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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탄 한 장으로 겨울을 나던 시절

    연탄 한 장으로 겨울을 나던 시절

    아침에 눈을 뜨면 방바닥부터 짚어보던 때가 있었습니다.

    따뜻하면 밤새 불이 살아 있었다는 뜻이었습니다.

    평소보다 냉기가 돌면 이불 속에서도 알 수 있었습니다. 간밤에 갈아놓은 연탄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거나 어느새 불이 다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 시절 겨울에는 시계에 적혀 있지 않은 시간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연탄 갈 시간이었습니다.

    아침에 한 번 갈아놓았다고 하루가 끝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음에 언제 갈아야 하는지 기억해야 했고, 외출이 길어질 때는 나가기 전에 불부터 살폈습니다. 밤이 깊었어도 때가 되면 새 연탄을 올려놓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요즘은 사람이 원할 때 난방을 켭니다.

    그때는 사람이 불의 시간에 맞춰 살았습니다.

    아침은 방바닥의 온도로 시작됐다

    연탄은 장작보다 오래 탔고 비교적 일정하게 열을 냈습니다. 1950년대 중반부터 가정의 난방연료로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식당과 점포, 학교와 사무실에서도 사용됐습니다.¹⁾

    오래 탄다는 것은 분명 편리했습니다.

    하지만 한번 불을 붙여놓으면 잊어도 되는 연료는 아니었습니다.

    불이 충분히 남아 있을 때 다음 연탄으로 이어야 했습니다. 때를 놓쳐 완전히 꺼지고 나면 다시 불을 살려야 했습니다.

    연탄을 오래 사용한 집에서는 자연스럽게 감각이 생겼습니다. 아궁이를 열어 연탄의 빛깔을 보면 어느 정도 탔는지 짐작했습니다. 새 연탄을 올린 뒤에는 위아래 구멍을 맞췄습니다.

    처음에는 서툴던 일도 겨울을 몇 번 보내고 나면 몸에 익었습니다.

    몇 시에 갈았는지 일일이 적어두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이제 한번 봐야겠다.”

    그럴 때쯤이면 정말 아궁이를 살펴볼 때가 되어 있었습니다.

    집 안의 하루와 아궁이 속 시간이 함께 흘렀습니다.

    불이 꺼진 날에는 옆집 문을 두드렸다

    그래도 불을 꺼뜨리는 날은 있었습니다.

    외출이 예상보다 길어질 때도 있었고, 밤사이 새 연탄으로 불이 제대로 옮겨붙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방바닥이 싸늘했습니다.

    아궁이를 열어보면 전날 밤까지 벌겋던 연탄이 식어 있었습니다.

    연탄은 처음 불을 붙이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충분히 마르지 않은 연탄은 불붙이기가 더 어려웠고, 한번 완전히 꺼진 불을 처음부터 다시 살리는 것도 번거로웠습니다.²⁾

    그럴 때 옆집 문을 두드리기도 했습니다.

    “연탄불 꺼졌는데 하나 좀 빌립시다.”

    불붙은 연탄 한 장을 빌려왔습니다.

    벌겋게 살아 있는 연탄을 자기 집 아궁이에 넣고 그 위에 새 연탄을 올렸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옆집에서 건너온 불이 자기 집 연탄으로 옮겨붙었습니다.

    연탄이 떨어지면 몇 장을 꾸었습니다.

    불이 꺼지면 불붙은 연탄을 빌려오기도 했습니다.

    연탄만 꾸는 것이 아니라 불까지 꾸던 시절이었습니다.

    빌려온 것은 연탄 한 장이었지만 정작 필요했던 것은 그 안에 살아 있던 불이었습니다.

    한집에서 건너온 불이 다른 집의 저녁을 다시 데웠습니다.

    연탄집게는 늘 아궁이 곁에 있었다

    연탄을 때던 집에는 연탄집게가 있었습니다.

    특별할 것 없는 쇠붙이였지만 겨울이면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었습니다.

    새 연탄을 올리고, 타고 남은 연탄을 들어내고, 다 탄 재를 꺼낼 때도 집게를 사용했습니다.

    연탄을 오래 갈다 보면 힘을 주는 정도도 몸에 익었습니다. 너무 거칠게 다루면 다 타가는 연탄이 부서질 수 있었습니다.

    연탄을 간다는 것은 새것과 헌것을 바꾸는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남아 있는 불을 다음 연탄으로 넘기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장에서 다음 한 장으로 불이 이어졌습니다.

    검은 연탄은 하얀 재가 되어 나왔다

    밤새 방을 데운 연탄은 아침이면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 있었습니다.

    검고 묵직했던 몸은 희끗한 회색으로 변했습니다.

    연탄재였습니다.

    불은 끝났지만 사람의 일은 조금 남았습니다.

    열기가 남아 있지 않은지 살핀 뒤 밖으로 내놓았습니다. 온전히 빠져나온 것도 있었고 중간이 깨진 것도 있었습니다. 잘못 건드리면 푸석하게 무너지며 잿가루가 떨어졌습니다.

    겨울이면 골목 한쪽에 다 타고 남은 연탄재가 쌓였습니다.

    1990년대 초까지도 이런 풍경은 낯설지 않았습니다.³⁾

    며칠 전에는 검은 연탄이 골목을 따라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이제는 하얀 재가 되어 같은 골목으로 나왔습니다.

    연탄이 들어오는 것도 보였고, 다 타고 나가는 것도 보였습니다.

    겨울은 그렇게 골목에 흔적을 남겼습니다.

    연탄불 하나가 여러 일을 맡았다

    연탄불은 방만 데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집의 구조에 따라 밥을 짓고 국을 끓였으며 물을 데우는 데에도 사용했습니다.⁴⁾

    이미 피워놓은 불을 한 가지 용도로만 쓰지 않았습니다.

    방을 데우고 음식을 익혔습니다.

    솥에 물을 올려두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불이 꺼진다는 것은 방 하나가 식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한집의 여러 생활이 함께 불편해졌습니다.

    지금은 난방과 취사, 온수를 서로 다른 장치가 맡습니다.

    그때는 연탄불 하나가 여러 일을 함께 떠받치고 있던 집이 많았습니다.

    연탄 한 장의 쓰임은 생각보다 집 안 깊숙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연탄더미를 보면 남은 겨울이 보였다

    겨울을 앞두고 연탄을 들여놓았습니다.

    검은 연탄이 한쪽에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김장을 마치고 연탄까지 들여놓으면 큰 겨울 준비를 해놓은 셈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든든했습니다.

    하지만 겨울이 깊어질수록 연탄더미는 낮아졌습니다.

    매일 몇 장쯤 쓰는 집에서는 남은 양을 보면 앞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도 대강 알았습니다.

    날씨가 매섭게 추워지면 줄어드는 속도도 빨라졌습니다.

    바닥이 가까워지면 다시 연탄을 들여놓아야 했습니다.

    문제는 돈만 있다고 언제나 원하는 만큼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데 있었습니다.

    연탄 사용이 크게 늘면서 겨울철 공급난도 여러 차례 찾아왔습니다. 석유파동 이후에는 연탄 수요가 몰리면서 공급을 걱정해 미리 사두려는 움직임까지 나타났습니다.⁵⁾

    그런 시절에는 쌓여 있는 연탄의 높이가 달리 보였습니다.

    단순히 몇 장 남았느냐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겨울의 양처럼 보였습니다.

    집 안에도 이름 없는 일이 있었다

    탄광에서는 광부가 석탄을 캤습니다.

    공장에서는 그 석탄으로 연탄을 만들었습니다.

    트럭이 실어 날랐고 배달하는 사람이 집까지 옮겼습니다.

    그런데 연탄이 집에 도착했다고 사람의 일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뒤의 일은 생활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아궁이를 살피고 연탄을 갈았습니다. 다 탄 재를 밖으로 내놓았습니다. 쌓아둔 연탄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헤아렸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이런 일을 거드는 집도 있었습니다.

    월급을 받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직업 이름도 없었습니다.

    그저 집에서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하지 않으면 방이 식었습니다.

    탄광에서 시작된 수많은 사람의 일이 연탄공장과 배달에서 끝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연탄 한 장의 마지막에는 그것을 불로 이어가는 생활의 손이 있었습니다.

    산업의 끝과 사람의 일상이 아궁이 앞에서 만났습니다.

    연탄은 한 시대의 생활연료였다

    연탄에 대한 기억이 많은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이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연탄 소비량은 1970년 1,183만 톤에서 1980년 2,083만 톤으로 늘었고, 1986년에는 2,692만 톤에 이르렀습니다. 서울의 연탄 사용 가구도 1983년 211만 가구에서 1986년 234만 가구로 늘었습니다.⁶⁾

    1980년대 중반까지 연탄은 이미 지나간 옛날 연료가 아니었습니다.

    그때도 수많은 집에서 타고 있던 생활연료였습니다.

    그래서 연탄집게와 연탄재, 골목의 연탄가게와 연탄차가 한 세대의 기억 속에 함께 남았습니다.

    개인의 추억처럼 보이지만 그 밑에는 거대한 에너지 소비의 변화가 놓여 있었습니다.

    산에서 캐낸 석탄이 공장을 거쳐 연탄이 되고, 다시 수많은 집의 아궁이로 들어갔습니다.

    한 장씩 보면 작은 연탄이었습니다.

    모아놓고 보면 한 시대를 데운 연료였습니다.

    연탄이 물러나자 하루도 달라졌다

    그렇게 널리 쓰이던 연탄도 서서히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1986년 무렵 정점에 이른 국내 무연탄 생산은 이후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정과 상업 부문의 연탄 소비가 줄었고, 1986년과 1987년 액화천연가스가 도입되면서 취사와 난방 연료도 점차 달라졌습니다.⁷⁾

    연료 하나가 바뀐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생활에서는 여러 가지가 함께 사라졌습니다.

    골목의 연탄가게가 줄었습니다.

    집 한쪽에 겨울치 연탄을 쌓아놓을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연탄집게가 손에서 멀어졌습니다.

    아침마다 재를 들고 밖으로 나가는 일도 줄어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사람은 조금씩 불의 시간에서 벗어났습니다.

    연탄은 때가 되면 갈아야 했습니다.

    외출이 길어지면 불이 걱정됐습니다.

    잠들기 전에는 밤새 이어질 불을 살펴야 했습니다.

    난방 방식이 달라지면서 그런 시간을 헤아리는 일도 사라져갔습니다.

    난방 기술의 변화는 방을 데우는 방법만 바꾼 것이 아니었습니다.

    겨울을 보내는 사람의 시간도 달라졌습니다.

    연탄 한 장으로 겨울을 난다는 것

    연탄 한 장은 몇 시간이 지나면 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다음 연탄이 그 불을 이어받았습니다.

    그 일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 겨울 내내 계속됐습니다.

    아침에는 방바닥의 온기로 불이 살아 있는지 알았습니다.

    때가 되면 아궁이를 살폈습니다.

    불을 꺼뜨린 날에는 옆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밤새 제 몫을 다한 연탄은 아침이면 하얀 재가 되어 골목으로 나갔습니다.

    그 불로 밥을 짓고 물을 데웠습니다.

    방을 덥혔습니다.

    가족은 그 온기 위에서 겨울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연탄을 기억한다는 것은 검은 연료 하나를 추억하는 일만은 아닙니다.

    연탄을 중심으로 움직였던 하루의 방식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석탄이 어떻게 연탄이 되어 집까지 왔는지를 따라가면 산업이 보입니다.

    그 연탄이 집 안에서 어떻게 타고 사라졌는지를 따라가면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생활에는 따뜻함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밤새 방을 덥혀주던 바로 그 불 때문에 겨울이면 사람들이 두려워하던 것이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잠든 사이 방 안으로 스며들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연탄가스라고 불렀습니다.

    각주

    1. 한국학중앙연구원, 「연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연탄의 가정용 보급과 난방·취사 등 생활연료로서의 이용에 관한 설명.
    2. 한국학중앙연구원, 「연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연탄의 착화 특성과 번개탄의 등장 등에 관한 설명.
    3. 국가기록원, 「길고 춥던 그 시절 겨울 풍경―연탄재 쌓인 골목길」. 1990년대 초까지 연탄이 겨울나기의 주요 연료였으며 골목에 쌓인 연탄재가 흔한 겨울 풍경이었다고 기록한다.
    4. 한국학중앙연구원, 「연탄」 및 국가기록원 연탄 관련 기록. 연탄은 가정의 난방뿐 아니라 취사 등에도 널리 이용됐다.
    5. 국가기록원, 「길고 춥던 그 시절 겨울 풍경―연탄재 쌓인 골목길」. 겨울철 연탄 수급과 석유파동 이후의 연탄 공급 문제를 다룬 기록이 수록되어 있다.
    6. 한국학중앙연구원, 「연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연탄 소비량은 1970년 1,183만 톤, 1980년 2,083만 톤, 1986년 2,692만 톤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서울의 연탄 사용 가구 수도 함께 제시되어 있다.
    7. 한국학중앙연구원, 「연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내 무연탄 생산은 1986년 약 2,760만 톤을 기점으로 감소했고, 가정·상업 부문의 연탄 소비 감소와 LNG 도입에 따른 연료 전환이 이어졌다.
  • 석탄은 어떻게 수많은 사람의 일터가 되었을까

    석탄은 어떻게 수많은 사람의 일터가 되었을까

    산 아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큰 도시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공장이 먼저 들어선 것도 아니었습니다. 산 깊은 곳에 검은 돌이 묻혀 있었습니다.

    그 돌을 캐기 시작하자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사람이 들어오자 집이 늘었습니다. 밥을 파는 곳이 생겼고 물건을 파는 가게가 문을 열었습니다. 물자를 실은 차가 오갔고, 철길을 따라 석탄이 도시로 빠져나갔습니다.

    한때 우리나라 여러 탄광촌에서 벌어진 변화였습니다.

    그 중심에 석탄이 있었습니다.

    전쟁 뒤에는 연료가 필요했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국내 석탄 생산은 크게 위축됐습니다.

    1951년 국내 석탄 생산량은 약 16만 톤에 불과했습니다. 전쟁 뒤 생산시설이 복구되고 증산정책이 추진되면서 1955년에는 131만 톤, 1960년에는 535만 톤으로 늘었습니다. 1965년에는 1,025만 톤, 1975년에는 1,759만 톤에 이르렀습니다.1)

    숫자가 커지는 동안 나라의 사정도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전쟁 뒤에는 무너진 생산시설과 교통망을 다시 세워야 했습니다. 산업을 움직일 에너지가 필요했고 사람들의 생활을 지탱할 연료도 필요했습니다. 외국에서 들여오는 연료만 바라보기 어려운 형편에서 국내에서 캘 수 있는 석탄은 중요한 자원이었습니다.

    1962년부터 시행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은 전력과 석탄 등 에너지 공급원의 확보를 중점과제로 두었고, 광업 부문에서는 석탄공사의 경영합리화와 석탄 증산을 제시했습니다.2)

    하지만 생산량이라는 숫자만 보고 있으면 그 시대의 절반을 놓치게 됩니다.

    석탄은 저절로 땅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광부의 출근길은 땅속으로 이어졌다

    탄광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출근길은 땅 아래로 향했습니다.

    작업복을 입고 장비를 챙긴 뒤 갱도로 들어갔습니다. 갱 입구를 통과했다고 일이 시작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작업장이 깊은 곳에 있으면 막장까지 이동해야 했습니다.

    석탄층까지 길을 만들고 갱도를 뚫고, 무너지지 않도록 지보를 세우고, 석탄을 떼어내고, 캐낸 것을 운반해야 했습니다. 기계와 전기설비를 다루는 사람도 필요했습니다. 땅 밖으로 나온 뒤에는 석탄과 함께 섞여 나온 돌과 불순물을 가려내는 일이 기다렸습니다.

    광부 한 사람이 곡괭이를 들고 석탄을 캐는 장면만으로 탄광을 설명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탄광의 하루는 낮에만 움직이지도 않았습니다. 국가기록원에 남은 탄광 생활 기록에는 갑방은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 을방은 오후 4시부터 자정, 병방은 자정부터 오전 8시까지 일하는 3교대 생활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근무조는 일주일 단위로 바뀌었습니다.3)

    한 작업조가 갱 밖으로 나오면 다음 작업조가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이 저녁밥을 먹는 시간에 출근하는 광부가 있었고, 마을이 잠든 자정에 작업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출근은 회사 문을 열고 책상에 앉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인차를 타고 경사진 갱도를 따라 지하 작업장으로 내려가는 과정도 하루 일과의 일부였습니다.3)

    이렇게 보면 석탄 생산량 뒤에는 톤으로 표시되지 않는 시간이 있습니다.

    밤과 낮을 바꾸어 일한 사람의 시간입니다.

    석탄을 골라내는 사람도 있었다

    막장에서 캐낸 것이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석탄은 아니었습니다.

    땅 밖으로 나온 석탄에는 돌과 불순물이 섞여 있었습니다. 이를 골라내고 상품으로 쓸 석탄을 가려내는 선탄 작업이 필요했습니다.

    이곳에도 사람이 있었습니다.

    특히 탄광의 일을 남성 광부의 모습으로만 기억하면 땅 위의 선탄장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자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당시 탄광 기록에는 갱외부의 직무를 선탄부·운반부·전기기계부 등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선탄부에는 남성과 여성이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4)

    석탄산업은 막장에서만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땅속에서 캐는 사람과 땅 위에서 가려내는 사람, 설비를 움직이는 사람과 운반하는 사람이 차례로 일을 이어받았습니다.

    앞의 일이 멈추면 뒤의 일도 멈췄습니다.

    한 덩어리의 석탄이 상품이 되기까지 여러 사람의 손이 필요했습니다.

    석탄을 캐는 것만큼 나르는 일도 중요했다

    땅 밖으로 나온 석탄에는 다음 길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운송입니다.

    아무리 많이 캐도 필요한 곳까지 보내지 못하면 석탄은 산 아래 쌓여 있을 뿐입니다.

    전쟁 뒤 석탄 증산과 함께 철도망 확충이 중요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1955년 영암선과 문경선, 1956년 영월선 등이 개통됐습니다. 국가기록원은 이 철도 확충이 석탄 수송 여건을 크게 개선했으며, 특히 영암선이 오늘날 태백 일원의 석탄 개발 확대에 기여했다고 기록합니다.5)

    철길이 열리자 탄광에서 캐낸 석탄을 대량으로 다른 지역에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탄광에서 끝난 것처럼 보였던 일이 철도에서 다시 시작됐습니다.

    석탄을 화차에 실어야 했습니다. 열차를 운행해야 했고 선로와 차량을 관리해야 했습니다. 도착지에서는 다시 석탄을 내려 다음 운송수단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생산과 운송은 따로 떨어진 일이 아니었습니다. 석탄을 더 캐려면 더 많이 나를 길이 필요했고, 수송 여건이 좋아지면 탄광은 더 넓은 시장과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검은 돌 하나가 철길을 필요로 했고, 철길은 다시 새로운 일을 불러왔습니다.

    정부도 석탄을 더 캐려고 했다

    석탄 증산은 탄광회사들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정부도 제도와 정책을 통해 생산 확대를 추진했습니다. 대한석탄공사는 1950년 11월 1일 발족했습니다. 이후 1950년대에는 석탄 증산계획이 추진됐고, 1961년에는 「석탄개발 임시조치법」, 1962년에는 「광업개발 조성법」이 마련됐습니다. 인접 광구를 묶어 규모 있게 개발하기 위한 탄좌회사 설립도 이어졌습니다.6)

    석탄은 어느 한 탄광의 상품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나라가 산업을 키우고 생활에 필요한 에너지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자원으로 다뤄졌습니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전력과 석탄을 에너지 공급원의 확보라는 이름으로 함께 다룬 것도 같은 흐름에 있었습니다.2)

    땅속에 묻혀 있던 검은 돌이 정부의 산업계획, 철도와 기업, 수많은 노동자의 일과 연결되고 있었습니다.

    일자리가 생기자 사람이 모였다

    탄광이 커지면서 산골의 모습도 달라졌습니다.

    일자리를 찾아 사람들이 들어왔습니다. 누군가는 혼자 왔고 누군가는 가족과 함께 자리를 잡았습니다.

    사람이 늘어나면 탄광 밖에도 일이 생깁니다.

    사람은 먹어야 했습니다. 잠잘 집이 필요했습니다. 옷과 신발, 생활용품도 사야 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면 학교가 필요했고 몸이 아프면 의료시설과 약국을 찾았습니다.

    광부가 받은 월급은 광부의 주머니 안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쌀을 사는 돈이 되고 아이의 학용품 값이 됐습니다. 식당의 매출이 됐고 가게 주인의 수입이 됐습니다. 집을 짓고 고치는 사람에게도 일이 돌아갔습니다.

    석탄을 직접 만져본 적이 없는 사람의 생계도 탄광과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탄광이 사람을 불러들이는 속도는 마을이 준비되는 속도와 늘 같을 수는 없었습니다. 일자리를 따라 먼저 사람이 들어오고, 그 뒤에 생활에 필요한 공간과 장사가 따라붙었습니다. 탄광을 중심으로 생긴 지역을 볼 때 생산시설만 살펴서는 변화의 크기를 알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광산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작업도구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루 일을 마치면 먹고 쉬어야 했고, 다시 다음 교대를 준비해야 했습니다. 가족이 함께 살기 시작하면 필요한 것은 더 많아졌습니다. 장을 볼 곳과 아이들이 다닐 곳, 몸을 씻고 생활을 이어갈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이렇게 탄광은 두 겹의 일터를 만들었습니다.

    하나는 석탄을 직접 캐고 고르고 나르는 일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하루를 살아가도록 받쳐주는 일이었습니다.

    둘째 영역을 모두 석탄산업의 직접 고용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식당 주인이나 상점 주인이 석탄회사 직원이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탄광에 사람이 모이지 않았다면 생기지 않았거나 규모가 훨씬 작았을 장사와 서비스가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석탄 한 덩어리가 몇 개의 직업을 만들었다’고 숫자를 만들어 말할 수는 없습니다. 직접 고용과 주변 상권, 운송과 생활서비스를 어디까지 포함하느냐에 따라 범위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탄광의 고용이 갱 안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산업의 일자리는 광산의 울타리 안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하는 사람이 모이면 그들의 생활을 받치는 또 다른 일이 생겼습니다.

    석탄을 따라가면 광부에서 선탄부로, 선탄장에서 철도로, 철도에서 탄광촌의 가게와 식당으로 시야가 넓어집니다.

    검은 돌 하나가 사람의 이동과 생활의 자리까지 바꾸고 있었습니다.

    탄광촌에는 세 개의 시간이 흘렀다

    탄광촌의 하루는 탄광의 교대시간과 맞물려 돌아갔습니다.

    갑방 광부가 출근하는 아침에 병방 광부는 일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오후에는 갑방과 을방이 엇갈렸고, 자정이 되면 병방이 다시 갱도로 향했습니다.3)

    누군가에게 아침인 시간이 다른 사람에게는 퇴근 뒤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었습니다.

    한집에서도 생활시간이 달랐습니다. 낮에 자야 하는 사람이 있으면 가족은 소리를 줄여야 했고, 저녁 무렵 출근하는 사람이 있으면 식사시간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을 마친 광부에게는 몸에 묻은 탄가루를 씻는 일도 일상의 일부였습니다. 국가기록원에 남은 탄광 생활 기록에는 퇴근한 광부들이 목욕탕을 이용했던 모습도 전합니다.3)

    탄광촌을 단순히 ‘광산 옆에 생긴 마을’이라고 부르면 이런 시간이 빠집니다.

    탄광의 교대시간은 광부만의 시계가 아니었습니다. 가족의 잠과 식사, 상점과 식당의 손님이 움직이는 시간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탄광이 쉬지 않고 돌아가던 시절, 마을에는 서로 다른 하루가 겹쳐 흐르고 있었습니다.

    석탄의 값어치는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석탄산업이 계속 한 방향으로 성장한 것은 아닙니다.

    생산이 빠르게 늘면서 석탄은 1965년 1차 에너지에서 신탄을 제치고 주종에너지원의 위치를 확보했습니다. 그러나 1968년에는 석유에 그 자리를 내주었습니다.7)

    에너지의 중심이 바뀌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석탄의 역할이 곧바로 끝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1973년 제1차 석유파동은 수입 석유에 대한 부담을 키웠고 국내 석탄의 중요성을 다시 높이는 계기가 됐습니다. 국내 석탄 생산량은 1970년 1,239만 톤에서 1975년 1,759만 톤으로 늘었습니다.1)

    이 변화는 숫자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석탄 수요가 늘면 탄광이 바빠졌습니다. 생산이 늘면 운송량도 늘어났습니다. 일자리를 찾아 사람이 들어오면 탄광촌의 생활도 커졌습니다.

    반대로 다른 에너지원이 석탄의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하면 그 변화 역시 탄광에서 일하는 사람과 지역의 생활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연료를 선택하는가는 멀리 떨어진 산골의 일자리와 무관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검은 돌을 캐는 데는 대가도 따랐다

    석탄이 많은 사람에게 일자리를 주었다는 이야기만으로 이 시대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땅속의 일은 위험했습니다.

    갱도가 무너질 위험이 있었고 발파와 운반 과정에서도 사고가 날 수 있었습니다. 탄가루와 암석 먼지가 가득한 환경에서 오랫동안 일한 광부에게 진폐증은 심각한 직업병이었습니다.

    산업이 성장했다는 말 뒤에는 그 산업을 몸으로 떠받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석탄 생산량이 몇백만 톤 늘었다는 통계와 한 사람이 막장으로 내려가는 장면은 같은 역사의 서로 다른 모습입니다.

    한쪽만 보아서는 그 시대가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경제를 움직이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있었습니다. 그 에너지를 캐기 위해 땅속으로 내려간 사람이 있었습니다. 땅 위에서 석탄을 골라낸 사람도 있었고, 그것을 실어 나른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돌아갈 집과 함께 살아갈 마을이 있었습니다.

    석탄산업의 역사는 이 모두를 함께 보아야 사람의 이야기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석탄 한 덩어리에는 몇 사람의 일이 들어 있었을까

    검은 석탄 한 덩어리를 손에 올려놓으면 그저 돌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돌이 땅속에 있을 때부터 따라가 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 나타납니다.

    갱도를 만드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석탄을 캐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갱도를 지키고 기계를 관리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캐낸 것을 운반하는 사람이 있었고 석탄과 돌을 가려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탄광 밖에는 철도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열차를 움직이는 사람이 있었고 선로를 관리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탄광촌에는 밥을 파는 사람, 물건을 파는 사람, 집을 짓고 고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석탄 한 덩어리에 정확히 몇 사람의 일이 연결돼 있었다고 하나의 숫자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숫자를 억지로 만들 필요도 없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일이 이어지는 방식입니다.

    땅속에서 한 사람이 캐낸 석탄은 다른 사람의 손으로 옮겨졌습니다. 선탄장을 지나 철도에 실렸고, 다시 필요한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받은 임금은 탄광촌의 생활 속으로 흘러갔습니다.

    한 산업이 다른 산업과 생활을 만나면서 일의 사슬이 길어진 것입니다.

    석탄은 연료였습니다.

    사람에게는 일자리이기도 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월급이었고 누군가에게는 가게의 손님이었습니다. 어떤 마을에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검은 돌의 여행은 탄광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철길을 타고 도시로 온 석탄은 다시 모습을 바꾸었습니다.

    잘게 부서진 석탄은 일정한 모양으로 찍혀 집에서 사용할 수 있는 연료가 됐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한 장, 두 장씩 세어 샀습니다.

    겨울을 앞두고 집 한쪽에 차곡차곡 쌓아두기도 했습니다.

    석탄은 이제 연탄이라는 이름으로 골목 안까지 들어오게 됩니다.

    그때부터 또 다른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연탄을 만드는 사람, 싣는 사람, 파는 사람, 그리고 집집마다 나르는 사람입니다.

    탄광에서 시작된 일의 길이 도시의 골목까지 이어지는 것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그 길을 따라가겠습니다.

    석탄은 어떻게 연탄 한 장이 되었을까.

    그리고 그 한 장은 어떤 사람들의 손을 거쳐 우리의 아궁이 앞까지 왔을까.


    각주

    1. 국가기록원 「석탄산업」은 국내 석탄 생산량을 1951년 16만 톤, 1955년 131만 톤, 1960년 535만 톤, 1965년 1,025만 톤, 1970년 1,239만 톤, 1975년 1,759만 톤으로 제시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석탄산업」
    2. 대한민국 정부의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주요 시책으로 ‘전력, 석탄 등 에너지공급원의 확보’를 제시하고, 광업 부문에서는 석탄공사의 개편·경영합리화와 석탄증산을 명시하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의 목표와 방침」. 우리역사넷 원문 자료
    3. 국가기록원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탄광」의 탄광 생활 관련 기록을 바탕으로 3교대 작업과 갱내 이동, 작업 후 생활 모습을 확인했다. 국가기록원 「탄광」
    4. 국가기록원의 탄광 관련 기록물에는 탄광의 직무를 사무·채광·전기·선탄·공작·노무·갱외·기계 등으로 구분하고, 갱외부의 선탄부를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어 기록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탄광 관련 기록물 상세내용. 국가기록원 기록물 상세내용
    5. 국가기록원 「석탄산업」은 1955년 영암선과 문경선, 1956년 영월선 등의 개통으로 석탄수송 여건이 크게 개선됐으며, 특히 영암선이 현재 태백시 일원의 석탄개발 확대에 기여했다고 설명한다. 국가기록원 「석탄산업」
    6. 대한석탄공사는 대한석탄공사법에 따라 1950년 11월 1일 발족했다. 이후 1961년 「석탄개발 임시조치법」, 1962년 「광업개발 조성법」 등이 제정됐으며 인접 광구를 통합한 탄좌회사 설립도 추진됐다. 국가기록원, 「대한석탄공사 기관연혁」; 국가기록원, 「석탄산업」. 대한석탄공사 기관연혁 국가기록원 「석탄산업」
    7. 국가기록원 「석탄정책」은 석탄이 1965년 1차 에너지에서 신탄을 제치고 주종에너지원의 위치를 확보했으나 1968년에는 석유에 그 위치를 내주었다고 설명한다. 국가기록원 「석탄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