직접 보지 않아도 방을 데울 수 있게 됐습니다.

    온도조절기의 숫자를 맞추면 난방기가 알아서 작동했습니다.

    생활은 편해졌고 연탄가스 사고의 위험도 크게 줄었습니다.

    그러나 편리해진 만큼 눈에 보이지 않게 된 것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따뜻한 방 하나를 유지하는 데 사람이 얼마나 자주 움직여야 하는지가 그대로 보였습니다.

    불을 살피는 사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연통을 손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군대에서는 페치카 앞을 지키는 병사가 있었습니다.

    난방이 자동화되면서 그런 모습은 겨울 풍경에서 하나씩 빠져나갔습니다.

    같은 불을 다르게 기억한다

    연탄불을 기억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아랫목부터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차가운 발을 이불 속으로 밀어 넣었을 때 올라오던 온기를 기억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연탄가스가 먼저 떠오릅니다.

    겨울이면 방바닥과 연통을 살폈던 일, 주변에서 들었던 사고 소식, 갑자기 사람이 쓰러졌을 때 동치미 국물을 찾던 어른들의 모습이 남아 있습니다.

    군 생활을 오래전에 마친 사람에게는 페치카가 있습니다.

    야간근무 뒤 언 손을 녹이던 자리였고, 담당병에게는 꺼뜨리지 말아야 할 불이었습니다.

    같은 난방기구를 두고도 기억이 다른 까닭은 그 앞에서 했던 일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연탄은 따뜻했습니다.

    동시에 위험했습니다.

    페치카는 추운 내무반을 덥혀주었지만 그 온도를 유지하려면 병사의 손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연탄불의 역사를 따뜻했던 옛날 이야기로만 남기면 절반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위험한 연료였다고만 말해도 나머지 절반을 놓칩니다.

    그 불 덕분에 수많은 집이 겨울을 보냈습니다.

    그 불 때문에 수많은 집이 밤마다 조심했습니다.

    사고가 반복되자 집을 짓는 방법이 달라졌고 안전장치가 생겼습니다.

    병원에는 새로운 치료장비가 들어왔습니다.

    더 안전하고 편리한 난방이 보급되자 아궁이와 페치카는 생활의 중심에서 물러났습니다.

    지금은 온도조절기의 숫자를 맞추고 잠자리에 듭니다.

    그때는 잠들기 전에 불부터 보았습니다.

    방이 따뜻한 밤 뒤에는 아궁이를 열어보던 손이 있었습니다.

    군대의 겨울밤에는 페치카 앞을 지키던 병사가 있었습니다.

    따뜻함은 불이 만들었지만, 그 불을 밤새 이어간 것은 사람이었습니다.

    각주

    1. 국가기록원,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연탄」 및 「길고 춥던 그 시절 겨울 풍경―연탄재 쌓인 골목길」. 1960년대 연탄 사용 증가와 중독사고, 미장이 교육·공동주택 안전검사, 1970~80년대 사고 증가 및 1990년대 난방연료 전환에 관한 기록.
    2. e영상역사관, 대한뉴스 제1724호 「연탄가스 사고주의」, 1988년 11월 23일. 방바닥과 연통의 틈 점검, 가스경보기·가스배출기 및 119 신고 안내.
    3. e영상역사관, 미공개 대한뉴스 「감 익은 풍경, 연탄가스, 고압산소기, 강남병원」, 1988년 11월 23일. 연탄가스 사고 환자의 구급차 수송, 가정의 가스 누출 예방, 병원 응급실과 고압산소치료기 촬영 기록.
    4. 국가기록원 연탄 관련 기록물. 대한뉴스 제911호 「연탄가스를 조심하자」(1972)와 제1724호 「연탄가스 사고주의」(1988).
    5. MBC 뉴스데스크, 「군 병영 개선사업으로 내무반 페치카 사라져」, 2001년 11월 10일. 1950년대 이후 페치카 사용, 1970년대 조개탄 사용, 페치카 담당병, 1980년대 말까지 거의 모든 군부대에서 사용된 사실과 병영개선에 따른 퇴장에 관한 보도.
    6. 국가기록원, 연탄가스 예방과 안전대책 관련 기록. 연탄가스 사고에 따른 시공·교육·검사 및 예방활동에 관한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