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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탄을 따라간 사람들

    석탄을 따라간 사람들

    1963년 12월, 김포공항에 낯선 길을 떠나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양복을 입은 사람도 있었고 넥타이를 맨 사람도 있었습니다. 가족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비행기에 오르면 한동안 돌아오기 어려운 길이었습니다. 목적지는 서독이었습니다.

    그들을 기다리는 곳은 사무실도 공장도 아니었습니다.

    탄광이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먼 나라까지 가서 땅속으로 내려가 석탄을 캐야 했습니다.

    그 시절 한국에도 탄광은 많았습니다.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산에서는 날마다 석탄이 나왔습니다. 광부가 캔 석탄은 선탄장을 지나 화차에 실렸고, 도시의 연탄공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연탄이 된 석탄은 다시 트럭과 손수레에 실려 골목을 지나 집 안까지 들어왔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 길을 따라왔습니다.

    그런데 석탄의 길을 조금 더 멀리 따라가면 뜻밖의 장면을 만나게 됩니다.

    이번에는 석탄이 사람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석탄이 있는 곳으로 갑니다.

    일자리를 찾아 국경을 건너다

    1963년 한국과 서독 사이에서 광부 파견이 시작됐습니다.

    첫 파견 광부들은 1963년 12월 독일로 떠났습니다. 이후 1977년까지 수천 명의 한국인 광부가 독일 탄광에서 일했습니다.¹⁾

    광부를 모집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이 지원했습니다. 당시 국내에서 받을 수 있는 임금과 비교하면 독일 광산에서 벌 수 있는 돈은 상당했습니다. 가족의 생활을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고 앞으로의 기반을 마련할 기회로 받아들인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¹⁾

    하지만 돈만 보고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아니었습니다.

    낯선 나라였습니다.

    말도 달랐습니다.

    무엇보다 일터가 탄광이었습니다.

    독일에 도착한 뒤에는 광산에서 사용하는 말과 작업 방법을 익혀야 했습니다. 작업복을 입고 장비를 챙겨 지하로 내려가야 했습니다. 한국에서 탄광 일을 해본 사람도 있었지만 다른 일을 하다가 지원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출국할 때 광부 모집에 합격했다는 사실과 실제 막장에서 광부로 일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습니다.

    몸이 다시 일을 배워야 했습니다.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시간도 견뎌야 했습니다.

    한국에서 독일까지의 거리는 비행기가 데려다주었지만, 낯선 일터에 자리를 잡는 일은 결국 한 사람의 몫이었습니다.

    땅 아래에서 시작된 하루

    탄광의 하루는 지상에서 시작됐지만 일의 대부분은 땅 아래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작업복을 갖춰 입고 장비를 챙긴 뒤 갱도로 들어갔습니다. 지하 작업장까지 이동하고, 정해진 자리에서 석탄을 캐고, 작업을 마치면 다시 지상으로 올라왔습니다.

    빛이 충분하지 않은 곳에서 몸을 써야 했습니다. 먼지와 소음이 있었고 위험도 늘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는 말보다 먼저 익혀야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어디에 서야 하는지, 장비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함께 일하는 사람의 움직임을 어떻게 살펴야 하는지 몸으로 배워야 했습니다.

    한국에서 가지고 간 이름과 사정은 사람마다 달랐습니다.

    누군가는 부모에게 돈을 보내야 했고 누군가는 집안 살림을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해볼 것인지 생각하며 독일행을 택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작업복을 입고 갱도에 들어가는 순간에는 해야 할 일이 같았습니다.

    석탄을 캐야 했습니다.

    멀리 떨어진 두 나라 사이를 이어준 것은 거창한 말보다 먼저 일이었습니다.

    월급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독일에서 받은 월급이 모두 독일에 남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광부들은 자신들의 생활에 필요한 돈을 남기고 일부를 한국의 가족에게 송금했습니다. 당시 기록에는 해외에서 번 돈을 국내로 보내기 위한 송금 관련 자료도 남아 있습니다.²⁾

    돈이 도착하는 곳에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부모가 있었고 가족이 있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한쪽에서는 돈을 벌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 돈으로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먼 나라의 땅속에서 일하는 사람과 한국의 한 가정이 그렇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임금이 서독 차관의 직접적인 담보였다는 이야기는 오랫동안 널리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은 관련 자료와 연구에서 사실관계를 둘러싼 논의가 이어져 왔으므로 확인된 사실처럼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그 이야기를 더 크게 만들지 않아도 당시 사람들이 남긴 흔적은 충분합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독일에서 일했고 그곳에서 번 돈의 일부를 한국으로 보냈습니다.

    한 나라의 외화 획득이라는 숫자로 보면 경제의 이야기입니다.

    한 가정의 문을 열고 들어가 보면 조금 달라집니다.

    독일에서 월급날을 기다리는 사람과 한국에서 송금을 기다리는 사람이 같은 돈으로 한 달의 생활을 헤아리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탄광촌의 불이 밝았다

    그 사람들이 독일 광산에서 일하던 시기, 한국의 탄광도 한창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탄광에 사람이 몰리면 광부만 늘어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살 집이 필요했습니다. 밥을 먹을 식당이 생겼고 생활용품을 파는 가게가 문을 열었습니다. 아이들이 늘면 학교가 필요했고 사람들이 오가면 버스와 택시도 움직였습니다.

    광산 주변에 생활이 만들어졌습니다.

    교대 시간이 가까워지면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오갔습니다. 탄을 실은 차량이 움직였고 식당에서는 끼니를 준비했습니다. 장날이면 시장에 사람이 모였습니다. 월급날이 지나면 상점의 분위기도 달라졌습니다.

    광산에서 나온 돈은 광산 안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쌀을 사고 옷을 사고 아이들의 준비물을 샀습니다. 식당의 밥값이 되고 가게의 매출이 되었습니다.

    탄광은 석탄을 생산하는 장소였지만 그 주변 사람들에게는 생활을 움직이는 중심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일이 많을 때는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방을 구하고 살림을 차렸습니다.

    아이들이 자랐고 골목이 생겼습니다.

    검은 석탄이 산 아래에 하나의 동네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집 안의 변화가 산속까지 올라갔다

    그 풍경이 계속되지는 않았습니다.

    도시의 집에서는 난방 방식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연탄을 갈아야 따뜻해지던 방에 다른 난방 방식이 들어왔습니다. 석유와 가스 사용이 늘었고 연탄에 의존하던 생활도 서서히 줄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에 이르면 국내 석탄산업은 이전과 다른 상황을 맞게 됩니다.³⁾

    처음에는 한 집의 작은 변화처럼 보였습니다.

    연탄을 덜 주문했습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쌓아두는 연탄의 양이 줄었습니다.

    골목을 오가던 연탄 배달도 예전만큼 바쁘지 않게 됐습니다.

    그러나 같은 변화가 수많은 집에서 일어나면 그 끝은 탄광까지 닿습니다.

    연탄이 덜 팔리면 공장에서 필요한 석탄도 줄어듭니다. 운반해야 할 양이 줄고 광산에서 캐야 할 양도 달라집니다.

    집 안에서 사라지는 연탄 한 장과 산속에서 줄어드는 일자리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서로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한때 탄광에서 도시의 아궁이까지 이어졌던 길을 따라 변화가 거꾸로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광산의 문이 닫히다

    1980년대 말 석탄산업 합리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많은 탄광이 문을 닫기 시작했습니다.

    국가기록원 자료를 보면 1988년 전국 347개 탄광에서 2,430만 톤의 석탄을 생산했지만 1995년에는 27개 탄광, 570만 톤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1989년부터 1995년까지 폐광지원 대상이 된 탄광은 335개였고 지원을 받은 근로자는 3만 명을 넘었습니다.⁴⁾

    숫자만 보면 산업의 축소입니다.

    탄광 앞에서 보면 다른 장면이 됩니다.

    어제까지 들어가던 갱도에 더는 들어갈 수 없게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침마다 입던 작업복을 벗어야 했습니다.

    오랫동안 익힌 일이 더는 필요하지 않은 일이 되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광산 밖에도 있었습니다.

    광부가 줄면 식당의 손님이 줄었습니다. 가게를 찾는 사람도 줄었습니다. 가족이 다른 지역으로 옮기면 학교의 아이들도 줄었습니다. 버스를 타는 사람이 줄고 빈집이 생겼습니다.

    탄광 하나의 문이 닫힐 때 철문 하나만 닫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문을 중심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의 하루가 함께 달라졌습니다.

    떠나는 방향이 바뀌었다

    태백을 비롯한 탄광지역에서는 그 변화가 인구 이동으로 나타났습니다.

    한때 석탄을 캐기 위해 사람들이 들어오던 곳에서 이제는 사람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태백은 석탄산업이 활발하던 시기에 인구가 크게 늘었지만 산업 합리화와 폐광이 이어지면서 빠른 인구 감소를 겪었습니다.⁵⁾

    광부 한 사람이 직장을 잃었다고 한 사람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족이 함께 다른 지역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손님이 줄어든 가게 주인도 다른 일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광산을 상대로 일하던 운송과 서비스업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한때는 광산이 있다는 이유로 사람이 모였습니다.

    이제는 그 광산이 사라지면서 다른 곳의 일을 찾아 떠났습니다.

    산업이 사람을 불러들이던 힘이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은 탄광촌에서만 일어난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한곳에 모여 사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가운데 일자리는 큰 몫을 차지합니다.

    일이 생기면 사람이 들어옵니다.

    사람이 들어오면 집과 가게가 생깁니다.

    학교와 시장과 교통이 그 뒤를 따릅니다.

    오랫동안 그 중심이던 일이 사라지면 주변의 생활도 그대로 있기 어렵습니다.

    탄광촌은 그것을 아주 선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독일로 떠난 사람과 탄광촌을 떠난 사람

    1963년 독일로 떠난 광부와 수십 년 뒤 국내 탄광촌을 떠난 사람을 같은 사건으로 묶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두 시기는 반대에 가깝습니다.

    파독 광부들이 떠나던 시기의 한국에서는 석탄 생산이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폐광촌에서 사람들이 떠나던 때에는 국내 석탄산업이 빠르게 축소되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는 긴 시간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두 장면을 멀리서 함께 바라보면 한 가지가 겹쳐 보입니다.

    사람은 일을 따라 움직였습니다.

    일자리가 먼 나라에 있으면 국경을 건넜습니다.

    탄광에서 사람이 필요하면 산골짜기로 들어갔습니다.

    광산이 문을 닫으면 다시 다른 일자리가 있는 곳을 찾아 나섰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같은 선택을 한 것은 아닙니다.

    남은 사람도 있었고 전혀 다른 일을 시작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떠날 수 없어 남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산업이 바뀌는 순간 사람에게 주어진 선택의 모양도 함께 달라졌다는 사실입니다.

    어제까지 익숙했던 일이 내일도 있다는 보장은 없었습니다.

    그때 사람은 다시 자신의 자리를 찾아야 했습니다.

    석탄을 따라가니 사람이 보였다

    처음에는 석탄 한 덩어리에서 시작했습니다.

    산속에서 검은 돌을 캐는 광부가 있었습니다.

    땅 위에서는 캐낸 석탄을 고르는 사람이 있었고 철도와 차량으로 그것을 나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도시에서는 석탄을 연탄으로 만드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연탄가게가 있었고 골목 끝 집까지 연탄을 배달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집 안에서는 불이 꺼지지 않도록 연탄을 갈던 손이 있었습니다.

    조금 더 멀리 가니 석탄을 캐기 위해 독일까지 건너간 사람들도 만났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에는 광산이 문을 닫아 새로운 일터를 찾아 탄광촌을 떠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석탄 자체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돌을 따라가면 한 시대에 사람들이 어디에서 일했고 어디로 움직였는지가 보입니다.

    산업이 커진다는 말 뒤에는 출근할 곳을 얻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산업이 쇠퇴한다는 말 뒤에는 내일부터 어디에서 일해야 할지 다시 생각해야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에너지가 바뀌면 난방기구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석탄을 캐던 일과 나르던 일, 연탄을 만들고 팔던 일이 함께 줄었습니다. 그 일을 중심으로 형성됐던 동네의 모습도 달라졌습니다.

    1963년 겨울, 독일로 떠난 광부들이 있었습니다.

    수십 년 뒤에는 국내 탄광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한쪽은 성장하는 시대에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떠났고, 다른 한쪽은 사라지는 일자리 뒤에서 새로운 자리를 찾아야 했습니다.

    출발한 이유도, 도착한 곳도 달랐습니다.

    하지만 두 장면 사이에는 오랫동안 변하지 않은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사람은 살아가기 위해 일할 곳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일이 움직일 때 사람의 삶도 움직였습니다.

    석탄은 땅속에 있었지만, 석탄을 따라 움직인 것은 사람이었습니다.

    각주

    1. 행정안전부·국가기록원 파독 광부 관련 기록. 1963년 12월 시작된 한국 광부의 서독 파견과 모집·출국 과정에 관한 기록. 독일 측 관련 기록에는 1963년부터 1977년까지 75차례에 걸쳐 7,936명이 파견된 것으로 집계되어 있다.
    2. 국가기록원 소장 파독 근로자 관련 기록. 파독 광부의 임금과 국내 송금, 당시 송금 관련 자료.
    3. 국가기록원 및 석탄산업 관련 공공 기록. 1980년대 후반 이후 연탄 수요 감소와 국내 석탄산업 구조 변화에 관한 자료.
    4. 국가기록원 「석탄산업 육성 및 석탄산업 합리화」. 1988년 전국 347개 탄광·생산량 2,430만 톤에서 1995년 27개 탄광·570만 톤으로 감소. 1989~1995년 폐광지원 대상 335개 탄광 및 3만 명 이상의 근로자 지원 기록.
    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및 탄광지역 관련 공공 기록. 석탄산업 합리화 이후 태백 등 주요 탄광지역의 인구 감소와 지역사회 변화에 관한 자료.
  • 연탄불의 두 얼굴

    연탄불의 두 얼굴

    겨울밤 방이 따뜻해지면 사람들은 이불을 폈습니다.

    밖에서 돌아와 아랫목에 발을 넣으면 얼었던 몸이 조금씩 풀렸습니다.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있으면 밖의 찬바람이 잠시 먼 세상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온기는 아궁이에서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연탄을 사용하던 집에서 따뜻한 방이 반드시 마음 놓고 잠들 수 있는 방은 아니었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한 번 더 살펴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불이 잘 타고 있는지도 보았지만, 연기가 제대로 빠져나가는지도 중요했습니다. 방바닥에 금이 간 곳은 없는지, 연통이 벌어진 곳은 없는지 신경을 썼습니다.

    잘못하면 연탄가스가 방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연탄 사용이 늘어난 1960년대에는 연탄가스 중독사고도 급증했습니다. 한겨울에 수백 명이 희생될 정도였습니다. 정부가 강습회를 열고 관련 영화를 상영하며 예방운동을 벌였지만 사고는 쉽게 줄지 않았습니다. 국가기록원은 1970~80년대에 연탄가스 사고가 오히려 증가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¹⁾

    한쪽에는 겨울을 견디게 해준 따뜻한 아랫목이 있었습니다.

    그 아래에는 밤새 조심해야 하는 불이 타고 있었습니다.

    연탄불의 두 얼굴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연탄가스

    연탄가스 중독에서 특히 위험한 것은 일산화탄소였습니다.

    연기가 방 안에 가득 차 눈이 맵다면 위험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일산화탄소는 그렇게 쉽게 경고해주지 않습니다.

    잠든 사이 몸에 들어오면 머리가 아프거나 어지러워지고, 심하면 의식을 잃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연탄을 사용하는 집이 워낙 많았다는 데 있었습니다.

    연탄은 어느 특별한 장소에서만 사용하는 연료가 아니었습니다. 도시의 단독주택과 골목 안 작은 집, 새로 지은 주택에서도 흔히 사용했습니다. 한 집에서 매일 사용하는 난방연료의 위험이었으니 겨울이 올 때마다 같은 문제가 되풀이됐습니다.

    사고가 이어지면서 원인을 사람의 부주의만으로 돌릴 수도 없게 됐습니다.

    아궁이에서 나온 가스가 굴뚝까지 빠져나가는 과정에는 여러 곳이 연결돼 있었습니다.

    아궁이가 있었습니다.

    구들이 있었습니다.

    연기가 지나가는 길이 있었고 끝에는 굴뚝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어느 곳에 틈이 생겨도 문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집을 어떻게 짓느냐도 중요해졌습니다.

    1960년대 말부터 정부 주도의 연구사업이 시작됐고, 사고가 발생한 건물의 건물주와 시공사에 책임을 묻는 조치도 나왔습니다. 미장이에게 안전한 시공법을 교육하고 수료증을 발급했으며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에는 안전검사를 실시했습니다.¹⁾

    연탄가스 사고가 한 가정의 조심성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주거 안전의 문제로 넓어진 것입니다.

    따뜻한 방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연탄만 잘 태우면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불이 지나가는 길까지 안전해야 했습니다.

    방바닥과 연통을 살피던 겨울

    1988년 11월 23일 대한뉴스에는 「연탄가스 사고주의」라는 41초짜리 짧은 영상이 방송됐습니다.

    내용은 놀랄 만큼 구체적입니다.

    방바닥에 틈이 없는지 살펴보라고 했습니다.

    연통의 틈으로 가스가 새지 않도록 막으라고 했습니다.

    가스경보기와 가스배출기를 켜놓으라는 안내도 나왔습니다.

    사고가 발생하면 119에 신고하라는 내용까지 들어 있었습니다.²⁾

    1988년이면 연탄을 사용하기 시작한 지 이미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습니다.

    그런데도 겨울이 오면 국가가 방송을 통해 방바닥과 연통을 확인하라고 알려야 했습니다.

    당시 촬영된 미공개 대한뉴스 영상에는 그 경고가 실제 생활에서 어떤 모습이었는지도 남아 있습니다.

    연탄가스 사고 환자가 구급차로 실려 갑니다.

    가정에서는 가스가 새는 곳을 살핍니다.

    화면은 병원 응급실로 이어지고 고압산소치료기도 등장합니다.³⁾

    한쪽에서는 평범한 겨울을 보내기 위해 연탄불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그 불 때문에 사람이 병원으로 실려 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겨울을 준비한다는 말에는 연탄을 마련하는 일만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집도 살펴야 했습니다.

    방바닥에 전에 없던 금이 생기지는 않았는지, 연통이 빠지거나 벌어지지는 않았는지 확인했습니다.

    작은 틈 하나가 대수롭지 않은 집수리가 아니라 사람의 안전과 관계된 문제가 됐습니다.

    겨울을 앞두고 집을 손보는 일에도 이런 걱정이 따라다녔습니다.

    방바닥에 생긴 금을 메우고 아궁이와 굴뚝 사이를 살폈습니다. 연통이 빠졌거나 벌어진 곳은 없는지도 확인했습니다. 평소에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던 작은 틈이 연탄을 때기 시작하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 됐습니다.

    연탄가스 사고를 막는 일은 특별한 날 한 번 하는 점검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난방을 계속하는 동안 집의 상태도 함께 살펴야 했습니다. 연탄을 사용하는 겨울에는 집 자체가 난방기구의 한 부분이었던 셈입니다.

    1970년대에는 정부가 연탄가스 사고를 막기 위한 여러 대책을 추진했고, 1980년대 말까지도 가스경보기와 배출기를 사용하라는 캠페인이 계속됐습니다.

    1972년 대한뉴스에는 아예 「연탄가스를 조심하자」라는 영상이 제작됐습니다. 16년 뒤인 1988년에도 같은 주제의 캠페인이 다시 등장했습니다.⁴⁾

    오랜 기간 같은 경고가 반복됐다는 사실 자체가 당시 연탄가스 문제가 얼마나 생활 가까이에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동치미를 찾던 집과 병원으로 향하던 사람들

    연탄가스 이야기를 기억하는 세대에게는 조금 뜻밖의 음식 하나가 따라옵니다.

    동치미입니다.

    연탄가스에 취한 사람이 생기면 동치미 국물을 먹였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동치미 국물 가져와.”

    이 말을 실제로 들었던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겨울이면 집에 동치미가 있었습니다. 병원이 지금처럼 가까운 곳에 있지 않았고, 응급의료 체계도 오늘과 달랐습니다. 갑자기 사람이 쓰러지면 가족은 당장 할 수 있다고 알고 있던 방법부터 찾았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동치미 국물이었습니다.

    여기서 당시의 생활과 오늘의 의학은 분명하게 나누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동치미 국물은 당시에 널리 알려져 있던 민간의 대처였습니다.

    오늘날 일산화탄소 중독은 신속한 의료적 처치가 필요한 응급상황이며 동치미 국물은 치료법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동치미가 연탄가스를 치료했느냐가 아닙니다.

    왜 많은 사람이 연탄가스 이야기를 하면서 동치미까지 함께 기억하느냐입니다.

    그 기억 속에는 당시의 생활조건이 들어 있습니다.

    집집마다 연탄을 사용했습니다.

    사고가 일어나면 가족과 이웃이 먼저 달려왔습니다.

    구급차와 전문적인 치료를 받기까지 지금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던 방법으로 먼저 움직였습니다.

    한편 병원에서는 다른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연탄가스 중독 환자를 살리기 위한 고압산소치료가 도입됐고, 정부도 종합병원 등에 관련 치료장비를 설치하는 대책을 추진했습니다.

    1988년 대한뉴스 미공개 촬영본에 응급실과 고압산소치료기가 함께 등장하는 것도 그런 변화가 이미 의료현장에 들어와 있었음을 보여줍니다.³⁾

    집에서 동치미 국물을 찾던 기억과 병원에서 고압산소치료를 받던 장면은 서로 다른 이야기가 아닙니다.

    같은 위험을 두고 생활의 경험과 의료기술이 서로 다른 자리에서 대응하고 있던 모습입니다.

    군대의 겨울에는 페치카가 있었다

    같은 시절 군대에는 또 다른 겨울 풍경이 있었습니다.

    페치카였습니다.

    오래전에 군 생활을 한 사람에게 페치카라는 말은 낯설지 않습니다.

    뻬치카나 베치카처럼 조금씩 다르게 부르기도 했습니다.

    2001년 MBC는 병영 개선사업으로 사라져가는 군부대 페치카를 취재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페치카는 1950년대부터 군 내무반 난방기구로 사용됐습니다. 처음에는 나무와 분탄을 때다가 1970년대부터 조개탄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 말까지 거의 모든 군부대가 페치카를 사용했습니다.⁵⁾

    군대의 겨울은 집과 달랐습니다.

    특히 전방에서 야간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병사에게 따뜻한 내무반은 몸을 녹일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문제는 페치카가 저절로 타지 않았다는 데 있었습니다.

    MBC 보도에는 아예 ‘페치카 담당병’이 등장합니다.

    겨울이 오면 담당병이 바빠졌습니다.

    잠깐 한눈을 팔아 불이 꺼지면 다시 살려야 했습니다. 난방을 계속하려면 연료를 넣고 불의 상태를 살펴야 했습니다.

    특히 추위가 매서운 곳에서는 불이 꺼진 뒤에야 그 차이가 분명해졌습니다. 밤새 식은 내무반을 다시 데우려면 시간이 걸렸습니다. 페치카를 맡은 병사에게 불은 단순히 켜고 끄는 난방기구가 아니었습니다.

    근무를 나가는 병사와 돌아오는 병사가 밤새 바뀌는 동안에도 난방은 이어져야 했습니다. 다른 병사들이 잠든 시간에도 불의 상태를 확인해야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래전 군 생활의 페치카 기억에는 따뜻함과 함께 불을 꺼뜨리지 않아야 했던 수고가 남아 있습니다.

    집에서 가족이 아궁이를 확인하던 시간에 군대에서는 병사가 페치카를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페치카 주변에는 난방 이상의 생활도 모였습니다.

    뜨거운 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보도에 등장한 군인의 회고에는 페치카에서 몰래 라면을 끓여 먹다가 걸려 얼차려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고참들이 따뜻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가 힘들어하는 이등병을 불러 손을 녹이게 해주고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기억도 남아 있습니다.⁵⁾

    그래서 페치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난방기구의 구조보다 먼저 자기 군 생활의 한 장면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밖은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근무를 마치고 내무반으로 돌아왔습니다.

    페치카에는 불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 앞에서 언 손을 녹였습니다.

    다음 근무를 나갈 사람도 같은 불 곁을 지나갔습니다.

    그런 기억은 난방기구의 성능표에 남지 않습니다.

    그것을 사용했던 사람에게 남습니다.

    따뜻한 불 뒤에는 관리하는 일이 있었다

    연탄불과 페치카에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연료를 넣는다고 일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불이 제대로 타는지 살펴야 했습니다.

    집에서는 가스가 새지 않는지도 확인해야 했습니다.

    사고가 계속되면서 그 주변의 일은 더 세분됐습니다.

    집을 지을 때는 연탄가스가 새지 않도록 시공해야 했습니다.

    미장이에게 안전교육을 실시했습니다.

    공동주택에는 안전검사가 들어갔습니다.

    가스가 새는 것을 알리는 경보기가 생겼습니다.

    가스를 밖으로 빼내는 장치도 사용됐습니다.

    사고가 발생하면 구급차가 움직였고 병원에서는 중독환자를 치료했습니다.

    연탄가스 문제를 줄이기 위해 정부는 예방교육과 캠페인을 계속했습니다.⁶⁾

    이 대목에서 앞서 살펴본 석탄과 연탄의 길이 다시 조금 달라집니다.

    탄광에서 시작한 석탄은 공장을 거쳐 연탄이 됐고, 연탄가게와 골목을 지나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연탄이 집에 도착했다고 그 물건을 둘러싼 일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사용하는 동안에는 다른 종류의 수고가 이어졌습니다.

    불을 관리했습니다.

    집을 손봤습니다.

    안전장치를 만들었습니다.

    사고를 예방하는 방법을 알렸습니다.

    중독된 사람을 치료하는 기술도 발전했습니다.

    연탄가스라는 위험이 사회문제가 되면서 집을 짓는 방법과 겨울을 보내는 습관, 병원의 치료까지 영향을 받았습니다.

    1970~80년대에도 사고가 증가했다는 국가기록원의 기록은 그 변화가 짧은 기간에 끝난 일이 아니었음을 말해줍니다.¹⁾

    연탄은 값싸고 편리한 생활연료였지만 그 편리함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의 손이 계속 필요했습니다.

    그것이 당시 난방의 또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난방이 바뀌자 겨울밤도 달라졌다

    연탄의 자리는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사용해온 연료였고 많은 집이 연탄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부터 가정의 난방 방식에는 큰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가스와 기름보일러가 보급되면서 연탄 사용은 점차 줄었습니다.

    국가기록원은 연탄가스 사고가 생활 주변에서 사라지기 시작한 시점을 1990년대 가스와 기름보일러 사용이 보편화된 때와 연결해 설명합니다.¹⁾

    연료가 바뀌었다는 말만으로는 생활에서 일어난 변화를 모두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겨울밤에 해야 할 일이 달라졌습니다.

    잠들기 전에 방바닥과 연통을 살피는 일은 점차 줄었습니다.

    연탄가스가 새지 않을까 걱정하며 자는 집도 줄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불의 상태를 확인하는 일도 예전의 풍경이 됐습니다.

    군대도 변했습니다.

    1990년대 병영 개선사업이 진행되면서 기름보일러가 페치카를 대신하기 시작했습니다.

    2001년 MBC가 취재했을 때 페치카는 최전방에서도 보기 힘든 시설이 됐습니다. 당시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페치카는 철거하지 않고 군 역사시설로 보존하기로 했습니다.⁵⁾

    난방기구 하나가 바뀌면서 군대에서 맡아야 했던 일 하나도 함께 없어졌습니다.

    페치카 담당병입니다.

    예전에는 병사가 불을 살렸습니다.

    새로운 난방시설에서는 기계가 온도를 유지했습니다.

    집에서도 비슷했습니다.

    사람이 아궁이를 열어 불을 확인하던 자리에 보일러가 들어왔습니다.

    불을 직접 보지 않아도 방을 데울 수 있게 됐습니다.

    온도조절기의 숫자를 맞추면 난방기가 알아서 작동했습니다.

    생활은 편해졌고 연탄가스 사고의 위험도 크게 줄었습니다.

    그러나 편리해진 만큼 눈에 보이지 않게 된 것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따뜻한 방 하나를 유지하는 데 사람이 얼마나 자주 움직여야 하는지가 그대로 보였습니다.

    불을 살피는 사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연통을 손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군대에서는 페치카 앞을 지키는 병사가 있었습니다.

    난방이 자동화되면서 그런 모습은 겨울 풍경에서 하나씩 빠져나갔습니다.

    같은 불을 다르게 기억한다

    연탄불을 기억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아랫목부터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차가운 발을 이불 속으로 밀어 넣었을 때 올라오던 온기를 기억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연탄가스가 먼저 떠오릅니다.

    겨울이면 방바닥과 연통을 살폈던 일, 주변에서 들었던 사고 소식, 갑자기 사람이 쓰러졌을 때 동치미 국물을 찾던 어른들의 모습이 남아 있습니다.

    군 생활을 오래전에 마친 사람에게는 페치카가 있습니다.

    야간근무 뒤 언 손을 녹이던 자리였고, 담당병에게는 꺼뜨리지 말아야 할 불이었습니다.

    같은 난방기구를 두고도 기억이 다른 까닭은 그 앞에서 했던 일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연탄은 따뜻했습니다.

    동시에 위험했습니다.

    페치카는 추운 내무반을 덥혀주었지만 그 온도를 유지하려면 병사의 손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연탄불의 역사를 따뜻했던 옛날 이야기로만 남기면 절반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위험한 연료였다고만 말해도 나머지 절반을 놓칩니다.

    그 불 덕분에 수많은 집이 겨울을 보냈습니다.

    그 불 때문에 수많은 집이 밤마다 조심했습니다.

    사고가 반복되자 집을 짓는 방법이 달라졌고 안전장치가 생겼습니다.

    병원에는 새로운 치료장비가 들어왔습니다.

    더 안전하고 편리한 난방이 보급되자 아궁이와 페치카는 생활의 중심에서 물러났습니다.

    지금은 온도조절기의 숫자를 맞추고 잠자리에 듭니다.

    그때는 잠들기 전에 불부터 보았습니다.

    방이 따뜻한 밤 뒤에는 아궁이를 열어보던 손이 있었습니다.

    군대의 겨울밤에는 페치카 앞을 지키던 병사가 있었습니다.

    따뜻함은 불이 만들었지만, 그 불을 밤새 이어간 것은 사람이었습니다.

    각주

    1. 국가기록원,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연탄」 및 「길고 춥던 그 시절 겨울 풍경―연탄재 쌓인 골목길」. 1960년대 연탄 사용 증가와 중독사고, 미장이 교육·공동주택 안전검사, 1970~80년대 사고 증가 및 1990년대 난방연료 전환에 관한 기록.
    2. e영상역사관, 대한뉴스 제1724호 「연탄가스 사고주의」, 1988년 11월 23일. 방바닥과 연통의 틈 점검, 가스경보기·가스배출기 및 119 신고 안내.
    3. e영상역사관, 미공개 대한뉴스 「감 익은 풍경, 연탄가스, 고압산소기, 강남병원」, 1988년 11월 23일. 연탄가스 사고 환자의 구급차 수송, 가정의 가스 누출 예방, 병원 응급실과 고압산소치료기 촬영 기록.
    4. 국가기록원 연탄 관련 기록물. 대한뉴스 제911호 「연탄가스를 조심하자」(1972)와 제1724호 「연탄가스 사고주의」(1988).
    5. MBC 뉴스데스크, 「군 병영 개선사업으로 내무반 페치카 사라져」, 2001년 11월 10일. 1950년대 이후 페치카 사용, 1970년대 조개탄 사용, 페치카 담당병, 1980년대 말까지 거의 모든 군부대에서 사용된 사실과 병영개선에 따른 퇴장에 관한 보도.
    6. 국가기록원, 연탄가스 예방과 안전대책 관련 기록. 연탄가스 사고에 따른 시공·교육·검사 및 예방활동에 관한 자료.
  • 연탄 한 장으로 겨울을 나던 시절

    연탄 한 장으로 겨울을 나던 시절

    아침에 눈을 뜨면 방바닥부터 짚어보던 때가 있었습니다.

    따뜻하면 밤새 불이 살아 있었다는 뜻이었습니다.

    평소보다 냉기가 돌면 이불 속에서도 알 수 있었습니다. 간밤에 갈아놓은 연탄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거나 어느새 불이 다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 시절 겨울에는 시계에 적혀 있지 않은 시간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연탄 갈 시간이었습니다.

    아침에 한 번 갈아놓았다고 하루가 끝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음에 언제 갈아야 하는지 기억해야 했고, 외출이 길어질 때는 나가기 전에 불부터 살폈습니다. 밤이 깊었어도 때가 되면 새 연탄을 올려놓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요즘은 사람이 원할 때 난방을 켭니다.

    그때는 사람이 불의 시간에 맞춰 살았습니다.

    아침은 방바닥의 온도로 시작됐다

    연탄은 장작보다 오래 탔고 비교적 일정하게 열을 냈습니다. 1950년대 중반부터 가정의 난방연료로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식당과 점포, 학교와 사무실에서도 사용됐습니다.¹⁾

    오래 탄다는 것은 분명 편리했습니다.

    하지만 한번 불을 붙여놓으면 잊어도 되는 연료는 아니었습니다.

    불이 충분히 남아 있을 때 다음 연탄으로 이어야 했습니다. 때를 놓쳐 완전히 꺼지고 나면 다시 불을 살려야 했습니다.

    연탄을 오래 사용한 집에서는 자연스럽게 감각이 생겼습니다. 아궁이를 열어 연탄의 빛깔을 보면 어느 정도 탔는지 짐작했습니다. 새 연탄을 올린 뒤에는 위아래 구멍을 맞췄습니다.

    처음에는 서툴던 일도 겨울을 몇 번 보내고 나면 몸에 익었습니다.

    몇 시에 갈았는지 일일이 적어두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이제 한번 봐야겠다.”

    그럴 때쯤이면 정말 아궁이를 살펴볼 때가 되어 있었습니다.

    집 안의 하루와 아궁이 속 시간이 함께 흘렀습니다.

    불이 꺼진 날에는 옆집 문을 두드렸다

    그래도 불을 꺼뜨리는 날은 있었습니다.

    외출이 예상보다 길어질 때도 있었고, 밤사이 새 연탄으로 불이 제대로 옮겨붙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방바닥이 싸늘했습니다.

    아궁이를 열어보면 전날 밤까지 벌겋던 연탄이 식어 있었습니다.

    연탄은 처음 불을 붙이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충분히 마르지 않은 연탄은 불붙이기가 더 어려웠고, 한번 완전히 꺼진 불을 처음부터 다시 살리는 것도 번거로웠습니다.²⁾

    그럴 때 옆집 문을 두드리기도 했습니다.

    “연탄불 꺼졌는데 하나 좀 빌립시다.”

    불붙은 연탄 한 장을 빌려왔습니다.

    벌겋게 살아 있는 연탄을 자기 집 아궁이에 넣고 그 위에 새 연탄을 올렸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옆집에서 건너온 불이 자기 집 연탄으로 옮겨붙었습니다.

    연탄이 떨어지면 몇 장을 꾸었습니다.

    불이 꺼지면 불붙은 연탄을 빌려오기도 했습니다.

    연탄만 꾸는 것이 아니라 불까지 꾸던 시절이었습니다.

    빌려온 것은 연탄 한 장이었지만 정작 필요했던 것은 그 안에 살아 있던 불이었습니다.

    한집에서 건너온 불이 다른 집의 저녁을 다시 데웠습니다.

    연탄집게는 늘 아궁이 곁에 있었다

    연탄을 때던 집에는 연탄집게가 있었습니다.

    특별할 것 없는 쇠붙이였지만 겨울이면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었습니다.

    새 연탄을 올리고, 타고 남은 연탄을 들어내고, 다 탄 재를 꺼낼 때도 집게를 사용했습니다.

    연탄을 오래 갈다 보면 힘을 주는 정도도 몸에 익었습니다. 너무 거칠게 다루면 다 타가는 연탄이 부서질 수 있었습니다.

    연탄을 간다는 것은 새것과 헌것을 바꾸는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남아 있는 불을 다음 연탄으로 넘기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장에서 다음 한 장으로 불이 이어졌습니다.

    검은 연탄은 하얀 재가 되어 나왔다

    밤새 방을 데운 연탄은 아침이면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 있었습니다.

    검고 묵직했던 몸은 희끗한 회색으로 변했습니다.

    연탄재였습니다.

    불은 끝났지만 사람의 일은 조금 남았습니다.

    열기가 남아 있지 않은지 살핀 뒤 밖으로 내놓았습니다. 온전히 빠져나온 것도 있었고 중간이 깨진 것도 있었습니다. 잘못 건드리면 푸석하게 무너지며 잿가루가 떨어졌습니다.

    겨울이면 골목 한쪽에 다 타고 남은 연탄재가 쌓였습니다.

    1990년대 초까지도 이런 풍경은 낯설지 않았습니다.³⁾

    며칠 전에는 검은 연탄이 골목을 따라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이제는 하얀 재가 되어 같은 골목으로 나왔습니다.

    연탄이 들어오는 것도 보였고, 다 타고 나가는 것도 보였습니다.

    겨울은 그렇게 골목에 흔적을 남겼습니다.

    연탄불 하나가 여러 일을 맡았다

    연탄불은 방만 데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집의 구조에 따라 밥을 짓고 국을 끓였으며 물을 데우는 데에도 사용했습니다.⁴⁾

    이미 피워놓은 불을 한 가지 용도로만 쓰지 않았습니다.

    방을 데우고 음식을 익혔습니다.

    솥에 물을 올려두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불이 꺼진다는 것은 방 하나가 식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한집의 여러 생활이 함께 불편해졌습니다.

    지금은 난방과 취사, 온수를 서로 다른 장치가 맡습니다.

    그때는 연탄불 하나가 여러 일을 함께 떠받치고 있던 집이 많았습니다.

    연탄 한 장의 쓰임은 생각보다 집 안 깊숙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연탄더미를 보면 남은 겨울이 보였다

    겨울을 앞두고 연탄을 들여놓았습니다.

    검은 연탄이 한쪽에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김장을 마치고 연탄까지 들여놓으면 큰 겨울 준비를 해놓은 셈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든든했습니다.

    하지만 겨울이 깊어질수록 연탄더미는 낮아졌습니다.

    매일 몇 장쯤 쓰는 집에서는 남은 양을 보면 앞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도 대강 알았습니다.

    날씨가 매섭게 추워지면 줄어드는 속도도 빨라졌습니다.

    바닥이 가까워지면 다시 연탄을 들여놓아야 했습니다.

    문제는 돈만 있다고 언제나 원하는 만큼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데 있었습니다.

    연탄 사용이 크게 늘면서 겨울철 공급난도 여러 차례 찾아왔습니다. 석유파동 이후에는 연탄 수요가 몰리면서 공급을 걱정해 미리 사두려는 움직임까지 나타났습니다.⁵⁾

    그런 시절에는 쌓여 있는 연탄의 높이가 달리 보였습니다.

    단순히 몇 장 남았느냐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겨울의 양처럼 보였습니다.

    집 안에도 이름 없는 일이 있었다

    탄광에서는 광부가 석탄을 캤습니다.

    공장에서는 그 석탄으로 연탄을 만들었습니다.

    트럭이 실어 날랐고 배달하는 사람이 집까지 옮겼습니다.

    그런데 연탄이 집에 도착했다고 사람의 일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뒤의 일은 생활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아궁이를 살피고 연탄을 갈았습니다. 다 탄 재를 밖으로 내놓았습니다. 쌓아둔 연탄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헤아렸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이런 일을 거드는 집도 있었습니다.

    월급을 받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직업 이름도 없었습니다.

    그저 집에서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하지 않으면 방이 식었습니다.

    탄광에서 시작된 수많은 사람의 일이 연탄공장과 배달에서 끝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연탄 한 장의 마지막에는 그것을 불로 이어가는 생활의 손이 있었습니다.

    산업의 끝과 사람의 일상이 아궁이 앞에서 만났습니다.

    연탄은 한 시대의 생활연료였다

    연탄에 대한 기억이 많은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이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연탄 소비량은 1970년 1,183만 톤에서 1980년 2,083만 톤으로 늘었고, 1986년에는 2,692만 톤에 이르렀습니다. 서울의 연탄 사용 가구도 1983년 211만 가구에서 1986년 234만 가구로 늘었습니다.⁶⁾

    1980년대 중반까지 연탄은 이미 지나간 옛날 연료가 아니었습니다.

    그때도 수많은 집에서 타고 있던 생활연료였습니다.

    그래서 연탄집게와 연탄재, 골목의 연탄가게와 연탄차가 한 세대의 기억 속에 함께 남았습니다.

    개인의 추억처럼 보이지만 그 밑에는 거대한 에너지 소비의 변화가 놓여 있었습니다.

    산에서 캐낸 석탄이 공장을 거쳐 연탄이 되고, 다시 수많은 집의 아궁이로 들어갔습니다.

    한 장씩 보면 작은 연탄이었습니다.

    모아놓고 보면 한 시대를 데운 연료였습니다.

    연탄이 물러나자 하루도 달라졌다

    그렇게 널리 쓰이던 연탄도 서서히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1986년 무렵 정점에 이른 국내 무연탄 생산은 이후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정과 상업 부문의 연탄 소비가 줄었고, 1986년과 1987년 액화천연가스가 도입되면서 취사와 난방 연료도 점차 달라졌습니다.⁷⁾

    연료 하나가 바뀐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생활에서는 여러 가지가 함께 사라졌습니다.

    골목의 연탄가게가 줄었습니다.

    집 한쪽에 겨울치 연탄을 쌓아놓을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연탄집게가 손에서 멀어졌습니다.

    아침마다 재를 들고 밖으로 나가는 일도 줄어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사람은 조금씩 불의 시간에서 벗어났습니다.

    연탄은 때가 되면 갈아야 했습니다.

    외출이 길어지면 불이 걱정됐습니다.

    잠들기 전에는 밤새 이어질 불을 살펴야 했습니다.

    난방 방식이 달라지면서 그런 시간을 헤아리는 일도 사라져갔습니다.

    난방 기술의 변화는 방을 데우는 방법만 바꾼 것이 아니었습니다.

    겨울을 보내는 사람의 시간도 달라졌습니다.

    연탄 한 장으로 겨울을 난다는 것

    연탄 한 장은 몇 시간이 지나면 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다음 연탄이 그 불을 이어받았습니다.

    그 일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 겨울 내내 계속됐습니다.

    아침에는 방바닥의 온기로 불이 살아 있는지 알았습니다.

    때가 되면 아궁이를 살폈습니다.

    불을 꺼뜨린 날에는 옆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밤새 제 몫을 다한 연탄은 아침이면 하얀 재가 되어 골목으로 나갔습니다.

    그 불로 밥을 짓고 물을 데웠습니다.

    방을 덥혔습니다.

    가족은 그 온기 위에서 겨울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연탄을 기억한다는 것은 검은 연료 하나를 추억하는 일만은 아닙니다.

    연탄을 중심으로 움직였던 하루의 방식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석탄이 어떻게 연탄이 되어 집까지 왔는지를 따라가면 산업이 보입니다.

    그 연탄이 집 안에서 어떻게 타고 사라졌는지를 따라가면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생활에는 따뜻함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밤새 방을 덥혀주던 바로 그 불 때문에 겨울이면 사람들이 두려워하던 것이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잠든 사이 방 안으로 스며들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연탄가스라고 불렀습니다.

    각주

    1. 한국학중앙연구원, 「연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연탄의 가정용 보급과 난방·취사 등 생활연료로서의 이용에 관한 설명.
    2. 한국학중앙연구원, 「연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연탄의 착화 특성과 번개탄의 등장 등에 관한 설명.
    3. 국가기록원, 「길고 춥던 그 시절 겨울 풍경―연탄재 쌓인 골목길」. 1990년대 초까지 연탄이 겨울나기의 주요 연료였으며 골목에 쌓인 연탄재가 흔한 겨울 풍경이었다고 기록한다.
    4. 한국학중앙연구원, 「연탄」 및 국가기록원 연탄 관련 기록. 연탄은 가정의 난방뿐 아니라 취사 등에도 널리 이용됐다.
    5. 국가기록원, 「길고 춥던 그 시절 겨울 풍경―연탄재 쌓인 골목길」. 겨울철 연탄 수급과 석유파동 이후의 연탄 공급 문제를 다룬 기록이 수록되어 있다.
    6. 한국학중앙연구원, 「연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연탄 소비량은 1970년 1,183만 톤, 1980년 2,083만 톤, 1986년 2,692만 톤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서울의 연탄 사용 가구 수도 함께 제시되어 있다.
    7. 한국학중앙연구원, 「연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내 무연탄 생산은 1986년 약 2,760만 톤을 기점으로 감소했고, 가정·상업 부문의 연탄 소비 감소와 LNG 도입에 따른 연료 전환이 이어졌다.
  • 석탄은 어떻게 연탄이 되어 집으로 들어왔나

    석탄은 어떻게 연탄이 되어 집으로 들어왔나

    깊은 어둠 속 막장에서 땀방울과 함께 캐낸 검은 석탄은 덜컹거리는 기차를 타고 도심의 연탄공장으로 향했습니다.

    잘게 부서진 탄가루는 거친 기계의 압력을 견뎌내며 스물두 개의 숨구멍을 품은 단단한 연탄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삼륜차에 실려 좁은 골목을 누비고, 리어카에 실리거나 배달부의 굽은 등과 낡은 지게에 얹혀 가파른 언덕길을 오른 끝에 마침내 우리 집 마당 한구석, 보일러실에 닿았습니다.

    검은 먼지를 털어내며 차곡차곡 쌓인 연탄은 찬 바람 부는 계절마다 아랫목을 설레게 덥히며 가장 소박하고도 뜨거운 겨울의 온기가 되어주었습니다.

    석탄가루가 연탄 한 장이 되기까지

    연탄의 주원료는 무연탄이었습니다.

    공장으로 들어온 원료탄은 그대로 성형기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연탄을 만들기에 알맞은 상태로 준비되어야 했습니다.

    크기가 큰 것은 부수고 원료의 상태를 고르게 만들었습니다.

    일반적인 연탄 제조에서는 석탄가루에 점결제와 수분을 더해 성형하기 좋은 상태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다만 국내에서 생산된 무연탄은 점결성이 좋아 별도의 점결제를 섞지 않고 구멍탄을 찍어낼 수 있었습니다.¹⁾

    준비된 탄가루가 성형기로 들어갔습니다.

    초기에는 사람의 힘으로 연탄을 찍는 수동식 기계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석탄박물관에는 19개의 구멍을 가진 연탄을 만들던 수동식 19공탄 제조기가 남아 있습니다. 이후 연탄 소비가 늘면서 한 번에 한 장을 찍는 단탄윤전기에서 두 장을 찍는 쌍탄윤전기, 세 장을 찍어내는 윤전기로 제조설비도 발전했습니다.²⁾

    연탄이 압축될 때 원통 가운데에는 여러 개의 구멍이 함께 만들어졌습니다.

    그 구멍은 모양을 내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연탄이 타려면 공기가 지나갈 길이 필요했습니다.

    아래쪽에서 들어온 공기가 구멍을 통과하면서 연소를 도왔습니다. 구멍의 수는 화력과 연소시간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³⁾

    성형을 마친 연탄은 쉽게 부서지지 않도록 다뤄야 했습니다.

    처음 찍어냈을 때 수분을 품고 있던 연탄은 마르면서 무게도 줄었습니다. 당시 일반 가정용 연탄은 처음 성형했을 때 약 3.6킬로그램이었고, 건조된 뒤에는 3.3킬로그램 이상이 기준이었습니다.¹⁾

    그렇게 단단해진 연탄이 공장을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석탄가루였던 것이 이제 사람이 들고 나르고 아궁이에 넣을 수 있는 연료 한 장이 된 것입니다.

    19공탄에서 22공탄으로

    연탄은 처음부터 우리가 기억하는 한 가지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시기에 따라 여러 규격이 사용됐습니다.

    구멍 수에 따라 19공탄·31공탄 같은 이름이 사용됐고, 가정에서는 훗날 22개의 구멍을 가진 연탄이 널리 쓰였습니다.¹⁾

    1950년대 중반 시중에 가정용 연탄이 본격적으로 등장했을 때에는 19공탄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지역과 생산업체에 따라 다른 구멍 수의 제품도 만들어졌습니다.⁴⁾

    1970년대에는 가정용으로 19·23·31공탄, 업소용으로 41·42·49공탄 등이 사용됐습니다. 이후 규격을 정리하는 과정을 거쳐 1978년에는 22공탄으로 통일됐고, 다시 22공탄과 25공탄으로 나뉘었습니다.³⁾

    예전 사람들이 흔히 ‘구공탄’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 구멍이 아홉 개인 연탄만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생활 속에서는 ‘구멍탄’이 변한 말로 연탄을 가리키는 이름으로도 사용됐습니다.³⁾

    연탄의 규격이 중요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타고 있는 연탄 위에 새 연탄을 올려 불을 이어가려면 위아래 연탄의 구멍이 맞아야 했습니다.

    연탄을 갈아본 사람이라면 새 연탄을 올려놓고 집게로 살짝 돌리던 손의 움직임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구멍이 맞으면 아래쪽의 열과 공기가 새 연탄으로 이어졌습니다.

    공장에서 똑같은 규격으로 연탄을 찍어내는 일이 결국 한 집의 아궁이와 연결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연탄 한 장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가정에서 사용하던 일반 연탄은 지름 약 15센티미터, 높이 약 14.2센티미터였고 처음 찍어냈을 때 무게는 약 3.6킬로그램이었습니다.¹⁾

    한 장만 놓고 보면 그리 무거워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두 장이면 7킬로그램이 넘습니다.

    열 장이면 36킬로그램입니다.

    백 장이면 360킬로그램입니다.

    몇백 장을 한꺼번에 들여놓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공장에서 연탄을 찍어내는 것으로 일이 끝날 수 없었습니다.

    연탄을 옮겨야 했습니다.

    차량에 실어야 했습니다.

    판매점으로 가져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집까지 들어가야 했습니다.

    탄광에서 시작된 일의 사슬이 공장 밖에서도 계속됐습니다.

    공장에서 골목까지 사람이 옮겼다

    공장에서 나온 연탄은 소비지로 향했습니다.

    도시 곳곳에는 연탄공장과 연탄을 파는 가게가 있었습니다.

    공장에서 많은 양을 차량으로 옮길 수는 있었지만 자동차가 모든 집의 문 앞까지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좁은 골목이 있었고, 비탈길에다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집도 있었습니다.

    차가 멈춘 곳에서부터는 다시 사람의 일이었습니다.

    연탄을 내렸습니다.

    지게나 리어카에 실었습니다.

    집 안의 연탄을 쌓아두는 곳까지 날랐습니다.

    겨울철 주문이 몰리면 이 일은 하루 종일 이어졌습니다.

    탄광에서는 광부가 석탄을 캐냈습니다.

    공장에서는 사람들이 연탄을 만들었습니다.

    도로에서는 운전기사가 실어 날랐습니다.

    골목에서는 배달하는 사람이 다시 연탄을 날랐습니다.

    산속에서 시작한 일이 도시의 좁은 골목까지 이어졌습니다.

    새끼줄에 두 장씩 꿰어 들었다

    모든 집이 몇백 장씩 한꺼번에 주문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필요한 만큼 조금씩 사다 쓰는 집도 있었습니다.

    연탄가게가 가까우면 직접 사 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때 새끼줄이 등장했습니다.

    연탄 구멍에 새끼줄을 꿰어 두 장씩 묶었습니다.

    그것을 양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당시 골목에서 볼 수 있었던 풍경이었습니다. 인천의 생활사를 다룬 기록에도 새끼줄에 두 장의 연탄을 매달아 들고 가는 사람의 모습이 남아 있습니다.⁵⁾

    양손에 두 장씩이면 네 장입니다.

    3.6킬로그램을 기준으로 하면 14킬로그램이 넘습니다.

    평지에서 잠깐 드는 것과 언덕길을 걸어 집까지 가져가는 것은 달랐습니다.

    손에는 새끼줄이 걸렸습니다.

    옷에는 검은 탄가루가 묻었습니다.

    그래도 들고 갔습니다.

    그날 밤 방을 덥힐 연료였기 때문입니다.

    연탄 몇 장을 들고 골목을 걷는 모습에는 당시의 살림살이도 함께 담겨 있었습니다.

    연탄을 채우고 김장을 하면 겨울 준비가 끝났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집집마다 겨울을 준비했습니다.

    연탄을 사용하는 집에서는 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겨울 동안 사용할 연탄을 들여놓았습니다.

    트럭에서 연탄이 내려왔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다시 한 장씩 옮겼습니다.

    마당 한쪽이나 창고, 처마 아래처럼 비와 눈을 피할 수 있는 곳에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아래부터 줄을 맞췄습니다.

    무너지지 않도록 살피며 한 단씩 높였습니다.

    검은 연탄이 벽처럼 쌓여갔습니다.

    그리고 김장을 했습니다.

    배추를 절였습니다.

    양념을 만들고 버무렸습니다.

    겨우내 밥상에 올릴 김치를 마련했습니다.

    집집마다 형편도 달랐고 준비하는 양도 달랐습니다.

    그래도 연탄을 채워놓고 김장까지 해놓으면 이제 겨울 준비는 다 했다는 말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하나는 집을 따뜻하게 할 것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겨울 밥상을 지킬 것이었습니다.

    연탄이 든든하게 쌓이고 김장까지 끝나면 긴 겨울을 맞을 채비가 갖춰졌습니다.

    지금은 난방을 준비한다고 몇 달 치 연료를 집 안에 쌓아놓지 않습니다.

    당시에는 겨울을 얼마나 준비했는지가 눈에 보였습니다.

    쌓인 연탄이 줄어드는 것을 보며 겨울이 얼마나 지나갔는지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연탄더미는 단순한 연료 창고가 아니었습니다.

    한 집이 겨울을 건너기 위해 마련해놓은 준비였습니다.

    연탄은 불을 붙이는 것부터 일이었다

    연탄을 집에 쌓아놓았다고 바로 따뜻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연탄은 성냥불 하나를 갖다 댄다고 금세 활활 타오르는 연료가 아니었습니다.

    고체연료인 데다 처음 불이 붙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잘 마르지 않은 연탄은 불을 붙이기가 더 어려웠습니다.¹⁾

    그러니 처음 불을 살리는 데에도 수고가 들었습니다.

    하지만 한번 불이 살아난 뒤에는 이야기가 달라졌습니다.

    중요한 것은 불을 꺼뜨리지 않고 이어가는 일이었습니다.

    타고 있는 연탄 위에 새 연탄을 올렸습니다.

    연탄집게로 새 연탄을 조금씩 돌려 아래 연탄과 구멍을 맞췄습니다.

    공기가 통하면서 아래 연탄의 열이 위 연탄으로 이어졌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새 연탄도 붉게 달아올랐습니다.

    때를 놓치지 않고 다음 연탄을 갈아야 했습니다.

    아침에 살폈습니다.

    저녁에도 살폈습니다.

    잠들기 전에도 불이 얼마나 남았는지 보는 집이 있었습니다.

    연탄은 값만 치르고 사오면 끝나는 연료가 아니었습니다.

    사람의 손과 시간을 계속 요구했습니다.

    불이 꺼지면 이웃집 연탄을 빌려왔다

    아무리 살펴도 불을 꺼뜨리는 날은 있었습니다.

    갈아야 할 시간을 놓치기도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궁이가 싸늘해져 있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 처음부터 다시 불을 붙이는 방법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웃집에 가서 불이 붙어 있는 연탄 한 장을 빌려오기도 했습니다.

    벌겋게 살아 있는 연탄을 받아와 자기 집 아궁이에 넣었습니다.

    그 위에 새 연탄을 올렸습니다.

    그러면 옆집에서 건너온 불이 자기 집 연탄으로 이어졌습니다.

    연탄을 꾸기도 했고 불붙은 연탄을 빌려오기도 했습니다.

    연탄만 꾸는 것이 아니라 불까지 꾸던 시절이었습니다.

    한집의 불이 꺼졌을 때 옆집의 불이 다시 그 집의 방을 데웠습니다.

    같은 골목의 집들이 비슷한 연료를 사용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풍경이었습니다.

    그 시절 이웃은 담장 너머에 사는 사람이기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급할 때 연탄 한 장을 꾸러 갈 수 있는 집이었습니다.

    꺼진 불을 다시 살릴 수 있는 불붙은 연탄 한 장을 빌릴 수 있는 집이기도 했습니다.

    연탄이 부족하면 겨울이 불안해졌다

    그래서 겨울이 오기 전에 연탄을 마련하는 일은 중요했습니다.

    추워질수록 수요가 몰렸습니다.

    공장에서 많이 생산하더라도 운송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면 필요한 때에 연탄을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1966년에는 가격통제와 공급 부족 등이 겹치면서 연탄 부족이 심해졌습니다. 겨울을 앞두고 한두 장이라도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⁶⁾

    연탄이 떨어진다는 것은 생활이 불편해지는 정도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난방이 멈췄습니다.

    취사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러니 연탄이 넉넉히 쌓여 있으면 당분간은 마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연탄더미의 바닥이 보이기 시작하면 다시 가게를 생각해야 했습니다.

    검은 연탄 한 장이 한겨울에는 생활의 시간을 움직였습니다.

    연탄 한 장은 혼자 집까지 오지 않았다

    연탄을 떠올리면 먼저 검은 원통이 생각납니다.

    그러나 그 한 장을 거꾸로 따라가 보면 사람이 보입니다.

    탄광에서 무연탄을 캐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원료를 운반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공장에서 탄가루를 준비하고 성형기를 움직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찍혀 나온 연탄을 옮기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연탄을 차량에 싣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연탄가게에서 주문을 받고 물건을 관리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트럭을 운전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골목에서는 다시 사람이 연탄을 날랐습니다.

    마지막에는 그것을 받아 쌓는 집의 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집에 들어온 연탄에는 다시 사람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불을 붙였습니다.

    때를 맞춰 새 연탄을 올렸습니다.

    구멍을 맞췄습니다.

    재를 치웠습니다.

    불이 꺼지지 않았는지 살폈습니다.

    불이 꺼지면 옆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탄광에서 캐낸 검은 돌 하나가 공장을 거쳐 연탄이 되고, 연탄가게를 지나 골목으로 들어와 한 집의 불이 되기까지 수많은 손이 이어졌습니다.

    산업은 공장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집 안으로 들어와 생활이 되었을 때 비로소 마지막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마당 한쪽에는 연탄이 쌓여 있었습니다.

    김장은 끝났습니다.

    아궁이에는 연탄불이 살아 있었습니다.

    그 세 가지를 바라보며 사람들은 긴 겨울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그 집의 연탄불이 꺼지는 날이면 이웃집의 불 한 장이 담장을 넘어왔습니다.

    석탄의 이야기는 그렇게 산업의 이야기에서 사람의 생활 이야기로 들어왔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바로 그 집 안에서 이어집니다.

    연탄 한 장으로 겨울을 나던 시절.

    연탄을 갈고, 꾸어 쓰고, 재를 내다 버리며 하루의 시간을 연탄불에 맞춰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각주

    1. 한국학중앙연구원, 「연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연탄의 원료와 성형 특성, 일반 가정용 연탄의 무게와 규격, 연탄의 착화가 쉽지 않았던 특성 등을 설명하고 있다. 일반적인 연탄 제조에는 점결제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으나 국내 무연탄은 점결성이 좋아 별도의 점결제를 넣지 않고 구멍탄을 성형할 수 있었다고 기록한다.

    2. 보령석탄박물관, 「석탄의 채굴이용관」. 19공탄을 만들던 수동식 제조기와 연탄 수요 증가에 따라 한 장씩 찍는 단탄윤전기, 두 장씩 찍는 쌍탄윤전기, 세 장씩 생산하는 윤전기로 제조설비가 변화한 과정을 전시·설명하고 있다.

    3. 국립민속박물관, 「그 겨울 우리가 의지했던 연탄」. 연탄의 구멍이 공기 순환과 연소시간에 영향을 주며, 1970년대 가정용 19·23·31공탄과 업소용 41·42·49공탄 등이 사용된 뒤 1978년 22공탄으로 통일되고 이후 다시 22공탄과 25공탄으로 나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4. 국가기록원,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연탄」. 1950년대 중반부터 연탄이 가정용 난방연료로 판매되기 시작했으며 1955년 생산된 19공탄이 주를 이루었고, 지역에 따라 구멍 수가 다른 연탄도 생산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5. 인천광역시, 『굿모닝인천』,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혹시 연탄」. 당시 생활 풍경 가운데 새끼줄에 연탄 두 장을 매달아 직접 들고 가는 사람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6. 한국학중앙연구원, 「연탄파동」,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65년 이후 수요 증가와 가격 문제, 1966년의 심각한 공급 부족을 설명하며, 겨울을 앞두고 시민들이 한두 장의 연탄이라도 사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렸던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