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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무것도 안 하면 왜 불안할까

    아무것도 안 하면 왜 불안할까

    쉬는 날인데 쉬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출근할 곳도 없습니다.
    처리할 일도 없습니다.
    누가 기다리는 약속도 없습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든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오전이 조금 지나면 할 일을 찾기 시작합니다.
    밀린 청소가 눈에 들어옵니다.
    읽다 만 책을 펼칩니다.
    컴퓨터를 켭니다.
    휴대전화를 들고 무엇인가 확인합니다.

    피곤해서 쉬고 싶었던 사람도 막상 할 일이 없어지면 오래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쉬는 시간이 부족해서 힘들다고 했는데, 시간이 생기자 다시 할 일을 찾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동안에는 오늘 무엇을 했는지 말할 것이 없습니다.
    시간은 지나가는데 남은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쉬는 날의 불편함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어야 마음이 놓이는가.

    쉰 하루를 설명해야 할 때

    누군가 묻습니다.
    “오늘 뭐 했어?”
    “아무것도 안 했어.”

    대화는 이것으로 끝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주 말을 덧붙입니다.
    집에서 좀 쉬었다고 합니다.
    밀린 일을 조금 했다고 합니다.
    운동을 했거나 책을 읽었다고 말합니다.

    하루를 설명할 만한 것이 하나 생깁니다.

    우리는 하루를 시간으로만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 시간에 무엇을 했는지도 함께 기억합니다.

    학교에 다닐 때는 공부한 것이 남았습니다.
    직장에서는 처리한 일이 남았습니다.
    집에서는 치운 것, 고친 것, 준비한 것이 남습니다.
    하루가 지나면 흔적이 생깁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에는 그 흔적이 희미합니다.
    시간은 분명 지나갔는데 손에 잡히는 것이 없습니다.

    ‘쉬었다’는 말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말도 같지 않습니다.

    쉬었다고 말하면 휴식이라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말하면 이유마저 없어 보입니다.

    같은 두 시간을 소파에 앉아 보냈어도 “피곤해서 쉬었다”고 하면 설명이 됩니다.
    아무 이유 없이 앉아 있었다고 하면 그 시간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난감해집니다.

    시간을 보낸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시간을 왜 그렇게 보냈는지까지 설명하려 합니다.

    쉰 시간에도 이유가 필요해집니다.

    사람은 시간을 자꾸 계산한다

    한 시간 일했습니다.
    삼십 분 걸었습니다.
    책을 스무 쪽 읽었습니다.
    방 하나를 정리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시간에 모양이 생깁니다.
    두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냈다고 하면 계산이 달라집니다.
    두 시간이 지나갔다는 사실만 남습니다.

    빈 시간 앞에서는 계산이 시작됩니다.
    이 시간에 무엇을 할 수 있었는가.
    오늘 하루를 그냥 보내도 되는가.
    남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쉬는 시간까지 효율의 대상이 됩니다.
    휴일을 알차게 보내고 싶어 하고, 여행에서도 여러 곳을 봐야 만족하고, 산책을 하면서도 걸음 수를 확인합니다.
    책을 읽으면 몇 권을 읽었는지 세고, 운동을 하면 기록을 남깁니다.
    기록하는 일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기록이 사라지는 순간까지 불편해진다면 다른 문제가 남습니다.

    시간을 보내는 것과 시간을 증명하는 것이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걸었는지, 무엇을 끝냈는지, 얼마나 읽었는지 확인하면 사용한 시간이 눈에 보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에는 그런 증거가 없습니다.

    시간은 있었는데 보여줄 것이 없습니다.

    두 시간이 아까운 것이 아니라 그 두 시간에 붙일 이름이 없어서 불편한 것은 아닌지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왜 손해 본 것 같을까

    돈을 쓰면 줄어든 것이 보입니다.
    물건을 잃으면 없어진 것이 보입니다.
    시간은 무엇을 하든 같은 속도로 지나갑니다.

    일을 끝낸 두 시간과 아무것도 하지 않은 두 시간은 길이가 같습니다.
    그런데 받아들이는 값은 다릅니다.

    한쪽은 잘 쓴 시간이 되고 다른 쪽은 버린 시간이 됩니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생길까요.

    쉬는 동안에도 무엇인가 얻었다고 말할 수 있으면 마음이 편합니다.
    피로가 풀렸습니다.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생각이 정리됐습니다.
    내일 다시 일할 힘을 얻었습니다.

    휴식에도 결과가 생겼습니다.

    “오늘 푹 쉬었으니 내일부터 열심히 해야지.”

    익숙한 말입니다.
    이 말 속에서 오늘의 휴식은 내일의 일을 위해 값을 합니다.

    아무 목적 없이 보낸 시간은 다릅니다.
    내일 더 잘 일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도 아니고, 새로운 생각을 얻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그냥 보낸 시간입니다.

    그 시간을 유난히 아깝게 느낀다면 우리가 견디기 어려워하는 것은 빈 시간 자체가 아니라 쓸모를 설명할 수 없는 시간인지도 살펴봐야 합니다.

    바쁨은 자신을 설명하기 쉽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바쁘게 지냅니다.”

    이 한마디면 많은 설명이 끝납니다.

    바쁘다는 말에는 일정이 있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맡은 일이 있고, 갈 곳이 있고, 해야 할 것이 있다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로 자신을 설명하는 데 익숙합니다.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에 다니는지.
    무엇을 맡고 있는지.
    요즘 무엇을 준비하는지.

    하는 일이 분명하면 자기소개도 짧아집니다.

    바쁜 사람에게는 오늘을 끌고 갈 순서도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압니다.
    한 일이 끝나면 다음 일이 기다립니다.

    일정은 사람을 피곤하게 하지만 하루의 모양도 만들어 줍니다.

    일정이 사라지면 그 모양도 사라집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갈 곳이 없습니다.
    오후가 되어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없습니다.

    자유로운 시간입니다.
    동시에 그 시간을 무엇으로 보낼지 아무도 정해주지 않는 시간입니다.

    처음에는 “오늘 무엇을 하지?”라고 묻습니다.

    그런 날이 이어지면 질문의 주어가 바뀌기도 합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는 사람이지?

    휴식에서 시작한 질문이 사람 자신에게 닿는 순간입니다.

    같은 빈 시간인데 왜 어떤 날은 편안할까

    모든 빈 시간이 불편한 것은 아닙니다.

    하루 종일 일을 마친 저녁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시간이 반갑습니다.
    바쁜 한 주를 보낸 뒤 맞은 휴일에는 늦잠을 자고 한동안 빈둥거려도 마음이 편할 때가 있습니다.

    반대로 특별히 한 일이 없는 날에는 한 시간만 가만히 있어도 마음이 부산해질 때가 있습니다.

    같은 사람이 같은 소파에 앉아 있습니다.
    하는 일도 없습니다.

    한쪽은 휴식이고 다른 쪽은 낭비처럼 느껴집니다.

    차이는 의자에 있지 않습니다.
    시간의 길이에도 없습니다.

    하루를 바라보는 자신의 판단이 달라졌습니다.

    “오늘은 충분히 했어.”

    이 생각이 있는 날에는 멈추기가 쉽습니다.

    “오늘 한 게 뭐가 있지?”

    이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쉬고 있는 시간이 무거워집니다.

    그때 청소할 곳이 보이고 미뤄둔 일이 생각납니다.
    무엇 하나라도 끝내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집니다.

    빈 시간을 견디지 못해서 움직인 것인지, 자신의 하루에 ‘한 일’을 하나 만들어 넣기 위해 움직인 것인지 경계가 흐려집니다.

    이 차이는 쉬는 방법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휴식에도 자격이 필요한가

    “오늘은 많이 했으니까 좀 쉬어도 돼.”

    자신에게 이렇게 말할 때가 있습니다.

    많이 했으니까 쉽니다.
    해야 할 것을 끝냈으니까 쉽니다.
    충분히 애썼으니까 쉽니다.

    앞의 조건이 충족되어야 뒤의 휴식이 허락됩니다.

    오늘 별로 한 일이 없는 날은 어떨까요.
    눈에 띄는 성과도 없습니다.
    힘들었다고 말할 일도 없습니다.

    그런 날에도 아무 이유 없이 쉴 수 있을까요.

    우리는 쉬기 전에 자신이 얼마나 했는지 먼저 확인할 때가 있습니다.
    할 만큼 했다고 판단한 뒤에야 일을 내려놓습니다.

    자신에게 휴식을 허락하기 위해 먼저 노동의 영수증을 내놓는 셈입니다.

    영수증이 충분하면 편하게 쉽니다.
    내놓을 것이 없으면 쉬는 동안에도 빚진 것처럼 마음이 움직입니다.

    이 계산이 굳어지면 휴식은 일의 반대편에 있지 않습니다.
    일의 평가표 안으로 들어갑니다.

    많이 한 사람은 많이 쉴 수 있고, 적게 한 사람은 쉬기 전에 무엇인가 더 해야 합니다.

    쉬는 데에도 자격이 필요해집니다.

    이 상태에서는 시간이 많아져도 편안해지기 어렵습니다.
    빈 시간이 생길 때마다 먼저 자신이 그 시간을 누릴 만큼 했는지 계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루의 행동이 사람의 평가가 될 때

    우리는 일하는 사람에게 여러 이름을 붙입니다.

    성실한 사람.
    부지런한 사람.
    책임 있는 사람.
    자기 몫을 하는 사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 붙는 말은 다릅니다.

    게으르다.
    시간을 낭비한다.
    놀고 있다.
    하는 일이 없다.

    처음에는 행동을 말했습니다.
    어느 순간 사람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오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첫 문장은 하루에 관한 말입니다.
    두 번째 문장은 나에 관한 말입니다.

    두 문장이 붙으면 휴식은 무거워집니다.

    오늘 몇 시간을 쉬었다는 사실이 곧 자신의 태도에 대한 평가가 됩니다.

    이 정도 쉬었으면 충분하지 않은가.
    이제 뭐라도 해야 하지 않는가.
    계속 이렇게 있어도 되는가.

    일이 생긴 것도 아닌데 몸을 일으킵니다.

    무엇인가 시작하면 질문이 잠잠해집니다.
    할 일이 생겼고, 그 일을 하는 동안에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 사람인지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부지런함과 불안은 겉모습만으로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같이 움직이고 있어도 한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고, 다른 사람은 멈춰 있는 자신을 견디기 어려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잘 쉬는 법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쉬지 못하면 쉬는 방법부터 찾게 됩니다.

    휴대전화를 멀리 둡니다.
    산책을 합니다.
    운동을 시작합니다.
    취미를 만듭니다.
    휴일 계획을 세웁니다.

    이런 방법이 필요한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산책을 해야 마음 놓고 쉴 수 있고, 책을 읽어야 보람 있게 쉰 것 같고, 운동을 해야 하루를 잘 보냈다고 느낀다면 한 가지는 그대로 남습니다.

    해야 할 것이 있다는 감각입니다.

    일의 목록이 휴식의 목록으로 바뀌었습니다.

    잘 일해야 했던 사람이 이제는 잘 쉬어야 합니다.

    휴일을 알차게 보내야 합니다.
    좋은 경험을 해야 합니다.
    몸을 회복해야 합니다.
    월요일을 준비해야 합니다.

    휴식마저 성공해야 한다면 쉬는 사람에게 또 하나의 평가표가 생깁니다.

    오늘 제대로 쉬었는가.

    여기에서도 점수를 매기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은 또 실패한 시간이 됩니다.

    잘 쉬는 방법을 아는 것과 아무 목적 없는 시간을 편안하게 보내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에 남는 것

    일에는 결과가 있습니다.
    역할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약속에는 상대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에는 이런 것들이 잠시 물러납니다.

    그 시간에는 직함을 사용할 일도 없습니다.
    성과를 보여줄 일도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확인할 일도 없습니다.

    평소 나를 설명해주던 말들이 줄어듭니다.

    그때 무엇을 다시 꺼내는지 보면 평소 자신을 무엇으로 확인했는지 조금은 보입니다.

    일을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약속을 만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기록할 일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빈칸을 그대로 두기보다 무엇인가 적어 넣는 쪽이 편한 것입니다.

    그 행동을 잘못이라고 할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한 번쯤은 묻고 지나갈 만합니다.

    나는 지금 정말 이 일을 하고 싶은가.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보고 싶지 않아서 일을 찾고 있는가.

    내가 불안한 것은 정말 시간이 비어서일까

    처음에는 시간이 남아서 불편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같은 빈 시간도 어떤 날에는 반갑고 어떤 날에는 무겁습니다.

    시간만으로는 설명이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 무엇을 했는지 말할 수 있을 때 마음이 놓이고, 결과 하나를 만들고 나서야 편하게 쉴 수 있다면 빈 시간은 다른 것을 보여줍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 때 나를 괜찮다고 생각하는가.

    일하는 나.
    맡은 것을 끝낸 나.
    필요한 일을 해낸 나.

    그 모습들은 삶에 필요합니다.
    문제는 그 모습이 잠시 사라진 시간까지 견디기 어려울 때입니다.

    “휴식도 생산적이다”라는 말로 서둘러 해결할 필요는 없습니다.

    휴식이 내일의 생산성을 높여주기 때문에 가치 있다고 말하면 쉬는 시간에도 다시 쓸모를 요구하게 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불편하다면 그 시간을 억지로 좋아할 필요도 없습니다.

    대신 불편함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는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왜 무엇인가를 끝낸 뒤에야 마음 놓고 쉬는가.
    왜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하루를 아깝다고 생각하는가.
    왜 멈춰 있을 때보다 움직이고 있을 때 나를 설명하기 쉬운가.

    처음 질문은 짧았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면 왜 불안할까.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시간보다 사람 쪽에 가까운 문제가 남습니다.

    오늘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오늘의 내가 아무 가치가 없다는 판단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두 말을 자꾸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면 다음 질문은 피하기 어렵습니다.

    일하지 않는 나는 정말 쓸모없는 사람일까.

  • 시간은 있는데, 하고 싶은 것이 없다면

    시간은 있는데, 하고 싶은 것이 없다면

    시간이 없다는 말을 오래 했습니다.

    아침에는 나갈 시간이 정해져 있었고, 낮에는 해야 할 일이 이어졌습니다. 저녁이 되어도 내일을 위해 남겨두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쉬는 날에는 평일에 미뤄둔 것을 처리했습니다.

    그럴 때는 시간이 생기면 해보고 싶은 것이 많을 것 같았습니다.

    책도 천천히 읽고 싶었습니다. 어디든 느긋하게 다녀오고 싶었습니다. 배우고 싶었던 것도 있었습니다. 손으로 무엇인가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문제는 늘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시간이 생긴 어느 날, 전과 다른 아침이 찾아옵니다.

    서둘러 나갈 이유가 없습니다. 오늘 안에 끝내야 할 일도 예전보다 적습니다. 시계를 한번 보고 다시 내려놓습니다.

    시간은 분명 내 앞에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대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시간이 없을 때에는 시간이 문제인 줄 알았습니다.

    시간이 생기고 나서야 그 뒤에 있던 다른 질문이 보입니다.

    시간이 없어서 못 했던 것

    바쁠 때 떠올렸던 일들을 하나씩 꺼내봅니다.

    읽고 싶었던 책이 있습니다. 배워보고 싶었던 것이 있습니다.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도 있습니다. 갖추어 놓으면 무엇인가 시작할 것 같아 눈여겨보던 도구도 있습니다.

    이제 시간이 있으니 시작해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작은 차이가 생깁니다.

    시간이 없을 때 하고 싶었던 것 가운데 실제로 시작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막상 시간이 생겨도 좀처럼 손이 가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갖고 싶었던 물건을 마련했는데 생각보다 자주 사용하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꼭 배우겠다고 생각했던 것을 시작했는데 몇 번 지나지 않아 흥미가 옅어지기도 합니다.

    반대의 일도 생깁니다.

    별생각 없이 한번 손대본 일이 자꾸 눈에 들어옵니다. 필요한 것만 간단히 고치려고 시작했는데 다른 것도 만져보고 싶어집니다. 한번 해본 것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다음에 무엇을 해볼지 생각하게 됩니다.

    멀리서 바라보며 좋아했던 것과 직접 시간을 건넸을 때 자꾸 돌아가는 곳이 반드시 같지는 않습니다.

    그 차이는 꽤 흥미롭습니다.

    시간이 없던 시절에는 ‘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고 여기기 쉽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생겨 직접 해보기 시작하면 생각 속의 나와 생활 속의 내가 조금씩 어긋나는 장면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때부터 ‘하고 싶은 것’이라는 말이 전보다 복잡해집니다.

    꿈이 없어서 그런 걸까

    하고 싶은 것이 선뜻 떠오르지 않으면 ‘꿈’이라는 말이 따라붙기 쉽습니다.

    꿈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익숙합니다.

    어릴 때는 장래희망을 물었습니다. 학교를 마칠 무렵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 물었습니다. 일을 하는 동안에는 다음 목표가 무엇인지 묻습니다.

    무엇을 향해 가는 사람의 모습은 설명하기 쉽습니다.

    목적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긴 시간을 살아온 뒤에도 사람의 삶을 같은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무엇이 되고 싶다는 말은 없지만 아침이면 화분부터 살피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단한 목표는 없지만 오래된 물건을 손보는 시간이 좋은 사람도 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기록을 남기고, 무언가를 만들고, 궁금한 것을 찾아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도 꿈이라는 이름이 필요한지는 알 수 없습니다.

    반대로 오래 품어온 꿈이 있다고 해서 실제 하루가 언제나 그쪽으로 향하는 것도 아닙니다.

    꿈이라는 말은 삶을 설명하는 좋은 말이지만, 한 사람의 모든 시간을 담기에는 조금 큰 그릇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것이 떠오르지 않는 어느 날을 두고 곧바로 “내게는 꿈이 없다”고 결론 내리면 그 말 밖으로 밀려나는 것들이 생깁니다.

    아직 이름을 붙이지 않은 관심.

    해보지 않아서 모르는 즐거움.

    예전에는 좋아했지만 지금은 달라진 마음.

    그리고 자신도 아직 눈여겨보지 않았던 생활의 방향입니다.

    생각했던 나와 움직이는 나

    어떤 사람은 목공을 하는 모습을 오래 바라봅니다.

    나무를 자르고 다듬어 하나의 물건을 만드는 일이 좋아 보입니다. 작업장을 갖춘 사람을 보면 부럽기도 합니다. 언젠가 시간이 생기면 나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조금씩 도구를 마련합니다.

    새것도 사고 중고도 구합니다.

    그런데 정작 시간이 생기고 손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집니다.

    나무보다 쇠를 더 자주 만집니다.

    떨어진 것을 붙이고, 필요한 부분을 자르고, 거친 곳을 갈아냅니다. 고장 난 것을 그냥 버리기보다 어떻게든 다시 써보려고 들여다봅니다.

    처음 품었던 목공에 대한 마음이 거짓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쇠를 만지는 일이 숨어 있던 진짜 꿈이었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저 한 가지 장면이 남습니다.

    생각으로 그려놓은 나와 실제 시간을 건네는 나는 완전히 같지 않았습니다.

    이 장면이 흥미로운 것은 목공과 철공 가운데 무엇이 더 맞는가에 있지 않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아가는 일이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오래 바라보았던 것보다 우연히 손댄 것을 더 오래 붙잡을 때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좋아했던 것이 몇 번의 경험 뒤에 멀어지기도 합니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이 몇 해 뒤에도 곁에 남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는 생각만으로 대답하기 어려운 부분도 남습니다.

    살아보지 않고는 알기 어려운 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해야 할 일이 먼저였던 날들

    오랫동안 일하며 살아온 사람의 하루에는 질문보다 일정이 먼저 들어오는 날이 많습니다.

    몇 시까지 가야 합니다.

    오늘 끝낼 일이 있습니다.

    누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약속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 안에서도 사람은 수많은 선택을 합니다. 하지만 모든 선택이 ‘내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것’에서 시작되지는 않습니다.

    해야 하니까 하는 일도 있습니다.

    책임졌으니 끝내는 일도 있습니다.

    마음은 다른 곳에 있지만 자리를 지키는 날도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온 시간이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을 넘어가면 ‘오늘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아도 하루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다가 해야 할 일이 크게 줄어든 아침이 옵니다.

    처음에는 비어 있는 일정이 보입니다.

    조금 더 지나면 그 빈칸을 무엇으로 채울지 생각합니다.

    여기까지는 시간의 문제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답을 정해주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면 질문은 조금씩 사람 쪽으로 이동합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지?

    오랫동안 다른 질문에 대답하며 살아온 사람에게는 낯선 물음일 수 있습니다.

    매인 것이 없어지면 자유로운가

    일에 매여 있을 때 자유는 선명해 보입니다.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것.

    마감에 쫓기지 않는 것.

    누군가 정한 시간에 움직이지 않는 것.

    내 시간을 내가 쓰는 것.

    그런 날을 기다린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매인 것이 줄어든 하루에 들어가면 자유에도 이전에는 잘 보이지 않던 부분이 있습니다.

    아무도 오늘의 일정을 정해주지 않습니다.

    그 말은 무엇을 해도 된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무엇을 할지는 자신이 정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오전 열 시입니다.

    나갈 수도 있고 집에 머물 수도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배우는 사람도 있고, 별다른 계획 없이 하루를 보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에는 일정이 하루를 끌고 갔다면 이제는 빈 시간이 먼저 나를 바라보는 듯합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구별이 생깁니다.

    매이지 않는 것과 가고 싶은 곳을 아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자유가 없어서 가지 못했던 길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유가 생겼는데도 어느 쪽으로 갈지 모르겠는 순간도 있습니다.

    그 앞에서 질문은 달라집니다.

    나를 붙들던 것이 무엇이었는가보다, 아무도 붙들지 않을 때 나는 어디로 움직이는가.

    시간의 이야기가 어느새 사람의 이야기로 바뀝니다.

    빈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이쯤에서 가장 쉬운 답들이 나타납니다.

    운동을 시작합니다.

    취미를 만듭니다.

    사람들을 만납니다.

    여행을 다니거나 새로운 것을 배우기도 합니다.

    좋은 시간을 만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글이 처음부터 묻고 있던 것은 할 일을 몇 가지 더 만드는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시간표의 빈칸만 문제라면 일정 몇 개를 넣으면 됩니다.

    월요일에는 운동을 하고, 수요일에는 무언가를 배우고, 금요일에는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달력은 다시 채워집니다.

    하지만 달력이 채워졌다는 사실과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감각은 같은 것일까요.

    여기에서 ‘시간을 채우는 것’과 ‘시간을 건네는 것’ 사이에 작은 차이가 보입니다.

    빈칸은 무엇으로든 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하루를 어디에 건넬지는 조금 다른 문제입니다.

    누구에게 건넬 것인가.

    무엇에 건넬 것인가.

    무엇을 하며 보낸 시간이 이상하게 아깝지 않았는가.

    끝내고 돌아왔는데도 다시 해보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는가.

    생활 속에는 그렇게 작은 흔적들이 남습니다.

    손이 자꾸 가는 곳

    거창한 계획보다 먼저 나타나는 작은 움직임이 있습니다.

    서점에 가면 늘 비슷한 곳에서 걸음이 느려집니다.

    영상 하나를 보다가 관련된 것을 몇 개 더 찾아봅니다.

    망가진 물건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한번 들여다봅니다.

    누군가 이야기를 꺼냈을 때 유난히 오래 듣게 되는 주제가 있습니다.

    그 하나하나가 꿈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그저 생활에 남아 있는 흔적입니다.

    어떤 흔적은 금방 사라집니다.

    어떤 것은 한동안 이어지다가 멈춥니다.

    그런데 몇 번을 돌아서도 다시 같은 곳에 눈이 가는 일이 있습니다.

    말로는 별것 아니라고 하면서 시간을 씁니다.

    잘하지 못해도 또 해봅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계속 들여다봅니다.

    그 모습을 오래 바라보다 보면 질문이 조금 달라집니다.

    ‘내 꿈은 무엇인가’보다 먼저 다른 물음이 떠오릅니다.

    나는 지금까지 내 시간을 어디에 자꾸 건네왔는가.

    생각으로 만든 대답과 살아온 시간이 남긴 대답이 같은지 바라보게 됩니다.

    하고 싶은 것이 없다는 말

    처음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시간은 있는데, 하고 싶은 것이 없습니다.”

    처음 들으면 답이 필요한 말처럼 보입니다.

    꿈을 찾아야 할 것 같고, 목표를 세워야 할 것 같고, 새로운 취미라도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말을 오래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서로 다른 질문들이 겹쳐 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아직 말로 정리되지 않은 것인지.

    예전에 원했던 것과 지금 원하는 것이 달라진 것인지.

    해야 하는 일을 먼저 살아오느라 이 질문 자체가 낯선 것인지.

    직접 해보지 않아 아직 모르는 것인지.

    같은 “하고 싶은 것이 없다”라는 말 아래에서도 사람마다 다른 시간이 흐릅니다.

    그래서 이 말 하나만으로 그 사람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정할 수 없습니다.

    꿈이 부족하다고도, 의지가 부족하다고도, 목표가 필요하다고도 곧장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보다 먼저 보이는 장면이 있습니다.

    시간은 생겼는데 그 시간을 어디에 건넬 것인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빈 달력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그 달력을 살아갈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시간은 답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시간이 없을 때에는 시간이 생기면 많은 것이 분명해질 것 같았습니다.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가고 싶었던 곳에 가고, 미뤄둔 것을 시작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시작되는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공간을 만들어주어도 그 안에 들어갈 답까지 함께 가져오지는 않습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오래 하고 싶은지.

    무엇에 내 하루를 건네고 싶은지.

    그것은 빈 시간이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저절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어 있는 시간이 전에 잘 보이지 않던 것을 드러내는 날이 있습니다.

    해야 하는 일이 줄어든 자리에서 남는 것은 ‘무엇을 할까’라는 질문만이 아닙니다.

    그 질문을 오래 붙들고 있으면 한 층 아래에 있던 물음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꽤 오래 물으며 살아왔습니다.

    그 질문에 답하느라 수많은 아침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른 질문이 앞에 놓입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여전히 대답이 나오지 않는 날도 있습니다.

    그러면 질문은 한 번 더 깊어집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지, 얼마나 알고 살아왔는가.

    시간은 있는데 하고 싶은 것이 없다는 말.

    처음에는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관한 말처럼 들렸습니다.

    오래 들여다보고 나니 그보다 조금 더 깊은 곳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빈 것은 시간표였는데, 그 빈자리에서 비로소 내가 나에게 묻게 되었습니다.

    나는 앞으로 내 시간을 어디에 건네며 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